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머리는 엄마 닮는다?" 그 속설,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팔불출 아빠들의 ‘자랑 인플레이션’]
"아들 머리는 엄마 닮는다?" 그 속설,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검증해보겠습니다
母子 지능 연결론

아들의 공부 머리는 정말 엄마에게서만 물려받는 것일까? 엄마의 지능과 아들의 지능이 X염색체로 직결되어 있다는 이론이 회자되고 있다. /일러스트=한상엽
자식은 자랑스럽거나, 속을 썩인다. 한 녀석이 둘 다 한다. 흐뭇함 또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부모는 서로에게 묻는다. “얜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
자녀의 학업 성취에 관해서라면 이 질문은 더욱 예민해진다. 한국은 학벌이 신분 계층이자 가족의 성취요, 그 욕망이 부동산 시장을 움직이는 사회다. 자녀의 성적을 놓고 ‘연원’을 따지는 건 가족끼리도 입에 올리기 조심스러운 주제다.
그 민감 버튼을 누르는 유명한 속설이 있다. 바로 ‘아들은 엄마의 머리를 닮는다’는 말. 딸의 머리나 아빠의 머리는 논외다. 유독 모자(母子) 지능의 상관관계가 사람들 입에 은밀히, 꾸준히 오르내린다. 이 속설에 어떤 유전학적 근거가 있는지, 사회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봤다.
엄마 학력이 아들 직업 된다?
최근 학술지 ‘노동정책연구’에 ‘청년층 노동 경로의 성·계층별 차이 분석’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197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태어난 남녀 1142명이 졸업 후 어떤 일자리에 진입했는지 10년간 추적 조사한 코호트(cohort·세대 집단) 연구다.

역대 최악의 취업난이 깊어지면서,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 고용노동부 서울서부고용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취업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 /박성원 기자
대부분 1980년대생인 이들은 남성일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안정적·고임금 일자리에 안착하기 쉬웠다. 예상한 결과다.
그런데 가구 배경에서 의외의 요소가 발견됐다. 부모 소득이나 아버지 학력은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지만, 유독 ‘어머니 학력’이 자녀 일자리의 질에 직결된 것으로 나타난 것. 특히 남성의 일자리를 결정지은 3대 요소로 ‘본인 연령, 학력, 어머니 학력’이 꼽혔다.
여성도 아버지보단 어머니 학력에 좀 더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 일자리에서 유의미한 단일 요소는 ‘본인 학력’뿐이었다.

대부분 1980년대생인 남녀의 일자리의 질을 결정지은 요인을 연구한 최근 논문의 일부. 남성은 어머니 학력 영향이 높게 나타난다. /노동정책연구
왜 ‘어머니 학력과 아들 일자리’가 높은 연관성을 가질까. 논문을 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진영 박사는 본지에 “주 양육자인 어머니의 사회경제적 배경, 안정적인 양육 환경과 교육 정보력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 대상자의 어머니들은 1950~1960년대생인데, 그 시절 고학력 여성이라면 외가부터 자녀 교육에 관한 유·무형의 자본이 상당히 쌓인 집안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럼 어머니 학력이 딸의 일자리엔 왜 큰 영향을 못 미칠까? 한 박사는 “1980년대생 여성들만 해도 출산·육아로 인해 노동시장에 안정적으로 남아 있지 않아 조사 표본에서 많이 탈락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생 여성들의 학력은 높아졌지만, 집안 배경만으론 본인 커리어를 이어갈 추진력으로 삼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한 경제학자는 “1950~1960년대생 어머니라면 자신의 여러 자원과 사회적 기대치를 아들에게 집중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2000년대 호주제 폐지 등 남녀평등 사회가 본격화되기 전, ‘어머니의 능력과 못다 이룬 꿈’을 증명하기 쉬운 자식은 여전히 아들이었을 수 있다는 추정이다.
이게 다 X염색체 때문이다?
