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밀’에 익숙한 사회]
[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받은 서울청장, 지금 경찰 정상 아니야]
[이태원 참사 왜 못 막았냐고 비판할 자신은 없다]
[112 녹취록]
[대형 사고에 임하는 태종의 자세]
[아무것도 하지 마라]
‘과밀’에 익숙한 사회
1970년대 서울에서 등굣길 만원 버스를 몰던 운전기사들에겐 특유의 기법이 있었다. 이른바 ‘욱여넣기 회전’이다. 버스 중간에만 출입구가 있고,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여성이 버스 차장을 할 때 얘기다. 버스 차장이 출입구 손잡이를 잡은 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출발시키면 기사는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 20~30m쯤 가다가 갑자기 핸들을 오른쪽으로 홱 돌려버린다. 그러면 출입구 쪽에 몰려 있던 승객들이 버스 안쪽으로 쑥 들어가게 되고, 공간을 확보한 버스 차장은 그제야 문을 닫는다. 아침 등굣길 일상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엔 ‘푸시맨’이 있었다. 만원 전철 문이 닫히도록 승객을 힘으로 밀어 넣는 아르바이트였다. 요즘 같으면 성추행 시비도 벌어졌을 법한데 그때만 해도 제법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10년 전 한 방송 퀴즈 프로그램 문제로도 나왔다. 안전사고 문제가 제기되면서 푸시맨은 사라지고 2008년엔 무리한 탑승 시도를 막는 ‘커트맨’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과밀에 따른 안전 문제는 여전하다. 혼잡한 서울 지하철 출퇴근길은 늘 아슬아슬하다.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은데도 일부 승객은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몸을 욱여넣는다. 지난해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9호선이 대표적이다. 전동차 한 칸 표준 탑승 인원은 160명인데, 지난해 출근길 9호선 일부 구간의 열차 한 칸엔 약 300명이 타고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광역 버스도 전쟁터를 방불케 할 때가 많다. 과밀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밀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1968년 동물 행동학자 존 캘훈은 과밀의 결말에 대한 실험을 했다. 가로세로 2.7m 공간에 쥐들이 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빠르게 번식하던 쥐들은 개체 수가 2200마리로 정점에 이르자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았다. 과밀로 생긴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번식이 멈추면서 개체당 공간이 늘었지만 개체 수는 다시 늘지 않았다. 실험은 몇 년 뒤 마지막 남은 쥐가 죽으면서 끝났다.
▶이태원 참사 후 과밀 공포를 느낀다는 말들이 나온다.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으로 부산의 4배에 가깝다. 과밀이 일상이었는데 위험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재난 전문가는 이태원 참사 원인으로 시민들이 과밀에 익숙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래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과밀의 위험을 너무 안일하게 넘긴 대가를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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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받은 서울청장, 지금 경찰 정상 아니야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사고와 관련한 입장표명에 앞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2022.11.1/뉴스1
서울 치안의 사령탑인 서울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발생 1시간 21분 뒤 용산경찰서장에게 첫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보고를 받은 29일 밤 11시 36분경은 압사 사고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올 무렵이었다. 소셜미디어에선 생중계하듯 사고 내용을 전파하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고받은 시각도 그보다 35분 빨랐다. 국정상황실을 통해 경찰이 아닌 소방청 상황실의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서울청장이 그날 밤까지 서울 도심 집회의 경비를 지휘했다고 해도 적어도 사고 직후에 보고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서울청장에게 전화 한 통 한 사람이 없었다. 경찰이 소속된 행정안전부 장관도 경찰이 아닌 소방에서 첫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현장 대응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첫 112 신고자는 “이태원역에서 굉장히 좁은 골목으로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다”며 “내려오는 사람, 클럽에 줄 선 사람과 섞여 압사당할 것 같다”고 했다. 혼란한 상황에도 위기 현장을 경찰에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 신고자는 “경찰이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통제해 (골목 안) 사람을 일단 뺀 다음 들어오게 해 달라”고도 했다. 참사 3시간 41분 전에 접수된 내용이다. 1시간 42분 전엔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져 다치고 있다”며 현장 영상을 경찰에 보낸 사람도 있었다. “일방통행하게 해 달라”는 요청도 접수됐다. 현장 시민들이 해법까지 경찰에 알려줬다.
