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살라미… ‘법잘알’ 의원들의 선택적 준법]
[우울한 출발, 그래도 기대할 것은]
알박기·살라미… ‘법잘알’ 의원들의 선택적 준법
野 양곡법 직부의 강행
‘합법’ 꼼수 난무하는 국회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과 관련해 여야 의원들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덕훈 기자
“(양곡관리법 본회의 직부의는) 이미 국회법 절차에 의거해서 우리 상임위에서 의결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제 농해수위는 숫자만 많으면 여야 합의 없이 마음대로 다 하는 위원회가 됐습니다. 정글이나 다름없지 이게 무슨….”(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지난달 2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곧바로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이 법안은 작년 10월 법사위에 회부됐지만 여당의 반대로 처리가 계속 미뤄져왔다. 이에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접 보내는 ‘직부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국회법 86조 3항은 ‘법사위가 60일 이내에 (법안)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86조 3항은 민주당이 지난해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내주면서 개정됐다. 민주당은 당초 120일이었던 계류 기간을 60일로 단축시키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다수당의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국회법에 의거한 적법한 절차”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이 2020년 공수처법 개정안을 법사위에서 강행 처리할 때도 비슷했다. 당시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국회법에 정해진 규정대로, 일자일획의 어긋남이 없이 법안을 심사해왔다”고 했다. 입법자인 국회의원들이 국회법 자체는 지킬지 몰라도, ‘숙의’라는 법의 취지는 훼손하는 선택적 준법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란한 전술 판치는 국회
2012년 5월 개정된 국회법, 일명 국회선진화법에는 충분한 대화와 타협, 합의를 통해 법안을 만들라는 취지가 담겼다. 하지만 여야는 지난 10년간 수차례 이를 무력화하는 시도를 해왔다. 대표적인 게 안건조정위원회 ‘알박기’다. 쟁점 법안과 관련해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조정위는 여야 조정위원을 3명씩 동수로 구성해야 하는데, 4명 이상 찬성하면 바로 안건 처리가 가능하다. 지난해 민주당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처리할 때 안건조정위에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된 민형배 의원을 야당 몫으로 집어넣었고, 이에 검수완박 법안 처리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도 성 비위 혐의로 제명된 자당 출신의 박완주 의원을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활용해 처리했다. 공수처법 개정안(2020년), 언론중재법 개정안·탄소중립기본법(2021년) 등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민형배 의원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민주당을 탈당하고 검수완박법안을 심의하는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들어간 민 의원은 '기획·위장 탈당'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사진기자단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 진행 방해) 또한 선진화법이 소수당에 쥐여준 ‘방패’이지만, 다수당에 의해 여러 차례 저지됐다. 일명 ‘살라미 전술’이라는 회기 쪼개기가 대표적이다. 필리버스터 도중 국회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도 종결된 것으로 간주하는데, 다수당이 자당 출신 국회의장의 협조를 얻어 통상 한 달인 임시 회기를 단축해버리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할 때 살라미 전술로 필리버스터를 6시간 48분 만에 강제 종료시켰다. 2019~2020년 준연동형 비례제 공직선거법 개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을 처리할 때도 회기 쪼개기가 사용됐다.
‘법안 셀프 폐기’ 전술도 있다. 국회법 87조는 상임위에서 부결된 법안이더라도 의원 30명 이상이 7일 내에 요구하면 국회 본회의에 부의한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소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 하지만 2016년 당시 여당이자 다수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단독으로 운영위를 열고 국회법 개정안을 고의로 부결한 뒤, 본회의에 부의했다. 해당 법안은 의장 직권 상정 요건에 ‘재적 위원 과반수가 요구하는 경우’를 추가, 당시 과반 의석을 보유한 새누리당 단독으로도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었다.
