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래 가장 역겨운 대선”… 국격이 걱정이다]
[문 대통령이 썼으면 하는 마지막 편지]
“민주화 이래 가장 역겨운 대선”… 국격이 걱정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식선거운동 개시일을 이틀 앞둔 1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차량광고업체에서 관계자들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운동 유세차량을 제작·점검하고 있다(왼쪽 사진). 11일 오후 파주에 위치한 차량광고업체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선거운동 유세차량이 제작 되고 있다. 파주=장승윤 기자
영국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가 13일 “한국에서 진행 중인 비호감 후보들의 선거에 부인들도 끌려들어갔다”며 “한국 민주화 이후 35년 역사상 가장 역겹다(most distasteful)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추문과 말싸움, 모욕으로 점철된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했다. 미, 영 유력 매체들을 통해 국제사회에 전달되고 있는 우리의 민낯이다.
선데이타임스는 “한국은 케이팝, 오스카상 수상, 드라마 ‘오징어게임’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문화 수출국이지만 지금 서울에서는 영화 ‘기생충’보다 더 생생하게 엘리트들의 추잡한 면모를 보여주는 쇼가 벌어지고 있다”고 썼다. 이 매체는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과잉 의전 논란 및 법인카드 유용 의혹,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경력 과장 논란 및 무속 의혹 등을 거론하며 후보 본인뿐 아니라 부인들도 사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국내외 사안에 대한 토론 대신 부패와 부정, 샤머니즘, 언론인에 대한 위협과 속임수가 선거를 집어삼켰다”고 지적했다.
WP 기사에도 이 후보의 대장동 개발 의혹과 장남의 불법 도박 혐의, 윤 후보의 침술사(무속인) 연루 의혹과 부인 김 씨의 미투 관련 발언 등이 언급됐다. WP는 실질적인 정책 논의 대신 탈모 치료 지원, 흡연자 권리 확대(흡연구역 확충)처럼 인기에 편승한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 대선이 얼마나 난장(亂場) 수준이면 외국 언론이 “역겹다”는 표현까지 쓰며 혹독한 평가를 내놓겠나. 씁쓸하기 짝이 없다. 유력 후보들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배우자 등이 연루된 의혹까지 돌아가며 쏟아지는 바람에 “누구 스캔들이 더 악성이냐”를 놓고 다투는 대선이 되고 말았다.
오늘부터 22일간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지만 이런 암울한 상황이 개선될지 의문이다. 남은 대선 기간 유력 후보들은 더욱 겸허한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지만 자신들의 의혹을 덮고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네거티브 공방에 나설 공산이 크다. 추가 의혹들이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를 강타한 문화 수출국일 뿐 아니라 경제, 스포츠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거치며 정치 위상과 국격(國格)은 더 하락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동아일보(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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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썼으면 하는 마지막 편지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불안 엄존
실패의 경험이라도 진솔하게 공유하길
“대통령은 독특한 자리다. 성공을 위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조언이 딱히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 임기를 되돌아본 결과를 전하려 한다.”
2017년 1월 20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며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 한 통을 집무실 책상 서랍에 넣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수신자는 그렇게 비난했던 후임 도널드 트럼프였다. 4가지 조언을 했는데 필자는 이 대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다(temporary occupants of this office). 이 때문에 법의 원칙과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영구 집권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멋대로 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라는 것이다. 뻔한 말처럼 들리지만 대통령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책이나 보고서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운 인사이트가 있다.
앞서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는 1993년 1월 당시만 해도 까마득한 애송이였던 빌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넘겨주며 이렇게 편지를 썼다.
“… 매우 힘든 시간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를 비판 때문에 더욱 힘들 것이다. (중략) 그렇다고 비판자들 때문에 낙담하거나 경로에서 이탈하지 말라. 이제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 이 나라의 성공이다….”
대통령의 ‘멘털’이 국정 운영에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역시 ‘선배 대통령’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었다. 남편 빌을 도와 부시를 상대로 격전을 치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오늘(15일)부터 대선전이 본격 시작되면서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게 됐다. 다음 달 9일 이후엔 세상의 시선이 온통 당선인에게 쏠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대통령 퇴임 과정을 지켜봤던 만큼, 나름의 정리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중 하나로 앞서 소개한 것처럼 후임자에게 편지를 남기는 게 어떨까 싶다.
어떤 사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넘나드는데 문 대통령에게 무슨 국정 운영의 인사이트를 기대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 경험자만이 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는 정파와 무관한 것이다.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얻은 교훈은 문 대통령이 양산 사저에 싸들고 갈 게 아니라, 차기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참고할 국민적 정치 자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거론되는 유력 후보들은 정치 경험이 일천하거나 짧고 중앙 행정 경험이 없다. 코로나19 대응, 북핵 및 미중 정책, 한일 관계 정상화 등 문재인 정부에서 못 푼 복잡다기한 이슈는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지 후보와 무관하게 차기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초기 백신 수급에 실패한 배경이나 김정은에 대한 술회를 허심탄회하게 전한다면 누가 당선되든 유용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급 인사는 얼마 전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참모들은 조언을 하는 것이고 결국 최종 결정은 대통령 몫이다. 대통령만이 알고 느끼는 시간이란 게 따로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소통이 부족했다. 마지막 신년 회견도 취소했다. 이 칼럼을 쓰면서 괜한 부질없는 짓 아닌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전임자들과 달리 마지막 편지를 쓴다면 세간의 평가가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승헌 부국장, 동아일보(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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