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카를 콜택시로 쓴 의원이 국정조사 위원이었다니]
[인간적 연민 노리는 ‘나쁜 정치’]
[政爭 탓에 ‘지옥의 시간’ 끝없이 이어질라]
[대한민국 정치, 과거의 연장이어선 안 된다]
닥터카를 콜택시로 쓴 의원이 국정조사 위원이었다니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지난 10월30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긴급구조활동을 펼쳤다며 공개한 사진. /신현영 의원 페이스북
의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20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위원직을 사퇴했다. 참사 당일 의료진의 긴급 이동 수단인 ‘닥터카’를 콜택시처럼 이용하고, 이 때문에 의료진의 현장 도착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 만이다. 신 의원은 전날까지만 해도 “국회의원 자격이 아닌 응급의료팀 일원으로 함께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며 갑질을 부인했지만, 남편의 닥터카 동승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며 여론이 악화하자 태도를 바꿨다.
경기 고양시의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은 이태원 참사 당시 구급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향하던 중 서울 마포구의 신 의원 자택 부근에 들러 신 의원을 태웠다. 신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 명지병원 의사였다. 출동 요청에서 현장 도착까지 54분이 걸렸다. 비슷한 거리를 달려온 다른 병원 지원팀들보다 20~30분 늦었다. 신 의원은 또 닥터카에 치과의사인 남편까지 태운 것으로 나타났다. 신 의원은 “참사 현장에 의료진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치과의사가 도움이 될 현장이 아니었다. 그 정도는 신 의원이 더 잘 알 것이다.
신 의원이 이태원 현장에 머문 시간은 15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복지부 장관 차를 타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 시간 뒤 신 의원은 자신의 SNS에 “긴박했던 현장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다. 재난의료지원팀원으로서 현장에 나갔다”며 사진 5장과 동영상 1편을 게시했다. 15분 동안 제대로 된 구조 활동이 가능했겠나. 자기 정치를 위해 닥터카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남편도 사진 찍는 사람으로 데려간 것 아닌가.
현장에 다녀온 뒤 신 의원은 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이태원 국조특위 위원으로 발탁됐다. 민주당은 자진 사퇴한 신 의원 대신 다른 의원을 국정조사에 투입한다고 밝혔을 뿐 신 의원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선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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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野 의원, 남편과 닥터카로 이태원 도착해 15분 사진 찍고 장관차로 다시 이동. 카풀 모범시민 인정.
-팔면봉, 조선일보(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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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연민 노리는 ‘나쁜 정치’
[朝鮮칼럼]
내일 세상은 종말을 맞이한다.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사형 집행이 예정된 사형수가 있다. 이 사형을 집행해야 할까? 일반적인 상식에 따르면 사형은 집행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세상이 멸망하는데 처벌이 무슨 의미인가? 게다가 사형수에게도 어머니가 있을 테고 그 어머니 역시 내일 죽는다. 사형수를 풀어주고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인간적이다.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7주기 기억식 및 4·16생명안전공원 선포식'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21.04.16 고운호 기자
이마누엘 칸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의 사형은 집행되어야 한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사형수 본인의 존엄을 위해서다. 무슨 소리일까? 칸트에게 인간의 존엄이란 그가 스스로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격적 주체로 존중받는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처벌은 범죄의 결과다. 따라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범죄자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문명과 도덕을 수호하기 위해, 사형수의 인격을 지켜주기 위해, 확실하게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칸트가 말한 사형수의 역설은 근대 이전과 이후의 윤리학이 나뉘는 지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근대 이전, 중세와 고대, 더 나아가 원시 사회의 도덕은 감정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불쌍한 자는 도와주고 얄미운 놈은 혼내주는 것이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감정이 온화한 방향으로 발휘될 때 우리는 ‘착하다’ 혹은 ‘인간적’이라는 말을 쓴다.
반면 근대 이후의 도덕은 법칙에 기반을 둔다.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지켜야 하는 법칙이 있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것을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 자유롭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단지 인간적 차원을 넘어서는 ‘인격적’ 행위다. 인간은 그러한 인격적 행위를 통해 존엄한 존재, 근대적 주체가 된다.