늦지 않은 시각이었다. 신고자 요청대로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골목 진입로만 통제했다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 10명이면 가능한 일이다. 시민이 요청한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참사 다음 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경찰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처럼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시민들이 골목길로 몰리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했다. 권한이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이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경찰청장이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하자 현장 경찰이 “경찰 만능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취임사는 전부 거짓말이었냐”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국민에게 사과도 하지 말라는 지경이다. 경찰이 만든 내부 문서가 하루 만에 유출돼 인터넷에 떠도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찰국 논란’ 이후 경찰 내부 기강이 흐트러졌다지만 이럴 수는 없다. 지금 경찰은 정상이 아니다.
-조선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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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참사’ 대통령은 발생 후 46분 뒤 보고받아. 경찰청장은 1시간 59분 걸려. 대통령이 현장 뛰어야 할 듯.
-팔면봉, 조선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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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왜 못 막았냐고 비판할 자신은 없다
[김창균 칼럼]
11차례 112 신고 묵살 비판, “20명이 최선 다했다” 반박
통제·일방통행 안해 아쉽지만 하기 어려운 사정 있을 수도
예방 가능했다는 人災 주장, 사고 터진 후 할 수 있는 말

안양시가 마련한 이태원 참사 관련 안양역 분향소. 시는 사망자 분향소 명칭을 희생자 분향소로 변경했다.
이태원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우려하는 112 신고가 11차례나 접수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어제 아침 자 조간신문 머리기사들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신고를 수차례 받고도 경찰이 “방치”하고 “묵살”하고 “뭉갰다”고 비판했다. 당일 오후 6시 34분의 첫 112 신고 내용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였다. 네 시간 뒤에 벌어질 사고를 마치 앞당겨 보기라도 한 듯한 경고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 되고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서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거죠?”라고 응대했다. 신고자가 걱정하며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분노하게 된다.
현장 치안을 담당했던 경찰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태원 파출소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직원은 “직원 20명이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그 시간 동안 현장 주변 폭력, 성추행을 포함해 79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는 주장이다. 파출소장은 한 달 전부터 현장 약도를 그려가며 핼러윈에 대비했다고 했다. 인원 부족을 우려해 서울경찰청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태원 투입 경찰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고 사고 직후부터 같은 지적이 있었다.
사고 당일 서울 중심가에선 보수, 진보 양 진영의 시위가 있었다. 핼러윈 축제는 이태원뿐 아니라 홍대와 강남에서도 있었다. 왜 이태원에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은 그곳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사후에 나오는 것이다. 경찰 지휘부 입장에서 사전 신고된 도심 시위와 자발적으로 모일 축제 현장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인력을 배치하겠는가.
그렇게 신고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경찰은 왜 진입해서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사고가 터지고 구급차가 112센터에서 현장까지 235m 가는 데 40분이 걸렸다. 경찰 복장을 핼러윈 코스프레로 오해해서 비켜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왜 자율적인 축제에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하느냐는 비난을 들을까 주저했을 수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공권력이 수시로 겪는 일이다.
이번 참사에 대해 가장 아픈 지적은 문제의 골목길을 일방통행으로 지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랬으면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됐을 듯싶다. 그러나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경찰이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한다. 또 들뜬 기분에 몰려드는 인파가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라는 경찰 통제에 잘 따랐을지 의문이 든다. 필자도 시위 현장을 우회하라는 경찰 지시에 짜증을 내곤 했던 경험이 있다.
큰 사고가 터지고 나면 ‘예정된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늘 나온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치안, 구조 담당자들의 무책임과 무능 때문에 난 사고라는 것이다. 대비할 수 있었다는 비판은 사후에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이런 이런 일만 했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사전에 모든 재난 가능성에 대한 예방 조치를 빈틈 없이 갖추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수한 재난을 겪고 보도해 왔지만 이번 참사처럼 어처구니없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화재·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15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형 압사 사고 뉴스를 간헐적으로 접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걱정해 본 적이 없다. 이태원 파출소 소속 경찰들이 성추행, 폭력 신고를 처리하느라고 압사 위험 신고를 가볍게 여겼다면 필자처럼 안이한 판단을 한 탓도 있을 것이다.
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써왔다. 초년병 시절 선배들에게 “당신도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달리 행동했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라”는 충고를 듣곤 했다. 이태원 참사는 당시 현장 상황이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대응에서 몇몇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결국 누군가는 옷을 벗게 되고 사법 처리 대상이 나올 수도 있다. 그들을 역성들며 감쌀 생각은 없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만일 내가 그때 현장 치안을 맡은 책임자였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자신은 서지 않는다. 그래서 섣불리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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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녹취록

2012년 20대 여성이 112 신고를 하고도 흉악범 오원춘에게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신고가 15초에 불과했고, 구체적인 장소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경찰은 결국 112 녹취록을 공개해야 했다. 실제 신고 시간은 7분 36초였다. 경찰의 당초 해명과는 달리 장소도 분명하게 언급됐다. 여기에 피해자가 “살려 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것을 경찰이 듣고만 있었다는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 시스템은 완전히 바뀌었다.
