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허리]
[가상화폐에 투자한 ‘영끌族’ 구제… ‘도덕적 해이’인가 아닌가]
엄마의 허리

8년 전 사기를 당했다. 모아 둔 돈을 몽땅 날리고 8000만원의 빚이 생겼다. 살기 위해 주야 교대 공장을 다니면서 주말에 막노동까지 뛰었다. 그래 봐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300만원 안팎. 처음으로 빚을 상환하고 월세까지 냈을 때 수중에 남은 돈은 5만원이었다. 그나마 장마 탓에 막노동 못 간 달은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갚을 날짜조차 기약할 수 없었으니 사실상 구걸하러 다닌 셈이다. 한 달 내내 하루도 안 쉬고 일하니 자연히 사람들과 멀어졌다. 일주일 내내 통화 목록엔 엄마 이름뿐. 내 곁에 남은 건 학교 친구도 아니요, 직장 동료도 아닌, 오로지 가족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였던가. 엄마의 허리가 점차 굽어가는 걸 느꼈다. 퇴근길에 계단도 혼자 못 올라서 중턱서 앉아 가쁜 숨만 몰아쉬는 엄마를 보았다. 병원에 가보니 척추협착증이라고 하더라. 수술하면 금방 좋아질 걸 알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꼿꼿하게 서서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가슴앓이만 했다. 제때 병원 못 가니 엄마의 몸 상태는 점차 나빠지기만 했다. 어깨도 잘 들지 못하고, 팔엔 커다란 혹이 생겼다. 왼쪽 어금니를 뽑은 탓에 오른쪽으로만 음식을 씹었다. 종종 밤에 아파서 앓는 소리를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그 신음을 듣는 게 너무 괴로워서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어차피 빚 갚느라 병원비도 없으니 못 고쳐준다고 신경질 냈다. 가난에 의지가 꺾이면 곧바로 불효자가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빚을 진다는 건 남들 다 달리고 있던 평지에서 떨어져 절벽 아래에서 시작한다는 뜻. 죽도록 기어올라 간신히 끝에 도달하면 남들은 이미 아득히 먼 앞을 달리고 있다. 한 해 한 해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가 줄어들 때마다 친구들은 대기업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채무 상환 과정에서 가장 두려운 건 이자나 독촉이 아니었다. 남들 잘 되는 소식 들을 때마다 가슴속에 솟구치는 불안이었다. 빚 다 갚으면 나이는 30대 중반일 텐데, 남은 거라곤 상해버린 몸뚱이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10년짜리 공장 경력뿐. 미래를 생각하면 늘 우울해져서 퇴근 후 술만 마셨다. 그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못난 아들 먹일 술안주를 만들어 상에 올려놓곤 했다.
이대로 계속 살 순 없었다. 하지만 당장 상황을 바꿀 순 없으니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무일푼으로 미래의 내게 남겨 줄 수 있는 유산은 두 가지.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 않을 지식과, 고된 육체노동을 견뎌낼 튼튼한 몸이었다. 평일 시간을 쪼개 달리기하고, 주말엔 방구석에 있고픈 몸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갔다. 공장에서 과장님 다리가 철판에 짓뭉개지는 모습을 본 후론 꾸준히 일기도 썼다. 이력서에 한 줄도 못 남길 그 습관들이 쌓이고 쌓이자 책까지 쓰게 됐다. 여러 운이 겹쳐 첫 작품임에도 꽤 팔렸다. 언제나 생활비만 간신히 남아있던 통장에 처음으로 여윳돈이 생겼다. 첫 인세로 할 일은 너무나 명확했다. 남은 빚을 일시 상환했다. 마침내 신용회복위원회와의 인연이 끝나는 순간 삶의 한 고비를 넘었음에 안도했다. 얼마 안 가 또 인세가 들어왔다.
얼마 후 집에 들렀다. 허리가 꼬부라진 엄마와 마주한 순간 인세의 사용처를 정했다. 그날 바로 엄마를 종합병원으로 데려갔다. 이참에 몸 아픈 곳 싹 수술하시라고 했다. 한사코 됐다고 하는 엄마를 보험 들어놔서 병원비 얼마 안 나온다며 안심시킨 채 MRI 기계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 달 후 청구서가 떨어졌다. 비급여 항목이 많아 내야 할 돈만 400만원이 넘었다. 덕분에 통장이 도로 텅텅 비었지만 별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냥 원래부터 없었던 돈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10월 초에 다시 마산 고향집을 들렀다. 놀랍게도 엄마가 버스 정거장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집에서 기다리지 그랬어”라고 말하니 “아들 빨리 보고 싶어 그랬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허리 쫙 편 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산복도로 언덕길을 올랐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웃음소리는 경쾌했다. 저 뒷모습을 보기 위해 지금껏 꾹꾹 버티며 살아왔구나, 몇 분쯤 걷자 괜스레 눈물이 났다. 아랫눈썹에 찔끔 맺힌 이슬은 좀처럼 멎지 않고 비가 되어 쏟아졌다. 엄마도 대뜸 길에 멈춰서서 울어 재끼는 아들의 마음을 안 걸까. 놀라는 대신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청춘을 몽땅 불사른 8년의 투쟁 끝에 비로소 우리 가족은 평범을 되찾았다.
