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사별 트라우마]...[줄곧 괜찮다보니 나는 사고]...[기구한 이태원]

뚝섬 2022. 11. 1. 06:41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로서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별 트라우마]

[‘이태원 참사’ 위험, 우리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줄곧 괜찮다보니 나는 사고]

[민간은 참사 사진 유포 자제, 공직자는 언행 주의를]

[기구한 이태원]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로서 슬픔을 나누고 싶습니다

 

[특별 기고] 

 

환희와 축제의 공간이 아비규환의 지옥도(地獄圖)로 돌변할 것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원인 규명이나 재발 방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그러한 객관적인 말은 허무하다고밖에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요.

 

저도 말씀드리기 힘든 경험을 겪었습니다. 목숨과 바꾸더라도 지키고 싶었던 사랑하는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때 구약 성경의 ‘의인 욥’처럼 외쳤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내 어머니의) 태(胎)에서 나왔을 때 숨이 끊이지 않았는가.”(’욥기’ 제3장 11절)

 

아들은 우리 부부 삶의 버팀목이자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었습니다. 그 생명의 물이 갑자기 말라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명예와 부(富)를 갖췄더라도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만큼 슬프고 애절하며 비참한 존재는 없다고. 이태원 비극으로 속수무책인 부모님들의 통곡은 우리 부부와도 같을 겁니다. 지금은 오로지 참담해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눈물로 날이 저물고 슬픔에 넋을 잃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아들은 메시지를 남겨주었습니다. 스스로를 이 지상으로부터 ‘퇴출’할 때 남긴 메시지, “(부모님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이 말에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응답이라고 믿고 10 년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슬픔은 가시지 않고 오히려 먹먹하기만 합니다.

 

이태원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아들·딸들은 부모에게 메시지조차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부모의 상실감은 한없이 깊은 어둠 속에 빠진 것만 같을 겁니다. 이 비극에 대해 “왜, 누구 때문에?”라는 답을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어에는 부전감(不全感)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완전하지 않은 감각이라는 뜻이죠. 그것이 8 년 전 ‘세월호 침몰 사고’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참사의 원인이나 책임져야 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따라서 슬픔이 분노로 전환되고 때로는 증오로 변해가는 과정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의 경우, 아이의 죽음은 부부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저는 그 슬픔을 글로 쓰면서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의 부모들은 어떨까요. 우리의 경우 아들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개인적 비극에 머물렀습니다. 반면 이태원 비극의 부모들은 엄청난 수의 희생자와 함께 슬픔을 나눌 겁니다. 비탄은 각자의 것이며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태원의 비극에선 비탄, 즉 슬픔을 나누는 연대감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지금 부모들은 각각의 슬픔 속으로 가라앉고 있지만, 슬픔을 서로 나누고 공유할 때, 비록 치유되지는 않더라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복원해 나가는 힘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합니다.

 

생을 잃은 젊은이들은 인생의 사계절을 모르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의의 죽음일지라도 그 짧은 인생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들은 서른이 되기 전에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 나름의 삶의 사계절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저는 자식을 잃고 ‘죽은 자식의 나이를 아직도 세고 있는’ 부모의 후회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그저 뉘우치기만 하는 아비가 아닐 수 있었습니다.

 

지금 비탄에 잠긴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신(神)조차도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있고 과거만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가버린 아이들이 남겨준 ‘과거’는 남겨진 사람들 안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 살아있는 ‘과거’를 정중히 위로하고 슬픔의 유대를 통해 나눌 수 있다면 비극은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을 겁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 위로의 말은 공허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굳이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살아주세요”라고. 여러분의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면, 분명 그렇게 쓸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강상중 교수는 “고도성장기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행복은 돈도 명예도 아니고 자기애(自己愛)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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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 트라우마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사랑하는 가족과의 사별은 정신적 통증을 수반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자녀와의 사별만큼 큰 고통이 존재할까 싶다. 자녀를 갑작스럽게 떠나 보내고 한 달 동안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했다는 유가족의 호소를 접한 적이 있다. 몸도 상하게 된다.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

 

