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 도발, 방공식별구역 침범, 더 거세질 北·中·러 동시 위협]
[尹 ‘북한 비핵화’와 바이든 ‘한반도 비핵화’]
[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의 죽음]
ICBM 도발, 방공식별구역 침범, 더 거세질 北·中·러 동시 위협

북한이 25일 화성 17형으로 추정되는 ICBM을 포함한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사진은 화성 17형. /조선중앙통신 뉴스1
북한이 25일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3발을 쐈다. 24일엔 중국과 러시아의 전폭기·전투기 6대가 동해상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했다. 중국 함정들도 동해로 들어왔다. 북·중·러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한국과 동북아 안보를 위협했다. 북한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있을 때 ICBM을 발사했다. ICBM은 미국, 신형 단거리는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전부 핵 탑재가 가능하다. 한·미 동시 타격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중·러 군용기의 KADIZ 진입에 우리 공군은 F-15K 전투기 등을 긴급 발진시켰다. 일본도 F-15J 전투기 등을 출격시켰다. 독도 주변 상공에선 한·중·일·러 군용기들이 몇 시간 동안 뒤얽히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 순방과 쿼드 정상회의 등에서 중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에 관한 ‘군사 개입’을 밝혔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에서도 중·러를 견제했다. 전체주의 국가들을 빼고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공급망을 구축하려 한다. 이에 중·러가 힘으로 맞대응할 것은 예견된 일이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는 시계 제로 상태다. 김정은은 한국을 향해 ‘핵 선제 공격’을 협박했다. 곧 7차 핵실험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대북 제재를 풀기 위해 무슨 도발이라도 할 태세다. 미국과 패권 쟁탈전을 벌이는 중국은 러시아가 ‘전범’ 비난을 받는데도 손을 잡았다. 북·중·러 모두 무력으로 이웃을 협박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나라들이다.
세계가 신냉전 상태로 들어가면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북·중·러는 더 밀착할 것이다. 이는 그대로 우리의 안보 부담이 된다. 북은 핵 미사일, 중국은 무역을 압박 카드로 휘두를 것이다. 북·중·러가 일으키는 안보 풍랑은 갈수록 거세질 수 있다. 동맹과 우방의 손을 잡고 면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조선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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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북한 비핵화’와 바이든 ‘한반도 비핵화’
신냉전 속 중-러 등 뒤에 올라탄 北의 폭주
강력 대응과 함께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
더할 나위 없이 죽이 잘 맞았다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선 묘한 불일치가 눈에 띄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간 ‘북한 비핵화’냐 ‘한반도 비핵화’냐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을 다시 소환하는 대목이다.
한미 정부가 초안과 수정안을 몇 차례 주고받은 끝에 나온 공동성명의 문구는 그동안 남북, 북-미, 한미 간 합의된 용어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하지만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와 다름없다며 비난했던 게 ‘한반도 비핵화’다. 정부 여당이 야당 시절 견지해오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비핵화(CVID)’도, 인수위원회에서 다소 완화했다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D)’도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 대북자세’를 비판하며 출범한 윤 대통령이 바이든과 달리 굳이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전임 정부의 정책적 흔적을 지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도 한미 간 조율 과정의 견해차를 부인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워낙 준비시간이 촉박해 일단 기존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미국도 우리 입장에 공감하는 만큼 앞으로 나올 문서에는 ‘북한 비핵화’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새 정부의 달라진 대북전략 기조를 반영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1년 전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 담겼던 한반도 비핵화의 다른 한 축, 즉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내용도 모두 사라졌다.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성명’ 언급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웠던 ‘외교적 모색을 위한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도 빠졌다. 오히려 이틀 뒤 일본에서 나온 미일 공동성명에 “두 정상은 ‘정교한 외교적 대북 접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표현으로 반영돼 있는 것과 대비된다.
사실 이번 바이든의 첫 아시아 순방은 온통 중국 견제에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북핵 이슈는 묻혀버린 모양새였다. 오직 관심은 북한이 바이든 순방이란 도발의 최대 찬스를 어떻게 노릴지에 쏠려 있었다. CNN은 바이든 출발 이틀 전에 향후 48∼96시간, 즉 방한 기간에 맞춰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도발이 일어날 진짜 가능성, 실제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한국 일본에 머물던 5일 동안 잠잠하면서 그저 호들갑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북한은 귀국길에 오른 바이든의 뒤통수를 향해 미사일 3발을 쏘아 올렸다. 이제 북한이 언제 뭘 쏴도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 됐지만,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7차 핵실험이나 일본열도를 넘어 태평양을 향하는 미사일 도발은 북한이란 ‘시한폭탄’을 다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북한은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시절보다 더욱 대담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적인 신냉전 대결 기류를 틈타 중국 러시아의 등 뒤에 재빨리 올라탄 북한이다. 이런 북한의 폭주를 막을 수단은 많지 않다. 유엔의 대북제재 기능마저 마비된 터에 강력한 경고와 응징 능력 과시가 북한에 얼마나 먹힐까. 도발을 관리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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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의 죽음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평양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내걸린 김씨 3부자의 초상화. 김씨 왕조의 3대 세습에 위협이 되는 ‘곁가지’ 핏줄은 단호하게 제거돼 왔다. 동아일보DB
1997년 남파 간첩에게 피살된 이한영은 생전 ‘김정일 로열패밀리’라는 수기를 남겼다. 수기는 김일성의 사생아 김현의 존재를 처음 밝혔다. 이에 따르면 김현은 1971년에 김일성과 제갈 성씨의 전담 안마사 사이에 태어났다. 같은 해 5월 10일 성혜림도 김정남을 출산했으니 환갑인 김일성과 갓 서른에 접어든 아들 김정일이 거의 동시에 아들을 얻은 것이다.
