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전 대통령만 사면 제외, 정치 보복일 뿐

노前대통령 영결식장서 MB에 사과했던 文대통령-지난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에서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고개 숙이고 있다. 당시 백원우 민주당 의원(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정치 보복 사죄하라”며 고함을 치자, 문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사과했다./연합뉴스
청와대는 이번 특별사면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만 제외한 것에 대해 “국민 정서상 시기상조”라며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수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지난 시대의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태도다. 두 전직 대통령은 적용된 혐의나 형량이 유사하다. 두 사람에 대한 국민 정서도 크게 다를 리 없다. 야권에선 오래전부터 두 전직 대통령을 모두 사면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이 고령이지만 구속 기간이 780일가량으로 짧다” “박 전 대통령의 나빠진 건강 상태도 고려했다”고 했다. 하지만 만 80세인 이 전 대통령은 당뇨와 혈압, 폐질환, 다리 통증 등으로 세 차례나 입원 치료를 받았다. 어깨와 허리 디스크 등으로 장기 치료를 받아온 박 전 대통령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이 전 대통령 수감 기간이 박 전 대통령에 비해 짧다고 하지만 과거 최장이었던 전두환(751일)·노태우(768일) 전 대통령보다 길다.
문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와 민노총 전 지도부 등 시위 관련자들을 대거 사면·복권해 주고 국가 기간 시설 공격을 꾀했던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까지 가석방했다. 이들을 풀어주면 국민 통합이 되고 이 전 대통령을 풀어주면 국민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인가.
이 전 대통령은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부터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해 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청와대가 말하는 ‘정서’는 문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의 ‘반(反)이명박 정서’일 것이다. 이 정부는 출범 후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벌였다. 먼지 떨기식 수사였다.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즉각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지니고 다니며 ‘아름다운 복수’를 다짐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만 사면에서 제외한 것은 이런 복수의 일환일 것이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내년 퇴임 직전 최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을 활용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번에 한명숙, 이석기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을 끼워넣기로 이용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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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양심’ 투투 주교

전기차 테슬라, 스페이스X를 만든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18세가 된 머스크가 인종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외가 쪽 고향인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떠난 다음 해인 1990년 넬슨 만델라가 백인인 빌렘 데클레르크 대통령에 의해 석방됐다. 만델라와 함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철폐를 이끈 단짝이 남아공 성공회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다.
▷만델라는 1994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뒤 투투 주교에게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 위원장을 맡겼다. 투투 주교는 응징적 정의(punitive justice)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정신으로 TRC를 이끌었다. 그의 원칙은 첫째 인권침해를 저지른 가해자들의 자백, 둘째 그들의 기소를 면제하는 용서, 셋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었다. 자백-용서-배상의 프로세스는 이후 국가적 인권침해와 그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됐다.
▷TRC는 친(親)아파르트헤이트 측의 폭력만이 아니라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측의 폭력도 조사했다. 만델라 지지 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행한 고문 등 각종 인권침해 사례도 드러나 ANC의 이미지에 흠이 갔다. ANC가 TRC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가해 기록을 삭제하려 하자 투투 주교는 분노했다. 그는 ANC에 대해 ‘어제의 피압제자가 쉽게 오늘의 압제자가 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 남아공 정치는 만델라 대통령 퇴임 이후 타보 음베키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을 거치면서 표류했다. 이들의 권력남용 행위가 비일비재했다. 투투 주교는 ANC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그는 ‘세기의 양심’으로 불렸다.
▷투투 주교 생애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TRC에서 가해자의 자백을 듣다가 책상 아래로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던 모습이다. 흥이 나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은 백인 성직자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백인 진보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과격했고 흑인 진보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온건했다. 공산주의에는 늘 반대했다. 위엄과 흥을 동시에 지닌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었기에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로부터의 전환기를 순조롭게 넘어설 수 있었다.
▷만델라는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기여한 공로로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마지막 백인 대통령 데클레르크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달 26일 투투 주교가 선종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ANC의 장기 집권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는 가운데 남아공의 한 시대가 마감됐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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