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 꼴찌, 빚 증가 세계 최고, 한국 경제의 ‘우울한 미래’]
[野 “43조원” 자영업 지원은 옳지만 쉽게 빚 늘릴 나라 형편 아니다]
[공수처 尹 후보 4번째 입건, 野 후보 잡는 전용 기관인가]
[드라마(오징어게임)일 뿐이라 장담할 수 있나]
[사이코패스의 성공 술수]
[보수 ‘리부팅’이 정권 교체만큼 절실하다]
잠재성장률 꼴찌, 빚 증가 세계 최고, 한국 경제의 ‘우울한 미래’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0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한국의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이 2030년 이후엔 OECD 회원국 최하위권으로 추락할 것이란 OECD 전망이 나왔다. 2007∼2020년의 연평균 2.8%에서, 2030∼2060년 0.8%로 떨어져 캐나다와 함께 OECD 38국 중 꼴찌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2039년엔 일본에도 역전될 것으로 전망됐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대표적인 저성장국 일본보다도 취약한 ‘제로(0) 성장국’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와 그에 따른 생산인구 급감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적절한 정책 처방으로 대응하면 잠재 성장률 하락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 구조 개혁과 산업 재편 등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으로 성장 활력을 키우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정책만 펼쳐왔다. 온갖 반기업 규제로 기업 활력을 위축시키고 생산성을 저하시켰다. 노동 개혁과 구조 조정, 미래 먹거리 발굴엔 아예 손을 놓았다. 거기에 온갖 세금 퍼주기로 경제의 최후 보루인 재정까지 부실화시키고 있다. 성장의 발판을 약하게 만든 것이다.
저성장 속에서도 나랏빚은 선진국 최고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IMF는 한국의 향후 5년간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선진 35국 중 가장 빠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진 35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오는 2026년까지 3.0%포인트 내려가는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15.4%포인트 상승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독일·프랑스 등은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재정 지출을 내년부터 8~19% 줄이는 재정 감축에 들어가기로 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내년에도 올해보다 8% 넘게 증액된 604조원의 수퍼 예산을 편성했다. 해마다 적자국채를 100조원씩 발행하고 있다. 세금 퍼붓기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끝나는 2026년엔 국가부채(일반정부 기준) 비율이 66%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기증 나는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성장률은 최저이고, 부채 증가 속도는 최고가 된다는 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다. 문 정부 잘못만도 아니다. 역대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나태가 쌓여 저성장·고부채의 우울한 자화상을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포퓰리즘을 버리고 입에 쓴 약을 먹어야 한다.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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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43조원” 자영업 지원은 옳지만 쉽게 빚 늘릴 나라 형편 아니다

2021년 9월 9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가 강원 원주시를 방문한 가운데 자유시장 번영회에서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청취한 후 원주시당협위원들과 상인들을 만나러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최대 43조원을 지원하고, 이와는 별도로 50조원 규모의 초저금리 대출, 임대료 부담 완화 등을 공약했다. 당선되면 정부 출범 100일 안에 실천하겠다고 했다. 윤 후보 측이 제시한 43조원은 피해 규모에 따라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하게 돼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지원하는 돈보다 2~3배 큰 규모다.
국민 전체를 위해 자신들의 생계를 희생했던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국민 세금으로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문 정부는 자영업자 지원보다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별 효과도 없는 선거용이었다.
그런 점에서 야당이 자영업자 집중 지원을 밝힌 방향은 옳다. 하지만 43조원이라는 돈은 실로 엄청난 액수다. 문 정부 이후 10조~20조원 정도는 우습게 여기는 풍조가 생겼지만 43조원은 2017년 국가 전체 예산의 10%가 넘는 돈이다. 이 돈이 당장 어디서 나오겠나. 윤 후보 측은 세계(歲計) 잉여금 10조원과 33조원의 정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겠다는데 33조원이 줄어드는 분야의 수많은 국민은 어떻게 하나. 결국 또 빚을 내게 될 것이다. 이미 내년에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어간다. 야당까지 국가부채의 급속한 증가를 가볍게 여기면 나라가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여든, 야든 우리 국민을 너무 낮춰 보지 말기 바란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제안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나라에서 공짜로 돈을 준다는 데도 “내수 진작을 위해 지급이 필요하다”(32.8%)는 의견보다 “재정에 부담을 주므로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60.1%)는 여론이 훨씬 높았다. 특히 20대(68.0%)에서 반대 의견이 가장 높았다. 정치권의 달콤한 ‘현금 살포’에 국민이 제동을 걸 의지와 판단력이 있고, 특히 나랏빚 내는 현금 살포 포퓰리즘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세대 약탈’임을 젊은 세대들이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민에게 선택받으려면 주어진 현실 내에서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코로나로 희생한 자영업자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하지만 우리 형편에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더 고민해야 한다. 쉽게 빚 늘릴 생각은 안 된다. 우리는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는 미국이 아니다.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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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尹 후보 4번째 입건, 野 후보 잡는 전용 기관인가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2021년 11월 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공수처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이른바 ‘판사 사찰’ 의혹과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추가 입건했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임할 때 주요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며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이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윤 후보를 피의자로 조사하고 있는 사건은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포함해 모두 4건으로 늘어났다.
