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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 [마르코스 가문의 부활]

뚝섬 2022. 5. 10. 06:50

시인 김지하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김지하가 옥중에서 시 타는 목마름으로(1975)를 발표했다. 7년 뒤 창비에서 동명의 시집을 내자 당국은 다음 날 금서(禁書) 조치를 내렸다. 서점들은 리어카에 시집을 싣고 대학에 들어가 파는 것으로 맞섰다. 그 시절 시인 김지하는 민주화 장정의 선봉에 선 투사였다. 청년들은 김지하의 ‘오적(五賊)’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기도문처럼 외웠다.

 

▶그랬던 김지하가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의 사망과 이어진 분신 사태를 계기로 동지들과 갈라섰다. 진보 진영은 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 기고한 그를 변절자로 몰았다. 당시 대학 도서관 벽에 연일 나붙었던 대자보는 화법이 묘했다. 앞쪽엔 더는 죽지 말라 썼지만, 뒤에선 분신한 이들을 열사라 칭송했다. 어느 쪽이 진심인지 묻고 싶었다.

 

▶김지하는 훗날 “사형수로 6년 가까이 복역했지만 민주 투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술회했다. 감옥 안에서 그는 생명 사상을 잉태하고 숙성시켰다. 유신에 대한 저항도, 죽음의 굿판을 향한 분노도 뿌리는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비원이었다. 세상을 갈라 보는 이들 눈에 그런 김지하는 이해 사람이었다. 옥중에서 박정희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잘 가시오”라 한 것도, 2012년 대선 때 독재자의 딸을 지지한 것도 배신으로 비쳤을 뿐이다.

 

▶김지하는 평생 시의 힘을 빌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속3′ 일부)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었다가 깊은 내상을 입어 쓰러지고 힘겹게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동지라 믿었던 이들의 비난에 충격받아 정신병원에 12번 입원했고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김지하가 미국을 둘러보고 돌아와 2007년 여행기를 냈을 때 그와 따로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엔 “탁 트인 애리조나 사막을 달렸더니 끔찍했던 두통이 사라졌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잠시 후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공항에 몰려와 왜 미국 갔느냐고 비난하면 어쩌나 걱정돼 귀국 비행기 안에서 두통이 도졌어. 그런데 입국장에 아무도 없더라고. 마음이 얼마나 놓이던지, 아픈 게 싹 가셨지.” 김지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저항시 쓰고 사형수 되고 한때 동지였던 이들에게 변절자 소리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었다. 시인 김지하가 그제 영면에 들었다. 편 가르기도, 다툼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 이제 편안하기를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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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가문의 부활

 

아버지는 고문과 숙청, 살인을 일삼던 독재자. 어머니는 부패한 ‘사치의 여왕’.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의 집안 내력은 그의 정치 인생을 가로막을 거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잘 몰라도 부인 이멜다의 방에서 발견됐다는 3000켤레의 구두 이야기는 안 들어본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가 9일 필리핀 대선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봉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르코스 주니어는 대선 캠페인에서 줄곧 선두를 달려왔다. 60% 가까운 지지율을 확보하며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과의 격차를 두 배 이상 벌렸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인 사라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삼아 ‘현재와 미래 권력의 결합’을 과시했다. 당선이 공식 확정되면 인권탄압과 독재로 쫓겨났던 마르코스 일가가 36년 만에 다시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이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하와이 망명 중 사망했지만, 올해 93세 이멜다는 아들과 함께 대통령궁에 복귀하게 된다.

▷혜성처럼 갑작스러운 등장도 아니었다. 1986년 부모와 함께 망명길에 올랐던 봉봉 마르코스는 5년 만에 필리핀으로 돌아온 뒤 곧바로 35세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주지사, 상원의원을 거치며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는 부모의 죄에 대해 “당시 너무 어렸고 상황을 몰랐다”며 책임을 부인해왔다.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마르코스 일가의 범죄가 정적에 의해 부풀려진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과거 흑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층 표심을 겨냥한 것들이다.

 

명망가 집안을 유독 선호하는 필리핀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도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7600개 섬으로 이뤄진, 8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는 나라에서 정치는 늘 소수 족벌 엘리트 정치가문들의 전유물이었다. 스페인 식민통치 시절 땅을 얻어 부를 축적한 400여 개의 크고 작은 가문이 그들이다. 정치적 결속력을 갖기 어려운 필리핀인들을 향해 선거 때면 이른바 ‘3G(Guns, Goons, Gold)’가 동원된 적도 많았다. 총, 깡패, 황금의 세 가지로 표심을 위협하거나 매수한다는 의미다.

▷36년 전 마르코스 일가를 몰아냈던 필리핀의 ‘피플 파워’ 혁명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반(反)독재 시위 도미노에도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오랜 경기침체와 빈곤, 정치 혼란에 필리핀인들도 지쳐가는 걸까. ‘스트롱맨’으로 포장된 권위주의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정치판에 스며들고, 민주화의 성과는 그에 밀려 빛이 바래간다.

-이정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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