▷신고 접수는 생활안전과, 현장 출동은 경비과가 각각 담당하던 운영체계를 하나의 컨트롤타워 아래 통합했다. 시도경찰청에 24시간 긴급 신고를 접수하는 112종합상황실을 만들었고, 신고 내용은 전자시스템으로 일선으로 하달했다. 112 신고는 자동 녹음된다. 다만 텍스트 변환은 하지 않는다. 신고자 측이 방문하면 녹음 파일을 재생해 주지만 녹취록을 제공하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경찰에 접수된 이태원 참사 관련 11건의 112 녹취록이 1일 공개됐다. 국회의 요구에 따라 경찰이 녹음 파일을 듣고 임의로 발췌 정리한 것이다. 녹취록 전문이 아닌 녹취 요약본인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참사 4시간 전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첫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경찰의 부실 대응 의혹이 커졌다. 문제는 전체 녹음 파일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녹취록에 ‘비명소리’로 적힌 부분을 육성으로 듣게 되면 상황이 또 달라질 수 있다.
▷한때 전화 응대 교육조차 받지 않은 신참들이 신고를 접수해 논란이 되자 요즘은 전문 교육을 받은 베테랑 경찰이 아니면 종합상황실 근무가 어렵다. 전문요원은 신고 유형에 따라 대응의 수준을 가장 위급한 ‘코드0’부터 긴급성이 전혀 없는 ‘코드4’까지 5단계로 입력한다. 코드0은 광역 단위로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고, 코드1은 강력범죄처럼 위해가 곧 가해질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을 뜻한다. 11건 중 코드0은 1건, 코드1은 7건이었다. 그런데도 대규모 경찰력의 신속한 출동이 왜 없었는지 의문이다.
▷과거 20개가 넘었던 위급 상황 신고 전화 창구는 지금은 경찰과 소방(119), 민원상담(110) 등 3곳으로 통합됐다. 경찰과 소방은 시스템도 연계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 11건의 신고 중 2건을 경찰은 소방에도 전달했다. 112 녹취록은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날의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디지털 증거들을 모아 참사의 원인이라는 진실에 최대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원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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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고에 임하는 태종의 자세
[이한우의 간신열전]
태종3년(1403년) 5월 5일 경상도에서 뱃길로 한양을 향하던 조운선 34척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보고를 듣자마자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만인을 몰아서 사지(死地)에 내몬 셈이다. 바람이 심한 것을 알면서도 배를 출발시켰으니 이는 실로 백성을 내몰아 사지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피해 상황을 물었다. 이에 “쌀은 1만여 석이고 사람은 1000여 명입니다”라고 보고했다.
“쌀은 비록 많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만 사람 죽은 것이 너무도 불쌍하다.”
대책의 하나로 태종은 앞으로는 해로 운반을 중단하고 육로로 수송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우대언 이응(李膺)이 말하기를 “육로로 운반하면 어려움이 더 심합니다”라고 하자 태종이 말했다.
“육로로 운반하는 것의 어려움은 소와 말의 수고뿐이니 사람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해로를 통한 조세 운반을 폐지할 수는 없었다. 대량 수송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태종12년 7월 17일에는 전라도에서 조운선 21척, 충청도에서 2척이 바람에 침몰해 104명이 사망했다. 이에 의정부에서 전라도 도관찰사 이귀산(李貴山)을 처벌할 것을 청했다.
“배에 싣는 일을 지연시켜 7월에 조운하였으니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의 큰바람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니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태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 큰바람으로 인한 재앙을 만나고 보니 화재도 두려운 것이다. 창고뿐만 아니라 경복궁은 태조께서 세우신 것이니 더욱 화재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일화는 재앙이나 재난을 대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마음가짐과 향후 대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이 인(仁), 즉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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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마라
[조은산의 시선]
생과 사의 주사위가 매일 굴러간다, 집으로 가는 길 안 보인다
차 조심해라 그렇게 일렀건만, 사람에게 깔릴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 마라, 네 책임은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희생양 찾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산다는 게 죽을죄다. 생과 사의 주사위가 매일 아침 굴러간다. 산다는 게 그런 건지. 집으로 가는 길은 원래 보이지 않는 건지.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 버스를 타지 마라. 기어봉에 전진 후진도 모자라 하강이 있다. 한강 다리 끊어져 그 버스 곧 추락한다. 상판에 곤두박질쳐 두 동강 난다. 튕겨 나온 너의 몸이 한강 물에 실려 간다. 푸른 꿈이 실린 너의 교복 누가 그리 정성스레 다려주었니. 검은 강물에 젖은 너의 교복 누가 탁탁 털어 말려주겠니. 그 버스는 타지 마라. 성수대교 무너진다. 차라리 열차를 타고 가라.

