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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螺鈿漆器), 이젠 외국인이 반하는 한국 감성] ....

뚝섬 2025. 10. 16. 07:31

[나전칠기(螺鈿漆器), 이젠 외국인이 반하는 한국 감성] 

[칠기(漆器)] 

[나전칠기(螺鈿漆器)]

 

 

 

나전칠기(螺鈿漆器), 이젠 외국인이 반하는 한국 감성 

 

옻에 자개 붙이는 모습.

 

나전(螺鈿)은 옻칠한 나무에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상감(象嵌)하는 기법이다. 검은 옻의 바탕이 어둠이라면 자개는 그 위에 새겨진 바다의 빛이다. 하여 고 이어령 전 장관은 ‘우리문화 박물지’에서 나전칠기를 “어둠에 빛을 새기는 예술”이라 표현했던가.

 

나전칠기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나전을 합한 것으로, 시대마다 다른 미감을 품었다. “나전 공정이 세밀하고 귀하다”며 송나라 사신 서긍의 칭송을 받은 고려 나전은 정교하고 화려했으며, 조선에서는 다양한 문양의 아름다움이 품격을 더했다. 나전은 오랜 세월의 여파 속에서도 전통 기법을 이어오는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며, 이제는 국가무형유산 나전장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나전칠기의 주요 재료는 칠과 자개다. 본연의 빛을 지닌 자개의 결을 읽고 오색 빛을 조율한다. 쓰임새에 따라 나무로 기물의 틀을 짜고 표면을 다듬은 뒤, 자개를 붙이고 수십 번의 칠과 연마를 반복하며 모양새를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장인의 안목과 섬세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나전칠기는 최상의 공예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전통 나전은 생활 방식 변화와 산업화의 효율 앞에 위축되었다. 귀한 대접을 받던 자개농은 ‘할머니 장롱’으로 불리며 거리의 낡은 가구로 밀려났다. 그러나 지금은 ‘K팝 데몬 헌터스’ 효과 덕분에 젊은 세대와 외국인은 자개 문양을 ‘힙한 한국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개의 오색 영롱함이 세련되게 부활하며 기념품에서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나전장 이형만(79) 보유자는 이러한 현상을 반기면서, 젊은 세대의 디자인 감각에 뒤지지 않으려 고민하는 동시에 전통 나전칠기의 판로를 염려한다.

 

최근 궁궐형 매장이 경복궁에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궁의 결을 지닌 곳에서 장인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고, 젊은 작가들이 함께 협업했으면 한다. 방문객에게는 차별화된 체험과 소비를 연결하고 기억을 전달받는 장이 되어, 그들이 우리 문화의 영롱한 빛에 매료되길 기대한다.

 

-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조선일보(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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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기(漆器)

 

신라 시대엔 칠기 관청까지 있었대요

 

최근 한성백제 시대 도읍지로 추정되는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에서 유물 하나가 발굴됐어요. 옻칠 재료를 담아둔 용기로 추정되는데, 당시 칠기 공방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유물이에요. 나무나 흙·금속 등으로 만든 공예품에 옻나무의 수지인 칠(漆)을 발라 광택을 주고 표면 훼손을 막는 공예품을 '칠기'라고 합니다. 유일하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칠기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동아시아에서 옻나무가 가구나 그릇의 도료로 사용된 흔적은 3000여 년 전부터 나타납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의 유물 중 칠기가 발견된 거예요. 이후 칠기는 한반도로 전파됩니다. 한반도에서 칠기는 중국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어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무렵 유물로 추정되는 칠기가 출토됐는데요. 공예품 위에 직물을 덮고 여러 차례 옻칠을 해서 만드는 낙랑 유적의 중국 칠기와 달리, 나무 표면에 바로 옻칠을 한 모습이었어요. 중국과 다른 한반도의 독자적인 칠기 문화를 보여주는 셈이지요.

