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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의 분노] [‘문학 청년’ 황동혁을 추억함]

뚝섬 2022. 9. 16. 06:15

[수리남의 분노]

[‘문학 청년’ 황동혁을 추억함]

 

 

 

수리남의 분노

 

007 시리즈를 쓴 소설가 이언 플레밍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소련을 악의 화신으로 그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007은 달랐다. 악당은 소련 KGB가 아니라 KGB 출신이 가담한 국제 테러 조직 ‘스펙터’라는 식이었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1986년 ‘탑건’에 나오는 적국 전투기는 미그 28이다. 그런데 미그 28이란 전투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련과의 혹시 모를 분란을 이런 식으로 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가 특정 국가를 대놓고 악당으로 묘사한 사례는 많지 않다.

 

▶탑건 후속작 ‘탑건-매버릭’도 마찬가지다. 전투기 조종사 임무는 유엔 결의를 위반한 적국의 우라늄 농축 시설 파괴다. 그런데 적국 전투기에 국기가 없고 그들이 쓰는 언어도 어느 나라 말인지 없다. 북한이나 이란일 거란 분위기만 낸다. 한국 영화는 이런 문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범죄도시 2′ 베트남 호찌민( 사이공) 납치·살인이 난무하는 무법 도시로 그렸다. 베트남은 이 영화의 자국 내 상영을 불허했다.

 

▶남미 국가 수리남이 이달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했다. 나라를 마약 거래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했다는 게 이유다. 마약 운송 국가 이미지를 벗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한국 드라마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14일 기준 ‘수리남’은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3위다. 이런 주목도 높은 드라마가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어떤 나라든 자국 이미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자국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외국 콘텐츠에 참기만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을 마약이나 성매매 천국으로 묘사한 영화가 세계 3위로 관객 몰이를 한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드라마뿐만이 아니다. 옛 국명이 터키였던 튀르키예는 1980년대 일본 퇴폐 목욕업 명칭이 도루코부로(トルコ風呂·터키탕) 것에 항의해소프랜드 이름을 바꾸게 했다. 이탈리아는 한국 때수건 이름이 이태리타월이라는 불쾌해한다.

 

▶K팝과 영화·드라마 강자로 도약한 한국은 이제 영미와 유럽의 문화 강국들처럼 전 세계를 의식하며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나라가 됐다. 세계는 우리를 향해 박수만 치는 것이 아니다. 전엔 그냥 넘어갔던 것들에 섭섭해하고 화도 낸다. 수리남이란 국명을 굳이 쓰지 않고도 같은 내용의 영화를 만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갈등이 원만히 수습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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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청년’ 황동혁을 추억함 

 

<YONHAP PHOTO-3285> 에미상 드라마 부문 감독상 받은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드라마 부문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미 에미상 6관왕에 오른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늦깎이 감독’에 가깝다. 요즘 젊은 영화인들이 선호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나 봉준호·최동훈 감독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다. 국내 대학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뒤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뒤늦게 유학을 떠났다. 학교는스타워즈 조지 루커스와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등을 배출한 영화 명문이다.

 

대학 시절 같은 학과에서 함께 공부한 인연으로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의 자취방에서 새우깡을 안주 삼아 소주를 나눠 마시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면 좁은 방구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소설책과 시집들이었다. 그는 영화 지망생 이전에 문학청년이었다.

 

황 감독이 소설가 김훈의 원작을 영화화한 2017년 ‘남한산성’의 문향(文香) 가득한 대사에도 청춘의 흔적이 녹아 있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모진 겨울을 견뎌낸 것들이 그 봄을 맞을 테지요”…. 당시 황 감독은 최명길(이병헌)의 대사들도 원작을 크게 손보기보다는 최대한 살리는 편을 택했다. 예전 인터뷰에서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소설에서 말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요즘 사극처럼 쉽게 풀어 쓸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굳이 김훈의 소설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황 감독이 유학을 떠나기 전 대학 선후배들에게 ‘유학 자금을 후원해달라’고 부탁한 일화도 기억난다. 이전까지 틈틈이 촬영했던 습작 단편들을 공개하면서 “지금 내게 투자하면 나중에 몇 배로 돌려받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유학 자금을 당당하게 투자 받겠다는 배포도 놀라웠지만, 실제로 선후배들이 그의 말을 믿고 수십만 원씩 갹출한 것도 돌아보면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당시 크게투자하지 못한 못난 감식안을 지금은 후회한다.

 

그렇게 힘들게 영화를 공부한 황 감독은 2004년 단편 ‘기적의 도로(Miracle Mile)’가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감독의 길을 걸었다. 장편 데뷔작인 ‘마이 파더’(관객 90만명)는 참패에 가까웠지만, 그 뒤 ‘도가니’(466만명) ‘수상한 그녀’(866만명) ‘남한산성’(384만명)을 통해서 흥행 감독으로 거듭났다. 시사회에도 예전 그의 ‘투자자’였던 선후배들을 초청했다.

 

황 감독은 ‘사연팔이’를 그리 반기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래전 추억을 꺼낸 이유가 있다. 자신의 길을 조금은 뒤늦게, 힘들게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크든 작든 결실을 보는 날이 언젠가 온다. 지금의 고된 청춘들에게도 황 감독의 문학청년 시절을 전해주고 싶었다.

 

-김성현 기자, 조선일보(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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