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징비록]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원유처럼 비싸게 수출할 수 있는 물은 자원이다]
21세기 징비록
[윤평중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9월 7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현장을 찾아 상황을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태풍 ‘힌남노’ 대응에서 처음으로 ‘대통령답게’ 움직였다. 국민 고통에 공감했고 민첩했다. 포항 지역 아파트 지하 주차장 인명 피해 현장을 돌아보고 유족을 위로한 후 곧바로 포항과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8월 서울 폭우·침수 사태의 ‘무능과 둔감’ 딱지를 떼기 위한 윤 대통령의 절박한 ‘징비(懲毖)’다. 징비는 ‘지난 잘못을 스스로 꾸짖어 후에 환난이 없도록 삼간다’는 뜻이다. ‘징비록’은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의 지옥도(地獄圖)를 해부한 서애 유성룡(1542~1607)의 보고서다. 충무공 ‘난중일기’와 함께 구국의 리더십을 증명한 피와 눈물의 기록이다.
무한 당쟁에 매몰돼 세계 정세를 외면하다 국망(國亡)에 몰린 비극이 임진왜란이고 6·25 전쟁이다. 한국 좌·우파와 윤석열 정부도 당쟁 정치로 외치(外治)의 징비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치명적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미·중 그레이트 게임은 국제연합(UN)에 기초한 세계 거버넌스 체제를 우리 눈앞에서 붕괴시키고 있다. 상호 이익 관계가 얽힌 지구 경제가 전쟁을 막는다는 자유주의적 신념은 망상으로 판명됐다. 지역적 침략전이 준(準)세계 전쟁으로 비화하고 제한 핵전쟁과 자포리자 원전 재앙까지 운위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생생한 증거다.
우크라이나 전쟁 ‘나비 효과’인 에너지·원자재·식량난이 부른 수퍼 인플레이션 태풍은 세계 10대 수출 대국이면서도 소국(小國) 의식과 민족주의 감성에 매인 한국을 강타한다. 대만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예정된 전쟁’이 대만해협을 고리로 한반도를 습격하는 것은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경제 전쟁·기술 전쟁·군비 경쟁으로 시작한 미·중 대결이 언제 어떻게 열전(熱戰)으로 폭발할지 일촉즉발이다. 인류의 집단 지성이 충돌을 막지 않는 한 대만전쟁은 아마겟돈의 시한폭탄이다.
시진핑 절대권력과 중국 공산당 영구 집권의 최종 정당화 근거는 대만 통일이다. 불침항모(不沈航母)이자 반도체 산업 강국인 대만을 잃는 것은 미국 패권의 종말이다. 제국 미국과 제국 중국 누구도 대만을 양보할 수 없다. 미·중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의 시효는 끝났다. 한반도엔 핵 강국 북한이 버티고 있다. 가난하지만 잔혹한 군사 강국이 혼(魂)을 잃은 경제 대국을 복속시키는 사례가 세계사엔 넘쳐난다. 사상적으로 21세기는 비(非)민주적 자유주의[신(新)자유주의]와 비(非)자유적 민주주의[신(新)권위주의]가 충돌하는 이념 전쟁터이다. 국민과 지도자의 징비가 국가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시대다.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하는 지옥문이 열렸다.
총체적 위기의 순간엔 징비야말로 국정(Statecraft) 리더십의 핵심이다. 하지만 윤 정부 출범 4개월을 징비로 살펴보면 힌남노 대처와는 판이하게 다른 무능과 무기력을 만난다. 언론과 시민단체를 장악한 좌파 사회권력이 용산 대통령실을 포위하고 연일 적대적 비난의 십자포화를 퍼붓는 건 윤 정부 무기력증에 대한 변명거리가 못 된다. 인사 정책과 이준석·윤핵관 사태로 헤게모니(국민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를 잃은 것은 용인술에 실패한 윤 대통령 책임이다. 문재인 정권이 망가트린 나라를 바로잡으라는 시대정신에도 윤 대통령은 아직 응답하지 못했다.
지지 기반을 최대한 넓혀 역사의 도전에 응전하는 최대 연합의 정치는 윤 정부의 준엄한 의무다. 대통령 리더십 위기가 한국 우파의 위기가 되고 한국 우파의 위기가 대한민국의 위기로 커지는 상황이다. 온몸으로 고난을 헤쳐 온 대한민국 국민은 특정 정권의 위기가 국가 실패로 전이될 위험성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패의 늪에 빠진 제도 정치가 국민 삶의 고통을 풀지 못할 땐 국민이 여야와 좌·우파 정치권 전체를 물갈이하는 결정적 순간이 올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했을 때 탄핵이 벼락처럼 왔다.
