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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가 펼쳤던 '초엘리트 계급론'] [부동산 포모, 현미 씹는 사람들]

뚝섬 2025. 11. 1. 08:12

[최민희가 펼쳤던 '초엘리트 계급론']

[부동산 포모(FOMO)와 현미 씹는 사람들]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최민희가 펼쳤던 '초엘리트 계급론'

 

[박정훈 칼럼]

초엘리트는 반칙을 저질러도 된다는 최민희의 계급론…
기득권이 된 좌파의 의식 세계를 실토한 자백과도 같았다
 

 

지난달 29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최민희 위원장 딸 결혼식장을 뒤덮은 피감기관들 화환 사진을 띄워놓은 채 질의하고 있다./뉴스1

 

5년여 전 ‘조국 사태’ 때,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이 펼친 계급 논리를 보고 아연실색한 기억이 있다. 그는 방송에 나와 “저는 조 전 장관이 대한민국의 초엘리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초엘리트로서 그 초엘리트만의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식들은 (중략) 그 초엘리트들 사이에 (형성된) 인간관계 등으로 일반 서민이 갖지 못한 어떤 관계들이 있다.” 엘리트는 일반인과 다른 우월적 신분이고, 따라서 스펙 조작, 표창장 위조가 “불법적이진 않다”는 것이었다.

 

그때 발언을 보면 지금 최 위원장이 딸 결혼식 논란에서 왜 저토록 당당한지 단박에 이해된다. 국감 중에 국회에서 예식을 올리며 계좌번호를 공개하고 카드 결제 링크까지 걸었다. 식장엔 피감 기관들이 보낸 화환이 즐비했다. 일반인은 상상 못 할 ‘권력형’ 축의금 장사였지만 그는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일관했다. 양자역학 공부” “교활한 암세포” 운운하며 국민을 바보 취급했다. 5년 전 계급 논리로 조 전 장관을 옹호하던 그가 이젠 스스로를 ‘초엘리트’로 인식하며 특권을 누리려는 듯 보였다.

 

좌파 엘리트의 위선적 계급 관념을 드러낸 것이 문재인 정권이었다. 문 정권은 약자 편임을 내세웠으나 민생 정책은 정반대였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저소득층의 ‘일자리 사다리’를 무너트렸고, 특목고 폐지로 ‘교육 사다리’를, 부동산 고집불통으로 내 집 마련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 하나같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하는 빈곤 가속화 정책이었다.

 

그렇게 약자의 성공 루트를 막아 놓고 자신들은 딴 세상에 살고 있었다. 주택 구입을 투기 취급하더니 몇 채씩 보유한 다주택자며, 부동산으로 돈 번 공직자가 수두룩했다. ‘수월성 교육’을 죄악시하더니 제 자식은 외고·과학고·의전원이며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있었다. 그 이중성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조국 사태’였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의 삶을 권하던 조 전 장관이 자기 자식은 용으로 만들려 문서까지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중적 특권 의식은 이 정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대출을 틀어막아 주택 구입 통로를 원천 봉쇄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리고 전·월세를 전전하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았다. 반발이 쏟아지자 “수억, 수십억씩 빚내 집 사는 것은 비정상”이라며 국민을 훈계하려 들었다. 대통령의 부동산 책사는 “돈 모아 집값 떨어지면 사라”는 말로 염장을 질렀다.

 

정작 정권 실세들은 대출받고 갭투자 하며 고가(高價)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어떤 고위직은 서울·경기·충남을 종횡무진하며 문어발식으로 부동산을 사들였고, 어떤 장관은 프로 투기꾼이나 손댄다는 도로 부지 투자로 10억원을 벌었다. “투기 근절”을 외치던 대통령의 경제 멘토는 가족회사를 차려 30년간 아파트·상가·땅 등에 투자하고, 어린이날 선물로 자녀에게 재개발 건물까지 사 줬다. 서민은 안 되지만 나는 된다는 이중성을 숨기지도 않았다.

 

좌파의 계급적 우월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지도 이론’이란 역사적 족보가 있다. 레닌·스탈린·김일성은 무산층(無産層)을 의식 없는 수동적 존재로 보았다. 천박한 본성을 드러내는 룸펜(부랑인) 계급에 불과하고, 따라서 엘리트 혁명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영도(領導)’가 필요하다고 했다. 계급 없는 세상을 만든다며 스스로 특권층이 된 그들의 이중성을 간파한 것이 조지 오웰이었다. 그는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그 유명한 풍자로 사회주의 엘리트의 위선을 신랄하게 조롱했다. 오늘날 한국 좌파의 정신 세계를 예견이라도 한 듯했다.

