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이끈 미국이 자유무역을 뒤흔들고 있다]
[美 바이오까지 자국산 우선… 韓 BBC 동시타격 대책 세우라]
[美·EU 탄소국경세에 대비책 있나]
세계화 이끈 미국이 자유무역을 뒤흔들고 있다
[朝鮮칼럼]
미국, 중국의 대만 봉쇄로 ‘반도체 핵 겨울’ 올까 봐 우려
경제성보다 안보 우선하는 새로운 무역 질서 구축에 나서
변화의 물결에 빠르게 올라타는 빠른 추격자 DNA 되살려야
현대·기아차는 수소차에 발이 묶여 전기차 출발이 늦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기동력과 뚝심을 앞세워 올해 깜짝 성장세를 보였다. 상반기 미국 현지 전기차 판매량이 작년보다 무려 317%나 급증하며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에 올랐고, 아이오닉5·EV6 등 신차 출시 때마다 현지 미디어와 시장 평가 기관의 호평이 이어졌다. 블룸버그는 지난 6월 “미안해요 일론 머스크, 현대가 조용히 전기차 시장을 장악해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제 가장 핫(hot)한 전기차는 현대차에서 나온다. 현대차는 단 몇 개월 만에 테슬라의 지난 10년간 판매 실적을 따라잡았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머스크 스스로도 자신의 트위터에 “현대차가 꽤 잘하네”라고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북미에서 생산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해 최대 76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현대차의 초기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위기에 처했다. 폴크스바겐·볼보·닛산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그나마 북미 생산 모델이 보조금 대상으로 살아남았지만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는 해당 모델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현대차그룹이 무려 100억달러가 넘는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질 한번 없이 전격적으로 법안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도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중국 투자 제한 조항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다. 법안에는 “미국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첨단 공장을 짓지 못하고, 저가 반도체 공장을 증설할 경우에도 중국 시장에서만 판매해야 한다”는 강력한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한마디로 중국에서는 반도체 추가 투자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고향인 시안에 낸드 플래시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 중국 우시에 주력 D램 공장을 두고 있는 SK하이닉스 모두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작년 말 미국 인텔의 중국 소재 낸드 반도체 공장을 90억달러에 인수한 SK하이닉스 안팎에서는 인텔이 미국 당국의 규제 움직임을 미리 알고 중국 공장을 매각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1990년대 디지털 전환과 세계화를 앞세워 제조 강국 일본·독일을 따돌리고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에 오른 미국은 자신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구축한 세계화와 자유 무역을 뒤흔들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싼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까’라는 의사 결정 기준이 지금은 ‘어디서 생산하는 게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로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보호주의(protectionism)는 미 의회에서 ‘반칙’과 동의어로 통했지만, 지금은 미 상무부 장관이 반도체 지원법을 브리핑하면서 “법 시행의 첫 번째 목표는 국가 안보”라고 대놓고 말한다. 미국에서 필요한 첨단 반도체의 90%를 한·중·대만이 생산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의 첨단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반도체 핵 겨울(semiconductor nuclear winter)’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미국의 우파는 세계화가 중국과 러시아 같은 적성국의 팽창을 초래했다고 뒤늦은 반성을 하고, 좌파는 신자유주의가 소득 양극화와 기후변화를 가속화했다며 탈(脫)세계화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 30년간의 글로벌 경제 체제를 뒤집는 탈세계화와 공급망 재편은 많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값싼 노동력이 무한히 공급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마이클 스펜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경고대로 고물가가 일상화될 수 있다. 당장 세계화의 상징인 아이폰 신제품 가격은 공급망 혼란 속에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작년보다 15~20%가량 오를 전망이다. 미국 소프트웨어, 한국 부품, 중국 제조라는 세계화의 성공 방정식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제조 강국 독일과 일본이 디지털 전환을 주저하다가 IT 산업 경쟁에서 탈락했듯이 탈세계화 속에서도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다. 이런 때야말로 뒤통수 맞더라도 속이 뒤틀리더라도, 설령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매몰 비용(sunk cost)이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변화의 물결에 편승해야 한다. 한국 특유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DNA를 되살려야 한다.
