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새해 도발 시동 건 날 文은 하릴없는 ‘평화’ 주문만]
[“새 韓美작계에 中대응 포함시키고, 韓도 동맹차원 대만방어 기여해야”]
[“日, 中과 밀착하는 韓 우려… 한일 협력해 새 문명 만들어야”]
北 새해 도발 시동 건 날 文은 하릴없는 ‘평화’ 주문만
북한이 어제 오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동해로 쐈다. 새해 들어 첫 미사일 도발이자 작년 10월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이후 78일 만이다.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우려’를 표명하고 대화 재개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철도 동해선 강릉∼제진 구간 착공식에 참석해 “이런 (긴장)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저강도 무력시위로 풀이된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와의 갈등에 외교력을 집중하면서 북핵을 후순위로 밀어놓은 상황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관심 끌기 차원이다. 특히 3월 한국 대선과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천명한 ‘국가방위력 강화’ 계획에 따라 핵·미사일 능력을 키우면서 한미의 양보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그간 한미의 대화 손짓에도 적대정책과 이중 기준 폐기를 요구하며 거부해 온 북한이다. 시간은 자기네 편이라는 계산이겠지만, 정작 갈수록 초조한 쪽은 북한이다. 코로나19 공포에 국경을 꽁꽁 막은 채 역대 어떤 대북제재도 이루지 못한 봉쇄 수준의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 대외 도발은 더 큰 외부 압박을 부를 것이고, 식량난 같은 내부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북한에 우리 정부는 늘 그랬듯 달래기에 급급하다.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지도 않았고, 경고나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신뢰가 쌓일 때 어느 날 문득 평화가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는 하릴없는 주문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북한은 도발이 먹히고 있다고 오판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일방적 달래기는 정세의 안정적 관리는커녕 북한의 도발 충동만 부추길 뿐이다.
-동아일보(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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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韓美작계에 中대응 포함시키고, 韓도 동맹차원 대만방어 기여해야”
스틸웰 前 美 동아태 차관보 인터뷰

데이비드 스틸웰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 시간)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의 역량은 한반도에서의 급변 사태에만 국한될 수 없다”며 대만 방어에 한미 연합군이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DB
데이비드 스틸웰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가 최신화하기로 합의한 연합작전계획(작계·OPLAN)에 대해 “중국에 의해 초래되는 장기적인 안보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 연합군의 작계에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다. 한미 외교가에선 이 문제가 한미 동맹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스틸웰 전 차관보는 미중 충돌의 핵심으로 떠오른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왜 (대만 방어에) 한국이 기여하지 않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스틸웰 전 차관보는 미국 합동참모본부 아시아담당 부국장을 거쳐 도널트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2020년 한국 등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동아태 차관보를 지냈다.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퇴임한 스틸웰 전 차관보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미 작전계획에 중국에 대한 대응이 포함돼야 한다고 보나.
“개념은 타당하다. 한미동맹은 여러 위협들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북한은 핵과 화학무기, 재래식 무기로 즉각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중국에 의해 초래되는 장기적인 안보 문제에도 대처해야 한다. 왜 한국이 한반도는 물론 더 넓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한국인에게는 둘 다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대만을 보호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왜 한국이 기여하지 않아야 하는가? 남중국해와 (대만이 있는) 동중국해를 통과하는 무역과 에너지 수송에 혼란이 일어나면 일본만큼이나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은 2013년 방공식별구역(ADIZ)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이어도 영유권 문제도 포함돼 있다. 중국군은 또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인접한 영공과 한반도의 서쪽, 최근에는 동쪽에서도 불필요하게 (군사) 활동을 늘리고 있다. 이런 공세는 한국이 미국 일본과 함께 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시험하는 것이다. 중국의 공세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미 동맹의 역량은 한반도에서 (일어날) 한 가지 급변사태에만 국한될 수 없다.”
―한국이 미중 간 ‘전략적 모호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우리가 미국과 중국 중에 선택하도록 하지 말라’는 진부한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 법치주의를 약속했을 때 이미 선택을 했다. 중국을 화나게 하지 않는 것과 한국과 한미동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할 때는 (안보 분야만이 아니라) 동맹협력 전체의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로 투자를 많이 하는 국가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은 3% 정도다. 미국 기업들은 꾸준히 한국과 손을 잡고 한국이 지금 세계를 뒤흔드는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1960~1970년대 포드는 현대와 제휴했고 1970~1980년대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시동을 건 것은 모토롤라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였다. 이건 고마움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지의 전혀 다른 경제협력 접근법에 대한 얘기다. 하나(한미 협력)는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이고 다른 하나(한중 협력)는 약탈적인 관계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자협력체인 ‘쿼드’나 ‘쿼드 플러스’에 한국 참여를 논의한 적이 있나.