그 열차는 타지 마라. 시너와 라이터를 들고 있는 심장 없는 승객이 있다. 그래도 타려거든 하고픈 말, 미처 건네지 못했던 말 남김없이 하고 타라. 네 안부 기다리는 너의 부모님에게, 그림일기 그리자는 너의 아이들에게, 저녁 밥상 마주 앉을 너의 남편과 아내에게 꼭 한번 사랑했노라고, 다음 생에 우리 또 만나자고 꼭 한번 전해주어라. 대구 지하철 불난다. 벌겋게 달아오른 바퀴가 선로 위에 멈춰 섰다. 미처 못다 한 말들이 터널 안의 재가 되어 흩날린다. 그 열차는 타지 마라. 차라리 물 위로 떠다니는 배를 타라.
그 배도 타지 마라. 과적에 고박 불량, 평형수도 못 채운 그 배는 곧 가라앉는다. 나오라는 말 한마디 없던 그 배에는 선장도 없고 바다에는 해군도 해경도 없는데 맹골수도 차가운 물 들이치면 네 여린 몸 어떡하려고. 친구 손 꼭 부여잡고 제주 해변 거닌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곧 가라앉을 그 배를 왜 꼭 타려고. 신발장에 흰 운동화 한 켤레 자리 빈다. 둘러앉은 밥상 위에 수저 한 벌 모자란다. 아버지 차 룸미러에 너의 얼굴 안 보인다. 타지 마라. 그 배도 곧 가라앉는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쇼핑조차 하지 마라. 냉각탑이 지붕 뚫고 백화점이 무너진다. 아빠 셔츠, 엄마 내복 사서 효도 한번 해보겠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첫 월급 탄 우리 아들 머리 위로 콘크리트 떨어진다. 다 키워낸 팔다리를 잘라낸다. 석고보드 떨어진다. 부모 얼굴 비춰주던 각막 위를 뒤덮는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숨마저도 쉬지 마라. 살균제를 쓴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멀쩡했던 가습기에 그렁그렁 폐 녹는다. 우리 아기 잠자는 방 모빌 소리 아련한데 딸랑딸랑 잠 깰 시간 울지 않고 고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술도 먹지 말고 춤도 추지 말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라. 누워서 죽는 것도 사람이고 앉아서 죽는 것도 사람인데 서서 죽는 것이 사람다운 죽음인가. 이태원에 가지 마라. 이태원역 1번 출구 그 골목에 가지 마라. 코로나에 치인 청춘, 논다는 게 죽을죄는 아닐진대 시퍼렇게 질린 분장, 하얀 시트 코스튬이 찬 바닥에 누워 있다. 내려오는 사람, 올라가는 사람, 인도가 차도보다 더 무서울 줄 누가 알았을까. 차 조심해라 그렇게도 일렀건만 다 키운 내 새끼들 사람에게 깔려 죽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새벽에 붉은 낙엽이 그렇게도 흩날리더니. 그 새벽에 그렇게도 별이 맑더니.
이제 아무것도 묻지 마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이런 아픔들을 겪어야 하는지, 기필코 누군가가 죽어야 했는지, 이러한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짓눌려 죽어가던 이들, 울며 심폐 소생술을 하던 이들, 그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이들, 이 처참한 광경들을 웃으며 지켜보던 이들, 이 모든 것이 인간 삶의 원형인가라는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동굴 속을 기어 나와 몸을 세운 미어캣처럼, 네 책임은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희생양을 찾지 마라. 때로 진실은 가장 빛나지만 주우면 범법자가 되고 마는 땅에 떨어진 다이아몬드 같은 것. 진실은 우리 모두가 그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마라. 삶은 곧 생동하는 죽음이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화장터의 화장(化粧)이다. 아무것도 믿지 마라. 어딜 가나 죽음인 것이다.
-조은산·'시무 7조' 청원 필자, 조선일보(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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