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환갑.. 그녀의 시간은 이제 시속 60km다]
[결혼을 지탱하는 힘]
엄마의 환갑… 그녀의 시간은 이제 시속 60km다
[2030 플라자]
환갑 맞은 엄마… 이번엔 돈 대신 첫 해외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아빠의 연이은 발병… 처음 만든 여권도 다 무용지물
치료 때문에 함께 보낸 시간… 엄마는 여행보다 그게 더 소중했다
얼마 전 엄마의 생신이었다. 갈수록 내 생일은 다른 날과 다름없어지지만, 부모님의 생신은 어떻게라도 성의를 보여야 하는 연중 큰 이벤트가 되어간다. 게다가 이번엔 엄마의 환갑이었다. 과거와는 의미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환갑 뒤에는 ‘잔치’가 자연스레 따라올 만큼 생에 몇 안 되는 변곡점이다. 여태껏 엄마의 선물은 용돈으로 편하게 때워왔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라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선물을 하자고 마음먹으니, 몇 년 알고 지낸 친구의 취향은 기가 막히게 파악하면서 30년을 넘게 알아 온 엄마의 취향은 쥐뿔만큼도 모른다는 걸 금세 눈치챘다. 옷을 사러 가도 매번 의견이 갈리던 우리였다. 그저 엄마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엄마의 취향을 들여다볼 생각까진 못 했던 것이다.
사실 엄마에게 가장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엄마의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스무 살 이후에는 줄곧 떨어져 살았으니, 엄마와 나는 내가 대구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의 활동 반경은 대구 시내 딱 그 정도였다. 간혹 명절을 이용해 다른 도시에 여행을 가긴 했지만, 그것도 부산이나 포항, 경주같이 가까운 거리 내에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매번 친구들과 여행을 다닐 때마다 ‘엄마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를 달고 살았다. 그렇지만 엄마도 일터를 비울 수 없었고 나도 경제적 여유가 충분치 않아 속으로만 곱씹었다.
그러나 2년 전 나와 엄마가 차례로 암 투병을 하게 되어 엄마는 자연스레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엄마가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는 모습을 난생처음 보게 된 나는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회복을 마치자마자 엄마와 아빠를 끌고 가 여권 사진을 찍어 여권을 만들고, 여행을 계획했다.
계획과는 반대로 흐르는 일이 인생에 종종 생긴다는 것쯤은 이제 안다. 그래도 비행기 티케팅만을 남겨둔 시점에 아빠마저 암 투병 소식을 전해온다는 것은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내가 항상 준비될 때만을 기다렸는데, 내가 자리를 잡고 뒤를 돌아보니 나와 성큼 거리가 멀어져 버린 부모님이 있었다. 엄마의, 아빠의 시간은 결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조금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온 가족이 서울에서 병원을 다녔기에 진료 예약이 있을 때마다 만나게 되니 같이 살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때보다 엄마의 얼굴을 자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서울에 올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장소로 데리고 다녔다. 병원 근처의 서순라길에서 분위기 있게 파스타도 먹어보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강 라면도 먹고, 진료 시간이 붕 뜨면 병원 앞 창경궁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이게 여행이지 다른 게 여행이겠냐’고 말했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슬프게 들렸는데, 내가 엄마를 자주 데리고 다녀주지 못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꼬아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라고는 할 줄을 모르는 양반이었는데,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저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자체가 엄마에게 여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여행은 ‘어디’인지보다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이제 가까이 붙어 산 것보다 멀리 떨어져 산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홀로 하는 타향살이에 적응을 못 해 대학 시절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갈아입을 옷 하나 없이 고속버스에 올라타 도망치듯 고향집에 내려가던 나보다, 엄마의 언제 한번 내려오냐는 물음이 더 가까워진 내가 있다.
결국엔 올해도 선물은 용돈이었지만 대신 애써 휴가 한 주를 내어 모두 엄마에게 바치기로 했다. 30대가 되고서 엄마가 나에게 했던 첫 번째 말은 이제 시간이 30km로 갈 거란 말이었다. 그 말은 이제 엄마의 시간도 60km 속도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란 이야기였다. 엄마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나는 튼튼한 다리로 달릴 수 있으니, 최대한 엄마의 시간을 따라잡아 보려 노력하려 한다.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조선일보(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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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지탱하는 힘
30대 부부는 마주 보고 자고, 40대 부부는 천장을 보고 잔다. 50대 부부는 등 돌리고 자고, 60대 부부는 각방을 쓴다. 그리고 70대는 서로 어디서 자는지 모른다는 우스개가 있다. "결혼은 단테 '신곡'과 반대"라는 말도 있다. 천국에서 시작해 연옥으로 갔다가 지옥에서 끝난다는 얘기다. "결혼은 열병(熱病)과 반대"라고도 한다. 신열로 시작해 오한으로 끝나니까. 살아갈수록 식는 부부의 애정을 빗댄 말들이다.
▶서양 부부의 애정 곡선은 U자를 그린다. 신혼 때 높았다가 중년에 떨어지고 노년에 다시 솟는다. 우리네 부부들은 L자형이 많다고 한다. 줄곧 내리막 끝에 바닥을 치고는 그저 부부 사이만 이어 간다. 수명이 늘면서 결혼 50년은 예삿일이 된 지금 부부는 긴 세월을 무엇으로 사는가. 인구보건복지협회가 기혼 남녀 1000명에게 '작년 한 해를 버틴 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절반이 '내 아이들'을 꼽았고 '남편·아내'(31%), '인내심'(10%)이 뒤를 이었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나이별로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20대는 남편·아내(41%)를 앞세웠고 50·60대에선 인내심(40%)이 자식(13%) 남편·아내(8%)를 압도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꼽은 아내도 5%를 넘었다. "3주 서로 연구하고, 3개월 사랑하고, 3년 싸움하고, 30년을 참고 견딘다"는 말이 딱 맞는다. '로또에 당첨되면 혼자만 알고 사라질 기회를 엿본다'도 22%, 60대에선 38%나 됐다.
▶일본에 1999년 남편들이 만든 전국정주(亭主)관백(關白)협회가 있다. 정주는 남편, 관백은 왕 다음가는 권력자로 '정주관백'은 폭군 남편을 가리킨다. 간판과 달리 회원들은 "아내를 관백처럼 받들자"고 한다. '아내를 이기려 하지 말고, 이기지도 말고, 이기고 싶지도 않다'는 3원칙을 내세운다. '결혼 3년 넘어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초단)부터 '사랑한다고 쑥스럽지 않게 말하는 사람'(10단)까지 단증도 발급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서 남편과 아내들은 '올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대화와 소통'(26%)을 꼽았다. 이 비율이 60대에선 절반을 넘었다. 일본 전정협처럼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건 아무래도 남편 몫이다. 팔만대장경에 있다는 '아내는 남편의 누님'이라는 말처럼. 월탄 박종화는 늙은 아내를 일러 '된장찌개를 내 밥상 위에 끓여 놓아주는, 하나 남은 옛 친구'라고 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손때로 오른 한 쌍 질그릇처럼 오순도순 늙어 갈 일이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일보(1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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