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나오기까지, 천년의 역사]
[돌연 무산된 文·尹 회동, 감정 다툼으로 국민에게 실망 주나]
청와대에서 나오기까지, 천년의 역사
[朝鮮칼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닌 정부서울청사(왼쪽 위)로 하겠다고 밝혔다.사진 한장에 정부서울청사(왼쪽)와 북악산 아래의 청와대(위 가운데),그리고 경복궁이 한 앵글에 들어온다. /뉴시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약속이다. 높디높은 천상의 세계에서 낮은 저잣거리로 내려오겠다는 약속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이제 그만하겠다는 뜻이다.
청와대란 제왕적 대통령의 다른 말이다. 그런 청와대의 역사는 길다. 현대에 시작된 게 아니다. 청와대는 원래 고려의 남경 터이다. 1068년 설치되었으니 올해로 954돌, 천 년 가까이 왕의 자리를 지켜왔다. 왕은 인간세계의 지배자이자 하늘의 아들이다. 정도전이 경복궁 터를 잡은 것도 그런 정치 이론을 따른 것이다. 유교에 따르면, 북극성은 왕의 별자리다. 모든 별이 그 주위로 돌기 때문이다. 왕은 북쪽에 앉아 남면(南面)하여 천하를 다스린다. 조선의 왕은 북극성이 체현된 경복궁에 앉아 한반도를 통치했다. 청와대 터를 포함한 경복궁은 천하의 중심이자, 하늘과 인간을 잇는 신성한 영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총독이, 미군정기에는 군정장관이,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역대 대통령이 이곳에 거주했다.
청와대는 이처럼 하나의 상징이다. 하늘의 뜻이 내려오고, 민심이 응결되는 정치적 소도(蘇塗)다. 이 원점에서 방사되는 힘이 현실 세계의 질서를 형성한다. 그 원점에 대통령이 서 있다. 한국 정치는 원자화된 모래처럼 남김없이 원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청와대는 정치적 태풍의 눈이다. 회오리바람의 주인은 제왕적 대통령이다. 한국 정치가 소용돌이 정치인 이유이다.
한국인의 정치 생활은 이처럼 단순하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한국인의 오랜 정치적 관습이다. 청와대의 역사나 소용돌이 정치 이론(G. Henderson)을 보면 천 년에 가깝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청와대는 정치를 넘어 한국의 중심,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근년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1948년 이후 행복한 대통령은 없었지만, 역사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역사마저 불행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보라. 이 정부의 칼날은 적폐로 불린 정적만 겨눈 게 아니었다. 국가 그 자체를 공격했다. 탈원전으로 국가 에너지 체계를 망가뜨렸다. 포퓰리즘으로 나라 곳간이 텅텅 비었다. 군대는 대화로 안보를 지킨다고 한다. 청와대를 그냥 두면, 이제 대한민국이 자살할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을 견뎠는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풍수사들은 청와대 터가 흉하다고 한다. 대통령들의 운명을 보면 사실이다.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라는 천상에 올라간다. 천상에서 내려오면 지옥이 기다린다. 감옥 가면 다행이고, 죽는 경우도 많다. 그제야 그들은 비로소 국민의 용서를 받고, 역사의 전당에 헌액된다.
왜 이런 비극적 패턴이 반복될까. 정말 풍수가 문제인가. 소용돌이 정치, 즉 메시아의 정치가 진정한 원인이다. 한국민은 대통령을 메시아로 본다. 단순한 국가원수나 행정부의 수장이 아니다. 말 그대로 천명을 받은 자이다. 모두 그만을 쳐다보니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메시아는 인간의 모든 소망이 결정화된 상징이다. 그런 소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리 없다. 그래서 메시아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메시아가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며 숨을 거두면, 비로소 사람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진실이다. 신성한 왕을 살해하는 제의가 5년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사정이 어쨌든, 역대 대통령들은 한국민이 부여한 신탁을 지키고자 헌신했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 혁명의 신탁을 받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아래서 촛불은 어둠이 되었다. 북한 인권에, 성폭력에, 드루킹에, 대장동에 눈감았다. 그렇게 국가를 자해했고, 탁현민의 쇼로 어둠을 가렸다. 한국민이 바라는 메시아는 원래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메시아에 대한 고뇌조차 사라졌다.
이제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광화문 시대로 가야 한다. 광화(光化)는 요임금의 밝은 정치를 뜻한다. 민주화도 정치를 밝게 하자는 것이다. 그게 촛불 정신이다. 촛불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시민들 자신을 밝혀야 한다. 메시아에게 밝음을 대신하게 하면 안 된다. 대통령도 제1 시민일 뿐, 태양처럼 유일무이한 발광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게 3·1운동이 부르짖은 자유인의 정신이고, 1948년 자유민주국가를 세운 뜻이다. 광화문 시대란 단순히 지리적 의미만은 아니다. 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청와대에서 나오는 데 천 년의 역사가 흘렀다. 설사 광화문 청사가 아니더라도 그 시대정신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조선일보(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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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무산된 文·尹 회동, 감정 다툼으로 국민에게 실망 주나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간 16일 첫 오찬 회동이 예정된 시각 불과 4시간 전에 무산됐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했다. 이유에 대해선 양측 합의에 따라 밝히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직을 비롯한 공공 기관·공기업 인사권에 관한 양측의 엇갈린 입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 등이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만 나올 뿐이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으로서 권력 비위 수사를 하며 정권과 정면 충돌했고 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과는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 데다 이번 대선은 0.73%포인트 차라는 초박빙으로 승부가 갈리면서 민심이 반으로 쪼개졌다. 두 달 후 새 정권이 출범하면 절반을 훨씬 넘는 172개 의석의 야당을 상대하게 된다.
여러모로 정권 교체 과정이 순조로울 수 있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이번 회동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통합과 협치의 정신을 보여주길 많은 국민이 기대했다. 그런데 양측의 첫 회동이 급작스럽게 어그러지며 신구 권력 정면충돌이라는 정치적 갈등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인사권에 대해 윤 당선인 측은 “꼭 필요한 인사의 경우 우리와 협의해달라”는 입장이고, 청와대는 “임기인 5월 9일까지 인사권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고 맞서고 있다. 법대로 하자면 청와대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임기를 한 달여 앞둔 정권이 임명한 공기업, 공공 기관 인사들이 대부분의 임기를 새 정권과 함께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당선인 측이 뜻을 모으지 못하는 모양새도 실망스럽다. 청와대 측은 국민 정서상 시기상조라는 명분을 들어 부정적이라지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당선인 쪽에서 사면을 기정사실화하며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자극하는 발언을 한 것도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 불발은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입장 차보다는 권력을 주고받는 양측 간의 기 싸움과 자존심 때문인 것으로 비친다. 국민은 실망스럽고 당혹스럽다.
-조선일보(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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