수퍼 태풍은 앞으로도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다. 세계사적 도전과 민생 문제는 국가 존망을 결정할 정치적 태풍이다. 우리는 폭풍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눈물로 폭풍에 대비해 생명과 나라를 살릴 순 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삶과 죽음의 이치를 입증한 징비의 현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실사구시 리더십으로 국민 아픔을 덜어주었다. 이젠 대통령이 자신(自身)을 버리는 처절한 징비로써 ‘윤석열의 시간’을 증명할 때다. 국난(國難)을 함께 넘는 21세기 징비록의 길이 우릴 기다린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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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서른일곱에 얻은 늦둥이여서일까. 사춘기 반항이 한창이라는 남의 집 중2와 달리 아들은 엄마와 꼭 붙어 다니는 ‘엄마 껌딱지’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6일 새벽도 그랬다. ‘차를 옮기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그날은 따라오지 말라고, 엄마 혼자 가겠다고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그날 새벽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날이 개고 있던 수도권과 달리 경북 포항의 수해 상황은 심각했다. 인근 하천이 범람해 모자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밀려들었다. 엄마는 차를 빼려다 포기하고 나오려 했지만 수압에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밖에 있던 아들이 문을 열어줬다. 이미 걷기 힘들 정도로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몸이 약해 탈출할 자신이 없었던 엄마는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을 어렵게 돌려세웠다. “너라도 살아서 나가. 수영 잘하잖아.”
▷기독교인인 엄마는 천장 모서리 배관 위에 엎드려 구조될 때까지 15시간을 기도하며 버텼다. 늦둥이를 살아서 보겠다는 의지로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견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기력을 회복할 즈음에야 남편이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마음을 단디 먹어야 우리 아이 마지막을 볼 수 있다.” 아, 이 지옥을 보라고 신은 나를 어렵게 살려낸 건가. 왜 늙은 내 몸을 거두어가지 않고 축구와 떡볶이를 좋아하던 열다섯 어린아이를 데려가셨나.
▷고인이 된 박완서 소설가는 26년간 자랑스럽게 키워온 의사 아들이 사고로 앞서 갔을 때 묵주를 집어 던지며 신을 원망했다. “그 애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도 견디기 어렵거니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나 하는 회답 없는 죄의식은 더욱 참혹하다”고 썼다. “참척(慘慽)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그게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다.”
▷그날 물 빠진 지하주차장에서는 늦둥이 김 군과 함께 해병대를 갓 전역한 서 씨(22), 20년 넘게 홀어머니를 모셔온 홍 씨(52), 33년간 장손집 살림을 꾸려온 허 씨(55), 베트남 참전 용사 안 씨(76), 자식에 손 벌리기 싫어 퇴직 후에도 지게차를 몰던 남 씨(71)와 아내 권 씨(65)가 발견됐다. 성실했던 이들의 황망한 죽음을 보고서야 매뉴얼을 뜯어고치고, 차수벽을 세우고, 배수펌프를 설치하느라 부산하다. 포항의 비극 이후 세상은 좀 더 안전해지겠지만 그리운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 뜬다는 올 추석, 엄마는 선물인 듯 비수인 듯 늦둥이의 마지막 인사를 뇌고 또 뇌며 통곡할 것이다.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요.”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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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처럼 비싸게 수출할 수 있는 물은 자원이다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비가 많이 온다. 며칠 전에도 태풍 힌남노가 비바람을 동반하고 한반도 남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달 서울에는 하룻밤에 350㎜의 비가 내린 밤도 있었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이 1320㎜ 정도니 일 년 동안 내리는 비의 4분의 1 정도가 하룻밤에 내린 셈이다. 대부분의 하수도 시스템은 시간당 100㎜ 이하의 강수량에 맞춰져 있다. 그것도 백 년에 한 번 오는 홍수에 맞추어서 만든 하수 처리 용량이다. 그런데 이상기후로 인해서 백 년의 기록이 깨지고 있고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강수량의 비가 하늘에서 쏟아진다. 이에 반지하와 지하 주차장 침수로 인명을 잃는 비통한 소식도 있었다.