‘떠난 가족도 네가 이렇게 밥도 안 먹고 힘들어하는 것을 원치 않을 거야. 어서 잊고 산 사람이라도 힘내서 살아야지’란 내용의 위로는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별의 고통을 겪는 초기에는 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 우선 충분히 유가족의 슬픔을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타인의 큰 슬픔을 공감한다는 것은 자신도 이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차 트라우마는 연민 피로(compassion fatigue)로 이어지고 피로로 나도 모르게 얼굴과 표현에 짜증이 묻어날 수 있다. 고통받는 가족의 마음 하나 제대로 공감 못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고민을 듣는데 그렇지 않다. 상대방의 통증을 경험하는 것은 내 통증 중추에도 실제로 고통을 유발한다. 유가족의 슬픔에 비할 수 없지만 지금은 국민 상당수가 이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함께 힐링 여행을 가는 것은 어떨까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마음은 훌륭하나 너무 빠르게 위로의 속도를 내지 말고 충분히 애도 기간 이후에 삶에 대한 에너지가 회복된 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타인을 위로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나도 이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이 요일이나 시간을 정해 돌아가면서 위로하는 것이 질적으로 더 좋은 공감과 위안을 줄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은 애도 기간에는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믿을 수 있는 지인의 도움을 꼭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념일이나 1년 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보낸 날에는 슬픈 기억이 크게 회상될 수 있다. 가족과 지인이 특별히 그 시기에 함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상담이나 약물 치료가 가능한 것도 전문가를 활용하는 이유지만 더 나아가 가족 모두가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서로가 위로해주는 것이 실제로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전문가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정부 차원의 지원 시스템의 활용을 권유드린다.

 

모두가 마음 아픈 상황이다. 사고 원인 규명과 예방 대책이 정확히 나오는 것이 미래 사고 방지에도 중요하고 동시에 심리적 트라우마 해결에도 중요한 내용이 있다. 그렇지만 그곳을 갔느냐식의 네거티브 프레임은 이차 트라우마를 강화할 뿐이다유가족은 물론 서로의 마음을 안아주는 애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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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위험, 우리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2022년 10월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현장에 합동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 전 경찰과 용산구청,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등이 간담회를 열었지만 사실상 아무런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축제 기간 성범죄와 마약 등 범죄 예방과 방역 수칙만 논의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29일 인파가 10만여 명 몰렸는데도 차량 통제나 폴리스라인 설치를 통한 인도 확보 같은 대책은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축제가 ‘주최자 없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2년 전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법 시행령을 개정해 참가자 1000명 이상인 행사에는 안전 관리 계획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했고, 지난해엔 안전 요원 우선 배치, 순찰 활동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 매뉴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매뉴얼은 주최자가 있는 행사를 전제로 한 것이라 이태원 행사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참사는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대규모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선 시민들이 한꺼번에 골목길로 몰리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한다. 안전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 불꽃 축제 때는 100만명 넘는 인파가 몰렸지만 별다른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행사가 마무리됐다. 행사 주최 측인 한화그룹이 신고했고, 서울시와 구청, 소방 당국, 경찰이 종합안전본부를 설치해 대응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이태원 참사 전에 경찰과 지자체가 안전 계획을 세워 사고가 난 골목길과 연결되는 이태원로 차량 통행을 막고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 통과 조치 등을 했다면 인파가 넓게 퍼질 수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이런 최소한의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런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인파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압사 사고는 우리 일상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로 꽉 들어찬 출근길 지하철역, 수천 명이 몰리는 환승역,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공연장 등도 압사 위험이 있다. 안전 전문가들은 1㎡당 5~6명 이상이 있을 때를 ‘위험 단계’로 본다고 한다. 1㎡당 6명이 모이면 사람들이 몸을 가누기 어렵게 되고 한꺼번에 넘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때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곳에는 1㎡당 16명가량이 몰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1㎡당 5~6명이 몰리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발생한다. 이런 군중 밀집도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만들고 국민 스스로도 질서 있게 행동하는 것을 체질화해야 한다.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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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괜찮다보니 나는 사고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1986년 1월 28일, 이례적으로 쌀쌀한 기온 속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했다. 이 사고로 우주인 7명이 모두 사망했고, 3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났다. 이후 조사에서 로켓 부스터의 오링(O-Ring) 두 개가 추운 날씨에 탄력을 잃고 부식하면서 연료가 새어 나갔고, 이 연료에 불이 붙어 순식간에 우주선 전체가 폭발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참사 이전 시험 비행에서도 오링은 항상 골칫거리였다. 시험 비행 24번 중 7번이나 오링의 부식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오링 두 개가 다 부식해 큰 사고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나가 부식해도 다른 하나가 이음새를 지탱해 주었다. 처음에는 오링의 부식이 심각한 일탈 같았지만, 하나는 유지되다 보니 우주선 제조사와 NASA의 엔지니어들이 이를 수용 가능한 정상적 위험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일탈이 정상화되었을 때, 챌린저호는 두 오링이 모두 부식하면서 폭발했다.