야당 대선 후보도 불법 혐의가 있다면 수사를 받아야 하지만, 지금 공수처의 행태는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공수처가 지난 1월 출범한 뒤 정식으로 사건 번호를 붙여 수사하고 있다고 알려진 주요 사건 가운데 윤 후보가 피의자로 돼 있는 것이 3분의 1에 가깝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고위 공직자가 7000명이나 되는데도 대선을 앞두고 야당 대선 후보 한 사람에게 이 정도로 수사를 집중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사실상 윤 후보를 표적으로 정하고 범죄 혐의가 나올 때까지 먼지 떨이식 수사를 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수처의 고발 사주 의혹, 판사 사찰 의혹 수사는 모두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때부터 터무니없는 이유로 그를 수십 차례 고발해온 한 시민단체가 낸 고발장에 따른 것이다.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 고발장 접수 3일 만에 윤 후보를 피의자로 입건해놓고 “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음의 이야기”라고 했다. 손준성 검사 구속 영장도 3분의 1을 윤 후보 관련 내용으로 채웠다. 그 내용은 여권 인사들이 윤 후보를 공격할 때 사용하던 논리라고 한다. 손 검사가 아니라 윤 후보 영장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당연히 영장은 기각됐다. 공수처는 시민단체가 낸 판사 사찰 의혹 고발장을 5개월이나 묵혀 뒀다가, 고발된 6명 중 윤 후보만 뽑아내 지난달 22일 불쑥 피의자로 입건했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어떡하든 윤 후보를 엮으려 하는 것 아닌가.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의 범죄를 척결하라고 만든 기관이다. 현직 대통령, 총리, 장관, 국회의원, 지자체장, 판사, 검사 등의 부패와 비리를 잡아내 국민의 이익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가 출범 10개월이 다 되도록 이런 범죄를 밝혀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장동 의혹 수사는 공수처의 존재 이유와도 같지만 검찰에 넘겨버렸다. 그러면서 야당 후보 한 사람만 물고 늘어지는 전용 기관처럼 움직이고 있다.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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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일 뿐이라 장담할 수 있나
[동서남북]
오징어게임 열기 살짝 식은 지금 ‘왜 열광했나’ 돌아보면 어떨까
탈북민 방치, 시한폭탄 영끌 투자… 더는 국민을 ‘도박’에 내몰지 말길

‘오징어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인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미국 CNN방송은 온라인 기사 ‘왜 미국인은 오징어 게임에 사로잡혀 있는가’에서 “미국인들도 매일 크든 작든 자신만의 ‘오징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인공 기훈(이정재)의 어머니가 당뇨 진단을 받고서도 “일을 쉬면 병원비는커녕 집세도 못 낸다”며 치료를 거부하는 장면은 공공 의료보험 체계가 미비한 미국에서 1400억달러(약 165조원)에 달하는 의료비 빚더미 문제를, 파키스탄 이주 근로자의 임금 체불 사례는 미국 내 이민자에 대한 임금과 차별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미국인 자신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에 겹쳐 보였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이야기를 세계적 보편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드라마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연이어 이런저런 기록 속에서 화제가 되는 걸 보며, 이 들뜬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으면 같은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왜 한국인은 오징어 게임에 사로잡혀 있는가.’ 이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첫 시나리오를 완성한 2008년쯤엔 난해하고 기괴해 만들 수 없다고 했다. 서글프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잘 어울리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지나치게 잔인한 첫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질려 그만 볼까 싶었다. 하지만 탈북 소녀 강새벽(정호연)의 눈빛이 멱살을 잡아끌듯 끝까지 보게 했다. 그는 중국 공안에 걸려 북송당한 어머니를 빼내 오려고 건넨 돈을 떼먹은 탈북 브로커를 찾아간다. 뜨거운 커피를 끼얹고 목에 칼을 들이댄다. 깡다구만 남은 듯한 깡마른 몸과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그 누군들 새벽만큼 절박하지 않았을까.
