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참회록’ 쓰지 않는 사회] ....

뚝섬 2023. 1. 27. 12:00

[‘참회록’ 쓰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 파괴 앞장선 이들이 “민주 후퇴 막겠다”니] 

[한국판 민주주의재단 설립은 어떤가]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法 만드는 민주당, 대체 누구를 구하려는 것일까]

[계몽군주? 농담이라면 재미있었다]

 

 

 

참회록’ 쓰지 않는 사회

 

24 윤동주나의 거울을 닦아보자참회록
지금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잘못했다는 반성 없어
고은 시인이 참회록 쓴다면 노벨상 탄생할 수도
지난 정부는 잘못 비춰볼 거울 가지고 있긴 하나
국민을 화나게 하는 반성 없는 내로남불 태도

 

‘참회록’은 윤동주 시인이 1942년 조국에서 쓴 마지막 시의 제목이다. 반성과 성찰의 상징인 ‘거울’을 통해 부끄러움의 미학을 전하는 이 시는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로 시작하여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로 맺는다. 만 24세를 갓 넘긴 젊은이가 무어 그리 참회할 일이 있었을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란 이 고운 청년은 이듬해 독립운동을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숨을 거둔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고해성사를 요청했으나 교구장에게 거절당한다. 그러나 니콜라 빌렘 신부가 그에게 고해성사를 해주었고, 2011년 천주교회는 비록 살인을 했지만 그를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 반듯한 31세 청년은 15가지에 이르는 이토의 죄목을 나열하면서도 이토를 살해한 것에 대해 사죄했다. 그의 정결한 인품이 일본인도 감동시켰고, 이문열 소설의 제목처럼 죽어서도 천년을 살고 있다.

 

나라를 잃었거나, 나라를 빼앗길 경각의 시기에 이 땅에서 살다 간 인물 중엔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게 맑은 인물들이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겪었을 고초와 번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역사의 아픔조차 자신의 부끄러움과 잘못으로 성찰하는 이들에게는 내면에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내면의 거울은 중요한 성찰 도구다. 인간이라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다섯 자식을 유기한 일을 포함한 과거 허물을 모두 고백록에 담아냈고,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느낀 순간 위선과 교만에 찬 과거를 돌아보는 참회록을 썼다. 초대 그리스도교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13권에 걸쳐 자신의 모든 죄악을 고백하고 생활을 반성한 참회록을 펴냈는데, 이 책은 기독교 3대 고전 중 하나로 1600년 넘게 읽히고 있다.

 

그토록 원했던 나라를 되찾고, 전쟁과 분단을 넘어 눈부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참회록 따위는 개나 줘버릴 이름이 되어버렸다. 톨스토이의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윤동주 이후 참회록을 접한 기억이 없다. 그동안 개인이나 집단이 여러 역사적 고비에서 시행착오를 했을 텐데, 도무지 잘못했다는 사람이 없다. 반성하는 집단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스스로 비춰볼 거울이 없거나, 비췄더라도 보이는 모습을 외면했거나, 아니면 다일 것이다.

 

얼마 전 상습 성추행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고은 시인이 신작으로 복귀하려 하자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출판사가 사과하고 물러선 해프닝이 있었다. 출판사는 사과했는데, 정작 고은 시인은 “가족과 아내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한 최영미 시인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는 지켜볼 ”이라고 맞받았다. 만약 고은 시인이 그 유려한 문장으로 참회록을 집필했다면, 혹시 아는가, 노벨 문학상감이 탄생했을지. 여하튼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투영된 한 시인의 추한 모습에 기운이 빠진다.

 

최영미 시인의 일갈대로 “권력은 반성하지 않는다”지만, 집단적 반성 결핍증을 앓는 집단으로 지난 정부 사람들이 으뜸 같다. 사실 정권이 교체된 것만으로도 그들은 반성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지지해준 사람들에게는 실패한 데에 사죄해야 하고, 그동안 나라를 맡겨준 일반 국민에게는 실패한 정책들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미흡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인정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방과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단체를 만들고 모이며 분주하다. 얼마 전 출범한 정책 포럼 ‘사의재’는 ‘성찰과 계승’을 강조하고 있으나, 성찰보다는 대응과 계승 쪽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문재인 정권이 모든 정책적 허물, 예컨대 5년 만에 국가 채무를 거의 두 배로 늘린 것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경제를 교란하고 북한에 대한 일방적 저자세로 나라의 정체를 위태롭게 한, 그런 잘못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는 자세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정권을 연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화나게 무능보다 우격다짐과 내로남불 태도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아집에 가깝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새해 첫날 양산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게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선 된다 마치 민주주의가 자신들의 전유물인 말했다. 그들에게 거울이 있다면 스스로 비춰보라고 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법치가 크게 후퇴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의 실망과 진단에 대해 어떤 성찰을 하고 있는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흔들리는 경제와 국민의 삶, 멍드는 안보와 외교,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자신들이 집권한 시절 흔들린 경제와 국민의 , 멍든 안보와 외교, 무너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그들에게 자신을 비춰볼 거울은 있는지 묻고 싶다.

