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삼희의 환경칼럼]---
[15년 전엔 빛을 못 봤던 '펀치볼 세렝게티' 구상]
[한강 수달 가족, 근친 교배의 수렁에서 구해내야]
15년 전엔 빛을 못 봤던 '펀치볼 세렝게티' 구상
[한삼희의 환경칼럼]
대형 포유류가 사라진 현재의 '생태적 진공' 정상 아냐
조선시대만 해도 한반도엔 수백~수천 호랑이·표범 살아
半사파리 공원 형태의 생태 갈증 해소 구상 있었다
P-22로 알려진 퓨마. /로이터
미국 LA 도심 그리피스 공원에서 ‘P-22′라는 학술 연구 번호가 붙은 야생 퓨마가 10년 넘게 살았다. ‘할리우드 언덕’에 이어진 공원이다. P-22는 2012년 2월 무인 카메라에 처음 포착됐다. 그로부터 2022년 12월 건강상 문제로 안락사될 때까지 LA 시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P-22의 움직임이 노출될 때마다 언론의 뜨거운 취재 대상이었다. 2013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촬영한 P-22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사진은 미국인들을 매혹시켰다.
P-22는 산악 지대에서 두 개의 고속도로를 건너 도심 공원으로 왔다. 우리에 갇히지 않은 대형 포식 동물이 서울로 치면 남산 같은 곳에 살았던 것이니(그리피스 공원은 남산 8배 크기이긴 해도) 경이로운 일이었다. P-22에 자극받아 LA에선 번잡한 10차선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폭 50m, 길이 61m) 야생동물 이동 통로를 건설 중이다. 9000만달러(약 1200억원)가 드는 건설비 모금에 시민 5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머지않아 완공된다.
국내 비교 사례로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KM-53′을 들 수 있다. KM-53은 2015년에 태어나 지리산에 방사된 후 수도산(경북 김천), 가야산(경남 합천), 덕유산(전북 무주), 민주지산(충북 영동)을 누비고 다닌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2018년 5월엔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12시간의 복합 골절 수술을 받았다. 그러다가 작년 6월 경북 상주 민가 인근에 출몰 후 마취총을 맞고 달아나던 중 계곡에서 굴러 숨졌다.
지난 15일은 2004년 러시아 연해주의 반달가슴곰 6마리를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한 지 꼭 20년 되는 날이었다. 지리산 반달곰은 4세대까지 번식해 89마리로 늘었다. 안정적 확산이 가능한 규모라고 한다. 반달가슴곰 복원에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것은 이 땅에서도 대형 포유류가 야생을 활보하며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픈 욕구에서일 것이다. 곰은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민족 상징 동물인데 멸종 위기로 몰렸다는 건 자라나는 세대에게 설명하기도 난감한 일이었다.
반달가슴곰 얘기를 들으려 이우신 서울대 명예교수(전 자연보전협회장)에게 연락했다가, 환경부가 2009년 강원도 양구군 펀치볼 지역에 야생 사파리 공원 조성을 검토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저기 동물원이 있다지만, 동물원은 좀 슬프다. 당시 계산으론 3300억원을 투입하면 노루·고라니·대륙사슴·산양·멧돼지·영양·순록·몽골가젤 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1250만평 규모 사파리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관람객이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10만평 크기의 별도 육식동물 우리엔 관람객들이 다닐 천장형 덱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펀치볼 사파리 공원은 통일 이후엔 DMZ로 연결되는 국제적 생태 공원이 될 수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여의도 20배 크기의 분지 지형이 화채 그릇(punch bowl) 같다고 붙인 이름인데, 국제적 인지도에도 유리한 지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뭣보다 지역의 71%가 국유지인 데다 거주 인구(당시 1400명)가 적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펀치볼 미니 세렝게티(탄자니아 야생 공원) 구상은 관련 기관의 여러 차례 논의 끝에 공론화도 못 해보고 일단 보류로 결론 났다. 수도권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이 제일 문제였다. 계획이 성사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독일엔 어린이들이 야생동물을 직접 접하는 야생 공원이 100군데 이상 있다고 한다.