◇헌정사 초유 위성 정당까지
2020년 초에는 ‘위성 정당 창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의석 감소를 피하기 위해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강하게 비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상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을 만들었다. 정당 득표율과 정당 의석 수의 괴리를 좁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양당 독식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의원 꿔주기’도 횡행했다.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은 모(母)당에서 탈당·제명을 통해 각각 20명, 8명의 국회의원을 파견받았다. 현역 의원 숫자를 늘려 투표용지 앞 번호를 차지하고, 국고 보조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였다.
여야가 짬짜미해 법을 우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법 57조 5항은 상임위 산하 소위원회의 회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소위 의결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악용해 회의를 비공개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예산소위와 조세소위에서는 일명 ‘소(小)소위’라는 법적 근거가 없는 협의체를 만들어 비공개로 쟁점 사안을 논의하는 게 관행이 된 지 오래. 소소위의 명목은 회의 참여 인원을 줄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는 것이지만, 밀실 협상을 통해 여야 실세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 구태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 가운데 소소위에서 100억원 이상 증액된 사업은 79건에 달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브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비공식적 규범에 의존한다고 봤고,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으로 상대 정당을 정당한 존재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법을 존중하고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제도적 자제’를 꼽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 두 규범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드레일과 같은 것인데, 한국의 거대 양당은 이를 훼손하는 행태를 자주 보여왔다”며 “법의 취지는 붕괴시킨 채 ‘법대로 했다’는 것은 국민의 대표자가 아닌 정당의 하수인으로서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이런 파행이 잦아질 것”이라며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공천 제도 개혁 등 근본적 정치 개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옥진 기자, 조선일보(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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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출발, 그래도 기대할 것은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우리나라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압축적 성장과 발전을 이루다 보니 과도한 경쟁, 물질 만능, 성과 지상, 승자독식, 빈부 차이 등 많은 부정적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갈등과 대립도 극심해졌습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지만 국민의 행복감은 오히려 떨어지고, 대한민국은 ‘분열 공화국’이라고까지 자조하는 형편입니다.

이를 해결해야 할 사명을 가진 정치권은 매번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입장이 바뀌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위선적인 난맥의 고리를 끊어주어야 합니다. 온 국민의 절실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가 과거의 퇴행적 행태를 단절하고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이룰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그러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이 종교, 언론과 법원의 역할입니다. 영국이 한때 어려움에 빠졌을 때, 영국인들은 교회, 언론과 법원이 제 역할을 하면 영국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 형편에 꼭 들어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종교, 언론과 법원의 역할은 미흡합니다.
종교의 본령은 개개인의 영혼 구원과 더불어 사랑을 바탕으로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적 기복(祈福) 신앙을 부추기거나 편향적 정치 활동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성직자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성직자가 대통령 내외를 저주하며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기도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자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극히 예외적인 성직자이길 바랄 뿐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그 바탕 위에 보편타당한 평가 분석을 통하여 사회를 바른 길로 이끄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세상의 목탁(木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일부 언론은 특정 이념이나 정치 세력의 파수꾼 역할을 하며 사회 혼란과 국민 분열을 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가짜 뉴스를 생산하기도 하고, 겉으로는 진리와 정의를 말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위선이 가득 차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2020년 6월 공개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뉴스 신뢰도는 21%로 조사 대상 40국 중 40위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부끄러운 일입니다.
법원은 국민의 신뢰가 그 생명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불의한 일이나 개인적으로 억울한 일이 있어도 법원에서 잘 가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국민은 희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법원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는 법관 대부분이 성실하고 바르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지만, 많은 국민이 의구심을 갖고 법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자체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과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극히 소수의 법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부끄러운 일입니다.
정치, 종교, 언론,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그 결과로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증오의 언어와 분노의 표정들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 대한민국에 결코 걸맞은 모습이 아닙니다. 국민이 깨어 있어 이를 바로잡아 주어야 하지만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솔직히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새해의 우울한 출발입니다. 그래도 기대할 것은 국민의 각성과 올바른 판단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조선일보(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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