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대만 방문이 남긴 숙제]
[美 펠로시 의장 ‘의전 실종’으로 드러난 우리 정치권의 모습]
[도마에 오른 고깃덩이]
펠로시 대만 방문이 남긴 숙제
[특파원 리포트]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회담한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블룸버그통신 기자가 물었다. “당신의 이번 방문으로 인한 대가를 상쇄할 만한, 어떤 구체적인 이익을 대만에 약속할 수 있습니까?”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만나 연설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대만을 자국 영토로 여기는 중국은 25년 만에 이뤄진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중대한 주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중국은 대만 기업체 4곳 이상을 제재했다. 대만산 감귤, 갈치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중국산 천연 모래의 대만 수출을 금지했다. 대만이 수백억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자의 질문에 펠로시 의장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는 칩스(CHIPS)법을 예로 들며 “미국과 대만의 경제 협력에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취지다. 칩스법은 한·일·대만 반도체 기업에 기회지만 가장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다. 핵심 제조 시설을 자국으로 불러들여 반도체 공급을 안정시키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어려운 숙제는 한국, 대만 등 외국 기업의 몫이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이 확정된 후 2% 넘게 떨어진 TSMC 주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방문에 따른 ‘군사행동’이라며 4일부터 대만 주변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훈련에 돌입했다. 중국은 대만 주요 항구, 군사기지는 물론 서태평양이나 일본 방면에서 미군이 대만으로 접근하는 길목을 차단했다. 대만 무력 통일 예행 연습 수준이다. 중국이 훈련 시간을 72시간으로 설정한 것도 미국 항모 전단이 대만에 접근하기 전에 군사작전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한국은 훨씬 심각한 정책 딜레마에 빠질 게 분명하다.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이 표현이 들어갔을 때 중국이 강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대만해협 문제에서 한·미가 공동의 입장을 밝힌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과 함께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행동을 비판할 것인가?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주한 미군 전투기에 참전 편의를 제공하거나 중국 북해 함대의 남하를 저지하는 작전에 참여할 것인가? 중국은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계산에 강한 나라다.
찬사를 받든 비난을 받든 이번 대만 방문으로 여든둘 노(老)정객 펠로시는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됐다. 동시에 대만해협 상황은 더 아슬아슬해졌다. 펠로시 의장은 19시간 대만에 머물렀지만 미·중 경쟁의 한가운데 있는 대만, 그리고 한국의 미래에 오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최우선 교수는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만해협 군사 충돌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시나리오별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펠로시 방문이 남긴 시급한 숙제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조선일보(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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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펠로시 의장 ‘의전 실종’으로 드러난 우리 정치권의 모습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소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를 통해 입국하고 있다.(주한미국대사관 트위터 캡쳐) 2022.8.4/뉴스1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국회에서 “안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동맹국인 한국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한미 동맹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논의한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굉장히 특별하다”고도 했다. 펠로시 의장과 김진표 국회의장은 회담 직후 공동 언론 발표문을 통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 확장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양국 정부의 노력을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이렇게 한미 동맹을 강조했지만 3일 밤 그의 입국 당시 우리 측 의전은 이와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펠로시 의장이 경기 평택 오산 기지에 도착할 당시 국회와 정부 관계자 아무도 영접을 위해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펠로시 의장은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 등 미국 관계자들만이 도열한 가운데 한국 땅을 밟았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할 당시에는 대만 외교부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공항에 나와 영접했다.
펠로시 의장은 공식적으로 김진표 의장과 회담을 위해 방한했기 때문에 국회 책임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교부는 “외국 의회 인사 방문에 대한 의전은 국회가 담당하는 것이 외교 관례”라고 했다. 국회 측은 “공항에 의전을 나가지 않기로 미국 측과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 경제 안보의 핵심 동맹국의 서열 3위 인사가 방문하는데 그 손님을 맞으러 나간 국회 인사나 정치인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잘한 일인가. 국회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 한 명도 공항에 나가 손님을 맞지 않았다. 그보다 바쁘고 중요한 어떤 국사가 있었나.
이 어이없는 일은 지금 여야가 제각각 심각한 내분에 빠져있는 우리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놓고 친윤(親尹)계와 이준석 대표 측이 연일 독설을 주고받으며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28일 새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후보와 친명(親明)계, 박용진 후보, 강훈식 후보, 친문(親文)계 등이 서로 뒤엉켜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여야 없이 모두 내분에 정신을 팔고 있으니 정작 중요한 외교 의전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일보(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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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에 오른 고깃덩이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우리는 보통 ‘도마’라고 풀이하지만 본래는 제기(祭器)였던 물건이 있다. ‘조(俎)’라는 글자로 적는 기물(器物)이다. 제사를 지낼 때 편평한 윗면에 고기를 올려놓도록 한 그릇이다. 나중에는 칼질할 때 밑에 받치는 ‘도마’의 뜻을 얻기도 했다.
그 위에 올린 어육(魚肉)을 ‘조상육(俎上肉)’으로 부른다. 제사상 그릇에 오른 희생(犧牲), 도마에 놓인 물고기나 가축의 신세를 일컫는다. 속뜻은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휘둘리는 상황’이다. 자칫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하는 처지다.
흐름이 비슷한 성어가 많다. 우선 연못에 갇힌 물고기를 지중어(池中魚)라고 부른다. 작은 새집 속에서 지내는 새는 농중조(籠中鳥)다. 둘을 한데 묶으면 지어롱조(池魚籠鳥)다. 인신의 자유를 남에게 구속당한 사람을 일컫는다.
항아리 속의 자라도 마찬가지다. 한자로는 옹중별(甕中鼈)로 흔히 적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아먹혀야 할 운명인 존재를 가리킨다. 주머니에 있는 물건이라는 뜻의 ‘낭중물(囊中物)’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이다.
당하는 쪽은 속절없이 남의 먹거리 등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이끈 행위자는 상황을 마음껏 쥐락펴락하려는 ‘장악(掌握)’, 대상을 제 의도에 따라 묶으려는 ‘제인(制人)’으로 보는 듯한 언어다.
달리 이르자면 싸움을 다루는 병법(兵法)의 시선이자 사유다. 길고 모질게 이어온 전쟁의 역사에서 중국인들이 키운 사고의 뚜렷한 패턴이다. 그런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드센 대외 확장 정책을 펼친 결과가 요즘 나타난다.
중국의 자금을 받은 여러 나라가 중국에 꼼짝 못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잇따른다. 도마 위 어육, 연못 물고기, 주머니 속 물건 등의 신세란다. 중국의 노련한 속셈에 말려든 결과다. 그러나 누구를 먼저 탓해야 할까.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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