 

거울이 없다는 건 내면의 양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재인 시즌2 아마 오지 않을 같다. 실패에서 배워야 성공도 도모할 수 있을 텐데, 적어도 지금까지 언행으로 미루어 그럴만한 반성과 성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조선일보(23-01-27)-

_______________

 

 

민주주의 파괴 앞장선 이들이 “민주 후퇴 막겠다”니 

 

문 前대통령과 대화 나누는 이재명-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일 만나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정권 5년간 민주주의 파괴 행태는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선거와 언론은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문 정권은 출발부터 드루킹을 동원한 대규모 여론 조작으로 시작됐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야당의 반대에도 자기들 마음대로 선거법을 뜯어고쳤다. 독재 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회기 쪼개기 등 온갖 꼼수를 동원했다. 문 전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 비서실 8개 조직이 나서서 야당 후보를 억지 수사하고 다른 후보를 매수하는 한편 선거 공약을 만들어 주며 군사작전 하듯 선거 공작을 벌였다.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였다. 세계 언론 단체들이 모두 반대했고 민주 국가에선 처음 있는 이란 비판을 받았다. 북한 김여정이 하명하자 국제 사회가 인권침해라고 반대한 대북전단금지법을 강행했다. 5·18에 대해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을 하면 감옥 보내는 법도 시행했다.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였다고 청년들을 압수수색하고 주거침입으로 재판에 넘겼다.

 

대통령과 정권의 불법 혐의를 수사한다고 검찰 수사팀을 인사권으로 공중분해시켰다. 대통령과 정권은 치외법권 지대에 있나. 세계 민주 국가 어디에도 없을 폭거다. 정권 내부에서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못하면 청와대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 검찰 수사권 박탈법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도 없이 강행 통과시켰다. 그러고도민주주의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나.

 

문 정권에선 대법원장까지 정권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 문 정권 비리 재판을 정권 코드 판사에게 맡겨 재판을 수년간 질질 끌었다. 그래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사법행정 기틀...” 운운했다. 국민이 잊어버렸을 것으로 생각하고 뻔뻔하게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조선일보(23-01-04)-

 _______________

 

 

한국판 민주주의재단 설립은 어떤가

 

[朝鮮칼럼]

세계 민주주의 강화 돕는 美 민주주의재단(NED) 같은
독립적 비영리 단체 설립해 북한 인권 문제 다루고
러·중의 민주주의 압박에 강력한 목소리 내야

 

워싱턴 사람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인상을 물어봤더니 주로 세 가지 답변이 나왔다. 첫째, 미국과의 동맹 결속을 강력히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전 정부가 김정은과의 돈독한 관계에만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북한에 대해 강경해 보인다. 셋째,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런 답변은 실제 모습과 동떨어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연두 업무보고(국토교통부, 환경부)를 주재하며 손뼉을 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의 동맹 강화 방침은 취임 직후 바이든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 때 충분히 드러났다. 작년 12월 초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3자 관계뿐 아니라 한미 양자 관계를 강화하려는 열망은 명확했다. 대북 강경주의자란 측면에서 취한 대북 특별 제재도 주목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소위 담대한 제안이라고 불리는, 대북 경제 인도적 관여 계획을 제안하면서도 비핵화를 강조했다. 지난 정부와는 다르게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추구하는 것은 바이든의 관점과 일치한다. 게다가 김정은에게 아부하려 들지 않는 태도, 문재인·트럼프 재임때 심각하게 쇠퇴했던 한미 군사연습을 재개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해 강경주의자라는 인상은 더 강해지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약속은 잇따라 서방의 주목을 받았다. 외신은 윤 대통령이 5월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서른다섯 번 사용한 것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는 자유”라고 말했다. 광복절 기념축사에서도 다시 자유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이야기했다. 9월 유엔 총회에서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 나가야 한다”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질병과 기아로부터의 자유, 문맹으로부터의 자유, 에너지와 문화의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지난 대선 운동 기간 중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처음 지켜봤다. 주제는 외교 정책이었는데, 상대편 이재명 후보는 한미동맹부터 기후변화에 이르는 정책 리스트를 언급하며 자신의 외교정책 지식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풍성한 목록을 선보였다. 반면 윤 대통령은 정책 이슈를 나열하지 않고, 자신이 대외정책 전문가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가 대외정책에 관여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현안에서든, 대통령으로서의 정책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에 기반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리더십 하에 한국이 가치 기반 외교정책을 추구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윤 정부는 우크라이나 방어를 지지했다. 대만의 민주주의 수호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인권대사를 지명하면서 전향적인 인권 수호 의지를 나타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한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할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윤 정부는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에 비견될 수 있는 한국판 NED 설립을 고려해야 한다(나는 NED 이사를 맡고 있다). 레이건 집권기인 1983년 설립된 NED는 세계의 민주주의 단체를 성장·강화하는 데 이바지해온 독립적 비영리 재단이다. 민주주의와 시민 자유를 돕는 비정부기관 및 개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연간 2000건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NED는 후원 대상이 반드시 미국을 닮아야 한다고 기대하지 않으며, 법치와 인권, 언론 자유를 존중하는 시민사회 건설을 지원한다.

