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민주정권의 ‘좀스럽고 민망한’ 권위주의 5년]
[아무나 흔들 수 없는 나라]
자칭 민주정권의 ‘좀스럽고 민망한’ 권위주의 5년
[朝鮮칼럼]
국민이 대통령 조롱해도 내버려두는 게 진짜 ‘권위’
시민을 모욕죄로 고소한 文은 비민주적 ‘권위주의’
소위 ‘깨시민’ 덩달아 위세… 尹은 진정한 권위 누리길
현지 시각 지난 3월 27일,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핑킷 스미스의 짧은 머리를 두고 농담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같이 웃던 윌 스미스, 아내의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무대 위로 올라가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리고, 자리에 돌아와서도 계속 목청을 높였다. “다시는 내 아내의 이름을 꺼내지 마!”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취임 4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은 ‘조크’에 관대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나라다. 여기서 말하는 조크란 모두가 적당히 기분 좋게 웃고 넘어가는 무해한 농담이 아니다. 조롱거리가 되는 사람이 감추고자 하는, 혹은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치부를 드러내고 까발리며 조롱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처럼 권위 있는 자리일수록 그렇다. 당사자가 불쾌해할 뿐 아니라 때로는 듣는 이도 웃어넘기기 어려울 만큼 독한 조크가 난무한다. 연예인들만 조크의 과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백악관 공식 행사에 코미디언을 사회자로 부르면 대통령과 영부인을 놀림감으로 삼는다. 미국식 조크에는 성역도 없고 금기도 없다.

2017년 8월 18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청와대 오픈하우스 행사에 참석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왜일까?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나라지만 동시에 권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더 나아가 미국 사회가 권위를 지키는 방식이다. 중세 시대의 왕이나 권력자들이 광대를 옆에 두고 남들이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농담하도록 내버려둔 것과 같은 원리다. 스타들의 치부를 대놓고 언급하면서,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권위주의’의 긴장감을 털어버리고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떠올려볼 수 있다. 권위주의와 자존심은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굽실거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면 권위와 자존감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미국만 그런 건 아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보통 사람’이라 부르며 방송과 출판 등에서 대통령을 풍자하는 걸 기꺼이 허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농담인 ‘YS 시리즈’까지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비춘 적이 없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그 뒤를 이은 대통령들 역시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것, 국민들이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렇게 권위를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이 공식이 달라진 건 문재인 대통령 이후다. 문재인 정권의 여러 잘못 중, 문화적 영역에서 남긴 가장 큰 해악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1983년에 태어나 모든 대통령 선거와 그 후의 분위기를 경험했던 필자로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렇게까지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적은 없었다.
문재인 본인부터가 문제다. “북조선의 개 한국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가 담긴 전단지를 만들고 뿌렸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일개 시민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현직 대통령이 시민을 고소하는 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그 어떤 민주국가에서도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안을 두고 문재인 본인이 부끄러워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 후로도 잊을 만하면 ‘격노’를 일삼더니, 퇴임을 앞두고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제목의 책까지 냈다.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권위주의를 의인화하면 바로 이런 캐릭터가 될 듯하다.
대통령 스스로가 이렇다보니 지지자들의 행태는 한층 더 저열해졌다. 자칭 ‘깨어있는 시민’들이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대감댁 행랑채의 왈짜들처럼 떠세를 부려댔다. 정권을 향한 비판, 풍자, 농담에 대고 “대통령님이 네 친구냐?”며 시비를 걸고 다녔다. 크리스 록의 조크를 듣고 웃다가 제이다 핑킷의 눈치를 보더니 무대에 올라가 뺨을 때린 윌 스미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커녕, ‘아무도 웃을 수 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중이다. 새 대통령 윤석열은 자칭 민주정권의 비민주적인 권위주의를 확실히 털어내주기를, 국민 속에서 진정한 권위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조선일보(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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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흔들 수 없는 나라
규칙보다 힘 앞세우는 탈세계화 시대
‘급소기업’ 지켜야 아무나 못 흔든다
지난달 출간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집 제목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현실은 책 제목처럼 멋지진 않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지난해 요소수 사태마다 혼란이 있었다. 아무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정신 승리’보단 강대국이 기침하면 우린 독감에 걸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위험에 대비해야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세계 최고 군사력과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을 빼면 사실상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고 거들먹거리고 한국이 주요 7개국(G7)을 능가하는 경제적 성과를 냈다고 뽐내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쳐주진 않는다. 세계 제2의 군사대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러시아 역시 미국과 서방이 금융과 에너지 제재로 흔들면 흔들리는 게 현실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관세 철폐와 자유무역을 중시하는 세계화가 후퇴했다. 세계화 시대에 건설된 물류와 공급망 인프라, 에너지, 핵심 기술 등과 관련한 국가 간 상호의존성은 경제 인프라를 안보의 전략무기로 동원하는 경제안보 시대의 급소가 됐다. 중동산 원유를 실어 나르는 호르무즈 해협과 지중해 홍해 인도양을 잇는 무역로인 수에즈 운하 등 급소지역(choke point)이 막히면 세계 물류동맥이 끊어지는 것처럼 반도체나 5세대(5G) 통신기술, 벨기에에 거점을 둔 국제금융결제망(SWIFT) 등은 시장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세계 경제의 급소 인프라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제안보의 현실적 목표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미국과 같은 나라보다는 핵심 기술, 기업, 인재 등의 급소 인프라를 지켜 ‘아무나 흔들 수 없는’ 고슴도치와 같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수백, 수천 개 전략 품목을 일일이 관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상대방의 핵심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급소기술이나 급소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면 상대가 만만하게 보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자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지 않으면 국가 간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게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와 같은 급소기업은 패권경쟁의 타깃이자 경제안보를 지키는 인계철선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안보의 핵심은 통상을 누가 맡느냐가 아니다. 외교 따로, 통상 따로, 산업 따로 노는 칸막이를 없애고 국가의 힘을 결집하는 컨트롤타워를 대통령이든 국무총리 밑에 두고 급소 인프라를 관리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지난해 요소수 사태에서 중국의 요소 수출 의무화 고시에 대한 늑장 대응의 원인은 사태 초기 현지 공관에서 이 문제를 차량용 요소가 아닌 농업용 ‘요소 비료’의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시장과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경제안보의 조기 경보조차 불가능하다.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밖에도 대안이 있다. 세계 기술과 투자 동향 등을 파악하고 산업의 급소와 위험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특허청의 특허정보 인프라 등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5월 상하이 시찰에서 “과학기술창조혁신의 ‘급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미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의회에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따라잡지 못하게 반도체 제조 기술의 ‘급소’를 조여야 한다고 건의했다. 강대국들은 서로의 급소를 노리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상을 붙였다 뗐다 하며 밥그릇 싸움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런 적전 분열이 되풀이되면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로 전락한다.
-박용 부국장, 동아일보(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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