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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와대라도 없애달라] [대통령무책임제, 이제는 그만]

뚝섬 2022. 2. 4. 06:49

저 청와대라도 없애달라

 

[양상훈 칼럼]

시대착오적인 한국적 대통령제는 청와대라는 장소와 상징적 실질적 연관
누가 되든 청와대를 역사의 유물로 만들면 우리 정치 달라질 것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공약 중 가장 와 닿았던 것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겠다는 선언이었다. 문 대통령이 마음에 없지만 멋지게 들리는 말을 이토록 그럴듯하게 하는 줄은 모를 때였다. 그런데 이 공약을 반기는 마음 한편에선 과연 지켜지겠느냐는 의문도 들었다. 

 

청와대 전경/조선일보 DB

 

한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놓고 모든 사람이 크고 작은 착각을 갖고 있지만 이 자리에 대해 가장 큰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 필자는 이를 ‘프레지던트 해저드(함정)’라고 이름 붙인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저 보통 사람이거나 조금 나을 뿐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자신이 내렸던 수많은 주요 결정이 다 옳았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을 옆에서 보았던 여러 사람의 증언이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갑자기 대통령을 무슨 신(神)이나 된 듯이 떠받들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후보가 되는 때 시작되지만 대통령이 되면 차원이 다르게 벌어진다.

 

그렇게 돌연 구름 위로 올라간 대통령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청와대라는 장소다. 청와대는 장소만이 아니라 위세까지 조선시대 왕궁이 그대로 이어진 곳이나 마찬가지다. 일반 사회와 완전히 격리돼 그 자체로 신비감을 주는 구름 위의 집, 그래서 대통령 권력을 실제 이상으로 증폭시키는 곳, 한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잘못된 오해가 켜켜이 쌓인 권부, 공직자들에게 BH(블루 하우스)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며 절대 권위와 함께 두려움을 주는 곳, 공무원들이 문서는 물론 대화에서도 그 이름을 못 부르고 VIP(대통령)라고 칭하게 만드는 곳, 허락된 극소수만 들어올 수 있고 들여보내 주면 그 자체로 감사해하는 그곳에서 대통령은 왕처럼 만족스럽고 편안하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 됐을 때 ‘청와대에서 나오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정말 지키겠느냐고 반신반의했던 것이고 결국 ‘혹시 했는데 역시’가 되고 말았다.

 

이런 곳에 살면서 왕 같은 대접을 받으면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무언가 특수하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토록 무오류를 고집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을 증오했던 것은 이런 환경에선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권세의 종말은 불과 수년 안에 필연적으로 오는데도 역대 대통령들은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환상 속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불법도 저지른다. 결국 만신창이가 됐다. 이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청와대라는 장소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어느 분이 한국 대통령은 법률상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의 몇 배를 휘두르고 있다고 분석해 쓴 글을 보았다. 주식시장에 공개돼 주주가 주인인 주식회사 대표 선임까지 간섭하는 지경이다. 한국은 대통령이 이렇게 왕과 같은 전제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발전을 견인해야 하는 그런 단계의 나라가 이미 아니다. 국제화된 시민들이 글로벌 기업과 함께 세계와 촌각을 다투며 호흡하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관료는 이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뒤처졌다. 5G를 “오지”라고 부르는 대통령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 사람이 국민과 기업 위에서 왕갑질을 한다.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로 몰려오는 부류는 점점 더 삼류화, 아마추어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뽑지 않을 수도 없다. 우리 정치의 최대 과제는 어떻게 이 ‘대통령’이란 자리를 지금의 왕에서 행정부 책임자라는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느냐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개헌은 어렵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스스로의 결단으로 청와대에서 나오는 방법으로 청와대를 없애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의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과 공직자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대통령은 그 국민의 시선을 무시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경호상의 문제를 걱정한다. 대통령 경호 경험자에게 들으니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겨도 경호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있다 해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가장 문제는 현재 청와대에 있는 유사시 지휘용 벙커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 뿐이다. 

 

현재 대선 후보 중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통령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윤 후보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철저히 청소하겠다”며 임기 첫날을 청와대 아닌 정부청사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같은 공약을 국민에게 했으면 한다. 누가 먼저 했느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제처럼 수명이 다했고 이제 흉물화하고 있다.

