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스크와 세바스토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제 끝날까?]
[폴란드의 러시아 포비아]
[폴란드가 美·獨·佛 제치고 한국産 선택한 이유]
[모스크바에서 본 ‘다시 갈라지는 세계’]
[임용한의 전쟁사]
루한스크와 세바스토폴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으냐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끝날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측에 종전을 강요하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2군데 있다. 동부전선의 루한스크이다. 이지움을 탈환한 뒤에 슬라뱐스크를 지나 세베로도네츠크를 거쳐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로 쭉 파고들었으면 좋았겠지만, 압도적인 전력이 아닌 이상은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러시아군과 싸울 때는 승세를 잡았다고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되고, 끝까지 전술적 움직임으로 흔들어야 한다.
고로 직진보다는 우회와 압박이다. 현재 스바토베 쪽에 전선이 형성되어 있는데, 스타로빌스크 쪽으로 진출하면 루한스크, 세베로도네츠크가 압박을 받게 되고, 남쪽의 도네츠크 지역도 부담이 커진다.
남쪽은 당연히 크림반도이다. 헤르손에서 철수했지만 러시아의 드네프르강 방어선은 위태위태하다. 크림반도에는 방어지형이 없다. 우크라이나군이 강을 넘으면 크림 남단까지는 일사천리이다. 그러나 남부에 가공할 요새가 기다리고 있다. 세바스토폴이다. 크림반도와 흑해를 장악하기 위한 요충지로 이곳은 이미 두 번의 전설적인 전투를 치렀다. 1853년 러시아, 오스만 제국과 영국, 프랑스 연합군 간에 벌어진 크림 전쟁이다. 영-프 연합군은 세바스토폴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끝내 함락은 시키지만 승자 패자를 가릴 것 없이 엄청난 희생을 낸 악몽의 전투로 기록된다. 영-프 연합군 사상자가 13만, 러시아 측이 10만 명이었다. 전쟁 전체 사상자의 절반이 세바스토폴에서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의 명장 만슈타인이 러시아군이 지키는 세바스토폴을 포위했다. 독일군은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지만 포위전은 무려 10개월을 끌었다. 12만의 러시아군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독일군도 12만의 사상자를 냈다. 현재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 함대의 주둔지로 더 요새화되어 있다. 이 악몽의 전투가 또 벌어질까? 세바스토폴을 함락하지 않아도 상황이 여기까지 진행된다면 러시아는 전쟁을 계속할 동력을 잃을 것이다. 어느 도시 앞에서 전쟁이 끝날까?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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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이제 끝날까?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주에서 패퇴했다. 성동격서 전술에 당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우크라이나군은 일취월장한 반면, 러시아군은 병력 부족과 피로, 전술 효율성의 부족으로 북부에서 남부 헤르손 지역에 이르는 긴 전선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의 병력 부족의 배경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같은 병력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전술이고, 군의 전체적인 전력이다. 처음부터 지적된 이야기지만 러시아군은 제병협동 능력이 떨어진다. 한참 기세 좋게 화력전을 할 때도 포신만 달아올랐지 보병과 전차의 전진은 지지부진했다.
하르키우에서 물러날 때 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군은 비슷한 상황에서 지연전과 기동방어를 펼쳤다. 러시아군은 그런 기민한 능력이 없고, 2선 방어 지점조차 제대로 설정해 놓지 않은 듯하다. 우크라이나군이 병력과 장비도 늘고, 하이마스로 무장하고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갖추면서 러시아군의 후방지원 능력과 이동, 반격지점 설정 능력은 더 큰 지장을 받게 된 것 같다.
그럼 이제 이 전쟁이 끝날까? 아니다. 러시아는 최소 한 번 이상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셋이다.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전부 또는 2개가 차례로 혹은 동시 진행될 수도 있다. 벨라루스의 직간접 지원을 얻어 북부에서 침공한다. 러시아 영토 안에서 군을 보강해 돈바스 전선에서 하르키우 방면으로 대공세를 편다. 당분간 루한스크 전선 방어에 주력하면서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준비한다.
