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강도란 영어표현은 잘못된 세금에서 유래했다]
[96년 된 서울역그릴 폐업]
날강도란 영어표현은 잘못된 세금에서 유래했다
17세기 영국서 ‘창문세’ 부과하자 창문 없는 건물서 서민만 피해
납세자 부담 능력 강조하던 정부… 억울한 종부세 사연엔 귀닫아
영어에 ‘daylight robbery’란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햇빛 강도질’이란 뜻인데, 영한사전에서는 ‘날강도’나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 정도로 번역한다. 누구에게나 공짜인 태양빛을 빼앗아간다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런 표현이 생긴 유래를 찾아보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1696년 영국 국왕 윌리엄 3세가 ‘창문세(window tax)’라는 세금을 도입했다. 창문이 많을수록 집이 크다는 뜻이니까 세금을 낼 능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창문 6개 이하인 집은 세금을 면제해주고 7개 이상인 집부터 걷었다. 창문이 10개 넘는 집은 세금을 중과(重課)했다. 다주택이나 고가 주택일수록 비싼 세금을 물리는 우리나라 종합부동산세와 닮았다.
창문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낳았다. 이 제도가 유지된 150여 년간 영국 주택 외관이 바뀐 것이다. 갑부들은 창문을 유지해 재력을 과시한 반면, 세금 내기 힘든 사람들은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렸다. 아직도 영국에는 이 시대 지어진 창문 없는 건물들이 많다.

/위키피디아 창문세 시대에 지어진 영국 건물. 영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창문 수에 따라 재산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세금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벽돌 등으로 창문을 막아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특히 월세 사는 서민들의 피해가 컸다. 임대업자들이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볕 안 드는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생활해야 했던 서민들 중심으로 생겨난 표현이 ‘daylight robbery(날강도)’라고 전해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3월 ‘납세자의 날’ 행사에서 이 창문세를 예로 들며 응능과세(應能課稅)의 원칙을 강조했다. 세금은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춰 부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세금을 걷을 때는) 납세자의 반응 및 수용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납세자들이 억울하게 느끼고 반발하는 세금은 잘못됐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분 종부세 고지가 시작된 지난달 22일부터 정부가 보여준 반응은 홍 부총리가 강조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납세자의 억울한 사연을 살피기는커녕 세금 뜯어내는 데 안달이다.
종부세 논란의 출발점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세 부담이다. 주택분 종부세액이 5조7000억원으로 이전 10년간을 합친 것(5조1000억원)보다 많다. 너무 급하게 세금을 올리다 보니 억울한 사례가 빈발했다. 대표적인 게 투기와 상관없는 일시적 2주택자다. 고위 공무원 출신의 70대 납세자는 새 집으로 이사 가는 과정에서 기존 집을 조금 늦게 팔았다는 이유로 2주택자로 몰려 종부세가 400만원에서 1억6000만원으로 급증했다. 부모님의 시골 집을 상속받는 바람에 졸지에 2주택자가 돼서 100배 넘는 세금을 고지받은 사연도 부지기수다.
정부는 일시적 2주택자가 투기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종부세는 가혹하게 부과한다. 명백한 세법 간의 불일치인데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안 한다.
오히려 청와대 정책실장은 “충분한 기간을 두고 예고했고,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며 납세자 탓을 했다. 기획재정부도 “98% 국민은 종부세와 무관하다”며 납세자 편 가르기에 나섰다.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는 기업처럼은 아니라도 최소한 납세자를 봉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화가 존 콜리어가 그린 '고디바 부인(Lady Godiva)'. 그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영주이던 남편이 주민들에게 무리한 세금을 부과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출처: 조선일보 DB
홍 부총리는 납세자의 날 때 “납세자가 기꺼이 협력하는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며 또 하나의 영국 사례를 들었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의 영주 부인이던 고디바는 주민들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라”는 남편의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진정성에 감동한 주민들은 창문 커튼을 내리고 밖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말로는 고디바 부인을 배우자고 하면서 정작 행동은 주민을 못살게 굴었던 영주처럼 한다.
-나지홍 기자, 조선일보(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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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된 서울역그릴 폐업

한국의 첫 경양식당인 ‘서울역 그릴’이 지난달 30일 문을 닫았다. 개점한 지 96년, 한국인에게 돈가스 맛을 처음 알린 곳이 100년을 목전에 두고 폐업했다. 작가 이상이 커피를 마셨고, 그의 소설 ‘날개’에 등장한 식당이다. 6·25전쟁과 외환위기도 이겨냈지만 코로나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마지막 영업일에는 머리가 희끗한 고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추억의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던 것 같다.
▷그릴은 1925년 르네상스 양식의 옛 서울역(당시 경성역) 2층에 문을 열었다. 식당 별실에는 상평통보를 형상화한 원탁과 은제 식기를 갖췄다. 호화식당답게 정찬 값은 당시 설렁탕 가격의 21배였다. 신역사로 옮기고 대중식당으로 변신했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오래된 나무 의자와 타일, 샹들리에는 중년의 웨이터와 잘 어울렸다. 양식에 깍두기와 ‘납작한 접시 밥’이 나오고, 후추를 뿌려야만 할 것 같은 크림수프는 추억의 맛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단골 발길마저 끊어졌다.
▷마지막 영업 날, 그릴은 오랜만에 만석이었다. 폐업 소식을 듣고 찾은 고객들은 식당 내부와 음식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부모님의 맞선 장소, 할아버지와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릴의 부활을 기대했다. 서울역사를 운영하는 한화역사는 그릴을 포함해 문을 닫은 식당가를 리모델링한다고 밝혔다. 그릴 자리에 스테이크집이 들어올 것이란 소문도 있는데 그릴 상호를 다시 사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코로나로 노포(老鋪)들이 사라지는 건 한국만이 아니다. 일본과 유럽에선 수백 년 된 식당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선 231년 된 민물고깃집 ‘가와진’이 문을 닫았고, 복어 등불 간판으로 유명한 오사카 맛집 ‘즈보라야’도 100년 만에 폐업했다. 독일에선 식당과 술집들이 문을 닫으면서 400년 전통의 베르네크 양조장이 덩달아 폐업했다. 가와진 직원들은 ‘폐점식’ 날 눈물을 쏟았고, 베르네크 양조장 매니저는 “이곳이 너무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 음식점 10곳 중 4곳은 개업 후 1년 내 문을 닫는다. 5년 뒤까지 살아남는 식당은 20%에 불과하다. 유럽에는 수백 년 된 식당이 곳곳에 있지만, 한국에는 100년을 넘긴 곳도 손에 꼽는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식당 절반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 많은 업주들이 100년 노포를 꿈꾸며 창업했을 것이다. 이런 도전이 코로나에 꺾이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를 이어 맛과 정취를 지켜가는 식당이 많아질수록 고객의 추억도 쌓인다. 오는 주말엔 가족과 함께 오랜 단골집을 찾아가도 좋겠다.
-이은우 논설위원, 동아일보(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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