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가장 잘한 일, 5·18 갈등 종식]
[80평짜리 청와대 침실]
[법무부 ‘차이니스 월’]
새 정부 가장 잘한 일, 5·18 갈등 종식
[양상훈 칼럼]
정부 전원 참석 5·18 행사 벽을 뚫고 나가는 기분.. 지역갈등 완화 출발점 되길
새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거의 매일 기자들 만나는 尹.. 한국 대통령제 바뀌는 느낌
대선이 끝난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정권이 교체된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많은 일들 중에서 윤석열 정부가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과감하게 청와대에서 나온 결단이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냉랭한 민심과 마주해야 했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긴 했지만 일반 대중들이 이를 잘 알 수는 없었다. 광화문 정부청사가 아니라 갑자기 용산 국방부 청사로 결정되며 한때는 거의 ‘악재’가 됐다. 당시 새 대통령이 전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낮은 기현상도 잠시 벌어졌는데 이 영향이 컸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청와대’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익숙한 곳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제왕으로 변질시키는 곳이기도 했다. 일이 중요하지 장소가 중요하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청와대에 가보면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참모들과 500m나 떨어져서 그 넓은 본관에 대통령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기괴하다. 80평 침실이 뭔가. 보통 사람도 이 호화롭고 외딴 곳에 살면서 자기 하는 말을 남들이 어명처럼 받들면 저절로 제왕이 된다.
그래서 여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겠다고 했지만 당선되고 나선 약속을 번복했다. 번복해도 큰 비난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번복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인의 본분이고 존재 이유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는 정치인이 너무나 많은 요즘,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 이전 실천은 ‘결단’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청와대가 개방돼 국민 누구나 갈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윤 대통령이 출근하면서 거의 매일 기자들과 문답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대통령제가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도 대중과 호흡하는데 한국 대통령이 구름 위에서 군림한다는 것은 한심한 구태였다. 이제는 청와대 이전에 대한 국민 여론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만이 할 수 있었던 이 일은 어쩌면 5년 임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잘한 일로 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하나 새 정부가 잘한 일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대통령실, 내각, 여당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사건’을 꼽고 싶다.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통령실과 장관 전원, 거기에다 여당 국회의원까지 전부 단체로 참석할 줄은 몰랐다. 그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한국의 고질인 지역 갈등도 한 페이지를 넘어가느냐는 희망까지 가져 보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오랫동안 민감한 문제였다.
새 정부와 여당 전체가 참석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한 분은 “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했다. 그런데 18일 저녁 뉴스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까지 본 그 분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윤 대통령 말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새 정부가 뭔가 답답한 벽을 뚫고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느낌을 받은 국민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도 그중의 한 명이다.
지역 갈등의 폐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정치와 사회, 경제를 왜곡시키고 퇴행시키는 주범이 바로 지역 갈등이다. 비합리가 합리를 이기고, 틀린 것이 옳은 것을 이기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을 이기고, 더 못한 것이 더 나은 것을 이기고, 과거가 미래를 이기게 만든 마법이 바로 지역 갈등이었다. 무엇이든 지역 갈등 구조 속으로 들어가면 왜곡됐다. 여야 모두 여기에 기생해 쉽게 국회의원이 된 뒤 이 지역 갈등을 이용했다.
필자가 아는 호남 출신 기업인 한 분은 상당히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분은 “나는 문재인 정권이 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는 것이 많다. 어떤 경우는 분노가 치민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같은 보수층이 5·18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것만은 안 된다”고 했다. 5·18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동력이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많다. 이제 더 이상 이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종지부를 찍는 일을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호남 출신인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5·18 진상은 나올 건 다 나왔다”고 했다. 지역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은 산사태처럼 올 수 있다.
‘청와대 이전’과 ‘5·18 갈등 종식’ 중에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후자를 꼽겠다. 청와대 이전은 정부 운영의 문제이지만 5·18 갈등 종식은 국민 통합의 차원이다. 윤 대통령이 이 난제를 풀어 지역 갈등을 완화시켜 나간다면 최대 업적이 될 것으로 믿는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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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평짜리 청와대 침실
1998년부터 20년간 청와대에서 요리사로 근무한 천상현씨가 최근 개방된 청와대를 방문해 관저를 보면서 “대통령님 침실이 한 80평 되는데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 엄청 무섭다”고 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총 다섯 대통령 내외의 식사를 담당했다. 관저에는 청와대 직원 중에서도 정해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요리사들도 관저에 오기까지 네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고 했다.