지난해엔 엄마의 학력 또는 지능이 아들에게 이전되는 ‘유전학적 이유’가 있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유명 수학 강사 정승제씨가 “아들(의 공부 머리)은 무조건 엄마다. 딸은 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른다. 과학으로 증명됐다”고 말하면서다.
근거가 된 학설은 이렇다. ‘인지·지능 관련 유전자는 X염색체에 몰려 있다.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에 비해 XX 염색체인 여성은 지능 유전자를 자녀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두 배 높다. 특히 아들은 X염색체를 엄마에게서만 받으므로 엄마의 지능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딸은 부모 양쪽에서 X염색체를 하나씩 받으니 엄마·아빠의 지능이 섞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유명 수학 강사 정승제(왼쪽)씨와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오른쪽) 등이 지능 인지 관련 유전자가 X염색체에 몰려있어 엄마에게서 아들에게로 고스란히 물려진다는 유전학 이론에 근거, "아들의 공부 머리는 100% 엄마 때문"이라고 말해 큰 관심을 받았다. /SNS
자녀 교육 정보를 주고받는 맘카페에선 난리가 났다. “아들아 미안하다” “뜨끔하더라.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지능까지 내 책임이라고? 이건 아니지 않나”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 “유전자를 극복하려면 오늘부터 아들을 더 잡아야겠다”는 웃지 못할 하소연이 쏟아졌다.
예비 신랑들은 “후세를 생각하니 갑자기 현 여자친구와 결혼이 고민된다”고 했다. 각 가정의 사례를 들어 ‘아들 지능의 엄마 결정론’이 맞느냐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쏟아졌다.
의·과학계도 뛰어들었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지능이 아빠보다는 엄마 영향이 크다는 쪽에 손을 들고 싶다”면서도 “하지만 지능은 복합적이다. 건강이나 다른 염색체상 유전자도 지능에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저는 지능의 80~90%는 환경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아정신과 의사 오은영 박사는 “모든 유전자는 부모에게서 50%씩 받는다. 그리고 지능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는다”며 “엄마의 영향을 따진다면 ‘엄마와 관계가 편안한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19세기 천재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자녀의 지능은 엄마에게서, 의지·용기 등 품성은 아버지에게서 온다”고 했다. 이러한 통찰 혹은 속설에 대해 현대 유전학계가 활발히 검증 작업을 벌여왔다. 2006년 스코틀랜드에서 14~22세 1만3000명을 조사했더니 ‘자녀의 IQ는 어머니의 IQ와 가깝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학계 정설은 ‘지능은 특정 유전자로 결정되지 않는, 다유전자(polygenic) 형질’이라는 것이다. 지능에 기여하는 유전자는 23번 X 성염색체뿐만 아니라 1~22번 상염색체상 2만개 유전자에 고르게 퍼져 있다고 한다.

지난해 대입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르는 모 남고 재학생들. 자녀의 입시, 학벌 만들기는 가족 전체의 명운을 건 대사가 됐다./뉴시스
지금은 타고난 지능보단 출생 후 언어·인지 자극, 영양 상태, 정서적 안정과 동기 부여 등 후천적 양육 환경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들을 연구해 ‘지능은 40~50%만 유전되고, 나머지는 환경 요인에 달렸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아들의 키, 탈모, 적록색맹이나 혈우병에 관련된 유전자가 X염색체에 위치해 모계 유전 가능성이 크지만, 환경 변수도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능보다 중요한 부모의 자질
다만 후천적 요인에서도 통상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는 게 사실이다. 2018년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에선 중3 학생들의 수학 성적과 ‘어머니 학력’의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또 다른 요인은 ‘신문과 책을 많이 읽는 가정환경’이었다. 이 역시 전업주부가 많은 일본의 특성에 비춰 ‘어머니 요인’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조사에서 엄마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의 사교육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엄마가 대학원 졸업 이상의 고학력인 경우, 중졸 이하보다 자녀 월 사교육비 지출액이 3.5배 많았다.<표 참조>

어머니의 '가방끈'이 길수록 자녀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그래픽=송윤혜 기자
하지만 ‘엄마 고학력→사교육 증가→입시 성공’이란 공식이 반드시 성립하진 않는다. 고등학교 교사 박모씨는 “엄마가 명문대 출신 의사, 법조인이어도 자녀와 정서적 거리가 멀거나 사교육비만 쏟아부었다가 속된 말로 ‘망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반면 부모 학벌은 평범한데 형제가 서울대에 간 집도 있다”며 “학력·재력을 떠나 부모의 품성, 관계의 문제라고 본다”고 했다.