 

윤 대통령이 설립할 수 있는 한국판 NED는 임무나 기금 마련 방식(미국 NED는 의회로부터 지원받는다)에서 미국 NED와 꼭 같은 방식을 모색할 필요는 없다. 개발원조에 주력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다른 임무를 가질 것이다필수 임무로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자유로운 국제질서를 공격할 때, 중국이 홍콩과 대만의 민주주의를 압박할 때, 북한이 자국민의 인권을 짓밟을 때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한국이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빛나는 모범이다. 현 대통령은 국가의 핵심 가치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한국은 미국 및 여러 나라들과 함께 올해 3월 민주주의정상회의를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이 회의는 한국판 NED 설립 의도를 발표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 될 수 있다. 한국판 NED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춘 현 정부의 가장 큰 유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조선일보(23-01-04)-

________________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法 만드는 민주당, 대체 누구를 구하려는 것일까

 

[서민의 문파타파]
언론중재법·시행령통제법 등
과연 국민 위해 만들려는 법인가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준비 중인 법안이 화제를 모았다. 검사 월급을 깎자는 내용으로, 언론은 이를 ‘검사 월급 완전 박탈’이란 의미의 ‘검월완박’이라 불렀다. 최강욱은 “검사의 보수 제도를 다른 행정부 공무원과 일원화해 행정기관 간 형평성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행정부 공무원들이 검사 월급에 대해 직접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혹자는 같은 초선 의원이자 라이벌인 김남국 의원을 의식해서가 아니냐고 의심한다. ‘짤짤이’ 논란으로 우리 전통 놀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청문회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의 딸을 영리법인이라 주장하는 등 이슈 메이커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김남국의 ‘이모 교수’ 한 방을 이기지 못했잖은가? 하지만 김남국이 74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역대급’이란 평가를 받는 기린아라는 점에서, 다른 이유를 찾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그래서 제기되는 게 ‘사적 보복설’이다. 다들 알다시피 최강욱은 2017년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만들어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씨 아들이 그 확인서를 입시에 제출한 바 있으니,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최강욱은 업무방해죄의 공범이 되는 셈이다. 최강욱은 조씨 아들이 실제로 인턴 활동을 했다고 우겼지만, 법원의 판단은 ‘허위가 맞는다’였다. 작년 2월 있었던 1심 선고는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었고, 이는 올해 5월에 열린 2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이렇다면 인턴확인서를 부탁한 조국 일가를 비난하는 게 타당해 보이지만, 최강욱은 희한하게도 자신을 기소한 검찰에만 증오심을 표출하고 있다. ‘정치검찰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를 위해 자신이 가진, 국회의원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건 볼썽사납다.