“한국은 북한과 중국이라는 역내 안보 우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한미 동맹에 최대한 기여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상당부분 아세안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맞물려 있다. 한국이 아세안에 지속적이고 생산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큰 틀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베이징 겨울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은 직전 대회인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의 개최지라는 점 때문에 자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캐나다는 1976년 겨울올림픽을 개최하고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1980년 모스크바 겨울올림픽을 보이콧했다.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는 모두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자행되고 있는 중국의 행동을 집단 학살(제노사이드)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국제기구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베이징 올림픽 참가를 재고하지 않더라도 인권을 옹호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유감스러울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을 위반하는 중국의 행동을 조용히 방관하는 것은 (중국과) 공모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전시작전권 전환 시점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전작권 전환 시점을 담은 문서인) ‘전략동맹(SA) 2012’와 ‘SA 2015’ (작성)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국 정치권이 선거에서 전작권 전환에 대해(전작권 전환을 약속해) 표를 얻었지만 ‘SA 2012’와 ‘SA 2015’를 위해 투자하고 훈련하고 연습할 때가 되자 한국은 두 번이나 (전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2014년 이후엔 전작권 전환 조건과 관련해 미세한 수정이 이어지면서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은 계속 기준을 달성하고 있지만 한국은 목표 달성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못하면서 양국 관계에 상당히 껄끄러운 문제(irritant)가 되고 있다. 한국이 (전작권 전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한국을 빈틈없이 방어할 수 있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현재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에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한미 연합훈련이 축소·취소된 것이 전작권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2019, 2020년 훈련 축소에 대해 언급할 수는 없지만, 훈련 축소가 북한과의 대화에 어떤 이득도 주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 동의할 수 있다. 훈련을 줄이는 것은 동맹 역량을 약화시킬 뿐 북한을 비핵화에 개방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2019년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사태 당시 한일 중재에 나섰는데.
“북한의 미사일은 한국뿐 아니라 한국에 체류하는 주한미군 등 미국인, 그리고 일본인 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지소미아에서 빠지겠다고 위협한 것은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상당수는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한국을 방어하러 올 자원들이다. 일본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하려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들이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에 집중하는 대신 현재 한일 모두에게 공통으로 안보 위협이 되는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일본은 대만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위협적인 행동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와 미래의 중요한 도전에 대해 협력하면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종전선언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한 오해를 불러 올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 됐든 한미 동맹 차원에서 내려져야 한다. 핵심은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북한은 조선노동당을 없애기 위한 (한국과 미국의)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때까지 핵과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북한을 뒤쫓아 대화를 하는 것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 북한이 스스로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점점 더 강한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좋지 않다. 그냥 정략결혼일 뿐이다. 미국인 상당수는 북한과 중국이 자연스러운 동맹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북-중 관계는 1979년 전쟁을 벌인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와 비슷하다. 아직 레버리지로 활용하지 못한 (북-중 관계의) 이런 점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북한 문제가 바이든 정부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북한이 언제 미국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제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유일하게 다른 이유로 대화에 나서려 했던 때가 2017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슬프게도 북한은 하노이에서 기회를 놓쳤다. 그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동아일보(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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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中과 밀착하는 韓 우려… 한일 협력해 새 문명 만들어야”
[오구라 기조 日 교토대 교수]
日, 韓경제 발전에 당황… 55년 협력 탄탄, 최악 아냐
美-中 문명충돌 벌이는 지금, 양국 함께 ‘매력문명’ 창출해야
大國이 세계 이끄는 시대 지고, 친환경-탈권위 등 가치 부상

동아시아 비교연구 분야 석학인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가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한일 양국이 지금까지 이뤄 온 협력 성과는 세계에 자랑할 만하다. 더 많은 협력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토=박형준 특파원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이 만들어 온 협력 모델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문명 충돌을 벌이려는 지금 두 나라가 협력하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매력적인 문명을 만들 수 있다.” 동아시아 비교연구 및 사상 분야의 권위자인 오구라 기조(小倉紀藏·63) 일본 교토대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가 신년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간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지만 장기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는 낙관론을 폈다. 최근 갈등은 과거사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급부상, 중일 갈등 속에서 중국과 밀착하는 듯한 한국에 대한 우려 등이 결합한 결과이며 양국 협력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몇몇 대국(大國)이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친환경, 약자와 고령자 우대, 탈권위 등의 가치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며 두 나라가 이런 측면에서 미중보다 우위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理)와 기(氣)’ 등 한국 철학에 정통하고 한국어가 유창한 그와의 인터뷰는 한국어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2차 집권기(2012∼2020년) 때 갈등이 컸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을 앞지를 가능성을 보이자 일본이 당황했던 것 같다. 근본적으로 일본은 한국의 국력이 갑자기 이만큼 커졌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아베 전 총리와 주변의 보수 세력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갈등이 커진 것 같다.
다만 양국 관계가 최악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1965년 국교를 정상화한 후 대립과 마찰이 있었음에도 결정적인 분쟁이나 전쟁은 없었다.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양국은 경제, 문화, 정치, 외교,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층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 과정을 ‘한일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미 55년 이상 협력해 왔고 특히 경제계는 무수히 많은 협력을 했다.”
―일본 혐한파 또한 갈수록 늘어나는 느낌이다.