이번엔 ‘혹시가 역시’로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문재인에게 한 번 속은 국민을 또다시 속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되든 저 청와대를 역사의 유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 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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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무책임제, 이제는 그만

 

[朝鮮칼럼]

제왕적 권한 행사하면서 문제 생기면 책임 안 지는 文 정권, 대통령무책임제 극치
새 대통령은 청와대서 나와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역할과 책임 다해야
 

 

고대 로마는 기원전 509년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해 480년간 유지했다. 절대 권력자의 출현을 막으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던지, 로마 공화정 체제는 이를 막기 위한 삼중 사중의 안전장치로 겹겹이 싸여있었다. 로마 민회는 매년 임기 1년의 집정관 2명을 정치 지도자로 선출했고, 두 집정관은 모든 일을 상호 합의로 결정했다. 군대 지휘권은 두 집정관이 하루씩 번갈아 행사했고, 전투 중에도 총사령관이 매일 교대되었다. 외침 등 국가 위기 도래 시 독재관 1명이 임명되기도 했으나, 권력화를 막고자 임기는 6개월로 제한되었다. 절대 권력자 없는 로마에서 원로원은 최고 권력기관이었지만, 원로원의 입법과 결의는 평민회가 선출하는 호민관 10명의 거부권 행사로 견제되었다. 

 

청와대 전경 /이진한기자

 

공화정 로마가 중시한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정신을 오늘날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것이 미국 헌법이다. 미국 헌법은 의원내각제의 상징적 국가원수와 국정 실권자인 총리를 하나로 묶은 강력한 대통령직을 창설하는 한편,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의회에 부여했다. 로마 원로원을 연상시키는 방대한 권한을 가진 미국 의회는 입법권과 예산권을 독점하고 있고, 외교권과 회계감사권도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차관보급 이상 공직자에 대한 임명동의권도 갖고 있다.

 

미국 정치체제는 행정 집행의 권한과 책임이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된 대통령책임제다. 대통령은 국정을 직접 책임지고 운영하며, 행정부가 실책을 저지르면 그것이 어느 부처 소관이건 대통령이 사과하고 정치적 책임을 진다. 내각은 한국과 달리 제청권도 부서권도 없는 단순 보좌 기관일 뿐이며, 각료가 대통령 대신 책임지고 사임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이런 미국식 대통령책임제를 선택했으나, 세월이 가면서 대통령의 권력은 점점 커지고 책임은 점점 사라져 제왕과 같은 면책의 성역이 존재하는 기형적 ‘대통령무책임제’로 진화했다.

 

한국 대통령은 공룡처럼 비대한 청와대 친위 조직을 통해 국정을 만기친람하고 집권 여당의 공천과 각 부처 내부 인사까지 개입하는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국정에 차질이 생기면 아무 권한 없는 총리와 장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빠져나간다. 청와대가 관할 부처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하고 전횡한 경제, 부동산, 탈원전, 방역, 북핵, 안보 등 분야의 무수한 실정들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남의 일인 양 모르쇠로 일관하는 문재인 정권은 ‘대통령무책임제’의 극치였다. 더욱이 이 정부는 대통령의 국정 실패 책임을 총리와 장관이 대신 짊어지는 대리 속죄 관행마저 사라진 총체적 무책임 정부였다.

 

한국의 대통령책임제가 이처럼 ‘대통령무책임제’로 전락한 이유는 대통령이 스스로를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세습적 제왕으로 착각하도록 만드는 후진적 정치 문화와 제왕적 통치 환경 때문이다. 내시와 궁녀에게 둘러싸여 백성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조선 국왕의 거처였던 경복궁 뒤 북악산 자락에는 출입이 고도로 통제된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이 심산유곡 사찰처럼 숨어 있다. 거기서 몇 단계 출입 통제를 거쳐 언덕길을 올라가면 대통령과 극소수 지원 인력만 근무하는 텅 빈 대통령 집무실 건물이 유령처럼 서 있고, 거기서 숲길로 계속 올라가면 일제시대 조선 총독 관저 뒤쪽으로 대통령 관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절해의 고도에서 유아독존하는 대통령이 대국민 공감대를 상실하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해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채택이 거론되기도 하나 이는 탁상공론일 뿐, 대통령 권력의 분점은 프랑스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책임제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권한과 책임이 일체화된 국정 운영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비대한 청와대 조직을 최소 규모로 혁파하고 내각을 통한 투명한 국정 운영을 해야 하며, 보좌진의 어깨 뒤에 숨지 말고 국정 운영 결과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대통령이 경호와 의전의 장막에 갇힌 음습한 북악산 은둔처에서 내려와 광화문이건 여의도건 국민이 살고 일하는 대명천지로 나오는 일이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자신이 제왕이 아닌 임기제 정무직 공무원임을 매시간 확인하면서 일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청와대 이전 공약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부디 이번엔 그 약속이 선거용 허언이 아니기를 빈다.

 

-이용준 전 외교부 차관보·북핵대사, 조선일보(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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