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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광역버스 대란] ....

뚝섬 2024. 2. 29. 09:30

[줄서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광역버스 대란]

[경기버스 입석 중단]

 

 

 

줄서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노선별 버스 대기 실패했어도 차례대로 탄다는 취지는 중요
줄서기는 신뢰와 합의 문제
’대란’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지난 1월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입구' 광역버스정류장 앞 인도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달 27일 광역버스 노선 29개가 지나가는 이 정류장에 '노선별 대기판'13개를 설치하면서 극심한 혼잡이 발생했다. 시민들 불만이 쏟아지자 서울시는 5일 노선별 대기판 운영을 중단했다. /박상훈 기자 

 

오해를 피하고자 먼저 밝혀둔다. 이 글은 연초 줄서기 표지판이 불러온 서울 명동 입구 버스 정류장의 퇴근길 대혼란을 되풀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면서 그 혼란을 직접 겪었다. 광화문에서 버스 타고 서울역에서 잠들었는데 40분 뒤에 깨어보니 아직 명동이었던 날은 황당했고, 작전을 바꿔 명동에서 버스를 기다린 날 스마트폰엔 이미 도착했다고 나오는 버스가 ‘정위치’에 서기까지 20분 넘게 기다려야 했을 땐 분통이 터졌다.

 

오세훈 시장이 사과했을 때 많은 매체가 탁상행정에 맞선 시민들의 승리처럼 보도했다. 왜 그런 표지판이 등장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한다. 그 전까지 정류장에서는 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타자가 공을 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낙하 지점을 향해 달리는 외야수처럼, 사람들은 먼저 타기 위해 미처 서지도 않은 버스를 따라 달렸다.

 

한바탕 줄서기 소동을 겪고 난 지금도 그 풍경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일부 노선은 ‘대란’ 이전부터 서는 자리가 고정돼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정류장에선 표지판이 없어도 승객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선다. 문제는 여러 노선이 겹치는 정류장에 정차 위치가 고정돼 있지 않은 버스가 들어설 때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든다. 차도에 내려서거나 대통령 경호원처럼 버스 차체에 바짝 붙어 뛰기도 다. 전에는 그 경쟁의 성패에 따라 앉아서 가느냐 서서 가느냐가 갈렸다. 광역버스 입석이 금지된 지금은 얼마나 과감하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타느냐 못 타느냐가 갈린다. 누군가는 한두 명 차이로 출퇴근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것이다. 노약자나 임신부 같은 교통 약자일수록 불리할 것이다.

 

지난주 서울시는 문제의 명동 입구 주변에 정류장을 추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장기적으로 노선을 조정하고 다른 교통수단을 확충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교통량을 분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줄서기 표지판은 실패했어도 먼저 온 사람이 먼저 타는 질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좋은 의도가 나쁜 정책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타당한 취지까지 없던 일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한국인의 질서 의식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고 한다. 번호표나 각종 예약 앱을 비롯해 줄서기를 대신하는 수단이 다양해졌고, 맛집과 한정 판매에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일이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가 됐다고도 한다. 그러나 줄서기라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장면을 지금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여러 갈래로 줄이 생기는 화장실에서 나는 역시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진리를 배운다. 마라톤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대회가 끝난 뒤 온라인에서 일부 ‘무개념’ 크루(동호회)를 성토하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기록 전광판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다들 다리 아픈 걸 참고 기다리는데, 한 명이 줄을 섰다가 차례가 가까워지니 다른 회원들이 여남은 명씩 슬금슬금 모여들더라는 것이다. 경적 외에는 사실상 항의하거나 제대로 줄을 서라고 요구할 방법조차 없는 도로에선 끼어들기가 횡행한다. 버스 정류장은 한 사례일 뿐이다.

 

줄서기는 조금 먼저 가느냐 천천히 가느냐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기다리면 차례가 온다는 믿음,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는 합의 문제다. 줄서기를 정착시키는 일은 룰에 대한 신뢰라는 공공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버스 대란을 계기로 삼는 것이 발전적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많은 사람이 추위에 떨며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한낱 해프닝으로 넘기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허무하지 않은가.

 

-채민기 기자, 조선일보(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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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대란

 

6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퇴근길 혼잡으로 시가 긴급 대책을 마련해 운영 중인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를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연합뉴스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 사는 주인공 삼남매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일상을 배경으로 했다. 삼남매는 ‘산 넘고 물 건너’ 서울 직장에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다. 저녁에 활동하는 회사 동아리에 들어가는 건 사치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경기도는 서울을 감싸는 계란 흰자”라고 말한다. ‘서울 공화국’에 편입되지 못한 서민들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명대사였다.