“혐한파는 1, 2년 전만 해도 온라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반일이니 안 된다. 싫다’고 했다. 요즘에는 아예 ‘더 강력한 반일에 나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환영한다. 그래야 일본이 한국과 완전히 단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 질서를 모르는 피상적인 생각이다.
이는 한국과 중국을 동일하게 보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일본에서는 중국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고립주의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들은 ‘우리는 혁명 이데올로기 등 대륙의 이념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한국이 중국 쪽으로 갈 테면 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한국은 원래 중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일본은 다르다. 섬나라이고 1000년 전부터 중국 문명에서 이탈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이를 반기는 일본인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
현재 일본은 중국을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인권 자유 언론 등 기본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다수 일본인은 중국에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을 혐한파들이 ‘한국은 왜 중국에 위기감을 갖지 않느냐’고 주장하면서 이용하고 있다.”
―과거사 논란을 두고 일본은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한다. 한국은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우선’이라고 맞선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한국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의 틀에서 벗어나려 하고 일본은 이를 절대 어기면 안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양측 모두 더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나라’라는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 특히 일본 총리가 199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일본 또한 ‘1965년의 틀이 완벽하지 않기에 보완하려는 역사가 이어졌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1965년 협정을 맺을 때 양국 모두 반대했다. 한국에서는 ‘사죄와 반성이 없다’고 했고 일본 내 좌파는 ‘북한을 빼놓으면 어떻게 하느냐. 분단을 고정시키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타협해 협정을 만들어냈다. 이후 양국이 꾸준히 관리를 잘해 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전쟁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양국의 세계관 차이도 갈등의 원인일까.
“그렇다. 한국은 중앙집권 역사가 길고 고려시대 과거제도가 도입된 후 지식인이 주로 지배를 해왔다. 일종의 보편주의에 기초한 통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대륙적이지 않으며 특수주의에 가치를 둔 정치를 해왔다. 민주주의 등에 관한 정의와 개념 또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인은 생활 전반에 관한 섬세한 개혁을 잘하지만 중앙 권력을 타도하는 것 같은 커다란 개혁은 잘 못한다. 양국의 이런 차이를 모르면 종종 오해가 생긴다. 하지만 세계관이 맞지 않다고 해서 단교할 수도 없는 게 이웃 국가다.”
―한일이 어떻게 협력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뤄온 한일 모델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일이 협력하면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문화를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고 새로운 문명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BTS가 일본 아이돌을 라이벌로 생각하기보다 협력을 한다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은 미국, 중국 등 초강대국만 만드는 게 아니다. 거대한 토지와 인구를 가진 대국(大國)이 약한 분야도 있다. 자연에 대한 섬세한 배려, 권위적이지 않은 통치, 약자와 고령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등이 대표적이다. 21세기는 이처럼 섬세하고 작은 스타일의 문명이 요구된다. 미중 문명이 충돌하려는 이때 양국이 협력하면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매력적인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일 관계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35년 동안 한 나라(일본)가 다른 나라(조선)를 지배했다. 양국 사이에 당연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갈등이 없었던 서양은 식민 지배를 했던 국가와 피지배 국가 간 향후 심각한 대립과 마찰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은 1965년 이후 갈등 속에서도 서로 자제하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관계를 구축했다. 최근 한국이 경제적으로, 국제적으로 굉장히 많이 성장했다.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가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와 거의 대등한 관계가 됐다. 이는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향후 베트남이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만큼 커진다면 1965년 이후의 한일 관계가 나침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일 갈등은 계속될까.
“일본은 군도(群島)의 문명을 가지고 있고, 중국은 대륙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 가족과 성(性)에 대한 규범이 다르다. 일본은 부계뿐 아니라 모계의 영향력도 무척 강하다. 중국 같은 대륙은 철저하게 부계 중심이다. 문명이 서로 다르니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최근의 미중 대립을 동서양의 문명 충돌로도 볼 수 있나.
“중국이 사상의 문제를 강조하기 때문에 그런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인권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인권이 있다면 국권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국가가 인권을 유린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서양의 근대 철학으로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이렇듯 양국의 대립이 경제 갈등을 넘어서고 있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처음부터 국가적으로 대응하면서 긴장감 있게 대책을 세웠다. 일본은 국민의 행동을 한국만큼 강하게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코로나19보다 독성이 더 강한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일본 또한 자유를 제한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한국, 중국이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 더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유럽 각국 또한 처음부터 사이좋게 지낸 게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석탄, 철강 등을 어떻게 배분하고 공유하느냐를 놓고 매우 기능적인 관계를 만들었고 그러면서 점차 사이가 좋아졌다. 일본 한국 중국 대만도 바이러스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틀을 만들길 바란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일본에서 동아시아 비교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63) 교토대 교수는 1959년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유명 광고회사 덴쓰를 다녔다. 1985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의 역동성에 매력을 느껴 서울대 철학과에서 석·박사 과정(동양철학 전공)을 밟았다. 한중일 3국의 사상 및 역사를 비교 분석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군도의 문명과 대륙의 문명’ ‘한국의 행동원리’ 등 명저를 다수 출간했다.
-교토=박형준 특파원, 동아일보(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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