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셀프 훈장’]
[청와대 터의 운명]
[‘진짜’ 포토제닉한 대통령을 꿈꾸며]
대통령 ‘셀프 훈장’
우리나라 상훈법에 따르면 훈장은 모두 12개 등급이 있다. 최상위에 무궁화대훈장이 있는데 대통령과 배우자, 우방국 원수와 배우자, 전직 우방 원수만이 대상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공과(功過)와 무관하게 모두 자신의 임기 중 이 훈장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 반대 진영으로부터 ‘한 게 뭐가 있다고 훈장이냐’는 식의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국무회의 의결을 통한 이 훈장의 ‘셀프 수여’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다.

▶대한민국 1호 훈장은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수여된 무궁화대훈장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까지는 취임과 동시에 이 훈장을 받았다. 포상 차원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에 대한 상징과 예우의 의미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든 서훈을 취소하기로 했지만 무궁화대훈장만큼은 제외한 것도 그렇게 할 경우 대통령 재임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는 해석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5년간의 공적과 노고에 대해 치하받는 의미에서 퇴임 때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고 임기 말인 2008년 초 이 훈장을 받으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집안 잔치”라고 하는 등 여론의 비판이 집중됐다. 5년 후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임기 말 이 훈장을 수여받자 이번에는 민주당이 “뻔뻔함이 금메달감”이라고 비판했다.
▶외국도 국가 원수에게 최고 권위의 훈장을 수여하곤 한다. 하지만 대체로 퇴임 후 주는 게 관례다. 영국 왕실은 전직 총리에게 가터 훈장을 수여하는데 토니 블레어, 존 메이저, 마거릿 대처 등은 각각 퇴임 후 14년, 8년, 5년 만에 받았다. 모두에게 주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뛰어난 업적이 있는 총리에게 대훈위국화장경식(大勲位菊花章頸飾)이라는 훈장을 주는데 전후(戰後) 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3명만이 이를 받았다.
▶무궁화대훈장은 국내외 다른 훈장과 비교해 지나치게 비싸고 화려하다는 것도 문제다. 문 대통령 내외가 받는 훈장은 금·은·루비·자수정 등의 보석으로 제작하면서 한 세트당 6800여 만원, 총 1억3600여 만원의 예산이 쓰였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등이 사후에 받았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최근 제작비가 172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퇴임하는 대통령의 노고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5년마다 반복되는 논란을 해소할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최승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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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터의 운명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푸시킨 ‘스페이드의 여왕’
게르만은 미끄러져 들어온 하얀 여인이 죽은 백작 부인임을 알아보았다. “나는 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네 청을 들어주라는 명령을 받아서 왔어. 3, 7, 1을 차례로 걸면 이길 거야. 하루에 카드 한 장 이상은 걸지 않아야 하고 이후에는 일생 동안 도박을 해선 안 돼. 또 네가 내 양녀 리자베타와 결혼한다면 날 죽게 만든 걸 용서해주겠어.” -푸시킨 ‘스페이드의 여왕’ 중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집무실과 관사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은 대규모 시위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또한 경호나 비서진 실무 공간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현 정부도 실행하지 못한 공약이었다.
게르만은 사교계의 늙은 백작 부인이 젊은 시절, 도박에서 연달아 세 판을 이겨 엄청난 돈을 딴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치밀한 계획 끝에 노부인 방에 숨어든다. 하지만 늦은 밤 갑자기 나타난 청년이 도박의 비밀을 말하라며 총을 들고 협박하자 놀란 노부인은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직접 살인한 건 아니었지만 꺼림칙했던 게르만 앞에 죽은 백작 부인이 환영(幻影)으로 나타나 돈 따는 비결을 알려준다.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이틀 연속 큰돈을 딴다. 그러나 셋째 날, 돈과 인생, 모든 것을 잃는다. 부인의 지시대로 분명 1, 즉 에이스를 냈는데 테이블에 던져진 카드는 스페이드 퀸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저지른 실수였을까, 백작 부인의 저주였을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시를 남긴 푸시킨의 소설 속 주인공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죽은 자의 말을 믿고 운명을 걸었다. 청와대 터가 험해서 국가 분란과 대통령들의 불운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많다. 현 정권도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해 옮겨야 하는데”라고 브리핑을 한 적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을 청산하겠다며 이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당선인의 공약이 이번엔 실현될까? 현직을 포함,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 불행이 풍수 때문인지 아닌지 비교,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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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포토제닉한 대통령을 꿈꾸며
[사진기자의 사談진談]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한 뒤 조깅을 하듯 이동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일주일 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선인은 주말 한강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진을 언론에 제공했다. 그제는 남대문시장을 찾아 꼬리곰탕으로 식사를 했다. 사진만 보면 우리의 일상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관저에서 김정숙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모습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또 청와대 직원 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음식을 담거나, 식사를 한 뒤 와이셔츠 차림으로 산책을 하기도 했다. 기자단과는 편안한 복장으로 뒷산을 올랐다. 이후에는 관저에서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거나 처마에 감을 말리면서 신문을 읽는 여사 사진 등을 ‘청와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초기 시장이나 마트를 방문해 물건을 구매하거나, 시식을 하는 등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강조했다. SNS엔 편안한 복장을 하고 휴가지를 거니는 사진을 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취임 후 직접 커피를 따르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추석을 앞두고 관저에서 손녀들과 함께 송편 빚는 사진도 공개했다.
대통령의 자리는 힘과 위엄을 상징한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취임 직후에는 탈권위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이후에는 대통령으로서 참석해야 하는 공식행사에서 정형화되고, 경직된 사진이 대부분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 입성하면 취재진과의 거리 두기가 시작된다. 후보 시절 기자들과 수시로 만나고, 이야기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는 청와대 구조상 대통령의 업무공간과 기자들이 있는 춘추관 사이가 멀고, 출입기자라 하더라도 보안을 이유로 대통령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나 행사를 언론에 공개할 때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는 대표 기자 몇 명뿐이다. 기자들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자회견은 사전 리허설을 거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려 하기 때문에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미국 대통령 사진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청와대와 달리 백악관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사진이나, 고령인 점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기자들 앞에서 뛰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기자들의 시선도 대통령에게만 고정돼 있지 않아 산만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다. 그리고 대통령이 워싱턴이나 지역에서 행사를 마친 뒤 동네 아이스크림가게에 들르는 장면도 이색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나는 한국 사진기자로는 유일하게 현장에 들어갔다. 회견장까지는 폭발물 탐지견의 수색을 포함해 몇 단계의 까다로운 보안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회견장 내에서의 이동은 자유로웠다. 백악관 출입기자와 대통령이 질의응답을 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전 준비나 격식 없이 오랜 시간 단상에 서서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한 답변을 이어갔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런 사진을 보고 싶다. 윤석열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엔 전임자들과 달리 지하 주차장으로 출근하고, 점심시간 이동 장면도 사진기자에게 잘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를 시작한 뒤 SNS에 반려견 사진을 비롯해 선거 기간에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등 딱딱하고, 무게 잡는 여의도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출연한 예능 프로에서 “잘했건, 잘못했건 국민들 앞에 나서겠다”고 했다. 당선 후에도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당선인 사무실이나 취임 후 차려질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답하는 모습부터 말이다. 기자들의 질문이 설령 기분이 나쁘더라도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더 나아가 후보 시절 말처럼 조만간 코로나가 종식되면, 대학가 어느 호프집에서 ‘골든벨’을 울리는 대통령의 사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김재명 사진부 차장, 동아일보(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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