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고향 떠나 상경한 청년들 “돈은 더 벌어도 덜 행복”] ....

뚝섬 2024. 9. 27. 08:00

[고향 떠나 상경한 청년들 “돈은 더 벌어도 덜 행복”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어느 철물점의 재탄생]

 

 

 

고향 떠나 상경한 청년들 “돈은 더 벌어도 덜 행복” 

 

한국의 인구 이동, 특히 청년들의 이동은 수도권으로의 일방통행이다. ‘인서울’ 대학 진학을 통해 상경한 청년들은 학업을 마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청년들도 일자리를 찾아 다시 수도권으로 몰린다. 매년 10만 명의 청년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향한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들이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들보다 돈은 많이 벌지만 행복감은 더 낮고 ‘번아웃’(소진) 경험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계청이 26일 발간한 ‘통계플러스 가을호’를 보면 19∼34세의 비수도권 출신 청년 가운데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의 연평균 소득은 2022년 기준 2743만 원으로,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2034만 원)보다 709만 원(34.9%) 더 많았다. 청년 인구 대비 취업자 비중도 수도권으로 간 청년(72.5%)이 지역에 남은 청년(66.4%)보다 높았다. 1000대 기업 본사의 73.6%가 밀집해 기회가 더 많은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취업과 소득을 위해서는 ‘합리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삶의 질을 보면 정반대였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이 느끼는 행복감은 10점 만점에 6.76점으로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6.92점)보다 낮았다. ‘최근 1년간 번아웃됐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수도권 이동 청년은 42.0%로, 비수도권 잔류 청년보다 12.3%포인트 높았다. 수도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청년들은 건강이 더 나빴고, 더 좁은 집에 살았다. 더 오래 일했고 통근 시간도 길었다. 높은 주거비 부담 때문에 빚도 더 많았다. 낯선 환경에서 느꼈을 두려움과 외로움은 통계 숫자론 담아낼 수 없다.

 

숨막히는 환경을 벗어나 가족과 친구가 있는 지방으로 돌아가려 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두렵다.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 건 역시 일자리다. 지방에 살아본 청년들은 공무원 말곤 마땅한 사무직군의 정규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통, 교육, 주거, 의료, 문화, 쇼핑 등의 인프라도 수도권에 비해 부족하다. 청년들을 지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일자리와 인프라가 한곳에 모인 ‘도시 거점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은 축구장 반쪽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 같다. 한쪽에선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 속에 부상자가 속출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반대쪽에선 그저 공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부러울 뿐이다. 청년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공부하고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번아웃과 열패감,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이 공존하는 마이너스 게임을 이젠 그만할 때가 됐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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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자작나무 숲]

 

‘엑소더스’는 구약성경에만 나오는 사건이 아니다. 한일합방에서 전쟁, 분단, 산업화, 도시화로 이어진 20세기 한국사야말로 민족 대이동의 역사였다. 일제강점 말기에 망명·징용·징병으로 나라 떠난 사람들이 당시 인구의 30%, 해방 직후 한 달 반 사이에만 북에서 남으로 이주한 월남민이 10%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강제로 내쫓기던 시기에 한국 문학의 주요 주제는 ‘고향’이었다. 향수, 방랑, 망향, 귀향 등을 주제 삼은 고향 시편이 서정시를 지배했고, 어머니, 누이, 시골집 같은 연관어도 단골로 등장했다. 실향의 운명이 그런 노래를 만들어냈다. ‘고향을 노래하면 반드시 서러워지는 심정은 (…) 조선 시에서만은 진리’라고 임화는 쓰고 있지만, 뿌리뽑힘의 서러움이 한반도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두 차례 대전을 포함해 여러 전쟁과 격변을 겪은 20세기 세계사 전체의 현실이었고, 혁명과 내전까지 치러야 했던 러시아는 특히 충격의 여파가 컸다. 그 상처를 노래해 인기 끈 시인이 랴잔 출신 예세닌이다.

 

‘농촌 최후의 시인’을 자처한 예세닌은 나라 잃은 한국 근대 시인들에게도 사랑받았다. 오장환은 도쿄 유학 시절 술에 취해 예세닌을 읊으며 울었다 한다. 그렇다. 두 번 다시 누가 돌아가느냐/ 아름다운 고향의 산과 들이여!….’ 정지용의 저 유명한 시구(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도 얼핏 예세닌의 메아리처럼 들린다. 내 태어난 곳에 왔다./ … / 아, 사랑하는 고향 땅이여!/ 너는 예전의 네가 아니로구나.’ 누가 누구를 따라 썼다는 게 아니라, 고향 상실의 보편적 시대색을 말하는 것이다. 

 

잘 아는 노래 ‘고향의 봄’ 가사가 이렇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정확히 말해 그리운 건 고향이 아니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이 그리운 거다. 고향은 원초적 기억과 원초적 사랑으로 이루어진 어린 시절의 요람, 어머니 품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이니, 실낙원은 고향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경주 근교 모량리에 갔다가 함경북도 부령에서 월남한 분의 개인 집을 발견했다. 독문학자 김연순 교수의 말년 거처다. 한반도 남북과 독일을 떠돌며 평생 ‘내 집병’에 시달렸던 고집 센 경계인의 인생 스토리는 ‘내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한 권 책으로 남아 있다. 세 아이를 둔 채 홀로 독일 유학 떠날 만큼 모진 삶을 산 이 여인은 끝내 고향 닮은 시골 마을에 마지막 둥지를 틀고 자신의 ‘치유될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달래야 했다.