1안은 가능성도 낮고, 시도한다면 주공이 아닌 양동작전일 수 있다. 2안은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군의 능력을 다시 가늠하게 되겠지만, 군의 능력이 단기간에 향상될 가능성은 낮아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3안은 당장 얻는 것도 없지만, 양국과 전 세계를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쟁을 끝내려면 우크라이나군의 한 번 더 결정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군은 아직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지만 전술적인 승리는 가능하다. 그런 전술을 보게 될까?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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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러시아 포비아
냉전 시기 서방의 나토(NATO)에 맞선 공산권 군사동맹이 195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결성됐다. 그 후 소련이 해제될 때까지 폴란드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토의 창끝’으로 불린다. 러시아에 맞선 서방의 최전방 군사 거점이란 뜻이다. 이런 극단적 방향 전환이 냉전의 종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 수백 년 피의 분쟁사가 있었다.

▶러시아는 1795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며 이 나라를 지도에서 지웠다. 학교에선 러시아어를 배우게 했다. 이후 1918년 폴란드가 독립할 때까지 피로 얼룩진 독립 투쟁이 전개됐다. 2차대전 발발 직후인 1939년, 나치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다시 분할 점령한 소련은 장교·경찰·지식인 2만2000명을 끌고가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숲에서 학살했다. 훗날 스탈린이 “폴란드가 다시는 독립할 수 없게 엘리트들 씨를 말리라”고 지시한 비밀문서가 공개됐다.
▶2010년 4월 레흐 카친스키 당시 폴란드 대통령과 정부 각료, 군 최고위 장성 등이 카틴숲 학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전원 사망하며 옛 상처가 다시 덧났다. 추락의 배후로 러시아 테러를 의심하는 영화가 제작됐고 폴란드 전역은 반(反)러시아 감정으로 들끓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은 반러시아 감정이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러시아 붉은광장에는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1812년 폴란드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운 동상이 지금도 있다. 폴란드는 이를 모욕으로 여긴다. 폴란드인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러시아가 최고의 적’이라고 한 응답이 94%나 됐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다음 목표는 우리”라며 나토와의 연대 강화에 나섰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도입했고 동부전선에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군과 합동방어 훈련도 했다.
▶폴란드 무기의 주력은 여전히 러시아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에서 처참한 수준이 드러나자 무기 선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 대상으로 한국을 선택해 어제 무기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도입 규모가 엄청나다. FA-50경공격기 48대, K2전차는 980대, K9자주포 648대 등 25조원대에 이른다. 무기 도입을 주도하는 이는 카친스키 전 대통령의 형이자 폴란드 집권당 대표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다. 그는 “동맹이 우리를 돕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러시아의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겐 한미 동맹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말라는 충고로 들린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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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美·獨·佛 제치고 한국産 선택한 이유

폴란드가 한국산 전차(armored vehicle)·자주포(self-propelled howitzer)·전투기(fighter jet)를 대량 구매하기로(buy in bulk) 했다.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대, FA-50 공격기 48대 등 한국 방산(防産) 사상 최대다. 수출 규모(export scale)가 25조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폴란드는 왜 미국이나 독일·프랑스가 아닌 한국과 손을 잡았을까(join hands with Korea). 한국산 무기 성능이 세계적 수준에 이른 데다(attain the world level)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는(have superb value for money) 이유가 있지만, 의외의 배경도 깔려 있다.
폴란드는 18세기 말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에 123년간 분할 지배를 당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러시아와 독일이 또다시 침략을 자행했다. 그런 굴곡진 역사에도 불구하고(despite the troubled history) 폴란드는 수십 년 동안 독일에 우호적 태도를 취해왔다(stay in favor of Germany for decades).
그랬던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현재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자는(support Ukraine in the ongoing war) 독일 입장을 지지해줬는데도 정작 원조는 거부당했다(be denied assistance). 그사이에 불구대천의 적(sworn enemy)인 러시아와 싸워주는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은 탓에(as a consequence of its hefty support) 이번 세기 최고율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 휘말리게 됐다(be in a grip of a record high inflation swirling at the highest rates in this century).
이를 계기로 폴란드 지도자들은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come to a consensus with the realities) 독일을 배척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take an anti-Germany stance). 게다가 기존의 독보적 유럽 군사 강국(unrivaled military might)인 독일과 프랑스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관계가 껄끄러워졌다(be estranged). 앞서 폴란드는 유럽연합이나 유로화(貨)에 반대 입장을 취해온 데다 독일 북부 옛 프로이센 주민들과 강한 연대감을 보여 독일 정부의 견제를 받아왔다.