학원업계에선 모든 가정의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한 지금, 부모의 ‘입시 정보력’을 중요하게 보는 분위기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대학 입시가 워낙 복잡해지다 보니 학생의 실력만큼이나 정보 수집·해석력이 중요해졌다”며 “공부를 해본 부모가 자녀 공부를 돕기 쉽고 입시 정보에도 능통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일반적인 입시 설명회엔 엄마가 80~90%지만, 명문고·특수고 입시 설명회에선 아빠 참석률이 확 높아진다”고 했다.
어쩌면 ‘엄마의 지능’이나 ‘엄마의 정보력’이 도마에 오르는 사회는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녀의 학벌을 부모의 인생 성적표로 여기고 과도한 자원을 쏟아붓는다는, 그리고 공정한 입시의 책임을 공교육이 아닌 ‘엄마들의 개인기’에 지운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건 아들들에게 좋은 일이 아닐 수 있다.
-정시행 기자, 조선일보(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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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 아빠들의 ‘자랑 인플레이션’

우리 아들은 ‘선수’다. 동네 할머니들이 그렇게 부른다. 우리 아들이 공원에 등장하면 뽀글머리 할머니는 “선수 나왔네, 선수!”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선글라스 할머니는 옆자리 몸뻬 할머니에게 “쟤가 우리 동네 선수”라고 귀엣말로 속닥이며 이 동네 사정 밝은 고참이란 사실을 슬며시 내보인다.
갓 두 돌 지난 우리 아들은 킥보드를 기막히게 잘 탄다. 앉아 타는 유형 킥보드인데, 그 분야에 있어서는 또래 가운데 상위 1% 안에 든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선수’라고 평가하기에는 좀 섭섭한 구석마저 있어, 첫돌 무렵부터 지금 수준으로 잘 탔다. 언어 발달은 느려도 행동 발달은 기막히게 빠른 녀석이라 생후 10개월에 걸었고, 돌 때는 거의 뛰어다녔다. 아무렴, 킥보드도 그때 이미 잘 탔지. 몸치(癡) 박치 운동치인 아비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어린이집 끝나면 나는 아들을 앞세우고 의기양양 동네 공원으로 나선다. “우와, 몇 개월인데 이렇게 잘 타요?”라는 물음에 빙그레 웃기만 한다. ‘뭘 이 정도를 갖고 그러세요’라는 표정으로 어깨에 은근히 힘을 준다.
우리 편의점 단골손님인 1946년생 K 선생은 왕년 어느 기업 사장이셨다.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모두가 알고 있는 국민 기업이다. 지방에서 태어나, 최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계단 밟아 대기업 등기이사 자리까지 올라갔으면 흙수저 샐러리맨으로는 성공한 인생 아니겠나. 내가 K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러한 사회적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겸손한 태도, 노년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여유에 있다.
선생은 ‘왕년에 내가’라고 대놓고 자랑하시는 법이 없다. 언젠가 K 선생과 말씀을 나누다가 다른 손님이 언뜻 내용을 듣고는 “높은 자리에 계셨는가 봅니다” 하고 궁금해하니 “그냥 월급 받고 살았소”라며 허허허 웃으시더라. 진정한 고수는 그런 법이다.
