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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는 노벨상이 아니다] [한국 클래식, 콩쿠르 이후가 없다]

뚝섬 2022. 7. 31. 05:26

[콩쿠르는 노벨상이 아니다] 

[한국 클래식, 콩쿠르 이후가 없다]

 

 

 

콩쿠르는 노벨상이 아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인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올해 60년을 맞은 이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다. (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2022.6.19/뉴스1

 

“조성진과 임윤찬 가운데 누가 잘 쳐요?”

 

지난달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우승한 직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간단한 질문 같지만 막상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한 맥락과 배경을 거두절미한 채 오로지 양자택일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콩쿠르의 역사부터 차분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콩쿠르는 철저하게 20세기의 산물이다. 이른바 ‘3대 콩쿠르’로 불리는 쇼팽 콩쿠르(192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3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1958년)의 탄생 연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연이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1962년) 역시 미소(美蘇) 냉전과 짧은 해빙(解氷)의 산물이다. 1958년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했으니 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스탈린 사후의 해빙이 없었다면 미국 피아니스트가 우승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결과적으로 한국 젊은 연주자들이 대회 정상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수백 년의 클래식 음악사에서 콩쿠르는 뒤늦게 생겨난 ‘최신 트렌드’에 가깝다. 쇼팽·리스트 같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들은 당연히 콩쿠르 수상 기록이 없다. 반면 ‘콩쿠르의 유엔’이라는 국제 음악 콩쿠르 연맹(WFIMC)에 등록된 대회만 현재 120여 개에 이른다.

 

20세기 들어서 콩쿠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이유가 있다. 음악 교육 방식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이전까지 스승 문하에서 도제식으로 공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 음악 학교를 의미하는 ‘콘서바토리(conservatoire)’가 정착하면서 악기별로 연주자들이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옥석(玉石)을 가려낼 장치가 필요해졌다. 그 검증 장치가 콩쿠르다. 콩쿠르가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登龍門)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벨상보다는 차라리 조선 시대 관료들을 선발하기 위한 과거 시험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2000년대 임동민·동혁 형제를 필두로 손열음·김선욱·선우예권·조성진·문지영·박재홍까지 한국에서도 세계적 콩쿠르를 통해서 화려하게 데뷔한 피아니스트가 크게 늘었다. 이 중에는 임윤찬처럼 해외 유학 경험 없는 연주자도 적지 않다. 한국 음악 교육 시스템의 빛나는 성과다. 다만 이들이 세계 음악계의 ‘과거 시험’을 갓 통과한 젊은 연주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오늘날에도 정약용이 위대한 학자로 존경받는 건 그가 과거 시험의 답안지를 잘 썼기 때문이 아니다. 유배 같은 고난 속에서도 ‘목민심서(牧民心書)’ 같은 저서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콩쿠르라는 비좁은 관문을 통과한 젊은 연주자들은 거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다시 세계 음악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자신이 좋아하는 슈만뿐 아니라 20~21세기 현대음악에도 공들이는 것도, 김선욱이 피아노뿐 아니라 지휘에도 묵묵히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년등과(少年登科)에 정승 드물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건 실은 연주자 자신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미 세계 정상을 모두 정복한 것처럼 묘사하는 건 연주자뿐 아니라 음악계와 팬들을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반짝 열기’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응원을 보내는 풍토다. 그런 의미에선 차라리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조성진과 임윤찬 가운데 누구를 더 좋아하세요?”라고.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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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클래식, 콩쿠르 이후가 없다

 

한국 연주자들은 기교에만 능하고 깊은 음악성은 부족한 게 사실일까.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이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는다. 그들의 DNA에 없다”는 말로 인종주의 논란을 빚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3)였다. 정경화와 주커만은 1948년생 동갑내기다. 게다가 줄리아드에서 같은 스승에게 배운 동문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의 공동 우승자이기도 했다. 동갑·동문과 공동 우승까지.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할 적임자는 정경화였다.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데카 음반.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정경화는 한국이 지금 같은 문화 강국으로 대접받기 이전에 세계 정상 반열에 오른 첫 음악인이었다. 1970년 그가 스물두 살에 영국 명문 음반사 데카를 통해서 발표한 차이콥스키·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은 지금도 많은 애호가들이 기억하고 있다. 앳된 동양 여성 연주자가 세계적 음반사의 표지를 장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시절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고,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1위에 오르기 반 세기 전 일이다.

 

정경화의 동생인 지휘자 정명훈은 1974년 소련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올랐다. 그가 귀국했을 때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 행사가 열렸다. 지금은 사나흘이 멀다 하고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 입상 낭보를 쏟아낸다. 카퍼레이드는 언감생심이고, 공항 입국장에서도 환영식은 열리지 않는다. 이들이 예전만큼 충분한 조명이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건 콩쿠르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단지 뉴스의 희귀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강해진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상적 풍경이 된 것이다.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3일 폐막한 부조니 콩쿠르에서 협연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부조니 국제 콩쿠르

 

반 세기 전과 지금의 차이는 뭘까. 정경화는 동양과 여성이라는 이중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평생 고군분투했다. 그가 ‘아시아의 표범’ ‘현 위의 마녀’ 같은 별명을 얻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면 현재 한국은 엘리트 음악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음악 신동의 재능을 조기 발굴하고, 금호아트홀 연세 같은 무대를 통해서 이들의 기량을 꾸준하게 소개하고 점검한다. 이런 체계적 시스템은 클래식 종주국인 유럽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다.

 

문제는 콩쿠르 이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께 뛴다(Concours)’는 어원의 프랑스어인 콩쿠르는 세계 각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등용문(登龍門)이다. 그 좁은 관문을 뚫고 들어간 연주자들은 세계적 거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시 고뇌하고 자신을 다그쳐야 한다. 우리가 부족한 점이 바로 여기다. 최근 인터뷰에서 정경화가 “아시아 연주자들이 부족한 건 개성이나 음악성이 아니라 뿌리 깊은 전통”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학적으로 말하면 ‘축적 시간’의 부재(不在)야말로 이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진짜 원인일지도 모른다.

 

이웃 나라 일본의 음악 애호가 저변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베를린 필, 빈 필 같은 정상급 악단들이 일본에서 한 달 가까이 체류하며 연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피아니스트 랑랑을 꿈꾸는 유소년 연주자만 수천만 명에 이른다. 클래식에서도 중국은 인해전술이다. 일본의 수요와 중국의 공급은 21세기 음악계의 주요 변수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은 여전히 연주자 개인의 재능에만 기대는 구조에 가깝다. 이제부터는 영재가 아니라 거장을 배출하기 위한 경쟁으로 우리의 패러다임부터 전환할 필요가 있다. 클래식에서도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아직 이르다.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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