 

21대 총선에서 그가 내세운, 검찰총장을 ‘검찰청장’으로 부르게 하자는 공약을 보자. 다른 기관은 다 ‘청장’인데, 검찰만 유독 ‘총장’ 명칭을 사용하면서 장관에 맞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들이 속출했다는 게 그 이유란다. 당시 검찰총장으로 추미애 장관과 대립하던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지만, 검찰총장이 검찰청장이 된들 윤 대통령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을 거란 점에서, 이는 윤 총장에 대한 비뚤어진 시기심의 발로에 불과했다. 이 밖에도 최강욱은 ‘검사와 법관은 공직선거에 출마하려면 1년 전에 사직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해서 논란을 빚었다. 이것 역시 타깃이 윤석열 대통령이기에, 세상에선 이를 ‘윤석열 출마 방지법’이라 불렀다. 지난 4월을 뜨겁게 달궜던 ‘검수완박’ 역시 최강욱이 앞장선 바 있으니, 그가 입법권을 앞세워 자신을 기소한 검찰에 사적 보복을 한다는 건 괜한 억측이 아니다.

 

보복을 위한 입법권 남용은 민주당이 낸 법안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조국 사태가 나자 최강욱 등은 언론이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쓰면 중하게 처벌한다는 ‘언론중재법’을 발의해 문체위까지 통과시킨 바 있고,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로 정의기억연대가 할머니를 볼모로 후원금을 갈취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자 그 당사자인 윤미향은 ‘위안부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법안을 만들었다가 ‘윤미향 셀프 보호법이냐’는 비난을 받고 철회한 바 있다. 정청래와 고민정은 양산에 내려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전직 대통령 사저 인근 100m 이내에서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때 박영선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합세한 것을 생각하면, 이런 내로남불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가 하면 조응천 의원은 대통령령 같은 정부 시행령에 대해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든다고 해 논란이 됐다. 국회가 민주당에 장악돼 있다 보니 대통령이 시행령 제정 등을 통해 국정운영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민주당은 그런 사태를 미리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조응천은 이 법안이 시행령으로 인한 입법권 침해를 막기 위함이라지만, 이게 그리도 좋은 취지였다면 문재인 정부 때는 왜 가만있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내에서 드물게 ‘정상’이라 여겨졌던 조응천이지만, 주변 사람들에 의한 흑화를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법은 한번 만들어지면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한번 만들어지면 폐해가 심해도 쉽게 없애기 어렵다. 현 국토부 장관인 원희룡이 대통령 후보 시절 잘못된 법안을 없애는 ‘폐법부’를 만들겠다고 한 것은 그런 취지건만, 민주당 의원들은 자기들에게 조금만 방해가 된다 싶으면 일단 법을 만들고 보니, 작년 12월까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1만4000개에 육박한다. 총선에서 이겼으니 4년간 그 권리를 누리겠다는데 말릴 방법은 없지만, 다음 말은 해야겠다.

 

첫째, 매사를 그렇게 법으로 해결하겠다면, 최소한 이미 만들어진 법은 존중해야 맞는다. 최강욱을 보자.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이와 관련된 공직선거법 재판에서도 유죄를 받았다면, 여기에 승복하고 사과하는 게 맞지 않을까? 둘째, 자기들이 만드는 법안의 취지를 법 통과 전에도 구현해야 한다. 예컨대 가짜뉴스가 문제라서 언론중재법을 만든다면, 날이면 날마다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김어준을 퇴출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정말 가짜뉴스를 혐오하는구나’라며 진정성을 느낄 수 있으련만, 지금 민주당이 그러고 있는가?

 

<삼국지>의 영웅이자 유비의 장수인 조자룡은 주군의 아들 ‘아두’를 구하기 위해 백만대군이 포진한 적진에 필마단기로 들어간다. 그 싸움에서 조자룡은 아두를 가슴에 품은 채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뚫었는데, 자신의 창날이 무디어지면 상대의 검과 창을 빼앗아 사용했다고 한다. 이때 나온 말이 “조자룡 헌칼 쓰듯 한다”란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본다. 조자룡은 헌칼을 마구 휘둘러 결국 유비의 아들을 구했다. 조자룡 못지않게 헌칼을 휘두르는 더불어민주당은 대체 누구를 구하려는 것일까? 다음은 장담한다. 그 ‘누군가’가 최소한 국민은 아니라는 것.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조선일보(22-06-18)-

 _______________

 

 

계몽군주? 농담이라면 재미있었다


“저 분이 황제 폐하시라네요.” 1777년 4월, 프랑스 파리의 드 트레빌 호텔 앞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36세의 남자는 팔켄슈타인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호텔에 묵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모르는 파리 사람은 없었다. 팔켄슈타인 백작’이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요제프 2세(재위 1765~1790)가 가진 여러 작위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

 

구빈원을 방문해 빈민들에게 주는 죽을 시식하고, 학술원 회의와 농인 수용소, 비누 공장을 둘러보는 황제의 행보에, 줄곧 사치스런 임금만 봐 왔던 파리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 비공식 방불(訪佛)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에게 시집간 누이동생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일이었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났는데도 마리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아무래도 프랑스 왕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자 매제를 직접 만나보려 했던 것이다.