한국, 일본, 중국은 모두 벼농사 지역이다. 일 년 강수량이 1000㎜가 넘으면 벼농사를 짓고, 1000㎜ 이하면 밀 농사를 짓는다. 유럽은 850㎜의 강수량이 일 년 내내 고루 내리기 때문에 밀농사를 짓는다. 한·중·일이 속한 동아시아 지역은 몬순기후여서 여름철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강수량이 유럽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국과 중국에서는 임금의 주요 덕목으로 치수를 들었다. 물을 다루는 치수 사업은 농사와 주거 환경 안전에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치수 사업이라고 한다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저수지와 보를 만드는 일이다. 빗물에만 의존하는 천수답은 흉작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천 준설 작업이다. 조선 한양은 상수도는 우물로 해결했고, 하수도는 자연이 제공한 청계천으로 해결했다. 비가 오면 청계천으로 산과 도로에서 씻긴 흙이 유입된다. 유입된 흙은 청계천의 바닥에 쌓여서 시간이 흐를수록 청계천의 깊이는 얕아지게 된다. 하천 바닥이 올라가면 적은 비에도 청계천은 범람하게 된다. 이때 하수도로 사용되어 오물이 가득한 청계천 물이 넘쳐서 주변의 우물로 들어가서 식수를 오염시켰고 이후 전염병이 도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영조는 청계천 바닥의 흙을 파내는 준설 사업을 실행했다. 이러한 치수 덕분에 다음 세대인 정조대에 이르러서 안정적으로 한양의 인구가 증가되었고, 늘어난 인구는 상업 발달로 이어져 조선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다.
기후변화의 21세기에 우리는 어떤 치수 사업을 해야 할까? 우리는 유엔이 선정한 물 부족 국가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물 부족 국가인가 의아할 것이다. 물 부족 국가를 계산하는 방법은 연간 강수량에서 유출량을 빼서 총 수자원량을 계산한 뒤 이를 그 지역의 인구수로 나누어서 값을 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수량은 많지만 대부분의 물을 바다로 흘려보내기에 급급하다. 우리는 치수 사업을 빗물 배수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정말 안타깝고 바보 같은 낭비다. 물은 자원이다. 물은 원유만큼 비싸게 수출할 수 있는 자원이다. 2022년 9월 기준으로 두바이 원유는 L당 805원이다. 수입한 물인 1L짜리 에비앙의 소비자 가격은 1000원이다. 이상기후로 앞으로 물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비를 그냥 흘려서 바다로 보내는 것은 원유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제 비를 자원으로 생각하고 모아서 물이 부족한 다른 나라로 수출할 생각을 해야 한다. 북한과 협의해 북한을 관통하는 송수관을 만들면 중국 만주로 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잘 담아서 사용할 수 있을까? 서울대 한무영 교수의 책 ‘지구를 살리는 빗물의 비밀’에 따르면 물은 하늘에서 내릴 때가 가장 깨끗하다고 한다. 물은 위에서 포획할수록 깨끗해서 사용하기 좋다. 물이 강이나 운하로 내려오게 되면 중간에 있는 더러운 오물들과 섞여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무영 교수의 이야기다. 책에서 한 교수는 산 중턱에 작은 저수지를 여러 개 만들어서 하천으로 물이 유입되기 전에 물을 가두어서 홍수를 예방할 것을 제안했다. 높은 곳의 저수지에 저장된 물은 필요할 때 수로를 통해서 중력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필요한 곳으로 공급이 가능하다. 빗물이 하천이나 운하로 들어가게 되면 필요한 곳에 물을 공급할 때 펌프를 사용하여 중력을 거슬러서 필요한 곳으로 올리는데 전기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환경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의 70%가 산지로 되어 있고 이 지형을 잘 이용한다면 손쉽게 수만 개의 작은 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스마트 워터 그리드’를 만들 것을 제안해 본다. 각 지역의 강수량과 저수량을 빅데이터로 관리하고 이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21세기의 치수 사업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북한의 함경도와 평안도의 산맥에 한국 정부가 투자해서 보를 만들고 여기에서 모은 빗물을 수출해서 이윤을 나누는 식의 남북 경제 협력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은 노동력이 저렴해 우리나라에 저수지를 만드는 가격의 10분의 1가격으로 북한에 저수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의 원가가 줄어드는 만큼 이윤은 커진다.
우리는 하룻밤에 300㎜ 이상의 비가 내리는 땅이다.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1년에 150㎜ 정도 내린다. 관리가 안 된 비는 재앙이지만 준비가 된 자에게 비는 축복이다. 높은 곳에서 빗물을 저장하면 하천 범람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물 부족의 시대에는 수해를 당하지 않게 준비를 하는 것만큼이나 빗물을 저장하고 이용할 방법도 고민을 해야 한다.
-유현준 교수·건축가, 조선일보(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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