근대 이전의 윤리는 인간적 연민에 의해 지탱된다. 근대 이후의 윤리는 인격적 존중을 근간으로 삼는다. 두 윤리는 상보적이다. 인간적 연민이 없다면 사회는 금세 삭막하고 잔인한 곳이 되고 만다. 하지만 연민만으로는 근대에 필요한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인격적 존중, 시민적 신뢰가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내가 이해하는 세상의 규칙을 너도 이해하고 있으며, 내가 그것을 지키듯 너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전쟁의 포화를 뒤집어쓴 신생 국가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빨리 경제를 발전시키고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국 근대화라는 지상명령 앞에 인간적 연민은 버려야 할 감상이나 떨쳐내야 할 나약한 소리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 관계가 역전되었다. 인간적 연민의 가치를 회복하는 수준을 넘어, 오직 인간적 연민만이 도덕적이라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21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유가족들 앞에서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약속했던 일을 우리는 가장 나쁜 사례로 떠올려볼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 침몰 과정, 그 결과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사실상 모두 드러난 다음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했다. 일부 유가족과 사참위 위원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있었다면 그는 공허한 진상 규명 약속을 더 이상 하지 말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세계 각지에서 발생했던 유형의 해상 사고였음을 설명하고, 우리가 함께 느꼈던 애통한 마음을 전달하여, 유가족이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고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어야 마땅하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여전히 ‘진상 규명’을 갈구하는 유가족을 남겨둔 채 문 전 대통령은 양산 사저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정권이 과시했던 인간적 연민은 인격적 존중을 결여하고 있다. 어쩌면 인간적 연민조차 아닐지 모른다.
필자가 유년기를 보낸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인간적 연민이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우리가 그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적 존중의 가치를 이해하고 되찾아 도덕의 두 날개를 펼치는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인간적 연민을 앞세워 투쟁의 도구로 삼는 나쁜 정치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조선일보(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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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爭 탓에 ‘지옥의 시간’ 끝없이 이어질라
[오늘과 내일]
이태원 49재…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 갇힌 유족들
與野·시민단체 빠지고 정부-유족 직접 소통해야
“저희는 아직도 10월 29일, 그날의 아비규환 속에 갇혀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 분이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00일 미사를 올리고 있다는 또 다른 분은 “너무 소중해서, 누가 데려갈까 봐 딸 자랑 한번 안 했는데…”라며 “제 스스로 주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악마로 돌변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지옥, 악마 같은 단어들이 귓전을 맴돈다.
참혹한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같을 리 없다. 유가족 중엔 정부와의 연락을 아예 끊거나 장례비 지원을 거절한 분들도 있다고 한다. 숨죽여 앓고 있을 것이다. 어렵게 목소리를 내고 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한 데 이어 시민분향소를 만들고 영정 사진을 직접 올린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모두 가슴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건 분명하다.
어느덧 이태원 참사는 정쟁 단계로 진입했다. 한쪽은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탄핵을 앞세워 정권 흔들기에 나서고 한쪽은 세월호 재판을 우려한 듯 방어에 급급하다. 민노총, 참여연대 등이 주도해 만든 좌파 시민대책회의가 발족됐고, 극우 단체들은 맞불 행동에 돌입했다. 진정한 치유가 절실한 이들이 점점 정쟁의 한복판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진상 규명 논의는 허공에 흩어지고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오래전 끝났지만 ‘치유의 시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민노총 같은 조직은 왜 여기에 끼어드는 걸까. 피켓 들고 집회하고 구호 외치고 할 게 아니라, 지옥의 고통에서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조용한 마음의 지지와 위로를 보내는 게 상식이고 도리 아닌가. 유가족들의 슬픔을 반정부 깃발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장례 끝나고 정부 측과는 대화가 끊겼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일대일’ 맞춤형 심리 지원까지 하고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장례식 지원이나 형식적인 행정 지원 정도로 끝났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유가족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관료 마인드로 법적·행정적 처리에만 신경 쓴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책임자에 대한 수사, 예방 시스템 재구축 등은 아주 중요하다. 다만 정부 최고 당국자가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지속적으로 위로하는 노력은 등한시했던 건 아닌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수습을 원한다면 여야도 시민단체도 제발 뒤로 빠지길 바란다. 정략적 사심(邪心)을 가진 이들이 분탕질에 나서면 유가족들의 ‘지옥의 시간’은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누가 뭐래도 위험을 상상하고 예측하지 못한 정부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실무자급이 아니라 정부의 최고위급 총괄 대표와 유족 대표가 단일화된 대화 채널을 열 필요가 있다. 수습 및 지원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관장할 대통령 특보 등을 임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나. 여기서 추모비나 추모 공간 등 유족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국가의 법적 책임 범위가 정해져야 국가 배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태도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국가 책임의 크기, 희생자의 나이와 직업 등 참으로 복잡한 문제다. 다만 분명한 건 진정한 치유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란 점이다. 일반적으론 ‘49재’를 기해 마음의 매듭을 짓곤 한다. 창밖을 보니 한파에 눈발까지 날린다. 이태원에서 스러져간 청춘들의 영혼, 그 유가족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계기도 조만간 찾았으면 한다.
