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아는 척'에 취한 시대] [지체된 과학 대통령의 시간]

뚝섬 2025. 12. 24. 11:09

['아는 척'에 취한 시대] 

[지체된 과학 대통령의 시간]

 

 

 

'아는 척'에 취한 시대

 

시음회에 갔다. 위스키 시음회다. 나는 위스키를 잘 모른다. 몇 년 전에는 다들 잘 몰랐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유행하자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유행하던 시절과 비슷하다. 그때는 모두가 와인 좀 아는 척을 했다.

 

시음회에서 배운 것이 많다. 싱글 몰트와 아닌 것 차이는 제조법이다. 한 증류소에서 만들면 싱글 몰트다. 여러 증류소 위스키를 섞으면 블렌디드다. 전자는 개성이 강하다. 후자는 안정적이다. 블렌디드가 싱글 몰트보다 후진 건 아니다. 많은 장인이 이것저것 섞어 보며 설계한 맛이다.

 

이를테면, 블렌디드는 비틀즈 앨범이다. 싱글 몰트는 각 멤버 솔로 앨범이다.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이건 레논 목소리인가 매카트니인가?” 헷갈릴 때가 있다. ‘매카트니 & 윙스’ 노래를 들으면 헷갈릴 수가 없다. 매카트니 목소리다. 하나의 증류소, 아니 성대에서 나온 싱글 몰트 목소리다.

 

시음회에는 16년, 20년, 미스터리 위스키가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16년을 마셨다. 독했다. 20년을 마셨다. 더 독했다. 미스터리를 마셨다. 마신 자는 인화물로 분류해 항공기 탑승을 거절해야 할 맛이었다. 전문가가 물었다. “어떤 맛이 나죠?”

 

신년 목표는 아는 척을 덜 하자는 것이다. 요즘은 모두가 아는 척을 한다. 이슈가 생기면 전문가는 증식한다. 정치는 양반이다. 반도체·전기차 등 엔지니어 아니면 말 보태기 힘든 이슈도 전문가가 갑자기 는다. 인공지능 등장 이후 숫자는 더 늘었다. 지식 경쟁의 ‘오픈 북 시험’ 시대다.

 

나는 아는 척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답했다. “매워요.” 몇 년 뒤 나는 “후추나 정향의 강한 토스팅 향이 나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은 좀 알면 아는 척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혀에 닿는 순간 평원이 지진 규모 7.0으로 흔들리며 갈라지듯 열리는 맛” 같은 소리는 하지 않겠다. 아는 척의 발효 도수라도 낮추고 살아야 한다.

 

-김도훈 문화컬럼니스트, 조선일보(25-12-24)-

______________

 

 

지체된 과학 대통령의 시간

 

문화는 세계에서 펄펄 나는데 이념적 탈원전, 아는 척 수소차
문화와 과학-기술 간극 커져… 그 간극 메워야 선진국 된다
 

 

얼마 전 노벨상 시상 시즌이 끝났다. 올해까지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대 한국 수상자는 25 대 0이다. 2015년 20 대 0, 2016년 22 대 0, 2018년 23 대 0, 2019년 24 대 0으로 일본은 한 해나 두 해에 한 번씩 수상자를 내는 데 반해 한국은 0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특허출원 건수에서 독일을 제치고 중국 미국 일본 다음의 4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도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이런 순위만 놓고 보면 과학은 몰라도 기술에서는 한국의 성적이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특허출원 건수로 국가의 기술력을 비교하는 건 맹점이 있다. 특허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 특허출원을 많이 해도 그 유지에 드는 비용을 감수하면서 특허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만한 기술은 적다. 핵심 기술은 그런 기술인데 그런 기술은 주로 미국 일본 독일이 갖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봤듯이 mRNA을 이용한 첨단 백신은 미국과 독일의 제약회사만 만들어냈다. 특허출원 1위인 중국은 노력했으나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지 못했다. 한국의 기술도 원천 기술이라기보다 주로 파생 기술이다. 원천 기술은 과학이 뒷받침될 때 나온다.

 

한국은 문화에서는 많은 자랑거리를 갖게 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BTS’에 이어 블랙핑크 에스파 등이 빌보드 순위에 오르면서 비틀스 시대의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을 연상케 하는 ‘한국 침공(Korean Invasion)’이 이뤄지고 있다. OTT가 상영관을 대체하는 흐름 속에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더니 ‘지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문화가 발전하는 시기는 대개 과학·기술도 발전하는 시기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기는 그렇지 않았다. 문화의 발전에 반해 과학·기술 분야는 뒤처지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빌 게이츠도 주장했듯이 탈(脫)원전 정책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을 방해한다.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원전이냐 탈원전이냐는 이항(二項) 대립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연은 연속적이고 과학적 사고도 연속적이다. ‘A 아니면 B’라는 사고 속에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보다 안전한 원전’을 위한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수소차는 원(遠)미래의 차일지언정 근(近)미래의 차는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그린 수소’를 값싸게 얻으려면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수소차를 전기차와 비슷한 근미래의 차로 아는 체하다 결국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대통령은 과학을 몰라도 참모가 과학을 알면 될 것 같지만 문 대통령의 사례는 대통령이 과학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과학에 대해 올바른 조언을 하는 참모를 두지도 못하고, 참모가 올바른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19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는 이미 정치 이외에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 필요했다. 경제를 알기는커녕 경제에 대한 감각도 없는 대통령을 뒀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를 맞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말로 대체되고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를 결합시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현상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201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본격화됐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은 과학까지 아는 대통령을 뽑았어야 하는 선거였으나 그러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앞으로의 전쟁은 핵무기가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술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봤다. 미중(美中) 대립의 시대에 한국이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도 과학이다. 이미 두 번의 지체가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과학을 아는 대통령, 아니 과학은 잘 몰라도 과학에 대한 감각이 있는 대통령, 아니 과학을 잘 모르고 과학에 대한 감각도 없으면 최소한 괜히 아는 체하면서 간섭하는 것만큼은 삼갈 줄 아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문화가 뭘 해줘서 발전한 게 아니라 놔둬서 발전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1-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