그러면서 칠기는 한반도의 주요 공예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신라 시대에는 '칠전'(漆典)이라는 부서를 두고 옻나무를 심으며 국가에서 직접 칠기를 제작했어요. 신라 말기에는 중국 당나라에서 새로운 방식의 칠기 문화가 들어오는데요. 조개껍데기 등으로 화려하게 표면을 장식하는 '나전칠기'(螺鈿漆器)랍니다. 나전칠기는 중국에서 처음 유입됐지만, 그 문화는 한반도에서 꽃을 피웠어요. 당시 중국에서는 나전칠기 대신 여러 겹의 옻칠로 층을 만들고, 층을 조각해 문양을 만드는 '조칠기'(彫漆器)가 유행했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나전칠기는 외국과의 외교에서 조공품이나 선물로 자주 활용됐어요. 고려의 나전칠기를 받은 송나라 관료가 '옻칠 기술은 중국이 더 정교하지만, 나전 기술은 고려가 매우 정밀하고 훌륭하다'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조선시대 나전칠기<사진>는 약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고려에서는 장식에 연꽃 등 불교적 색채를 주로 표현했지만, 조선시대에는 산이나 학 등 자연물이나 사군자 등 유교적 장식을 주로 쓴 거예요.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은 당나라 시절 나전칠기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헤이안 시대(794~1185)에 접어들며 일본 특유의 칠기 문화인 마키에(蒔繪)가 발전하게 됐어요. 옻칠을 한 칠기 위에 붓 등을 이용해 금이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형태인데,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활용됐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조선일보(2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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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螺鈿漆器)

 

몇 년 전 인간문화재 이형만 나전장(螺鈿匠)을 만나러 원주를 찾았다. 우리가 자개라고 부르던 것이 나전이다. 공방 문을 열자 역한 냄새가 훅 끼쳤다. 옻칠 탓이었다. 이 장인은 원주산 옻칠이 항균·방습·방충이 뛰어나다고 했다. 손이 거칠었다. 작업대엔 얇게 자른 전복껍데기 같은 자개와 실톱이 뒹굴었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칠과 흙가루를 섞어 자개 붙이는 채비를 하느라 마루도 어수선했다. 자개를 손질하고 옻칠과 건조를 거쳐 마지막 광내는 작업까지 마흔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온 오바마 대통령은 인간문화재가 만든 나전칠기 갤럭시탭을 선물로 받았다. 최신 태블릿PC 뒷면에 남해안 전복껍데기를 사용한 나전으로 가로 2.9㎝ 세로 2.1㎝ 모란꽃을 새기고 옻칠로 마감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쉰일곱 각국 대표에게도 같은 선물을 돌렸다. "전통문화에 첨단 IT 산업을 접목했다"고 했다. 

 

▶고려 500년을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청자와 불화, 그리고 나전칠기가 꼽힌다. 불경을 담은 함과 작은 책상, 필통 같은 문방구에 자개를 입혔다. 고려 나전칠기는 세계를 통틀어 남은 작품이 열일곱 점밖에 안 된다고 알려질 만큼 희귀하다. 고려 때 사신으로 온 송나라 서긍이 '기법이 매우 정교해 귀하게 여길 만하다'고 귀국 보고서에 썼다. 그만큼 예술적 가치가 돋보였다.

▶나전칠기가 어느 위세 높은 국회의원 탓에 화제다. 목포 문화재 거리에 부동산을 사들여 욕을 먹자 나전칠기 박물관을 옮기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현대 나전칠기 작품을 사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새로 된 문화재청장이 기자 시절 나전칠기 기사를 많이 쓴 것이 이 의원 눈에 든 것 아니냐는 말도 많다.

▶옛 어머니들은 안방에 자개농을 들이는 게 '로망'이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값비싼 옻칠 대신 헐한 화학 도료로 조잡한 자개농을 만드는 사람이 늘면서 내리막을 탔다. 근년엔 국빈 선물용으로 꼽힐 만큼 귀한 공예품 대접을 되찾고 있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선 고려 나전칠기 4점이 포함된 '대(大)고려' 전시가 열리고 있다. 런던 영국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온 명품이다. 박물관 후원회가 몇 년 전 사들인 국내 유일의 손상 없는 고려 나전칠기도 나왔다. 조개껍데기로 국화와 모란 넝쿨을 정교하게 새긴 장인의 솜씨가 놀랍다. 나전칠기엔 죄가 없다.

 

-김기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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