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분배 때 인정받은 ‘효도의 가치’]
[유류분]
유산 분배 때 인정받은 ‘효도의 가치’

1977년 상속법에 ‘유류분(遺留分)’ 조항을 명시한 것은 가정 내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그 전까지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장남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그러니 시골에서 실제 부모를 부양했던 차남이나 딸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배우자로 눈을 돌리면 후처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바람에 조강지처는 생활고 속에서 노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직계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금액을 법으로 보장해 준 게 유류분 제도였다.
▷이 제도 역시 완벽할 수는 없었다. ‘패륜 가족’의 등장 때문이었다. 2019년 순직한 여성 소방관의 생모가 30여 년 만에 나타나 유족보상금을 포함해 약 8000만 원을 수령한 일이 있었다. 평생 딸을 키운 아버지와 비슷한 액수였다. 생모는 이후 소방관의 아버지와 언니에게 소송을 당해 양육비 명목으로 7700만 원을 토해내야 했다. 이는 같은 해 벌어진 ‘구하라 생모 사건’과 함께 사회적 공분을 낳았고, 올 1월 ‘구하라법’을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패륜 가족의 상속을 막기 위해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라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3월 패러다임 변화가 하나 더 등장했다. 효도, 봉양 등에 대한 기여분을 인정한 민법 개정이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이를 근거로 한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A 씨는 어머니를 27년간 모시는 동안 약 2억 원을 증여받았다. 그런데 2022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A 씨의 자매인 B 씨가 본인 몫 유류분을 주장했다. 이 소송 2심 재판부는 개정 전 민법을 적용해 A 씨에게 약 2600만 원을 반환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개정된 민법을 근거로 원심을 파기했다. 어머니를 실질적으로 부양한 대가로 받은 돈은 유류분 정산에서 빼라는 의미다.
▷일본은 2019년 아예 ‘특별기여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기여분 인정 대상을 확대해 며느리나 사위의 병수발까지 ‘현금’으로 보상받도록 했다. 아픈 시부모를 오랫동안 간병한 며느리가 적정한 특별기여료를 청구하는 식이다. 가족들 간 간병 노동의 가치를 법적으로 보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은 상속을 받을 때 봉양 기여분을 우선적으로 반영하고 일본은 사후 청구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효도 프리미엄’의 개념은 유사하다.
▷다만 ‘효’라는 전통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족들 간 다툼에서 ‘기여분’을 제대로 주장하려면 구체적 증거를 확보해 둬야 한다는 게 법률가들의 조언이다. 부모 부양에 쓴 돈을 입증할 영수증이나 현금 이체 내역은 물론이고 병원 통원이나 간병 기록도 남겨둬야 소송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효도’라는 행위를 넘어 ‘효심’의 가치까지 인정받기에 법이란 틀은 여전히 냉정할 수밖에 없나 보다.
-김창덕 논설위원, 동아일보(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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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분

10여 년 전 국내 제화 업체 창업자가 1000억원대 재산 대부분을 장남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딸 둘이 법원에 소송을 냈다. ‘유류분(遺留分)’ 청구 소송이었다. 유류분은 재산 물려주는 사람이 상속받을 권리를 가진 유족에게 재산을 전혀 물려주지 않을 경우 등에 대비해 법으로 일정 재산은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로마법에서 유래해 1977년 우리 민법에 도입됐다. 남존여비 구습을 피해 여성 상속권 일부라도 보장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법이 보장하니 장남으로선 안 줄 도리가 없었다. 소송은 장남이 일정액을 동생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언론은 ‘딸들의 반란’이라고 했다.
▶몇 년 뒤 혼외자(婚外子)들도 나섰다. 전 재벌 회장, 전직 대통령 아들이란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받고는 유류분 청구 소송을 냈다. 우리 법은 상속에서 혼외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도입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유류분 소송이 이젠 재벌가에선 예삿일이 됐다. 지금도 몇몇 기업의 오너 가족 사이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상속 전쟁’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번졌다. 2012년 590건이던 유류분 소송은 지난해 2035건이 돼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소송 과정에서 가족들이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8년 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느 50대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단독주택을 상속받았지만 형제들에게 유류분 소송을 당했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형, 누나가 무슨 권리가 있냐”고 항변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법정 밖에서 멱살잡이까지 하면서 형제들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어느 변호사는 “‘돈이 피보다 진하다’는 걸 보여주는 소송”이라고 했다.
▶유류분 제도가 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은 ‘가족 공동체’다. 그런데 가족 해체를 조장하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불효자에게도 당당히 재산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불효자 상속권’ ‘불효자 양성법’이란 지적도 나왔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그늘이 큰 듯하다.
▶어제 헌재가 유류분 제도를 규정한 민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과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불효자 등은 상속에서 배제하거나 제약해야 한다는 취지다. 부모를 오래 부양하거나 재산 형성에 기여한 자녀는 상속을 더 받게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회 상식과 국민 법 감정에 맞는 결정이다. 상속 독식도 안 되지만 가족 간 상속 전쟁과 반목도 안 된다. 이번 결정이 유류분 소송을 줄여 상속 전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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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분(遺留分)
고인(故人)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에 따라 유족들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뜻한다. 현행 민법상 고인이 가족 아닌 제3자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유언을 해도 상속인이 유류분만큼은 받을 수 있다. 유류분은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이다.
-이슬비 기자, 조선일보(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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