지난 3월 북한자유연합 대표 수잰 숄티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국에 억류 중인 탈북민을 구해달라’며 보낸 공개 편지를 번역해 본지에 실은 적이 있다. 그는 “6·25 때 구출됐기에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당신이 행동할 때”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무반응이었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7월 “중국 정부가 현재 탈북민 등 북한 주민 최소한 1170명을 구금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이들에게 탈북은 목숨을 건 도박과 같았다. 지금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이들의 존재는 너무 쉽게 망각된다.
탈북민의 현실은 눈감으면 안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선물(先物) 투자로 60억을 빚진 ‘쌍문동 수재’ 조상우(박해수)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정도 차이일 뿐, 정부의 정책 실패로 빚어진 부동산 값 폭등 국면에서 더 늦기 전에 집을 사려는 ‘영끌’ 대출과 빚을 내서라도 주식·가상화폐에 투자하는 ‘빚투’는 현실이다. 지난 2분기 말 20~30대 가계 부채는 487조5900억원으로 전체의 27%나 됐다. 증가율도 다른 연령층을 압도했다. 올 상반기 수도권 아파트 매매 거래 중 20~30대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었고, 지난해 주요 증권사 신규 계좌 주인 중 절반이 20~30대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건 도박에 내몰리는 드라마가 현실에서 다시 시작된다면, 그건 악몽일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는 “여전히 최고의 민생 문제이며 개혁 과제”라고 남의 말 하듯 하는 걸 보며 ‘영끌’ ‘빚투’에 나선 사람들 심정은 어땠을까. 결혼하고 집 사고 아기 낳는 평범한 삶의 꿈마저 사치로 만들어버린 위정자들은 어찌 이리 뻔뻔하고 당당한가. 설마 오징어 게임 제작진과 배우들을 불러다 달고나를 해 먹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태훈 기자,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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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성공 술수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음료 이름 뒤에 ‘lite’가 붙으면 저칼로리란 뜻이다. 그런데 ‘사이코패스 라이트(psychopath lite)’란 용어를 한 해외 경영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의학적 진단 기준에 이르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아니지만 일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사이코패스’적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데, 그 수가 적지 않고 나와 조직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의학적 관점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조종이다. 타인을 조종하기 위해 속임수를 빈번히 사용하고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유혹, 매력, 언변, 아부를 활용한다. 둘째는 냉담이다. 공감이 결여돼 있고,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죄책감이 결여돼 있어 공격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셋째는 기만이다. 부정직, 사기, 허위 진술, 사건에 대한 윤색과 날조에 능하다. 넷째는 적개심이다. 사소한 경멸이나 모욕에 대해 분노 감정을 표현하고 복수심에 가득한 언행을 보일 때가 있다. 다음은 충동성이다. 결과에 대한 고려 없이 순간적인 계획과 행동을 보이고, 미래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무책임성인데, 공공연히 약속한 것을 존중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조직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성공한 리더 중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경우가 일반 인구 기준 1% 미만보다 높은 3.9%에서 12%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찌 되었건 나와 조직에 해를 미치는 사이코패스의 성공 술수를 알아볼 감별력은 필요하다. ‘다섯 단계 모델’이란 사이코패스 성공 술수 관련 가설이 있다. 우선 진입(entry)이다. 매력, 뛰어난 언변, 카리스마 등을 활용하여 구성원의 호감을 얻는다. 둘째는 평가다. 사람을 쓸모에 따라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추종자이자 공식 역할이 없는 ‘졸’과, 주변에서 공격할 때 자기를 방어해 줄 수 있는 공식적 포지션을 갖는 ‘수호자’로 구분한다. 다음은 조종이다. 자신에 대해선 소설 같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타인에 대해선 가십과 거짓 정보를 흘려 자신의 지지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넷째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유지하기 위해 ‘캐릭터 저격(character assassination)’을 사용한다. 자신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평가절하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이코패스가 고용되는 것을 막고 자기 ‘상승’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이용하고 쉽게 버린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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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리부팅’이 정권 교체만큼 절실하다

2021년 11월 5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윤석열 후보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우리나라의 보수는 폭삭 망했었다. 대통령에게 입바른 소리 한번 못 하고 떡고물만 바라보던 정치인들은 당의 대들보와 서까래가 무너지는 난리 통에서 제 몸들만 겨우 빼냈다. 의기양양한 민주당은 보수 궤멸과 20년 장기 집권을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흐른 지금, 정권 교체 전망이 어둡지 않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한껏 고무된 분위기에서 치러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정당 혁신에 힘입어 국민의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자화자찬에는 걱정이 앞선다. 스스로의 한계와 과제를 짚어내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선거에서 이긴다 해도 국가의 미래를 밝힐 수 없다.