 

문 정권 이래, 나는 약자를 위한다는 좌파 정치의 선의(善意)를 믿지 않는다. 서민을 더 못살게 만드는 역설적 정책들을 보며 이들이 정말 기층민의 경제·사회적 성공을 원하는지 의심하게 됐다. 당시 부동산 정책을 지휘하던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기 집을 가지면 보수적 투표 성향을 갖는다고 썼다. 왜 그토록 내 집 마련을 막았는지 본심을 드러낸 듯했다.

 

이재명 정권 역시 같은 역설을 반복하고 있다. 반기업 규제로 양질 일자리를 없애고, 대출 봉쇄로 주택 구입을 차단했다. 그렇게 기회의 사다리를 막아놓고 정부가 세금으로 시혜를 베풀겠다고 한다. 소비 쿠폰 뿌려 지갑 채워주고, 공공 임대주택 늘려 살 집 주고, 기본 소득, 기본 금융, 기본 교육도 제공하겠다 한다. 성공의 꿈을 버리고 그냥 국가에 의존해 살라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좌파의 특징은 계급적 이중성이다. 자기들은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약자의 신분 상승은 방해한다. 서민을 ‘빈곤의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놓고 좌파 포퓰리즘에 손 벌리게 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계산도 엿보인다. 5년 전 최민희의 ‘초엘리트 계급론’은 기득권이 된 부르주아 좌파의 의식 세계를 실토한 자백과도 같았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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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포모(FOMO)와 현미 씹는 사람들

 

민주당 정부發 부동산 '포모'
현미를 씹으며 눈물을 삼켰다
'10·15 규제'는 서울의 평양화
실패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올해로 결성 6년 차가 된 대학 동기 카톡방이 있다. 이름은 ‘안티 현미 클럽’. 친구 A의 병문안을 했던 인연들인데, 오프라인 모임을 하면 반드시 현미가 들어간 밥이나 술을 곁들인다. 다 함께 현미를 오도독 씹으며 ‘김현미 국토교통부’의 피해자인 A에게 위로를 보내고, 다시는 정부에 속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A는 2020년 여름 급성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결혼 준비를 했는데, 신혼 전셋집을 두고 약혼자와 ‘서울 역세권 구축 복도식’과 ‘언덕배기 신축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 중에서 고민하는 사이에 6·17 대책과 임대차 3법 쓰나미를 맞았다. 며칠 새 전세 물량이 확 빠지거나 2억원 이상 폭등하는 아비규환이 펼쳐지자 A는 약혼자와 서로를 탓하다가 파혼했다. 구내식당과 BMW(버스·지하철·걷기)를 애용하며 재형저축으로 목돈을 모았던 친구는 자고 나면 부동산 시세가 1억~2억원씩 뛰는 현실에 억울해하다 쓰러졌다. “문재인 정권이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잖아. 그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자 A는 서울 동작구 아파트를 대출 끼고 일사천리로 샀다. 14억원이던 매매가가 요즘엔 20억원을 넘겼다고 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규제로 집값이 폭등한다는 기출문제가 나와 있는데, 누가 알고도 또 틀리겠어.” 멤버 B는 ‘집값 폭락론’을 신봉하던 직장 동료가 추석 연휴에 서대문구 아파트를 샀다면서 “2022년 ‘둔촌주공 미분양’ 때도 낄낄거리던 사람이, 이번엔 가보지도 않고 계약서부터 쓰더라”고 했다. C는 맞선 본 얘기를 했다. “못생기고 매력 없던 상대방이 ‘나는 왕십리에 아파트가 있다’고 위세를 떨길래 꼴사나웠거든. 그런데 서울을 평양처럼 묶어버린 10·15 규제 이후엔 그 사람이 특별하게 보이는 거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이끄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은 이미 수도권 노른자 땅에 집을 (더러는 여러 채) 가진 관료와 정치인이다. 이들의 행태를 ‘내로남불’로 꼬집는 것은 지겹고도 불충분한 비판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상 로맨스든 불륜이든 타인의 사생활은 알 바 아니나, 정부가 주택 거래에 장벽을 쌓고 세금을 멋대로 부과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옥죄는 치명적인 간섭인 까닭이다.

 

200년 전 다산 정약용조차 “사대문 밖으로 절대 이사 가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신신당부할 만큼 수도권 부동산은 유구한 수요를 자랑한다. 마땅한 공급책도 없이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올해 코스피가 연초 대비 약 70% 올랐지만 주식 ‘포모(FOMO·나만 돈 못 번다는 불안함)’를 호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아파트 포모는 도처에 널렸다.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이들도 최종 목적지는 부동산이다.

 

현 여권 세력을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정치 귀족으로서 존중한다. 이들은 운동권 화염병처럼 무장 투쟁까지 불사하는 권력 의지를 드러낸 끝에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을 거쳐 국회를 압도하는 입법 귀족이 됐다. 귀족이란 본디 법을 입맛대로 만들고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누리기 마련. 특정인을 위해 대법관을 늘리거나 재판을 없애려 들고, 검찰청을 해체하고, 가짜 뉴스를 살포하면서 축의금과 출판 기념회로 재산을 불려도 귀족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서민 아파트 15억원’ 운운하며 국민의 둥지까지 어설픈 배아파리즘 갈라치기로 파괴하려 든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현미를 오도독 씹으며 벼르는 사람들이 있다.