-천현우 얼룩소(Alookso) 에디터,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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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에 투자한 ‘영끌族’ 구제… ‘도덕적 해이’인가 아닌가
[노정태의 시사哲]
모파상 소설 ‘목걸이’와 文정권 ‘K방역’의 비극
하급 관리의 딸이면서 하급 관리에게 시집간 마틸드는 행복하지 못했다. 본인의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남편이 장관 댁 무도회 초대장을 마련해온 것이다. 하지만 마틸드는 더욱 불행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무슨 옷을 입고 간단 말인가? 남편은 아껴두었던 비상금을 꺼내 아내의 옷값을 대주지만, 이번에는 장신구가 문제다. 결국 마틸드는 친구인 포레스터 부인을 찾아가,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리고, 장관 댁 파티장에서 인생 최고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이 쓴 단편 소설 <목걸이>의 내용이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니 독자 여러분도 이야기의 결말을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마틸드는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보석상을 돌아다니며 가장 비슷하게 생긴 것을 찾았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모아 무려 3만6000프랑이나 되는 그 목걸이를 사서 돌려주었고, 10년간 뼈 빠지게 일한 나머지 왕년의 미모를 모두 잃고 말았다. 결국 빚을 모두 갚은 마틸드는 길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자초지종을 들은 포레스터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 “어쩜,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내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이 결말이 워낙 충격적인 탓일까. <목걸이>는 허영심에 사로잡힌 여인의 어리석은 선택과 운명의 장난에 대한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볼 수도 없다. 이 짧고 통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경제학을 넘어 현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담론 중 하나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대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도덕적 해이란 돈을 빌리더니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갚지 않는 악성 채무자 등을 비난하는 용어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는 경제학에서 명백한 정의를 지니는 개념이다.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을 이용해 한쪽이 다른 쪽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의 본래 의미다.
아는 것은 힘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란 곧 경제력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면 시장경제는 성립할 수가 없다. 수퍼 주인에게는 본인이 1200원에 파는 아이스크림을 옆 가게에서 1000원에 판다는 것을 손님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리 행위의 자유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장마철에 비가 샌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집을 판다거나, 침수됐던 차량을 지인에게 판매하는 등의 행위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상대방의 신뢰를 악용한다거나, 오해할 만한 상황을 만든다거나, 상대가 뭔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침묵한다면,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목걸이>로 돌아가 보자. 마틸드는 포레스터 부인이 빌려준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엄청난 고가의 진품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포레스터 부인은 상대가 그렇게 오해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심지어 목걸이를 돌려받을 때 상자를 열고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왜였을까? 쩨쩨하게 굴지 않는 부잣집 마님 이미지를 지키려고? 그렇게 잘사는 것처럼 굴면서 실은 가품 보석이나 가지고 있다는 식의 뒷말이 나올까봐?
물론 이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직접 받을 만한 사안이 아니다. 그 누구도 포레스터 부인이 일부러 마틸드를 속였다고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대하게 목걸이를 빌려주어 마틸드는 인생 최고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포레스터 부인은 정보의 불균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은밀한 우월감을 누렸으며, 그 결과 마틸드가 10년간 괜한 빚고생을 하며 폭삭 늙어버린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정부는 지난 14일 ‘금융부문 민생 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 대한 채무조정 방안이다. ‘청년 신속채무조정 특례 제도채무조정’ 역시 새로 도입됐다. 문제는 빚을 진 이유에 가상 화폐 투자 등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것. 국가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지금도 개인회생 및 파산 과정에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채무조정이 포함된다. 요건을 충족한 후 상환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매달 보여준다면 이자율 조정이나 원금 상환 유예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생 갚지 못할 빚의 굴레를 씌워서 누군가를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건 당사자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해롭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운영 중인 채무조정 제도의 기본 정신이다. 심지어 구약 시대의 히브리 민족도 7년이 일곱 번 지나 50년이 되면 희년을 선포하고 갚지 못할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던가. 일부러 빚을 지고 안 갚는 악성 채무자는 엄벌해야 하지만, 능력 바깥의 빚에 깔린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식으로는 사회와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K방역’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던 일을 떠올려 보자.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등 안정적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일부는 재택근무의 나날을 즐기기까지 했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매주 어찌 바뀔지 모르는 정책 앞에서 피 말리는 시절을 보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여윳돈으로 가상 화폐나 부동산 등에 ‘빚투’한 이들은 애초에 구제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이들을 ‘빚을 못 갚으면 망해도 싸다’는 식으로 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모럴 해저드일지 모를 일이다.
<목걸이>는 정보의 불균형을 방치한 포레스터 부인의 아주 작은 도덕적 해이가 마틸드의 인생을 망가뜨린 이야기다. 몇 번을 읽어도 안타까운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마틸드는 결국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 값을 다 갚아내면서 자신의 또 다른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돈의 일부라도 포레스터 부인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마틸드들 역시 스스로 빚을 갚으며 새 인생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조선일보(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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