▶80평이면 ‘국민평형’이라 불리는 32평 아파트 3개를 합친 것에 가까운 면적이다. 10인 이상의 가족이 여유롭게 거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내외는 이런 방에 침대 하나 달랑 놓고 지냈다고 한다. 과연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부간 대화도 소리가 울려서 침실에선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변에서 지켜보기에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한 장소다.
▶청와대 관저는 1991년 건립됐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규모는 약 1800평(6093㎡)이다. 대통령과 가족이 쓰는 사적 공간인 내실은 200평 정도 된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에는 내실에 참모들도 꽤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김 전 대통령은 매일 아침 침실에서 의무실장과 간호부장의 건강 체크를 거친 뒤에 8시쯤 거실로 나왔다. 그러면 공보수석 등이 대기하고 있다가 조간신문 내용을 중심으로 당일 여론과 이슈를 정리해 보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집무실 규모도 엄청났다. 51평(168㎡)으로 백악관 오벌 오피스(23평)의 2배가 넘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처음 집무실에 들어서면서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고 농담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적막강산에 홀로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간이 너무 넓어 한기를 느꼈다고 한다. 집무실 출입문부터 대통령 책상까지 약 15m로 상당한 거리였다. 보고를 마치고 뒷걸음으로 나오다 넘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어떤 장관들은 대통령에게 인사한 뒤 등을 돌리고 퇴장하다 중간쯤 다시 돌아서 인사하고 출입문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또 고개를 숙이는 ‘3중 인사’를 할 정도였다.
▶청와대는 건국 이후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공간적 상징이다. 마지막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관저도 26일부터 시민들이 관람하게 됐다.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들고 그 사생활은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럽게 여기던 기이한 한국식 정치 관행도 이 기회에 바뀌었으면 한다.
-최승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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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차이니스 월’

“법무부 내에 분명한 ‘차이니스 월(Chinese Wall)’을 쳐서 인사검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법무부는 25일 공직자 검증 업무를 담당할 인사정보관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장관은 결과만 보고받고, 장관을 포함한 법무부의 누구도 검증 과정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검증 정보를 수사 첩보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차이니스 월은 원래 금융권 용어다. 중국 만리장성이 유목 지역과 농경 지역을 갈라놓듯 금융회사의 부서 간 또는 계열사 간 미공개 정보의 교류를 차단하는 것을 뜻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메릴린치에서 처음 도입했고, 1980년대에 내부자 거래를 통한 금융스캔들을 막기 위한 법률로 격상됐다. 미국 금융 기법에 대한 수사 경험이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금융권 용어로 비판 여론에 ‘방어 장벽’을 친 셈이다.
▷법률상 모든 공직 후보자의 정보 관리는 인사혁신처장의 권한이다. 대통령 임명직에 한해 인사혁신처장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검증 업무를 위탁한다. 옛 민정수석실이 검증을 했던 근거다. 법무부 장관도 검증 업무를 위탁받게 대통령령을 고치면 된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비서실장과 달리 법무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검증 권한이 없다. 민정수석실 검증을 국정 협조 차원에서 법무부, 경찰이 도왔던 것도 위법 시비가 있었다. 법무부 지침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는 1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검증 대상은 주로 공무원이지만 민간인도 포함된다. 통상 3∼5배수 검증을 하면 최대 5만 명의 개인정보가 수집된다. 부동산과 납세, 금융, 수사 자료에 국가정보원의 존안(存案), 경찰의 세평(世評) 파일까지 추가된다. 법무부 검증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어서 음지의 업무를 양지로 끌어낸 것이라고 법무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민간인 사찰 논란과 같은 불행한 일이 재발할 위험이 있다.
▷법무부가 행정부 내 검증의 유일한 축이 되면 교차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국회에서 ‘인사검증법’ 제정 논의가 있었을 때도 정부 부처 한 곳이 일괄적으로 검증 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여러 부처의 공무원을 파견 받는 종합 업무의 성격이 강하고, 기밀 유지를 위해 사무실도 제3의 장소에 둔다는데 굳이 국무총리가 아닌 법무부 장관 직속이어야 하나. 검찰 출신인 ‘인사비서관→법무부 장관→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이어지는 검증을 위한 제도 개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원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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