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탕 한 그릇’

일본 사람들은 ‘해 넘기기 우동’을 먹는다. 삿포로의 한 우동 가게에도 12월 31일 늦은 밤 남루한 차림의 여인이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1인분을 주문했다. 딱한 사정을 알아챈 주인은 몰래 1.5인분을 내어주고 세 모자는 맛있게 나눠먹는다. 구리 료헤이의 소설 ‘우동 한 그릇’의 줄거리인데 실제로 따뜻한 한 끼의 추억을 지닌 이들이 적지 않다. 미국 뉴욕에 사는 A 씨도 그중 한 명이다.
▷A 씨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겨울 밤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A 씨는 서울 신촌시장 뒷골목에서 홍합을 파는 리어카를 보았다. 배가 고팠던 그는 “홍합탕을 한 그릇 먹을 수 있겠느냐. 돈은 내일 드리겠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선뜻 한 그릇을 내주었다. 그 다음 날이라고 없던 돈이 생겼을까. A 씨는 이후 이민을 떠났다. 홍합탕 값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A 씨는 50년이 지난 최근 이 같은 사연을 담은 손 편지와 1000달러짜리 수표 두 장을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로 보내왔다. 1만 원짜리 홍합탕을 200그릇 넘게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식당들이 코로나 폐업 위기에 몰린 올해도 ‘홍합탕 한 그릇’의 사연이 줄을 이었다. 특히 “애들 굶는 건 절대 못 보겠다”는 식당들이 많았다. 홍대 앞 치킨집은 “동생이 치킨을 좋아하는데 5000원밖에 없다”는 소년 가장에게 세트 메뉴를 공짜로 주었다. 망원동 분식집은 결식아동 카드를 가진 아이는 물론 동반 1인에게도 식사를 준다. 혼자 먹기 부끄러워할까봐서다. ‘뭐든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 눈치 보면 혼난다’라고 문 앞에 써 붙인 식당도 있다. 이렇게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가게가 전국에 3000개 가까이 된다.
▷홍합탕 한 그릇은 일방적 나눔이 아니다. 식당 주인들은 “아이들을 먹이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고 한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싶다가도 “사장님 덕분에 밥 잘 먹고 성인이 됐다”는 편지를 받으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 영업난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파스타집 사장은 “‘1년간 매일같이 신세졌는데 눈치 안 보고 잘 먹었다’는 감사 인사를 받고 수면제 없이 잘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소설 ‘우동 한 그릇’의 형제는 14년 후 의사와 은행원이 돼 노모와 함께 그 우동 집을 찾아 3인분을 시킨다. 그날 밤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았다면서. A 씨는 편지에서 “50년간 친절하셨던 아주머니 덕으로 살아왔다”며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제공해달라고 당부했다. 올 한 해 넉넉지 않은 이들 덕분에 ‘홍합탕 한 그릇’의 추억을 갖게 된 아이들도 나눔의 힘을 믿는 반듯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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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고귀하게 바라보는 시선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조덕현, 유크로니아 2111-2, 2021.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행복의 기본이라고 한다. 한 해를 무사히 보냈으니 배운 대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족(自足)을 다짐한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슬그머니 미래에 대한 기대가 올라온다. 솔직히 새해가 올해보다 나아졌으면 좋겠다. 친구도 편하게 만나고 싶고 마스크도 벗고 싶다. 신년 운세를 믿거나 말거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거라는 위로다. 아무리 정신 승리를 하고 싶어도 현실은 고단을 면하기 어려우니 이상향(理想鄕)이 달리 생겨난 것이 아니다.
조덕현의 작품 속 시간은 가정법의 역사를 보여준다. 작가가 작품 제목으로 선택한 ‘유크로니아(Uchronia)’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Utopia)를 공간이 아닌 시간에 적용한 것이다. 어느 시간에도 없는 이상시(理想時)의 개념은 소설이나 영화, 게임 등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만약에 조선 왕조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6·25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특정 시기에 대한 허구적 접근은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사진을 들여다보자. 숲으로 둘러싸인 반듯한 건물, 양쪽에 당당하게 높이 솟은 철탑, 너른 앞마당 중앙에 근사하게 관리된 정원수, 여기까지는 마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형태는 완벽하게 좌우 대칭이고, 색은 반전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작품의 왼쪽 절반이 원본에 가깝다. 일부러 지우지 않고 남겨둔 단서처럼 철탑에 부착된 교회 간판은 이 작품이 온전히 사실적인 사진에서 시작되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전국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작가는 평범하고 볼품없는 장면들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민한 시골 소년을 당당한 예술가로 성장시킨 상상력은 사실 위에 구축된 허구를 통해 초라하게 뭉그러진 일상을 고귀하고 광대하게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힘겨운 올 한 해도 감사히 마무리할 수 있겠다.
-신수진 예술기획자·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 조선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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