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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자유, 불나방의 자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 [태종이 세종을 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

뚝섬 2021. 11. 2. 06:27

[이재명의 자유, 불나방의 자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세 번째 대선 출마] 

[태종이 세종을 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

 

 

 

이재명의 자유, 불나방의 자유

 

[동서남북]

표현의 자유’ 이용해 부활한 이재명, 남의 자유엔 인색
권력자와 국민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공정한 나라
 

 

이재명 후보가 지난 10월 27일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방문해 한 상인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photo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수락연설문은 4215자로 이뤄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인용을 시작으로 1153개 단어가 쓰였다. 여기에 ‘자유’란 말은 딱 한 번 나온다. “국민이 더 안전하고, 모두가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란 대목이다. ‘평등’은 4회, ‘공정’은 10회 등장한다.

 

그랬던 이 후보가 요즘 자유를 입에 달고 산다. ‘음식점허가총량제’를 언급하며 “자살할 자유는 자유가 아니듯 망할 자유도 자유가 아니다”라고 했다. “다 자유라고 정해놓고 마치 불나방이 촛불을 향해 모여드는 건 좋은데 지나치게 가까이 가서 촛불에 타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이 불나방이냐’ ‘식당도 맘대로 못 여냐’는 지적이 쏟아지자 그는 “국민적 논쟁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 이번 기회에 자유와 방임의 경계는 어디인가 생각해보자”고 했다.

 

국민은 창업의 자유를 원하지 망할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이 후보 논리대로면 선거 출마가 다 자유라고,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 출마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도 성남시장,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경험이 있다. 지난 대선은 경선에서 떨어졌다. 자주 떨어진다고 입후보 자유를 제한하면 되겠는가. 자유는 총량제가 아니다.

 

사실 이 후보는 ‘표현의 자유’를 이용해 부활했다. 그는 2018년 경기지사 후보 TV 토론에서 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개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런 일이 없다”고 답해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며 이 후보 발언이 사실과 일부 다르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선거의 공정을 위해 부정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들 모두에 대해 무거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당시 유죄가 확정됐다면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자격 상실이었다.

 

이 후보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아 살아났지만 이후 다른 사람에게 같은 자유를 보장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전단을 날리는 탈북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가 미국에서도 나오자, 그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분단국가를 사는 국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문제”라고 했다. 온라인 사이트에 부적절한 글을 올린 경기도 7급 공무원 후보자의 임용을 취소할 때는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켜 국제사회는 물론 청와대도 반대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도 찬성했다. “5배도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장동 의혹 보도가 허위라며 무차별 송사를 진행 중이다. 선거기사심의위원회와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를 통한 이의 신청이 헤아릴 수 없다. 본지에 낸 것만 30건이 넘는다. 물론 허위 보도가 있다면 언론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이 후보가 정말로 진실을 밝히고 싶다면 국민 절반 이상이 바라는 특검에 찬성하면 된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공정’을 기치로 걸었다. 자유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공정한 세상이다. 어떤 이가 다른 이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면 공정한 나라가 아니다. 특히 권력자가 자신의 자유는 극대화하면서 다른 이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독재다. 불나방도 제 목숨 제가 건사할 자유를 원한다. 참고로 우리 헌법에는 자유가 22회, 평등이 4회 등장한다. 공정은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한 번이다.

 

-황대진 기자, 조선일보(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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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세 번째 대선 출마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일 국회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TV조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12년, 2017년 대선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다. 그는 1일 기자회견에서 “기득권 양당들이 간판 선수만 바꾸는 정권 교체는 구적폐를 몰아낸 자리에 신적폐가 들어서는 적폐 교대만 반복할 뿐이기 때문에 판을 갈아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여야 대선 주자들을 향해 “나쁜 X, 이상한 X, 추한 X만 있다며 국민은 걱정이 태산”이라고도 했다.

 

안 대표는 여야 유력 후보들이 도덕성이나 정책 능력 모두에서 대통령감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비호감 대선’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대안 후보임을 자처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는 5~7%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두 자릿수 지지율을 넘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대선 3수(修)에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도 패했던 그가 국민들에게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비호감도는 여야 후보들보다 더 높게 나오고 있다.

 

안 대표가 작년 말 서울시장 출마 선언 당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그는 당시 “대선은 포기하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고 좋은 시정을 통해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은 “시장에 당선이 되면 도중에 그만두고 대선에 나가는 일이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이라고 했다. 당시 안 대표의 말을 그렇게 해석한 사람이 얼마나 됐겠나. 안 대표가 자신의 거취보다 정권 교체를 우선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여긴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안 대표는 10여 년 전 정치를 시작하면서 ‘새정치’와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로 바람을 일으켰다. 유력 대선 후보로도 떠올랐다. 아직까지 그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는 것은 그때의 이미지가 남아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거듭되는 출마와 약속 번복으로 그 참신함이 빛을 잃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합당을 약속했다. 하지만 양측은 지분 다툼을 하다 3개월 전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이것이 정권 교체를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겠다는 정당들의 모습인가. 앞으로도 국민에게 감동과 믿음이 아니라 실망을 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편협한 사적 감정과 정치 이익에 매몰된 계산들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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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세종을 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

 

[박현모의 실록 속으로]

태종, 세종과 지식·토론 중시한 통치 비슷했지만 정치 안정엔 실패
비판 신하 숙청·귀양… 홀로 국정 챙기다 “왕 노릇 힘들다” 눈물도
세종은 부왕 약점 극복… 언로 열고 인재들 재능·창의성 발휘케 해
 