 

이제는 주인의 손길을 잃어 쓸쓸해진 곳이다. 그러나 복낙원의 자취만큼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손수 벽돌 쌓아가며 고향 집을 재현해놓은 처소에 이름까지 ‘과목장’이라고 따라 붙였다. 부령의 과목장은 갖가지 나무와 호수와 동물들이 모여 사는 풍요의 낙원이었다는데, 모량리 과목장은 부뚜막을 안에 들여 정주간(부엌방)을 만들고, 방바닥은 단차를 두어 조금 들어 올린 함경도식 가옥의 축소판이다. 부엌 온기로 난방을 대신하고 신발을 방안까지 신고 들어오는 추운 지방 특유의 구조로, 러시아 농가의 페치카와 원리가 비슷하다. 요즘 식 거실에 해당하는 이 따뜻한 공간을 중심으로 어린 시절의 정겨운 가족사가 펼쳐졌을 것이다.

 

고향’이라는 말이 점차 잊혀간다. 고향을 주제로 한 동요가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90년대 이후 대중가요에서도 고향이 자취를 감췄다. 덩달아 ‘향수’라는 말도 듣기 어려워졌다. 모두가 떠도는 인생이다. 서울 토박이(3대째 서울 거주)는 5%에도 못 미치며, 호적제 폐지 이후부터는 아예 토박이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디아스포라와 디지털 노마드가 실존 방식으로 떠오른 21세기에 ‘뿌리’의 강조는 시대착오적 냄새마저 풍긴다.

 

하지만 기억의 시선은 여전히 머무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곳이 고향이다. 실향민의 기억에 기초해 ‘북한의 옛집’을 쓴 건축사학자가 말하기를, 월남민에게 설문지를 돌려 반세기 전 떠나온 집 도면을 그려달라 했더니 답신이 쇄도했고, 실사 스케치는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었으며, 답변지 대부분이 눈물에 젖은 듯 부풀어 있었다 한다. ‘꽃 피는 산골’이 아닐지라도, 강제로 빼앗겼건 자발적으로 떠나왔건, 고향 구석구석은 슬프고 행복한 이야기투성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도 울게 만든다. 불현듯 내 어린 시절의 고향, 저기 저 작은 아파트, 온갖 ‘보물’ 깊숙이 감춰놓고 기어들던 침대 밑 어둠 속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조선일보(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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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물점의 재탄생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레카(Eureka) 마을. 자기 집을 수리하려던 스티븐 고든(Stephen Gordon)은 빅토리아 스타일의 오래된 집에 어울리는 철물과 조명기구를 구할 수 없었다. 화가 난 그는 ‘복원 철물(Restoration Hardware)’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가게를 차려 빈티지 철물들을 팔기 시작했다. 곧바로 비슷한 요구가 있었던 주변의 친구들과 이웃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하) /박진배 제공 시카고의 RH 매장. 오래된 고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공간 전체를 매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후 전국으로 매장을 넓혀나가면서 직물, 조명기구, 가구, 책, 장난감 등 홈 데코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구비했다. 단지 구색만 갖추어 놓은 게 아니라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빈티지 용품, 그리고 직접 만들고 수리하는 수작업 관련 물품들을 골고루 갖추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자 했다.

 

시카고의 RH 매장. 가구와 생활 용품의 스타일을 굳이 분류하자면 ‘프랑스 시골풍’, 또는 ‘캘리포니아 해변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는...’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판매하는 가구와 생활 용품의 스타일을 굳이 분류하자면 ‘프랑스 시골풍’, 또는 ‘캘리포니아 해변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행을 타지 않는…’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이런 지속성 덕분에 수십 년간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RH’로 이름을 바꾼 후부터 매장의 종합적인 업그레이드를 감행했다.

 

시카고의 RH 매장 레스토랑. 레스토랑까지 구비해서 힘찬 공간력으로 집객을 유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부동산의 구입이다. 시카고에는 오래된 고등학교 건물, 뉴욕은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창고 건물, 보스톤의 경우 1864년 지어져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자연사박물관 건물을 구입해서 전체를 매장으로 리모델링했다. 자사에서 판매하는 가구와 물건들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꾸미고 레스토랑까지 구비해 종합적인 공간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즈음 물리적인 장소에서 ‘공간력’으로 집객을 유도하는 마케팅의 원조인 셈이다.

 

뉴욕 RH 매장.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자사에서 판매하는 가구와 물건들로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꾸며놓았다.

 

RH의 상호는 ‘철물’을 포함하고 있지만 매장에는 그 이상의 문화가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고객이 한구석에서 꼭 원했던 상품을 발견한다. 가구나 철물은 물론, 조명기구나 향수, 요리책을 망라한다. 이곳에는 마치 개인과 함께 성장하는 유기체적 느낌으로 현대인이 동경하는 욕구를 채워주는 마법이 있는 듯하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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