 

루이 16세를 만나본 요제프 2세는 “(그가 멍청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이야기를 나눠 보니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대단히 함축적인 얘긴데, 사실 그는 매제를 만나 아이를 가질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루이 16세에게 제대로 성교육을 해 줬다’는 야사 비슷한 얘기도 전한다대인관계 자체를 기피했던 루이 16세는 아내와의 성관계도 꺼렸다고 하는데, 처남을 만난 이후 이 문제는 해결됐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듬해 큰딸을 낳았고 모두 2남 2녀를 두게 된다.

 

다소 외설적인 스토리로 보이기도 하는 이 일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물론 용렬한 임금으로 유명한 루이 16세와 비교돼서기도 하지만 요제프 2세는 파리 사람들의 호감을 얻을 정도로 개명하고 명철한 군주였다는 것이다. 그가 소르본대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종교서적이 보관된 방에서 도서관장이 “너무 어두워 글씨를 읽을 수 없으니 송구하다”고 하자 “괜찮소, 종교라는 게 원래 밝은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라고 응답했다는 에피소드에선,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일찍이 플라톤이 말했던 철인(哲人)군주의 일면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둘째, 유럽의 왕실끼리 통혼한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략결혼이라면, ‘정략’이란 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려는 희구였다. 당시에 오스트리아는 강대국이었지만, 온 유럽을 뒤흔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과 7년 전쟁(1756~1763)으로 큰 피해를 겪은 뒤였다. 오스트리아 공주 출신인 누이동생이 후사를 낳도록 하는 것은 유럽의 평화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이기도 했다. 끝내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생 부부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나폴레옹에 의해 유럽이 또 다시 전화(戰禍)에 휩싸이는 것은 막지 못했지만.


영화 ‘아마데우스’(1984)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탈출’을 관람한 뒤 “편안한 저녁 시간에 보기엔 음표가 너무 많다”며 혹평했던 황제가 바로 요제프 2세다. 모차르트 앞에서 이렇게 음악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는 건 마치 임영웅 앞에서 목청껏 ‘배신자’를 부르는 행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음악의 수도인 비엔나에서 계몽군주(啓蒙君主·enlightened despot)란 말을 들었던 인물임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설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다른 군주들에 비해서)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는데, 이젠 이탈리아어가 아닌 우리말 오페라가 나올 때”라는 신하의 간언을 듣고 모차르트에게 독일어 오페라를 발주하는 영화의 한 장면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의 요제프 2세(가운데, 제프리 존스 분).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계몽주의는 신(神)이 아닌 인간의 이성(理性)에 의해 의식이 형성돼야 한다는 철학 사조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의 인간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줘 편견과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 절대주의 시대 후기 일부 유럽 군주들은 그 ‘빛을 던져주는 역할’을 자신이 맡으려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와 함께 그 대표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사람이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군주제라는 앙시앵 레짐(구제도)을 극복할 수는 없었지만, 이들의 개혁은 상당 부분 근대화를 지향하고 있었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요제프 2세는 농노제 폐지와 독일어 공용어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를 연상시키는 수도원 해산 같은 개혁을 통해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귀족과 종교의 힘을 빼려 했다. 상당수 개혁이 재위 기간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요제프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 정책은 이후 오스트리아 근대화의 근간이 됐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혁명이 발발한 이듬해인 1790년, 그가 죽으며 남긴 유언은 “온 유럽에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이란 말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계몽군주였다.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합리적인 개혁을 추구하며, 전란에 의해 그 개혁이 좌절되지 않도록 평화를 염원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가장 낙후된 폐쇄국가에서 인민의 고혈을 빨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가 하면, 고모부를 대포로 쏴 처형하고 이복형을 중인환시리에 독살했으며 표류자를 바다에서 사살한 자를 ‘계몽군주’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21세기에 누가 누구를 ‘계몽’한다는 것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는 북한 인민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계몽(enlightenment)’이란 것이 어두운 곳에서 불을 켜서 환히 밝힌다는 개념이라면, 애당초 그 불을 켜지 못하도록 스위치를 틀어쥐고 막은 것이 그들 일가(一家) 아니었나?

 

만약 그게 농담이었다면 아주 잠시 약간의 재미는 있었다.

 

-유석재 기자, 조선닷컴(20-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