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한국 역사상 최저질 외교 논쟁] .... [언어유희]

뚝섬 2022. 10. 5. 08:36

[한국 역사상 최저질 외교 논쟁]

[새삼 대통령의 정치적 매력을 생각한다]

[언어유희]

 

 

 

한국 역사상 최저질 외교 논쟁

 

[선우정 칼럼]

한국은 외교로 죽고 사는 나라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논쟁이 잦다
나라 살린 논쟁도, 죽인 논쟁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저질은 정말 처음 봤다

 

외교 사절 김홍집에 의해 일본에서 반입된 외교지침서 ‘조선책략’을 유생들이 벌 떼처럼 공격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가슴이 떨리며 통곡했다”고 했다. 책의 핵심 내용은 “중국을 더 가까이 하고 일본, 미국과 손을 잡아 조선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러시아를 막으라”는 것이다. 1880년, 러시아의 팽창이 지금보다 더 세상을 위협하던 때였다. 중국 외교관이 중국 정부의 세계 전략에 따라 썼고 친중(親中)을 앞세웠다. 그런데 중국을 받드는 유생들이 저자를 “사문난적(斯文亂賊)의 효시”라고 비난하면서 “책을 반입한 김홍집을 벌하라”며 들고 일어났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일본 2차 수신사 김옥균이 일본에서 가져온 서적 '조선책략'이 조선에 파동을 일으켰다. 그 파동의 극단적 표출이 갑신정변이다. 정변의 실패가 결과적으로 조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만인소’라고 부르는 상소문에서 그들은 “그런 글을 받아들였다가 중국이 이를 가지고 따지고 시끄럽게 떠든다면 무슨 말로 해명하겠느냐’고 했다. 오랑캐 나라에 대해 중국과 대등하게 결연과 연대를 운운하면 중국이 화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세상 모르고 한 소리였다. 조선책략은 중국 정부의 공작으로 조선에 유입된 것이다. 열강에 밀리던 중국은 외교에서 천자의 지위를 한참 전에 버렸다. 중국이 아니라는데, 괜찮다는데 먼 나라 시골 유생들이 “주공과 공자, 주자의 가르침을 밝혀야 한다”며 중국을 위해 분개하고 통곡한 것이다.

 

유생들을 한심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들에게 그것이 세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김홍집의 사행길에 동행한 박상식은 향촌 유생이었다. 그가 쓴 사행기 ‘동도일사(東渡日史)’엔 거대한 근대 문명에 압도된 조선 유생의 현기증이 서술돼 있다. 도쿄의 기차 체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날아가는 새가 연기에 엉겨있는 듯 지나가지 못하고 뒤에 처진다… 귓가에는 천둥 치는 소리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니 바람을 막는 신선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으리라.” 놀란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안식처는 도쿄의 공자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더 큰 충격을 받고 탄식한다. 공자묘가 근대식 사범학교와 도서관,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장 속에 유리로 덮어놓은 책이 천만권인데 양서(洋書)가 오히려 많으니 학생 모두가 오랑캐로 변했구나.”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진지했다. 2년 후 임오군란이 일어나 조선은 중국 군관 위안스카이 치하에 놓였다. 조선의 등골을 빼먹는 데 혈안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조선의 문신이자 접빈관 김창희는 위안스카이 등 조선에 파견된 중국 지배자들에게 조선의 살길을 끝없이 물었다. 위안스카이는 진지하게 응했다. 그는 조선의 다섯 가지 물산을 열거하고 이들을 다스리면 조선이 부유할 수 있다고 했다. 뽕나무로 강토를 개벽해 정예군 삼사천을 키울 수 있고 험한 산세를 잘 활용하면 일본의 침략 야심 정도는 억누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선의 생존 전략서를 따로 만들어 전한 중국 지식인도 있었다. 모두 ‘자강(自强)’을 부탁했지만 조선은 이루지 못했다.

 

한국의 지금 상황을 조선 말기에 빗대 비판하면 “그때와 국력이 다르다”고 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상투적인 비교라는 것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 엘리트의 지력(智力)이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에 대해선 고민해야 한다. 조선 말 외교 논쟁을 읽으면 비록 시대를 잘못 읽었지만 그들은 지적이었고 진지했고 치열했다.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근대화 성공을 쉽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일본은 패하면 유학을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에 지면 미국에, 영국에 지면 영국에 인재를 보냈다. 국제 정세를 익히고 세계 속에서 나라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했다. 조선이 일본만큼 당대의 지식인을 세계에 쏟아낼 수 있었다면 중국의 자장(磁場)에서 탈출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신바시역에 있는 일본 열차. 일본은 조선 외교사절이 왔을 때 도쿄~신바시 노선을 경험하게 했다. 철도는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연간 20만명이 세계로 유학 간다. 국민의 학습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만큼 엘리트가 많은 나라가 드물다. 조선 지식인이 꿈꾸던 나라다. 엘리트 중 엘리트가 정치에 몰려 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날마다 떠드는 핵심 외교 사안이 ‘이 ○○ 논쟁’이다. 세상엔 별별 엉터리가 있다. 초능력자만 모여있는지 어떤 매체는 딱 보면 광우병이거나 100만명이고, 딱 들으면 이 ○○, 바이든이다. 그냥 넘어갈 일이다. 미국도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나라가 흔들리는 듯 “외교 참사”라며 통탄한다. 반미의 선봉에 있던 사람일수록 미국 심기를 걱정하는 코미디를 벌이고 있다. 조선 유생의 반발에는 그들 나름의 철학과 세계관이 있었다. 지금은 비난을 위한 비난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한국은 외교로 죽고 사는 나라다.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외교 논쟁이 잦다. 나라를 살린 논쟁도, 죽인 논쟁도 있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이번과 같은 저질 논쟁은 처음 봤다. 정치의 지력이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라는 돈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민도(民度)”라고 부르는 사회 구성원의 수준, 특히 엘리트의 지력이다. 이런 정치, 국회를 방치하면 남이 건드리지 않아도 나라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2-10-05)-

_____________

 

 

새삼 대통령의 정치적 매력을 생각한다

 

대통령의 품격 위엄 권위는 소중한 국정 동력
순방 논란으로 언행 중요성 확인하면 전화위복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여파가 이런 식으로 이어질지는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 발언 논란에 대해 보여준 대처와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은 대선 못지않게 비호감이다.