 

-양지혜 기자, 조선일보(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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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

 

[백영옥의 말과 글] 

 

2019년 ‘밀레니얼은 어쩌다 번아웃이 되었는가!’ 라는 제목의 ‘버즈피드’(미국 온라인 매체)의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얼마 전, 후배에게서 그들의 번아웃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 친구를 찾는 일도 이직하는 일도 지쳤다고 했다. 심지어 나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포모 증후군’ (FOMO·FEAR OF MISSING OUT)에 떠밀려 산 주식 가격이 떨어져 멘붕이라고 했다. 오징어게임, 삼성전자, 갭 투자, 노마드적인 삶 같은 소위 ‘대세 열광’은 ‘포모 증후군’의 연료다. 나는 그녀에게 ‘조모’(JOMO·JOY OF MISSING OUT)가 있는 걸 아냐고 물었다.

 

‘조모’는 ‘포모’의 반대 개념이다. 선택하지 않아서 놓칠까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서 생기는 즐거움을 뜻한다. 가령 결혼하면 잠재적 연인을 찾을 기회는 사라진다. 하지만 기회를 포기한 대가로 안정감이 찾아온다.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포모’ 증후군이 미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해독제는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삶이 ‘유한하다’는 명확한 인식이다.

 

정리 컨설턴트가 말하는 정리의 1원칙은 하나를 사면 하나는 버리라는 것이다. 책 읽기에 대한 내 원칙도 있다. 1년에 300권 읽는 독서법은 허상이라는 것. 오히려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을 수 있을 때 더 많은 걸 얻는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안나 카레니나’를 10년 주기로 읽고 달라진 밑줄과 내 생각에 매번 놀란다.

 

어쩌면 ‘번아웃 키즈’에게 필요한 건 ‘탐색’이 아닌 ‘정착’일지 모른다. 막상 우리가 열광하고 사랑하는 건 선택 가능성이 무한정 열려 있는 세상이 아니다. 매번 바뀌는 가게가 아니라, 60년째 영업 중인 노포들이며, 잠재적 연인이 가득한 데이트 앱이 아니라 50년 헌신한 노부부 이야기인 것이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 기쁨을 극대화하는 건 역설적으로 절제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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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삶의 결정권 없이 질주만 하니 UN 행복지수에서 55위 불과
'한 번 성공이 평생 좌우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행복도 가능

 

우리나라 대학생 중 81%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戰場)'이라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보도됐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의 보고서 내용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미국(40.4%), 중국(41.8%), 일본(13.8%) 학생들보다 한국이 월등히 많다. 설문은 '사활을 건 전장'을 '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설명했다. 반면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답한 한국 대학생은 12.8%였다. 일본은 이 수치가 75.7%나 됐다.

이 논문의 제목은 '저신뢰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의 치유를 위한 교육 방향'이다. 우리 아이들이 고교 때 이미 사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각자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환경단체가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정부는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한국 대학생 9.7%만이 "정부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90%는 "생수를 사 먹거나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고 했다. "명문대 입학시험에서 공정하게 신입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나라 역시 한국(59.1%)이 가장 높았다.


고등학교는 전쟁터인데 정부나 대학은 믿을 수 없으니 1년간 20억원을 들여 대학입시 제도를 공론에 부쳐봐야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대입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것에 대한 지지가 가장 낮은 것도 그런 이유로 볼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냥 똑같은 시험 쳐서 성적 순으로 뽑는 게 그나마 공정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논문에 따르면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55개국 중 55위(2017년)였다. 2015년 47위에서 더 떨어졌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린 요인 중 삶의 자기 결정권을 뜻하는 '생애 선택 자유'가 127위로 매우 낮은 것이 눈에 띄었다.

왜 한국 학생들은 10대를 전쟁터에서 보내는가. 왜 4년제는 인서울에 지는 것이며 인서울은 SKY에 패한 것인가. '좋은 대학에 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미신(迷信) 때문이다. 더 좋은 대학, 즉 강도 높은 행복에 대한 집착 때문에 대학을 가지 않거나 전문대를 갈 수도 있다는 '생애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라는 미국 에드 디너 교수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쓸데없는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정의를 소개한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becoming)과 그 집안 며느리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being)은 아주 다른 얘기다. 고교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있는 곳은 being이다."

설령 고등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한다 해도, 한 번의 강도 높은 행복을 느낄 뿐이다. 그것이 평생의 행복을 좌우할 것처럼 부추기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의 사고방식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의 고등학교도 전쟁터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한현우 문화2부장, 조선일보(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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