그렇게 자기 자랑에는 인색한 K 선생이 끝 모를 자랑 인플레이션을 노출하는 분야가 있으니 역시 ‘자식 자랑’이다. 특히 큰따님 자랑을 기막히게 한다. 왜 ‘기막히게’라고 표현하냐면 자랑인 듯 자랑 아니게 자랑하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걔는 누굴 닮아 그렇게 냉철한지 모르겠어”라거나, “한번 뭐를 목표로 삼으면 끝내 이루어야 직성이 풀리는 얘였어. 어휴, 지독했지. 지독했어” 하시는 거다. 자랑인지 비난인지, 주관인지 객관인지 오묘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초절정 자랑법이다.
한번은 이런 자랑을 하셨다.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주위 사람들이 큰따님에게 “K 사장님 딸 맞지요?”라고 묻곤 했단다. 대단한 아버님을 두셨다는 뉘앙스였겠지. 그럴 때마다 딸은 아빠가 자랑스럽다 말했고, 사실은 자신도 좀 으쓱했다나. 그런데 요즘엔 사람들이 선생에게 이렇게 묻는단다. “어머나, 홍콩에 모모씨 부친 되신다면서요?” K 선생의 큰딸은 홍콩에 본사를 둔 세계적 기업에서 아시아권을 총괄한다. 내가 누구의 아버지라는 사실로 기분 좋을 때, 아비로서 그때만큼 기쁠 때 있을까.
그런 K 선생에게 요즘 새로운 자랑이 하나 더 생겼다. “어휴, 걔는 제 엄마보다 훨씬 더해. 악착같기가 이루 말할 데 없고, 머리 돌아가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야. 표현력도 보통이 아니라니까.” 여기서 ‘걔’는 선생의 여섯 살짜리 손녀딸이다.
돌아보면 어릴 적 나는 아버지 칭찬에 굶주렸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칭찬하신 적이 없다. 어떤 과목을 백 점 받아도 “올백을 받았어야지” 하는 식이었고, 올백을 받아 오면 “올백짜리가 학교에 열 명쯤 되나 보지?” 하고 무시하곤 하셨다. 실제 열 명쯤 되었고.
몇 년 전 아버지가 이사를 했다. 홀로 사는 단칸방 살림이라 도왔는데, 서랍장 안쪽에 책이랑 잡지 몇 권이 단정히 포개져 있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모두 내가 쓴 책, 내 글이 실린 잡지였다. 한 번도 책을 드린 적 없는데. 출간 소식을 알린 적도 없는데. 잡지에 내 기고문 부분에만 따로 표시돼 있었다.
아버지는 청운의 뜻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몇 가지 서류를 친구분에게 맡겨 놓았다기에 내가 찾으러 간 적이 있다. 처음 뵙는 그분이 나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며 하신 말씀은 “아따, 그렇게 칭찬하던 그 아드님이시네”였다. “아들 자랑을 어찌나 주야장천 해대던지, 내가 아주 자네 이력을 외우네, 외워.” 실제로 그분은 내 어릴 적 이런저런 무용담, 그동안 쓴 책 제목과 연재하는 매체 목록은 물론, 어떤 칼럼은 대강의 내용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쓴 칼럼을 오려 지갑에 항상 지니고 다니셨다고 한다. 친구분들끼리 모여 자식 자랑이 화제에 오를 때면 그것을 무적의 카드처럼 꺼내 보이며 이렇게 평정하셨다지. “우리 아들이 대(大)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여!” 아 아버지, 그건 아니고요.
그러고 보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생각하는 경로는 깔때기와도 같아, 넓은 주둥이에 쏟아부은 원망과 서운함, 미움과 불평의 감정들도 결국엔 그리움이라는 관(管)으로 모여 흐른다.
오늘도 나는 아들 녀석을 앞세우고 동네 공원으로 나간다. 요즘 우리 아들은 킥보드를 타고 달리다 편의점만 보면 멈춰 선다.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가 냉장고 앞에 선다. 다짜고짜 뽀로로 음료수를 가리킨다. 어떤 편의점, 어느 곳에 진열되어 있든 바로 찾아낸다. 역시 내 아들이다.
-봉달호 '힘들 땐 참치 마요' 저자, 조선일보(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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