 

청해진 해운은 세월호를 무리하게 증·개축해서 복원성을 떨어뜨린 뒤에 평형수를 줄이고 화물을 늘려 싣고 운항했다. 선원들은 나쁜 복원성 때문에 타각을 5도 이상 쓰면 안 될 정도로 배가 엉망임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열악했지만, 조심해서 운항하면 될 줄 알았다.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16일 아침에 잔잔한 바다를 운항하던 배가 크게 선회하면서 급하게 기울어져서 침몰했고, 3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참사를 낳았다.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는 2014년쯤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2019년 기사를 보면 사람이 너무 많아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 중에도 10만명 이상이 북적거렸다. 세계음식거리와 해밀톤호텔 옆길은 매년 사람들이 둥둥 떠다닐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친 사고는 없었다. 계속 괜찮다 보니, 질서 유지를 맡은 관계자들은 올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올해에는 괜찮지 않았다. 일탈이 정상화되고, 위험이 수용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재난이 발생한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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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은 참사 사진 유포 자제, 공직자는 언행 주의를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시민들의 이태원 압사 사고 추모 공간에서 한 남성이 이태원 희생자 추모를 위한 플루트 연주를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참혹한 장면을 담은 사진·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에서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서 몰린 인파 속에서 서로 소리를 지르거나 엉켜있는 모습, 누워서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모습, 시신들을 길가에 줄지어 놓은 모습 등을 담은 사진·영상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아 피해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도 적지 않다. 이런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있다. 심폐소생술을 돕던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들”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 “한잔 더 하러 가자던 사람들” 등의 모습을 전하면서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특히 온라인상에 무분별하게 사진이나 영상 등을 유포하는 행위가 심각하다. 이런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여과 없이 사고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확인되지 않은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것도 참혹한 장면 유포 못지않게 반사회적인 일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들도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도 적절치 않다. 지금은 사고를 수습하면서 유족을 위로하고,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는 데 집중할 때다.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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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한 이태원 

 

퇴근 때 종종 서울 시청 근처에서 출발해 남산을 넘어 뛰어간다. 하얏트 호텔에서 용산구청까지 이태원의 긴 내리막길을 거치는데 풍경이 다채롭다. 한국 최고 부잣집이 즐비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내려갈수록 집이 작아지다가 원룸 서민 동네로 끝난다. 부자와 자취생,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이슬람인이 같은 공간에서 산다. 산책하는 반려견조차 각양각색이다.

 

▶이태원은 일제가 남산에 도로를 내고 일본인 거주지를 만들면서 주택가가 됐다. 지금 하얏트에서 회나무로로 이어지는 부촌 지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산기슭엔 해방 후 서민들이 몰려들었다. 경리단길 일대가 그곳이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성된 외국인 유흥가가 이태원로 번화가의 시작이다. 이런 다양한 역사성이 이태원의 다양성을 만들었다. 유래가 밝건 어둡건 다양성은 한국의 어떤 동네도 흉내 낼 수 없는 이태원의 강점이다.

 

▶이태원은 젊은 자영업 도전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나이지리아 토속음식점까지 잘만 만들면 손님이 모인다. 다양한 주민 때문이다. 국적 불명의 창작 요리도 여기선 통한다. 30㎝가 넘는 빅사이즈 신발, 댄스복 등 별별 가게가 다 있다. 게이바를 해도 이태원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사람이 전국에서 몰린다. 번화가의 입지 조건이 없는 경리단길이 일약 명소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태원엔 사람을 당기는 자력이 있다.

 

▶운이라고 해야 하나. 이태원의 시련은 한두번이 아니다. 1980년대 이태원은 오늘날 강남 비슷했다.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던 디스코텍, 한국에 피자 시대를 연 피자헛 1호점이 이태원에 있었다. 이 전성기가 ‘에이즈 파동’으로 순식간에 끝났다. 외국인 기피증이 번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경리단길 붐은 부동산 폭등으로 몇 년 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처음 강타한 유흥가도 이곳이었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면서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것이다.

 

▶참사 다음 날 퇴근길에 이태원을 거쳤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분위기가 무거웠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무대로 유명한 언덕길에서 행인 4~5명을 봤을 뿐이다. 대부분 주점이 문을 닫았다. 뜯겨나간 핼러윈 장식물이 거리를 뒹굴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열기가 넘쳤을 날이다. 3년 만에 찾아온 부활의 기회가 또 사라졌다. 수많은 젊은 인명이 희생됐다. 에이즈, 코로나 파동을 넘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일어서겠지만, 이태원은 정말 기구한 거리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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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안장관은 책임회피성 발언, 의원은 음주 자리. 컵라면 먹다 경질된 장관도 있음을 명심할 .

 

○  이태원 慘事로 전국 행사들 취소되고 시민들은 심리적 셧다운 상태…. 상처를 들쑤시는 행태는 지양돼야.

 

-팔면봉, 조선일보(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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