-정용관 논설위원, 동아일보(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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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 과거의 연장이어선 안 된다
[김형석 칼럼]
정의 소멸되고 ‘내로남불’ 혼돈의 文 정권
국민 원하는 것, 배타 아닌 공존-번영 정치
사실에서 진실 찾고, 진실 입각한 판단 내려야
정치사(史)가 남겨준 교훈이 있다. 실패의 원인은 외부로부터가 아니고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도 그랬고, 문재인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그 전철을 밟을 것 같다.
생각 있는 국민들은 문재인 정권의 실패는 대통령과 정부의 이중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모든 선진 국가에서는 냉전시대의 좌우가 진보와 보수로 변질되면서 공존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내의 진보는 개방적이지 못했고 버림받은 공산주의 초창기 이념을 추종했다. 보수는 미래지향성을 갖추지 못하고 폐쇄성 안에 안주했다. 냉전시대의 낙후 상태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그 두 세력을 안고 출발한 것이 문재인 정권이다.
취임식의 약속은 국민통합이었다. 그러나 내부로는 적폐청산을 밀어붙이면서 전례 없는 국민 분열을 자초했다.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고 평화통일의 꿈을 탐색하겠다는 목적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의 목표와 방법은 북한 동포를 위하기보다 북한 정권과 협력하는 자세와 방향을 택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약화시켰고 유엔과 자유세계가 공유하는 가치와 기대를 외면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두 귀순 어부를 법적 절차도 없이 북송하는 반(反)인륜적 과오를 감행했다. 대한민국을 종북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결과와 자유세계에서 배신당하는 방향을 택했다.
경제정책의 자기모순은 극에 달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그 결과가 국민소득의 유일한 길이라고 인정한다. 우리는 산업혁명 초창기의 공산정책을 시도했다. 재벌을 적대시하고 노조를 승자로 만들려는 노력에 집착했다. 반(反)민주정치보다도 더 심각한 폐쇄적 후진 정책을 지속했다. 문 대통령도 집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재벌들과의 협력을 암시했을 정도다.
법치국가의 정신적 시금석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권력으로 국민생활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란 결과를 남겼다. 운동권 출신들과 맥락을 같이했다. 정의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위한 의무’라는 자유민주의 이념과는 위배되는 이념정치로 전락했다.
그런 정치적 유산과 결과는 어떻게 되었고 무엇을 남겨주었는가. ‘나라다운 나라’인 법치국가를 다시 권력국가로 후퇴시키는 위험성까지 안겨주었다. 그런 정책은 국민생활의 최고 가치인 진실과 정직, 정의 관념을 오도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진실이 사라지고 신뢰가 없어지면 사회 질서와 공동체의 생명력을 빼앗게 된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사회적 규범인 옳고 그름의 지표가 되는 정의가 소멸되었다. 사전에도 없는 ‘내로남불’의 개념이 모든 생활 질서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 같은 과제를 물려받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이 이 막중한 난제를 어떻게 극복, 재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제 문제이다. 문 정부보다 더 높은 정치이념을 갖고 있는가? 그 방법은 무엇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폐청산 같은 배타정치가 아니다. 좌우 모두가 공존, 번영하는 방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방향과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떤 과제에 임하든지, 사실에서 진실을 찾고, 그 진실에 입각한 가치판단을 내려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선과 악을 선별하는 책임이다. 거짓은 악이고 진실은 선의 원천이다. 진실을 은폐하거나 허위로 조작하는 행위는 법과 사회적 범죄행위가 된다. 그 가치판단의 방법과 과정은 무엇인가. 선결과제는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개선의 길이다. 그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잘못되었을 때는 ‘개혁’이 뒤따른다. 민주국가에서는 혁명의 필요성은 사라져야 한다. 지혜로운 의사는 약으로, 그것이 안 되면 주사를 놓는다. 수술은 최후의 수단인 것과 같다.
그 과정을 위해서는 ‘대화’가 최선의 방법이다. 민주사회의 정도(正道)다. 대화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때는 ‘토론’의 과정을 거쳐 결과의 타당성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런데 공산국가를 포함한 후진 권력국가에서는 거짓과 허위, 정권을 위한 투쟁,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을 앞세운다. 과거의 독재와 군사정권이 그런 과정을 밟았고 문재인 정부는 그 폐습을 극복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안에 그 잔재 세력이 남아있다. 윤석열 정부와 양식을 갖춘 국민이 가야 할 열린사회와 다원가치의 구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의무가 아닐 수 없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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