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맨홀 참사] [치수(治水) 능력이 곧 국력]

뚝섬 2022. 8. 12. 09:18

[맨홀 참사]

[치수(治水) 능력이 곧 국력]

 

 

 

맨홀 참사

 

19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다. 나폴레옹 3세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골목길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 방향으로 뻗어가는 방사형 도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상만 봐서는 그가 한 파리 현대화 작업의 절반을 본 것일 뿐이다. 그의 시대에 만들어져 파리의 독특한 관광명소가 된 곳이 하수구다. 현대화된 파리를 떠받치는 시설의 절반은 지하에 있다.

▷맨홀은 농촌에는 없다. 맨홀은 도시에서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다. 사람(man)이 들어가는 구멍(hole)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어로도 같은 뜻의 트루 돔(trou d‘homme)이다. 하수도로 통하는 맨홀이 있고 상수도로 통하는 맨홀이 있고 전기통신선이 모여 있는 곳으로 통하는 맨홀이 있다. 맨홀을 통해 사람이 들어가서 이런 것을 점검하고 정비하지 않으면 도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무심코 지나가는 행인이 열려 있는 맨홀에 빠지는 사고가 세계적으로 보면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래서 맨홀에 들어가 작업할 때는 안내판을 주변에 설치해야 한다. 맨홀 뚜껑은 아무나 쉽게 열 수 없도록 두꺼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다. 두꺼운 쇳덩어리다 보니 팔면 돈이 꽤 돼 도난사고도 간혹 일어난다. 그 경우 도난은 둘째 치고 뚜껑이 없어져 맨홀이 열려있는 상태 자체가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맨홀 뚜껑에 잠금 장치를 해두기도 한다.

 

▷최근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에서 하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하수도 물이 역류해 엄청난 수압에 의해 무거운 맨홀 뚜껑이 열리고 지하로부터 물이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물이 솟구쳐 오를 때도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순간은 하수도의 수압이 다시 낮아져 지상의 물이 빠져나갈 때다. 마침 그럴 때 한 성인 남매가 맨홀 근처를 지나다가 먼저 누나가 맨홀에 빨려 들어갔고 누나를 구하려던 남동생마저 빠져 들어가는 참사를 당했다. 맨홀에 빠지면 구조가 난망이다. 지하관로로 휩쓸려 가버려 위치 파악 자체가 어렵다. 로봇을 이용한 수색 끝에 남동생의 시신은 다른 맨홀에서 찾았지만 그 누이를 찾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침수 지역의 한 시민은 열린 맨홀을 쓰레기통으로 막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것도 맨홀이 보일 때의 얘기다. 물이 깊고 탁해 열렸는지 닫혔는지 알 수 없는 맨홀이 도처에 있을 수 있다. 서울시에 보도에만 11만 개가 넘는 맨홀이 있다. 이 중 하수도 맨홀은 4만여 개다. 침수 순간 4만여 개의 맨홀이 죽음의 구멍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할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08-12)-

____________ 

 

 

치수(治水) 능력이 곧 국력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메갈로폴리스 도쿄의 역사는 16세기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 때문에 반강제로 에도(江戶)로 영지를 옮긴 데서 비롯된다. 당시 에도는 인간 거주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에도강’이 시시때때로 범람하여 거주지와 기반 시설을 황폐케 하는 것이 도시 개발에 큰 애로였다. 에도의 배후에는 ‘간토(關東) 평야’가 있었으나, 이곳도 우기마다 범람하는 ‘도네(利根)강’의 수해로 쓸모가 제한되어 있었다.

 

초기 쇼군들은 두 강의 치수에 역점을 기울였다. 도네강은 간토(關東) 지방에서 가장 수량이 많고 유역이 넓은 강이다. 상류의 여러 갈래 지류를 합류시킨 다음, 중간 지점에 대규모 제방을 쌓아 에도 쪽으로 흐르는 물길 일부를 도네강으로 돌림으로써 주변 지역의 수해를 제어하고 농경지를 확보하는 것이 치수의 요체(要諦)였다. 이에야스 때부터 3대 70년에 걸쳐 이룩한 이 대업을 ‘도네강 동천(東遷)’이라고 한다.

 

그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에도의 물난리가 줄어든 것은 물론 간토 평야가 일본 제1 곡창 지대가 된 것이다. 에도가 18세기 초반 인구 100만을 수용하며 막부 통치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도네강 동천으로 에도의 거주 안정성을 높이고 든든한 배후 식량 공급지를 확보한 데서 힘입은 바 크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한 개발 모범 사례가 되어 여타 다이묘들의 국토 개발 의욕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었다.

 

도네강 동천은 과거 일만은 아니다. 2006년에 완공된 ‘수도권 외곽 방수로(放水路)’는 지하 50m 지점에 총연장 6,3km에 이르는 대용량 수로를 만들어 위기 때 에도강의 유량을 도네강으로 유입시키는 시설이다. 400년 시차가 있지만 기본 발상은 도네강 동천과 같은 맥락이다. 도쿄의 발전사는 치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수 능력이 곧 국력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조선일보(22-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