-조형래 산업부장, 조선일보(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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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바이오까지 자국산 우선… 韓 BBC 동시타격 대책 세우라

AP/뉴시스
미국이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자국 내 생산을 확대, 지원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신약과 바이오 연료 등의 생산 설비와 인력, 인프라 확충 방안을 담은 행정명령에 곧 서명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이자 핵심 미래 산업인 이른바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분야가 모두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전략이 몰고 오는 폭풍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에 이은 미국 내 바이오산업의 제조 기반 강화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라고 한다.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내 정책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국 주요 기업들에 불똥이 튀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의존도가 높고 중국과 미국을 1, 2위 교역국으로 갖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생존이 달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내 바이오 생산시설 확대는 위탁생산에 강점을 갖고 있는 한국 바이오업체들의 국내 생산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1대당 1000만 원 가까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한국 자동차에는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미국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과학법’은 대중 신규 투자를 제한한 가드레일 조항으로 우리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익 앞에서는 동맹관계도 밀쳐놓는 게 냉정한 국제사회 현실이다. 미국이 7조 원대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을 설득해 자국에 투자하게 만드는 상황도 벌어졌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양국의 투자, 수출 제한 조치 또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대외 협력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국익을 극대화할 경제안보 전략을 짜야 한다. 미 의회와 행정부 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정보력 강화 조치가 시급하다.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사안에는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공격적인 교섭력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통상질서의 지각변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넋 놓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이대로는 미국에 뒤통수를 맞았던 ‘인플레감축법의 실패’를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지 말란 법이 없다.
-동아일보(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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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탄소국경세에 대비책 있나
EU, 강화된 탄소국경세 통과
미국도 도입 시 수출 1% 감소
文정부, 장밋빛 계획에 허송세월
尹정부는 정책 수립에 속도 내야
유럽의회는 지난 6월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국경세)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탄소 감축에 소극적인 나라의 제품에 강제 부담금을 매기는 것으로 내년부터 4년간 계도 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본격 실행한다는 계획이다. 초안보다 강화된 내용으로 통과된 게 특징이다. 당초 철강·알루미늄·시멘트를 비롯한 5개 항목을 우선 적용 품목으로 적용할 계획이었지만 플라스틱·유기화학품·수소·암모니아 등 4개를 추가했다. 또 초안에서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만 부과 대상으로 삼았지만 6월 통과된 수정안에서는 제품 생산에 쓰인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까지 포함시켰다.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직접 배출량에 대한 관세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인데 간접 배출량까지 따진다는 것이다.
탄소국경세가 부과되면 수출 기업 입장은 그만큼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타격을 입는다. 무역협회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유럽연합(EU) 수출액 가운데 이들 9개 품목이 차지하는 비율은 15.3%에 이른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2020년 탄소배출량은 1990년 대비 124.8% 증가했다. 미국(-7.3%), 영국(-49.1%), 독일(-41.3%), 프랑스(-27.0%) 등 선진국에서 배출량이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우리나라는 작년에도 탄소 배출량이 전년보다 3.5% 늘었다. 탄소국경세는 미국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 예측으로는 EU와 미국이 탄소국경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수출은 연간 1.1% 감소한다.
이처럼 해외에서 탄소 규제 강화를 통한 무역 장벽이 차곡차곡 세워지고 있지만 우리 탄소 정책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원전을 배제하고 재생에너지를 무리하게 확대하는 내용의 탄소중립 계획을 내놓은 탓이 크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확대 등으로 전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을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세부 계획은 내년부터 나올 예정이다. 해외에서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탄소 규제에 대비할 시간을 허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해외 탄소 규제는 국내 기업 혼자서 대응하기 어렵다.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문 정부는 30년 후 실현이 될지도 모르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당장 눈앞에 닥친 탄소 규제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를 들어 문 정부가 철강업계에 탄소중립 방안으로 제시한 수소환원 제철기술 등의 상용화는 이른 시일 내에 현장에서 구현되기가 어려워 세계의 탄소 규제 시간표를 감안하면 당장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징검다리 기술’ 개발이 필요한데도 문 정부가 이를 고민한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산업계와의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탄소중립 추진 전략과 단계별 목표를 제조업이 많은 우리 산업 현실에 맞게 다시 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도 더 이상 전 정부 책임론만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정책을 컨트롤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넘도록 아직 조직 정비조차 끝나지 않았다. 탄소중립에 대한 현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정책 수립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머뭇거릴 새가 없다. 환경 문제는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경제성장과 환경을 두루 챙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승범 기자, 조선일보(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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