김현은 이후 ‘장현’이라는 이름으로 장성택의 호적에 올랐다. 1979년 김현은 생모와 함께 모스크바로 가 동갑내기이자 조카인 김정남과 함께 살았다. 김현은 생모를 이모라고 불렀다.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은 김정일의 저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상당히 신뢰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의 증언에서 거짓은 없다. 이한영이 1982년 한국에 망명했기 때문에 김현에 대한 증언은 모스크바 생활에서 끝난다.
지난해 5월 기자는 미출간된 김정일 회고록을 입수했다. 김일성 90주년 생일을 맞아 김정일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내용이 위주였는데, 여기에 김일성이 아주 허물없이 대했다는 마사지 담당 간호사가 두 차례나 상당한 분량으로 언급돼 있다. 일개 간호사를 김정일이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회고록에 나오는 김일성 담당 간호사의 이름은 순복이였고, 1962년부터 등장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으레 담당 간호원을 친딸처럼 정답게 찾으며 다리를 주무르게 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수령님의 건강은 동무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무하자 간호사가 열심히 손을 단련해 남자 이상으로 손아귀 힘을 키웠다고 한다. 김일성은 늘 “네가 제일이다. 네 덕에 잠을 잘 잔다. 네가 나라의 복을 만든다”고 치하하곤 했다는데, 이 간호사가 김현의 생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신뢰할 수 있는 한 소식통으로부터 김현의 이후 운명에 대해 들었다. 김현은 북한에 돌아와 평양 중심부 서재동초대소에서 살았다. 보통강 인근의 초대소는 1988년 9월 건설됐는데 경치가 매우 좋다. 2000년경 방북했던 한국의 일부 인사들과 기자들도 이 초대소에 머물렀다. 서재동초대소는 150∼170평 규모의 독립식 빌라 21채로 구성됐고, 각 빌라엔 침실이 3개 있다.
김현은 초대소 구내의 한 빌라가 아니라 입구에서 갈라져 들어간 단독 빌라에서 살았다. 2014년 북한은 서재동초대소 옆에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지었는데, 소식통은 그 자리가 김현이 살던 빌라 자리였을 것이라고 했다. 지휘소 옆은 김정일의 본처 김영숙이 살던 서장동초대소다.
김현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김정일의 지시였을 것이다. 김일성의 서자인 것이 드러날까 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배다른 동생이니 위협 인물이라 생각해서 무식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컸을 것 같다. 심지어 결혼도 못 하게 했다. 씨를 더 잇지 못하게 한 것이다. 김현은 키가 175cm 정도로 북한에선 큰 키였고, 김일성의 젊은 모습을 빼닮았다고 한다.
김현은 대신 왕족의 대우는 받았다. 최고급 초대소에서 풍족하게 살았고, 차량 번호가 216으로 시작되는 벤츠도 갖고 있었다. 216 번호판은 북한 최고위 간부만 받는 특혜다. 운전수도 있었고, 요리사도 있었다. 물론 감시원들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김현을 한두 번쯤 현지시찰에도 데리고 다녔다. 위협이 될 존재인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다.
백수 신세가 된 김현은 난봉꾼으로 변해 벤츠를 끌고 나가 여성 교통안전원들을 유혹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김일성을 닮은 젊은 남자가 216 벤츠를 타고 다니는 데다 경비가 삼엄한 최고급 저택에서 사니 여성들도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은 뒤 김현은 김정일에겐 짐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쿠데타라도 일어나 김일성의 핏줄이라며 김현을 옹위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로 한 김정일은 결국 2007년 김현을 조용히 죽였다고 한다. 김현은 김일성의 사생아로 태어나 36년을 잘 살고 죽은 것이다.
이렇게 핏줄 정리, 북한말로 ‘곁가지 정리’에 들어가니 김현과 모스크바에서 함께 큰 김정남이 가장 공포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남 역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됐다. 외국을 전전하며 동생의 마수를 피하려 했지만, 김씨 왕조에는 자비가 없었다.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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