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1~2년내 해일로 밀려올 과거사 문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對日정책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작년 12월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이재명 후보에게 더 관심이 있다고 한다. 당선 가능성을 윤석열 후보보다 높게 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과거 발언이 그들에게 준 충격이 강했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다.
5년 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당시 그는 소셜미디어에 “협정을 체결한다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의 간첩”이라고 했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조국 일본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한 모양”이라고 했다. “저게 미쳐도 정말 단단히 미쳤다”고 했다. “죽을 각오를 한 매국노를 어떻게 하는 게 옳으냐”고 했다. 일본을 “군사적 적성(敵性) 국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매국 협정”이라고 했다. 이 협정은 실효성과 상관없이 지금 한·미·일 삼국 안보 협력의 상징처럼 됐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말빚’을 어떻게 갚을까. ‘가족 욕설’ 문제의 외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이슈는 대선 때 잘 부각되지 않는다. 유권자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후 일본 이슈는 모든 정권에서 핵심 외교 과제로 부각됐다. 차기 정권도 그럴 수밖에 없다.
강제 징용 판결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차기 정권에 내던지고 떠나는 거대 마이너스 유산 중 하나다. 한국 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듬해 실시된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는 사실상 선언적 조치였지만 두 나라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연초 법원은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을 명령했다. 이대로 1~2년 정도 지나면 매각이 이루어진다. 일본의 실제 보복 조치는 이때로 예상된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이 문제 역시 강제 징용에 대한 양국의 견해 차이에서 발생했다. 징용 배상 판결 문제와 뿌리가 같다. 해결이든 파국이든 해일은 다음 정권 때 밀려온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작년 11월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두 후보는 지금까지 국제포럼과 외신기자 토론회에서 일본 관련 발언을 자주 했다. 대북 관련을 제외하면 외교 관련 발언 중 비중이 가장 높다. 대선 쟁점에 파묻힌 한국 언론이 크게 보도하지 않을 뿐이다. 한국 뉴스 수요가 많은 일본의 한국 담당 기자들이 공세적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끌어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두 후보 역시 기회가 있으면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뜬금없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작년 10월 이 후보의 “일본 추월”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주당 후보 결정 직후 연설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일본을 추월하겠다”고 했다. 일본을 모델로 성장하던 1970~80년대 정치인들이 하던 소리다. 많은 측면에서 수준이 비슷해진 요즘, 그것도 중요한 대국민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윤 후보의 “현 정권이 죽창가를 부르다가 한일 관계가 아주 망가졌다”는 발언도 상당히 튀었다. 작년 6월 대선 출마 선언 때, 그것도 반일 독립운동의 상징인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서 한 말이다. 친일 몰이의 매운맛을 아직 모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픽=김현국
대선 후보 선출 후 이 후보는 약간 달라졌다. 외교 질문이 나오면 먼저 깔고 들어가는 말이 ‘벽창호론’이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벽창호라고 한다. 외교 영역에서 벽창호적 태도를 취하면 정말 큰일 난다”고 했다. 군사정보보호협정, 사드 등에 대한 과거의 ‘말빚’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의 안보 협력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적성국가론’을 폐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그런 발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일본관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일본이 한국을 ‘인계철선’으로 관리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있다”고 했다. 한반도 분쟁을 구실로 일본이 대륙 문제에 자동 개입하려 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대륙 진출의 욕망을 얼핏 얼핏 스쳐 보일 때가 있다”고 했다. ‘대륙’은 중국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일본은 청일, 러일전쟁 때 일본이다. 그는 이런 일본관을 바탕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문제에 대해 “당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미래를 지향하겠다고 하지만 이 후보의 방점은 결국 과거사에 있다”며 “그런데 과거 문제에 대한 해법도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해방 이전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1965년 체제’로 불리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선린 우호와 공존 공영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이”라고 했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기 이전까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평가와 일치한다. 이 후보와 가장 큰 차이점은 한·미·일 군사 협력에 대해선 삼각 동맹의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는 점이다. 그는 “(동맹 문제를)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협력 관계가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는 것은 명백하다”고 했다.
윤 후보의 일본 관련 발언을 종합하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낙관론을 능가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경우 집권 초 지나친 대일 낙관이 관계 악화 때 큰 실망을 불렀고, 이것이 정권 말 초고강도 반일 조치로 이어졌다. 한일 외교는 태생적으로 과거 문제라고 한다. 국민 감정과 여론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합리적이고 낙관적이라고 문제가 저절로 풀리지 않는다. 일본 정부 역시 한국 대통령이 기대한 대로 움직여준 적이 없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윤 후보가 집권을 해도 과거 문제 해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과거 문제가 지금처럼 전체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내 일본에서 몰려올 해일◆
한일 외교의 최대 현안은 강제 징용 판결 문제다. 2018년 한국 법원이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 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징용은 법령에 따른 합법적 동원이기 때문에 불법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입장이고, 한국 정부는 일본 역시 한국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후보 모두 ‘일본과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이를 위해 일본이 해야 할 선행 조건을 내걸었다. 먼저 “일본이 (가해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을 집행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법원의 판결, 일본 기업 자산 압류, 매각을 일단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한반도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라는 말과 같다. 한국 입장에선 당연하지만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리 없는 요구다. 현실적인 카드가 아니다.
이 후보는 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또 다른 편견도 드러냈다. 그는 “일본은 행정과 사법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아 행정적 요구에 따라 사법 결정이 바뀔 수 있지만 한국은 행정이 절대 사법에 관여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교 관련 재판에서 행정부 의견을 중시하는 사법 자체의 원칙은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 영국 법원도 채택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은 민주 국가의 기본이다. 이 후보는 일본을 이상한 나라로 알고 있다.
윤 후보는 조건을 걸지 않고 있다. 이것이 두 후보의 가장 큰 차이다. 그는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 안보 협력, 경제 무역 등 현안들을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바겐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적인 해법이다.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와 이에 대항한 한국의 대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검토 등 경제와 안보 현안은 모두 징용, 위안부 등 과거 문제에서 파생했다. 함께 논의할 수밖에 없다. 윤 후보는 “이를 토대로 2+2, 2+3 등 정부 당국자 간 소통을 재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난관이 많다. 일본과 합의를 하려면 현실적으로 일부든 전부든 한국 정부가 배상액을 일본 기업 대신 지불해야 하는데 민주당이 장악한 입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야 가능하다. 집권에 성공해도 다음 총선 때까지 사실상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대위(代位)변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설득하는 문제와 좌파 진영이 제기할 거센 친일 논란도 가벼운 과제가 아니다. 윤 후보의 일본관엔 한일 과거사에 얽힌 복잡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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