냉정하게 봤을 때, 지금 야권이 대권을 노릴 수 있게 된 것은 보수가 혁신적 대안 세력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 아니라, 청와대와 여당의 참담한 실패 덕분이다. 젊은 당대표 선출 등 신선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한국 보수 정치의 정신이 뭔지 알겠다는 이는 찾기 어렵다. 미래 대비와 국가 개혁의 과제를 설계하고 책임지는 모습보다 어설픈 진보 따라 하기로 나라 곳간 허물기에 슬며시 끼어드는 장면이 더 익숙하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보수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보다는 저 모양이라도 민주당보단 낫지 않겠냐는 체념이 지배적이었다.
5년 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를 외친 대상이 보수 정치 세력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근본적 쇄신 없이 이들이 권력만 탈환했을 때 국민이 또 한번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비관적이다. 이 망국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권 교체를 향한 국민 열망이 강한 바로 지금, 보수의 전면적 리부팅이 절실하다. 지적·도덕적으로 파산해버린 자칭 진보 세력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보수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기도 하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합니다’라 떠벌리다 화천대유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여당 후보를 이기는 것만 유일한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부팅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선 시대를 읽고 대처하는 유능함이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 대응, 미·중 관계의 변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가 숨 가쁘고, 경제력 격차와 고령화 등 내부의 어려움도 무겁다.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과 발 디딘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앞길을 뚫을 수 있을지에 국민 삶이 걸려 있다.
게다가 코로나 동안 풀린 유동성, 미뤄놨던 구조 개혁으로 수습하고 거둬들여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라 다음 정권은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러니 뚜렷한 청사진으로 희망을 제시하되, 어려운 상황을 정직하게 털어놓고 고통스러운 개혁에 대한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둘째, 약자 배려와 격차 완화에 보수가 소극적이라는 통념을 불식할 진정성이다. 근래 보수 정권 10년이 가장 박한 평가를 받은 게 양극화 대처와 사회 통합이다. 사회 통합 실패는 정권의 실패뿐 아니라 극심한 포퓰리즘을 불러들여 민주주의 체제까지 위협하게 된다. 틈만 나면 국가 재정을 정권 유지 도구로 써먹는 여당을 비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국민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와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 정치를 향한 각오다. 사실, 여당 및 자칭 진보가 공적 가치와 책임을 내던지고 패거리 이익만 좇는 괴물이 된 데는 기득권 카르텔이라 불신받은 보수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 생계형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진보가 법치를 농락하고 내로남불만 일삼다 몰락했다고 해서 보수가 미래를 열 리더십을 자동으로 갖추는 것이 아니다. 무책임 정치로 국민 신뢰를 잃고 무기력하게 권력을 갖다 바친 것이 바로 우리의 보수다. 지금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여당이 한심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기득권을 절대 내려놓는 법이 없고 망해도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보수도 딱히 다르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 국민은 믿고 존경을 보낼 정치를 갈망해왔다. 자신의 언행을 천금과 같이 여기는 정치인, 거짓이 드러나거나 정책이 실패하면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정치 세력이 이미 국민 눈높이다. 이것이 보수 정치의 뉴노멀이 돼 한국 정치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더구나 어차피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라면 현재와 같이 지축을 흔드는 환경 변화를 뚫고 국가를 번영으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앞으로 넉 달의 대선 경주 동안 보수 정치가 스스로를 리부팅할 수 있을지가 나라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윤희숙 전 국회의원, 조선일보(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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