폴란드는 더 이상 미국과 독일의 속국(vassal state)처럼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서방의 손에 놀아났던 끊임없는 굴욕(constant humiliations at the hands of the west)이 아시아의 선두 군산복합체 국가인 한국으로 향하게(turn towards the Asia’s leading military industrial complex) 한 것이다.
폴란드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은 김에 첨단 무기로 대체해(replace them with cutting edge weapons)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bolster its military power) 심산이다. 그러면서 독일의 소리 없는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대체재를 찾아(look for alternatives to undermine Germany’s silent attack) 자급자족을 이루려는 수단으로 한국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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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 본 ‘다시 갈라지는 세계’

지난 7월 16일 러시아에 입국해 다음 달 초까지 머물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5개월 가까이 지난 러시아 현지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훗날 논문과 책을 쓸 자료가 될 것이다. 이번에 3년 만에 모스크바로 들어왔을 때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입국 심사대에서 “3년 전에 우크라이나는 무슨 일로 갔나?”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이곳이 전쟁 중인 국가임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 후 일주일간 모스크바와 카잔을 거닐면서, 이 나라가 전쟁 중인 나라가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은 주요 도시 중심부만 돌아보았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체적 상황을 다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거리에서, 공원에서, 식당에서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서 전쟁의 영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러시아 분위기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전쟁을 독려하는 국가 프로파간다, 특히 러시아에서 새롭게 등장했다는 전쟁 상징인 알파벳 ‘Z’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모스크바 최고 중심부의 버스 정류장에서 ‘러시아와 돈바스의 아이들을 위하여’라고 쓴 광고판 따위를 두세 번 본 것이 전부다. 3년 전보다 물가가 무척 오르기는 했지만, 물가야 지금 전 세계가 전부 오르고 있지 않는가. 적어도 시민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러시아 경제는 서방의 전면적 경제 제재에도 견딜 수 있는 상당한 내구력을 입증한 것 같았다.
전쟁의 여파를 실감한 것은 의외의 영역이었다. 3년 사이에 러시아는 놀라울 정도로 무(無)현금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전에는 할머니가 우두커니 앉아서 동전을 받던 공중화장실까지도 전부 카드기가 설치되었고, 현금을 안 받는 곳이 많아져 카드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할 정도였다. 이런 변화는 분명 대단한 진전이다. 내가 경제 제재로 러시아에서 사용이 막힌 마스터카드 사용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러시아가 국제 결제망에서 배제되고, 대표적 국제 결제 카드인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철수하면서 해외에서 러시아로 돈을 보내는 일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하지만 러시아 시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불편 없이 카드를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러시아 자체 결제 시스템인 ‘미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러시아의 든든한 우방국이 된 중국의 알리페이를 받는 곳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내가 러시아에서 느낀 것은 전쟁의 긴장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잘 유지되는 평화 속에서 이제는 세계가 다시 본격적으로 갈라지고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러시아, 중국, 이란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에서 떨어지더라도, 자신들만의 독자적 시스템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연대체를 건설하고 있다. 전쟁 전에는 서방의 관광객들이 몰렸던 트레치야코프 갤러리 앞의 맥도널드는 ‘맛있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문구를 내건 러시아 햄버거 집으로 대체되었다. 가게는 서방 관광객 대신 러시아 손님들로 북적였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 질서에서 대대적으로 이탈해도 버틸 수 있다는 그들의 자신감이 허언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독의 록밴드 스콜피온스가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모스크바의 고리키 공원을 걸었다. 아마 스콜피온스가 바람을 느낀 1989년에도 비슷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은 달랐다. 우리 부모 세대는 청년기에 세계가 하나가 되는 바람을 맞았다. 우리 세대는 반대로 세계가 다시 둘로 나뉘는 바람을 맞게 되는 것 같다. 스콜피온스가 느낀 순풍보다는 거친 풍랑에 가까운 이 바람 속에서 슬기롭게 생존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세계를 다시 가르는 이 바람을 만만히 여기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조선일보(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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