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갈 불체포특권 누가 살렸나]
[시대착오적 불체포·면책 특권 뒤에 언제까지 숨으려 하나]
[신뢰도 꼴찌 국회, 헌법 46조 2항 잊지 말아야]
박물관에 갈 불체포특권 누가 살렸나
진보진영 “역사가 심판할 것” 법정투쟁
野, 개인비리 의혹 방탄막은 시대착오적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이 공유하던 법정 투쟁기가 있었다. 1957년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한 피델 카스트로의 최후 변론이다.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카스트로는 최후 변론에서 “나를 비난해라.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라고 외쳤다. 하지만 2년 뒤 카스트로는 쿠바 공산혁명에 성공, 정권을 장악했다.
이처럼 법정 투쟁은 민주화를 위한 정치 투쟁의 연장선으로 간주됐다. 법정은 한가롭게 법리 다툼을 벌이는 곳이 아니라 거악(巨惡)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또 다른 전장이었다. 민주화 세력이 정권과 맞설수록 선명한 선악(善惡) 대결구도가 부각됐다. 과거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법정에서 “당신들은 우리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거침없이 외쳤다.
법정에서 발신되는 메시지는 흔들리고 동요하는 지지자들을 묶어세우는 든든한 버팀목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힘들어도 버티면 끝내 승리한다는 믿음이 절실했다. 특히 민주진보 진영에서 사법적 결정과 정치적 메시지가 엇박자가 자주 나는 이유다.
친노 진영의 대모(代母)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지 7년이 지났다. 징역 2년 만기 출소를 한 뒤로도 결백을 주장하면서 7억 원 넘는 추징금 납부를 거부해왔다. 한 전 총리는 자서전 ‘한명숙의 진실’을 출간해 자신의 결백을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 사면을 받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민주당이 수사 의뢰를 한 사건이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기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친문 적자인 김 전 지사가 출소하는 날 ‘김경수는 무죄다’라는 손팻말이 곳곳에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억울할지 몰라도 두 사람은 최종심에서 모두 유죄 확정을 받았다. 특히 한 전 총리의 경우 대법관 13명이 만장일치로 유죄 선고를 했다. 새로운 물증을 제시해 재심을 하지 않는 한 이 결정을 뒤집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지지자들을 향해 사법적 결정을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띄운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민주화가 된 지 벌써 30년이 지났고, 그동안 보수-진보 세력의 정권교체도 이뤄졌다. 극소수 강경파는 몰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사법 절차를 지키려 한다. 그런데도 사법적 결정을 나 몰라라 하거나 의도적으로 폄훼한다면 시대 흐름을 한참이나 역행하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이력이 정치적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정연욱 논설위원, 동아일보(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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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불체포·면책 특권 뒤에 언제까지 숨으려 하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뉴스1
뇌물 6000만원 수수 혐의를 받는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체포 동의안이 지난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다. 노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에 대한 수사를 ‘검찰 농단’ ‘야당 탄압’이라 주장하며 부결해줄 것을 호소했다. 동의안은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21대 국회 들어 지금까지 3명의 국회의원 체포 동의안이 모두 가결됐지만 노 의원 건은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민주당이 성남FC 후원금 의혹, 대장동·백현동 의혹 등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단일 대오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노 의원 사안만 달리 대응해선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건을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이 대표 체포 동의안 표결의 ‘예행연습’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헌법은 회기 중에 국회 동의 없이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이 국회 위에 군림하며 억압하던 시절, 의원들의 활동을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불체포 특권은 의원들이 뇌물이나 횡령 같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러놓고 법망을 피해가는 면죄부로 전락했다. 의원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불체포 특권을 없애겠다고 약속하고 관련 법을 발의한 것도 여러 차례다. 그런 점에서 개인 비리 혐의자인 노 의원을 감싸는 민주당의 행태는 시대착오적이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과도한 특혜는 불체포 특권만이 아니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대통령과 법무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지만 가짜 뉴스로 판명 났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선 민형사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면책 특권 뒤에 숨어 변변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지자들로부터 후원금이 답지했다. 이것이 근절되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미래는 보나 마나다. 국회의원 방탄용으로 전락한 구시대적 특권을 손보는 것이 정치 개혁이자 국회 개혁이다.
-조선일보(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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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도 꼴찌 국회, 헌법 46조 2항 잊지 말아야
헌법, 국회에 많은 권한 줬지만 동시에 ‘국가이익 우선하라’ 적시
경제법안·예산안 지연하는 국회.. 여론조사 “신뢰 안한다” 81%
얼마 전 몇몇 IT(정보 기술) 산업 인사와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언론 보도 이후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세계 최대 AI(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의 채팅 로봇 ‘챗GPT’를 화두로, 대화는 문화·과학·의료·금융 등 사회 영역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AI의 활약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 명이 “이제 ‘AI 국회의원’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말하자 “요즘 국회를 보면 차라리 AI에 맡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호응이 나오면서 갑자기 대화 주제가 국회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었다. 요즘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도 하나로 똘똘 뭉치지 못하는 정치권을 향한 답답함이었다.

18일 서울 여의도 인근 한강변에 꽁꽁 언 고드름 너머로 국회가 보이고 있다./뉴스1
‘양보를 하지 않는 상대방 때문’이라고 서로 주장하는 여야 정치권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여야 누가 더 책임이 있느냐보다는 정치권, 국회 전체의 잘못으로 비친다. 실제로 지난 12~14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주요 여론조사 업체 네 곳이 공동으로 진행한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여섯 기관 중 ‘꼴찌’였다.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해당 기관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지방자치단체 49%, 경찰 48%, 법원 44%, 정부 43%, 검찰 39%, 국회 15% 순으로 나타났다. 아예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에선 국회가 81%로 압도적 1위였다. 그다음이 검찰(56%), 정부(54%), 법원(50%), 경찰(48%), 지방자치단체(43%) 순이었다. 특히 응답자 중 보수 지지층 82%가, 진보 지지층은 78%, 중도는 87%가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국회 행태를 보면 유추 가능하다. 여야 간 충돌로 내년도 국가 예산안은 법정 시한(지난 2일)을 훨씬 지나고도 아직 처리되지 않고 있다. 국가 핵심 산업이자 안보와 직결된 ‘반도체 지원법’은 발의 4개월 반이 넘었는데도 이제 고작 ‘반쪽’ 처리를 위한 첫 관문만 넘었다. 반도체 지원법을 구성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중 전자만 지난 15일 소관 상임위(산자위)를 간신히 통과했고, 나머지 하나는 여전히 소관 상임위(기재위)에 묶인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요청한 법인세 인하도 여야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는 국정감사 피감 기관도 아닌 기업의 경영진을 매년 국감 증인으로 소환하고 있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로 2020년엔 기업인 증인 수가 63명이었지만, 지난해 약 90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00명이 넘는 기업인이 국감장으로 불려 나왔다.
국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AI에 맡겨보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국회나 국회의원의 권한은 우리 사회의 근간인 헌법이 부여한 것인 만큼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권한 행사에는 의무가 뒤따른다. 우리 헌법은 국회와 의원들에게 입법권(40조), 불체포특권(44조), 국가 예산 심의·확정권(54조), 국정조사·감사권(61조)을 주면서도 46조 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정파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이익이다. 국회가 신뢰를 잃은 건 국가 이익보다 정쟁(政爭)을 벌이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 회복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때 가능할 것이다.
-김봉기 기자, 조선일보(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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