어쩌다 한국 정치가 이 지경이 됐을까. 여러 원인이 작용했겠지만, 일단 야당이란 변수를 빼고 제1상수인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많은 전문가들이 대통령을 하려면 견고한 지지층이나 일정 수준의 원내 세력, 또는 지역 기반 중 한두 개는 필요하다고들 한다. 윤 대통령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20%대 중후반의 지지세와 윤핵관, 그리고 대구경북 등의 기반이 있다. 그럼에도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취임 후 가장 낮은 24%대의 지지율로 다시 내려갔다. 순방 논란 탓이라지만 한미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등 큰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잘 드러나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대통령의 부족한 정치적 ‘매력 자본’이 그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를 지낸 캐서린 하킴 박사가 쓴 동명의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매력 자본은 돈, 스펙 말고 상대방을 끌어당기는 개인의 역량을 말한다. 퍼스낼리티의 영역이다. 이를 정치의 틀로 보면 국민들의 마음을 사고, 정적이나 상대방의 호감을 이끌어내 국정 동력을 마련하는 것을 뜻한다.

 

하킴의 매력 자본 개념이 아니더라도 동서양의 유명 정치 지도자는 각자의 정치적 매력을 국정 동력으로 삼아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눌하지만 사안의 핵심을 뚫는 직관의 언어와 실천력으로 승부사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정보화 등 어젠다를 던지며 시대를 이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칠긴 했어도 지역감정과 기성 질서에 도전하며 뿜어낸 사자후가 매력 자본이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는 듣다 보면 눈물나는 품격과 공감의 언어가 압권이었고, 조지 W 부시는 부족해 보이면서도 눈높이를 낮춰 사람들에게 친구처럼 다가갔다.

이렇게 정치 지도자의 매력은 결국 언행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순방 중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매우 소모적이지만, 동시에 대통령이 갖춰야 할 말과 행동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다는 점에서는 필요악인 측면도 있다. 지금 상황이 온전히 윤 대통령의 탓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야당에서 모든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답은 없다. 사람들이 윤 대통령의 문제 발언 중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불분명한 그 표현 때문에 실망하는가. 오히려 이 ××’ ‘쪽팔려서’란 표현을 사용하고 이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하니까 고개를 가로젓는다.

탈(脫)권위의 시대라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에게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품격 위엄 권위 같은 가치를 기대한다. 그런 게 지도자에게 느끼고 싶은 매력이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군주제 논란에도 그리 사랑받고 떠난 것도 70년간 온 힘을 다해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권위를 지켜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법리적으로 딱 부러지게 잘못한 것도 없으니 현 상황이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사실에 대한 진상 규명 전에 판단이 끝나는 경우가 있다. 이 사안을 법조인의 시각으로만 보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검사 시절의 언행은 버리고, 절차탁마한 말과 행동이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다.

-이승헌 부국장, 동아일보(22-10-05)-

_____________

 

 

언어유희

 

[차현진의 돈과 세상]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말이 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역삼역이 그러하다. 이를 영어로 팰린드롬(palindrome)이라고 한다. 단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련하다, 사장집 아들 딸들아, 집장사 다하련가”처럼 문장으로도 가능하다. 웃긴다.

 

팰린드롬보다 조금 더 발전한 언어유희가 어크로스틱(acrostic)이다. 가로로 읽는 글의 각 행 첫머리를 세로로 읽으면 숨은 뜻이 드러나는 글이다. 우리나라의 삼행시가 그렇다.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아내에게 보낸 시의 각 행 첫 글자를 세로로 읽을 때 엘리자베스 즉, 아내 이름이 나온다. 그 암호가 풀리는 순간 웃게 된다.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어 ‘거울 속으로’라는 동화를 썼다. 그 책 마지막에 시를 한 편 남겼다. 각 행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앨리스 리델’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캐럴이 짝사랑한 이웃 집 여자애다. 겨우 열한 살짜리 미성년에게 연정을 품는 소아성애자로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던 캐럴은 금지된 사랑을 어크로스틱에 숨겼다. 사람들이 눈치 채자 캐럴은 시치미를 뗐다. 독자들은 억측을 멈추고 그냥 웃었다.

 

팰린드롬이나 어크로스틱이 서양식 언어유희라면, 삼행시나 파자(破字·글자 분해)는 우리나라 언어유희다. 김삿갓이 그 분야의 대가였다. 그런데 유희가 유희로 끝나지 않았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파자는 정국을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조(趙)광조가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 속에서 개혁파가 숙청당했다. 기묘사화다. 웃을 수 없었다.

 

1519년 이 무렵 중종이 ‘주초위왕’에 대해 보고받았다. 그때 ‘위왕’을 “왕을 위해서 목숨도 바친다(爲王代死)”로 넉넉하게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달라졌다. 지레 짐작하여 글의 의도를 억측하고 굴레를 씌우면 위험하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지금 세태도 마찬가지다. 억측은 멈추고, 넉넉함과 웃음은 늘려야 한다.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조선일보(22-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