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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국회 와인’ 아시나요 ] [민중가수]

뚝섬 2021. 12. 27. 06:23

여의도 ‘국회 와인’ 아시나요

 

[기자의 시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입구 양쪽에 놓인 해태 조각상. 두 해태상 밑에는 2075년 준공 100주년 기념 개봉을 목표로 백포도주 72병이 묻혀 있다./조선일보DB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23일 “국회의사당을 세종시로 전면 이전하겠다”며 “국회 부지엔 청년과 사회 초년생을 위한 공공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여의도 의사당을 철거하고 대규모 주택을 짓겠다는 공약이다. 사실 심 후보가 처음 낸 아이디어는 아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지난해 “국회 부지가 10만평(33만㎡)인데 좋은 아파트 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필요하다”며 “국회를 세종시로 보내기로 했으면 의사당을 뭐 하려고 남기느냐”고 했다.

 

2027년 완공 예정인 세종 의사당 터는 여의도 의사당의 2배가량이 될 예정이다. 그러니 여의도 면적의 8분의 1이나 차지하는 의사당을 부수고 대규모 주택을 짓겠다는 말은 얼핏 바람직하게도 들린다. 살인적 집값과 만성적 공급난에 시달리는 무주택자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 될 수도 있다. ‘여의도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에게 ‘의사당 폭파 철거’는 사이다 같은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 한때 스타크래프트 게임 캐릭터로 국회에 핵폭탄을 날리는 풍자물이 유행하기도 했다.

 

심 후보와 윤 전 의원은 국민의 정치 환멸 정서를 영리하게 읽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다. 여의도 의사당은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양 최대 의사당을 세우자”는 의지로 추진해 세워졌다. 건립비 135억원은 1975년 정부 예산의 1%였다. 국력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대로 밀어붙였다. 통일 이후 양원제를 내다보고 본회의장을 2곳 지었고 화강석·대리석으로 내·외장을 마감했다. 국회 해태상엔 준공 100주년인 2075년에 개봉하겠다며 백포도주 72병을 묻었다.

 

왼쪽부터 1975년 국회의사당 준공 후 본관 홀에 들어서는 박정희 대통령, 1988년 2월 제6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 국회에서 열린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2018년 노회찬 의원 국회장./KTV·국가기록원·조선일보DB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박 전 대통령 결단으로 건립된 의사당이 마뜩잖을 수도 있다. 어색한 좌우 비례 건물에 커다란 돔을 얹고 있는 의사당은 건축학적으로 실패작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최악의 현대 건축 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의도 의사당은 1987년 직선제 개헌과 제6공화국 수립 이후 대통령 7명이 취임한 역사적 장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2018년 노회찬 국회의원 국회장을 치른 공간이기도 하다. 당시 심상정 후보는 의사당 앞마당에서 동지 노회찬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꼈다.

 

미국 국회의사당은 1793년,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은 1860년 지었다. 우리는 비록 민주주의 역사는 짧지만 문화·역사적 자부심만큼은 영·미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100년 이후를 내다보고 지은 의사당을 50년도 안 돼 철거하고 아파트 짓자는 말을 좌우 막론하고 아무렇지 않게 한다.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에 대한 감수성 수준이 낮은 건 아닐까. 2075년 개봉하기로 한 해태상 백포도주를 서둘러 꺼내거나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서 열게 되는 건 아닌지 씁쓸하다.

 

-원선우 기자, 조선일보(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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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수

 

서울서 대학 다니던 형이 방학 때 시골집에 오더니 노래를 가르쳐줬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이었다. 중학생 귀에 그 노래는 정서적 충격 그 자체였다. 특히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하는 구절은 전기 감전 같았다. 그때까지 배웠던 노래는 동요, 건전가요, ‘맹호부대 용사들아!’ 하는 월남전 참전 노래, 그리고 어른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같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태양이 묘지 위에 타오르다니.

 

▶대학에 들어가니 전혀 다른 노래 세상이 펼쳐졌다.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 같은 저항 가수들 노래를 거의 다 외웠다. 특히 김민기 노래 ‘금관의 예수’에서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를 읊조릴 때면 숭고한 비장미에 몸을 떨었다. 한대수의 ‘물 좀 주소’도 애창곡이었다. 그리고 엊그제 별세한 양병집은 ‘소낙비’ ‘서울 하늘’ 같은 노래로 불온한 영혼들을 사로잡았다.

 

▶운동가요에도 온건 서정파가 있고 격렬 전투파가 있다. 70년대와 80년대는 분위기도 크게 달랐다. 그러나 원조 격인 서유석 양희은 같은 가수를 민중가수로 부르기엔 망설여진다. 그냥 시대를 이끌었던 가인일 뿐이다. 어떤 집회 때 마이크 앞에 섰다고 해서 민중가수라고 자격증을 주는 것도 아니다. 공식 분류가 있을 턱이 없다. 때론 서정적인 노래가 더 ‘혁명적’으로 쓰일 때도 있다. 민중가요와 ‘날라리 노래’를 넘나든 가수도 많다.

 

▶김민기 노래 중 ‘늙은 군인의 노래’는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으로 시작한다. 전투적 민중시인인 김남주가 생전에 김민기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같은 대목이 너무 패배적이라는 것이다. 이 노래는 3년 전 현충일에 추모곡으로 쓰였고, 최백호가 불렀다. 한때 군의 사기 저하를 이유로 금지곡이었는데, 이제 공식 행사장에서 불리다니 세상 변한 걸 실감한다.

 

▶TV조선 프로그램 ‘내일은 국민가수’가 엊그제 ‘제1대 국민가수’ 박창근을 뽑고 막을 내렸다. 그런데 과거 그가 몇몇 집회에 참여했다 해서 논란이 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누구 편도 아닌 노래의 편입니다.” 맞는 답변이다. 그가 무슨 ‘개념 연예인’ 행세를 한 것도 아닐 것이다. 연전에 김민기는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의도나 계획을 갖고 (곡을) 만드는 체질이 아닙니다.” 그는 ‘세월호’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청도 사양했다고 했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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