 

태종은 왜 세종만큼 업적을 내지 못했을까? 태종실록 강독을 진행하는 올가을 내내 품게 된 의문이다. 그런데 태종실록을 읽고 함께 토론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태종과 세종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우선 두 사람은 책을 국정 운영에 잘 활용했다. 세종은 1419년 4월 ‘시경’의 날씨 관련 대목을 인용하며 ‘요즘 기후가 고르지 않은데 정치를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태종도 이와 비슷하게 1414년 6월 ‘’문헌통고’를 보니 나라에서 사면(赦免)을 하자 비가 내린 적이 있다’면서 사면령 검토를 지시했다. 이 외에도 왕이 신하들과 책을 함께 읽거나, 책 속 지식을 정책 결정에 활용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다음으로 태종과 세종은 ‘토의 대왕’이었다. 세종의 즉위 제일성이 ‘의논하자’였고, 경연(經筵)이라는 세미나식 어전회의를 월 5회 이상 개최한 것은 알려져 있다. 태종 역시 재위 중반인 1415년 6월에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인사(人事)에 잘못이 있지 않은가 싶다”면서 전국의 관리들로 하여금 ‘시정(施政)의 득실과 민생의 질고(疾苦)에 대해 모조리 개진할 것’을 요청했다.[求言]

 

사흘 뒤인 6월 17일에 140여 조항의 진언(陳言)이 올라왔다. 왕은 올라온 진언에 대해서 육조와 승정원의 관리로 하여금 시무(時務)에 절실하지 않은 것은 제외시키고, 실행 가능한 중요 안건 4가지를 뽑아 토의하게[擬議·의의]했다. 토의하는 방식이 인상적인데, 먼저 왕이 안건별로 질문하면 담당자가 요약 보고했고, 그 뒤 ‘집중 토의’를 거쳐 왕이 최종 결정했다. 다시 5일 뒤인 6월 22일에는 지방의 감사와 대소 관리가 올린 진언 200여 통이 올라왔다. 이 중 33조항이 토의되었는데, 이날 실록에는 조항마다 ① 의견 올린 사람 이름과 주요 내용[陳言·진언], ② 토의해 내린 결론[議得·의득], ③ 왕의 최종 결정[從之·종지/不允·불윤]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왕이 구언(求言) 요청을 하고, 관리들이 그 요청에 응해 수백 개의 정책 제안을 신속하게 올리며, 주요 사항에 대해 어전에서 토의한 후, 담당자의 계목(啓目: 실행 방안) 검토를 거쳐, 왕이 최종 결정 후 시행하게 하는 것을 보면, 흡사 선진 국가의 입법 과정을 보는 듯하다. 옥스퍼드대 파이너(S. E. Finer) 교수는 ‘정부의 역사’라는 책에서 ‘군주정에서도 활발한 토론의 정치(forum in the palace)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는데, 태종과 세종 시대의 토론이 그 적절한 예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지식 경영과 정책 수렴을 잘한 결과, 태종 시대는 ‘먹을 것이 풍족하게’ 되었다. 고려 말 80만 결이던 (평안·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의 경작지가 태종 시대에 들어 120만 결로 증가했다. 서울과 지방의 창고가 가득 차서 물로 주변을 에워싸 쥐의 침입을 막아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태종 시대는 ‘족식(足食)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국방은 1410년 경원전투 패배에서 보듯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태종이 희망했던 ‘먹을 것이 풍족하고 병력이 충분하며 백성이 정치를 믿는’ 나라는 세종 때에 이르러서야 성취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러 원인 중에서 나는 인재를 모조리 자기 밑에 두려는 태종의 통치 방식을 꼽는다. 태종은 신하들의 강한 비판을 참지 못했다. 왕명을 거슬러 어전회의를 기록한 사관 민인생을 귀양 보냈다(1401년 7월). 왕권 도전 세력으로 판단된 사람은 가차 없이 숙청당했다. 재위 초반 공신 이거이 제거에서 시작해 중후반 민씨 형제 사사(賜死)까지 재위 기간 내내 ‘공안 정국’은 계속되었다. 왕이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어떤 사람을 좌표 찍으면 언관과 대소 신료들이 들개 떼처럼 덤벼들어 공격했다.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이숙번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1416년 6월).

 

총애받는 사람만 전폭 지원받는 상황에서 인재들이 왕의 생각을 뛰어넘는 창의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웠다. 육조의 판서들이 정승을 건너뛰어 왕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대소 업무가 모두 왕에게 쏠렸다. 그가 종종 ‘왕 노릇 하기 싫다’며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하소연한 것은 그런 맥락이었다. 다행히도 태종에게는 대안이 있었다. 재위 말년 충녕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과감히 세자를 교체하고 전격 전위를 단행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세종은 부왕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부왕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인재들이 속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대화하고, 각각의 에너지를 나랏일에 쏟게 했다. 부왕 시대의 일인 중심 국정 운영을 벗어났다. 의정부 재상들의 경륜을 국가 경영에 반영했으며, ‘나랏일은 곧 내 책임’이라는 소명 의식을 갖고 일하게 했다. 태종이 발탁하고 키운 장영실⋅정인지⋅황희 등이 세종 시대에 이르러서 각각의 재능을 꽃피운 것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재위 기간에 단 한 명도 정치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켰다. 대선을 몇 달 앞둔 때라 그런지 태종과 세종 이야기가 그저 옛날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조선일보(2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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