생태학에 ‘기준점 이동 증후군(Shifting Baseline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과거엔 현관문 밖이 바로 세렝게티였는데, 그걸 본 일이 없는 현 세대는 지금의 생태적 진공 상황에 익숙해져 그걸 정상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엔 한반도에 사는 호랑이·표범이 5000마리에 달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조선의 생태환경사·김동진·2017)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반달가슴곰만 해도 조선총독부 시절 1000마리 이상 포획했다고 한다. 고려를 점령했던 몽골이 우리 조정에 2만마리의 수달 가죽을 보내도록 요구했다는 역사 기록도 있다(수달연구센터 한성용 박사). 수백, 또는 수천마리의 호랑이, 표범, 반달가슴곰이 한국의 숲을 누볐던 과거가 있는 것이다. 그때로 되돌아가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생태 파괴로 사실상 상실해버린 대형 포유류를 부분적으로라도 회복시켰으면 하는 소망엔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지금의 생태적 권태를 초래한 데 대한 일종의 죄의식일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경제 풍요를 이룬 다음 등장하는 윤리의 확장 아니겠는가.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조선일보(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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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수달 가족, 근친 교배의 수렁에서 구해내야
팔당댐 넘은 임신 암컷, 2016년 서울 한강에 정착
DNA로 ‘15마리 번식’ 식별.. 그중 ‘남매 교배’ 새끼 확인
싱싱한 외부 유전자 수혈로 건강한 수달 공동체를
서울 한강 일대에서 확인된 수달 집단에서 근친 교배 사실이 DNA 조사로 확인됐다. 한강에는 수달 15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서울시가 지난달 27일 발표했다. 사진은 한강에서 발견된 수달의 모습. / 서울시
서울시가 지난달 27일 ‘서울 한강에서 1급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달 15개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강 일대에서 수달 배설물을 수집해 DNA 검사에서 15마리의 존재를 식별했다는 것이다.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박사팀이 1년간의 연구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1973년 팔당댐 완공으로 한강 상·하류 간 수달 이동 경로가 단절된 후 댐 하류 구간에선 수달이 목격된 일이 없다. 1997년 수달 사체가 나온 적이 있지만 죽은 상태에서 댐 방류수에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2016년 3월 탄천 하류에서 수영하던 수달 한 마리가 시민 카메라에 잡혔다. 이어 한강유역환경청이 무인 카메라 모니터링에 나섰고, 2017년 1월 천호대교 북단 쪽 둔치에서 어미 한 마리와 새끼 세 마리를 포착했다. 가족 네 마리의 야밤 이동 장면이었다. 같은 해 9월 팔당대교 인근 도로에서 로드킬당한 새끼 수달 사체가 발견됐다. 그 후 2020~2021년 민간단체들이 성내천·중랑천·고덕천 등의 한강 본류 합수부와 암사·고덕 습지생태공원, 난지한강공원 등에서 수달을 촬영하거나 분변·발자국을 확인했다.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찍히기도 했다. 한 박사팀에겐 서울시가 2021년 11월 용역 조사를 의뢰했다.
한 박사는 작년 11월 28일 동북아생명다양성연구소가 17년째 시상해온 ‘동북아생물보전대상’의 2022년 수상자로 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 누가 상을 받는지도 모른 채 박수 부대로 차출됐다가 한 박사를 만났다. 한 박사는 국내 수달 연구의 개척자로 30년 연구 경력을 갖고 있다. 그날 한 박사의 수상 소감 가운데 기억에 박힌 대목이 있다. 2016년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한강에서 발견된 수달이 임신 상태였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팔당댐 상류 쪽엔 수달이 서식한다. 그러나 댐에 가로막혀 하류 쪽으로 넘어올 수는 없다. 강 양쪽 산기슭을 타고 하류 쪽으로 건너오는 방법이 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강 양편의 4차선·2차선 강변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2016년 촬영된 탄천 수달은 그 도로를 건넜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나서 10개월 뒤 어미와 새끼 세 마리가 무인 카메라에 찍혔다. 처음 팔당댐을 건넌 어미가 당시 임신 상태였고, 그 어미가 팔당댐 하류 쪽에 정착한 후 새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로드킬 수달은 세 남매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 박사팀이 한강 일대에서 수집한 수달 분변 34개 시료의 분석은 유전자 기업인 마크로젠의 황인욱 박사팀이 맡았다. 황 박사는 “야외에 노출된 분변 DNA가 자외선에 분해되고 미생물에 오염돼 조각조각 끊어지고 훼손된 상태였다”고 했다. 어렵게 PCR 증폭을 거쳐 종(種) 특이성을 갖는 마이크로 새틀라이트 유전자 영역을 분석한 결과 15마리의 개체 식별이 가능했다. 황 박사팀은 이어 개체들의 가족 근연(近緣) 관계를 들여다봤다. 새끼는 암수 부모로부터 유전체를 각각 물려받는다. A와 B의 유전자 서열이 C에게서 함께 확인되면 C는 부모 A와 B의 새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엄마, 아빠, 새끼의 세 마리로 구성되는 가족 두 집단을 확인했다. 수달은 한배에 둘 또는 셋의 새끼를 낳는다. 나머지 9마리 중에서도 두 가족의 구성원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채취 유전자의 불완전성으로 더 이상 분석은 불가능했다.
문제는 두 가족 가운데 한쪽의 부모 수달이 남매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두 가족이 유전적으로 완전 분리된 집단인지도 알 수 없다. 맨 처음 팔당댐을 건넌 용감한 어미로부터 갈라진 친족 관계일 수 있다. 만일 사촌, 육촌 등의 친족 관계일 경우 그것들끼리 교배하면 기형 등 근친 퇴화의 개체들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추정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엔 야생 수달 집단이 산다. 그중 일부가 임진강과 한강 하구를 거쳐 서울 쪽으로 거슬러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남매 교배 사례가 확인된 만큼, 한강 수달은 근친 번식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유전적 다양성 수치에서도 한강 수달들은 건강한 집단보다 다소 떨어지는 수치로 나왔다고 한다.
수달은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하천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다. 수달 서식은 하천 생태계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강 오염도 개선됐다는 증거다. 한강 수달 가족이 건강하게 대를 이어가기 위해선 외부 생태계로부터 다양한 유전자를 수혈해줘야 한다. 한강 규모 하천에서 탄탄한 수달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최소 80개체가 필요하다고 한다. 뉴욕 허드슨강도 1990년대 후반 279마리를 방사해 수달 생태계를 복원시켰다. 서울 시민들이 한강에서 싱싱한 야생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조선일보(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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