 

▶장거리 출퇴근족들이 애용하는 수단이 소도시와 서울 도심을 직행으로 연결하는 광역 버스다. 일명 ‘레드 버스’로 불리는 광역버스는 서울에 직장을 둔 경기도민들에게 생명줄과도 같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직장인은 출퇴근하는 데 하루 평균 120분을 쓴다. 평균 통계가 그렇다는 것이지 외곽 도시에서 마을버스를 시작으로 하루 3~4시간을 버스·지하철 안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도 숱할 것이다. 그 시간을 이용해 책 읽거나 음악 듣고 자기만의 세계를 즐긴다는 사람도 있다.

 

2022년 말 광역버스 입석 금지 이후 수도권 출퇴근족이 더 고단해졌다. 만차(滿車)가 되면 하염없이 다음 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겼는데도 버스 2~3대를 보내고 나서야 탈 수 있었다는 사람, 6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버스를 탔다는 체험담이 쏟아진다. “차가 막히기라도 하면 버스에서 몸이 절여지는 느낌”이라는 사람도 있다. 야근이나 회식이 늦어지면 막차 놓칠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작년 8월부터 요금마저 왕복 6000원으로 올라 출근족들을 더욱 애태우게 한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는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 요구가 높아져 생긴 것이다. 그 여파로 ‘무정차 통과’ 등 광역버스 대란이 일어나자 정부와 지자체는 광역버스를 대폭 늘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류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정류장 근처에선 버스가 걷는 것보다 느리다”는 민원이 폭주한 것이다. 도심 정류장 인프라는 쉽게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이번 명동 광역버스 대란이다.

 

서울시는 명동에 정차하는 광역버스 노선이 29개로 급증하자 지난달 말 정류장 인도에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했다. 이 시도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퇴근 시간마다 버스를 타려는 승객과 버스가 뒤엉키면서 일대에 대혼란이 생긴 것이다. 결국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과하고 일단 원래 시스템으로 복귀시켰다. 공무원들이 현장을 모르고 제도를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필 추운 겨울에 광역버스 출퇴근족의 애환을 하나 더 보탰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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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버스 입석 중단

 

“광역버스 입석 중단 후 매일 지각이다. 오늘도 버스 3대를 그냥 보냈다.” “몇 정거장 거슬러 올라가도 자리가 없어 아예 반대 방향 종점까지 가서 탄다.”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가 입석 승차를 중단하면서 도민들이 출퇴근길 승차난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125만 도민은 버스 승차난이 지하철까지 확대될까 노심초사다.

▷경기도 광역버스의 절반을 운행하는 KD운송그룹은 18일 성남과 남양주 등에서 서울 광화문과 사당 쪽으로 운행하는 버스의 입석 승차를 전면 중단했다. 나머지 버스업체도 올 7월부터 입석 승차를 줄줄이 중단했다. 이로써 경기지역 220개 노선 광역버스 2000여 대의 입석 승차가 거의 모두 제한된 상태다. 올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최근에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안전 우려가 커지자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의 입석 승차는 불법이지만 출퇴근 시간에 한해 허용해 왔다. 이 버스 놓치면 서서 가기도 어려울까 45석 버스에 70명 이상이, 74석 이층버스엔 120명 이상이 1, 2층은 물론이고 중간 계단에까지 빽빽이 몸을 구겨 넣었다. 밀도가 위험 수준인 m²당 5명을 훌쩍 넘는다. 운전석 시야를 가릴 때도 많다. 2018년엔 추돌 사고로 70명 넘게 태우고 달리던 광역버스에서 28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특히 이층버스 승객들은 “시속 100km로 달리는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코너를 돌다 사고가 날까 아찔하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사태 때도 정부는 국민안전 대책으로 광역버스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하고 입석 승차를 금지한 적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광역버스에 입석 승객을 태우다간 언제 대형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100m 넘게 줄서서 1시간을 기다려도 버스를 타지 못한 도민들은 “탁상행정을 한 공무원들 모아서 광역버스로 출퇴근시켜 보라”며 반발했다. 결국 정부는 입석 승차 단속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한 달 후 출퇴근길 입석 승차를 허용했다.

▷입석 승차 전면 중단 첫날인 어제는 전세버스 투입으로 큰 불편은 없었다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경기도는 정규 버스를 대폭 늘리겠다고 했는데 새 차 출고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버스 운전사들마저 코로나 이후 배달업계로 옮겨가 기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세월호 사태 이후 8년간 무얼 하다 이태원 참사가 터지니 근본 대책 없이 입석 승차 중단부터 하나. 안전 문제가 불거질 때만 반짝 대책을 내놨다 흐지부지되니 안전해지지도 않고 승객들만 매번 큰 불편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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