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던 근육, 손글씨의 귀환]
[글쓰기로 수메르인과 만나는 방법]
쓰지 않던 근육, 손글씨의 귀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빼곡한 광화문 교보문고. 그 한편의 전시 공간에서 차분한 글씨 여럿이 눈에 들어왔다. ‘제10회 교보 손글씨 대회’ 수상작. 입상한 초등학생, 성인, 외국인 손글씨 저마다 개성도 개성이었지만, 모두 하나같이 정성이 느껴졌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 손에 이끌려 손글씨 대회에 나갔다. 주어진 문장을 한글 정자체(正字體)로 옮겨 적어야 했다. ‘글짓기도 아니고 똑같은 글을 베껴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갸우뚱한 기억이 있다. 손글씨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손글씨의 공간은 점점 줄었다. 요즘 지하철에서 학생들이 태블릿, 스마트펜으로 문제 푸는 모습을 보면 필기는 필기인데 예전 같은 느낌은 아니다. 대학 강의실에도 손글씨 자리는 거의 없다.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앱으로 활자로 전환하면 챗GPT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까지 해주는 과정에 손글씨가 비집고 들 틈은 없다.
날마다 글자를 접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지만, 손글씨 기억은 요원하다. 지금 이 글도 노트북의 몫이다. 수습기자 시절에는 의무적으로 하루 기사 2건을 필사한 적이 있다. 길거리 벤치에서, 택시 안에서 휘날려 썼던 글씨는 초등학생 시절보다 형편없어졌다. 좋은 글씨체를 위해서는 필압(筆壓)이 중요하다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마트폰, 노트북에 절여져 손글씨 근육과 기억이 퇴화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퇴화가 당연할 수 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어린 세대에겐 손글씨는 생소한 게 당연하다. 지난 7일 교총이 발표한 초중고 교원 5848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94.3%는 ‘디지털 기기 보급으로 손글씨가 줄어 학생들의 필체 가독성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손글씨는 이대로 사라질까 싶지만, 반전도 있다. 스웨덴은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에 대처하기 위해 학교에서 종이책, 손글씨 같은 전통 방식의 교육 시간 비율을 다시 늘리고 있다.
경북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창용쌤 글씨 교실’도 비슷하다. 이 선생님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분필로 쓴 칠판 판서에 집중한다. 아이들은 수업용 태블릿이 있지만, 칠판만 보면 1990년대 모습이다. 판서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 선생님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현란한 효과보다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판서의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사고력은 패드(태블릿) 터치할 때 키워지는 게 아니고 때묻은 책을 손으로 넘길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도 길러진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손글씨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사람이 늘고 있어 반갑다. 올해 10회 교보 손글씨 대회 예선에는 4만4993명이 참여했다. 전년보다 3만254명이나 늘었다. 대회 응모 조건은 ‘감명 깊게 읽은 책 속 문장을 골라 50자 이상 손글씨로 작성’이다. 내년 대회 참가를 목표로, 앞으로 매주 한 번씩 퇴화한 손글씨 근육을 다시 키워볼 계획이다.
-이정구 기자, 조선일보(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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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수메르인과 만나는 방법
글씨 쓴 게 언제였던가… 부조금 봉투 뒷면에 이름 쓴 게 고작
취재수첩에 볼펜으로 쓰던 기자들도 이젠 타이핑·녹음으로
손글씨는 쐐기문자 쓰던 고대인과 다르지 않은 인류의 유산
고등학교 때 한 친구의 별명은 ‘대서소’였다. 그만큼 글씨를 잘 썼을 뿐 아니라 뭔가 많이 배운 어른의 풍모가 느껴지는 글씨였다. 월말고사 성적표가 나오면 대서소에게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부모님 대신 성적표 확인 문구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용의주도한 대서소는 그중 한 명의 부탁만 들어줬는데, 혹여 여러 개를 써줬다가 같은 필체가 적발될까 봐서였다. 그렇게 대서소는 ‘잘 받아 보았습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같은 뻔한 문장을 친구 성적표에 써주고 라면이나 콜라 같은 것을 대가로 챙겼다. 자신의 성적이 떨어졌을 땐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자기 성적표에 글을 써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군대에 ‘차트병’이란 보직은 없을 것이다. 전지(全紙)를 여러 번 접은 자국으로 행을 만든 뒤 굵은 매직펜으로 글씨를 쓰던 병사다. 차트병의 글씨체엔 특정한 매뉴얼이 있었다. 이를테면 ‘받침 ㅇ’을 물방울이 가로누운 형태로 쓰는 식이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던 차트병은 모두 파워포인트로 대체됐다.
글씨를 쓴 게 언제였던가. 남의 글씨를 본 건 또 언제였던가. 부조금 봉투 뒷면에 이름 석 자 쓴 게 최근의 필기 행위였던 것 같다. ‘이곳에 쓰레기 버리지 마시오’나 ‘개인 사정으로 오늘 하루 쉽니다’ 같은 글씨를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글씨는 아득하고 희미하다.
신문기자는 비교적 최근까지 글씨를 써야만 먹고사는 직업이었다. 취재 수첩을 들고 다니며 보고 들은 것을 끄적거려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수첩에 볼펜으로 쓰는 기자를 보기가 어렵다. 기자회견장은 흡사 타이핑 경연대회장 같다. 타이핑을 할 수 없으면 녹음을 하고 뭔가 베껴 써야 하면 사진을 찍는다.
손글씨로 쓴 신문사 작문 시험 채점을 하다 보면 글씨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잘 쓴 글씨는 100명 중 한두 명 정도다. 대부분은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글씨’이고 몇 명은 말 그대로 악필이다. 물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도 유려한 문장을 소금 벼락 맞은 지렁이 같은 글씨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작년 7월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글씨 쓰기 대회를 열었는데 최우수상 3명 중 2명이 베트남 출신 아이들이었다. 우수상 6명 중에서도 5명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었다. 버튼이나 자판을 눌러 한글을 배운 아이들보다 초등학교에서 공책에 글씨를 쓰면서 한글을 배운 아이들이 글씨를 훨씬 잘 쓴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손글씨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맘에 드는 손글씨 폰트를 돈 주고 사서 스마트폰에 저장해놓고 쓴다.
글씨 쓸 일이 없으니 글씨를 잘 쓸 수 없다. 대표적인 글쓰기 훈련인 초등 저학년 일기 숙제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일기 검사는 인권 침해’라고 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인권이 신장되니 부모 등골이 휘었다. 아이의 손글씨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손글씨 과외로 몰린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모든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헌법의 인권 침해 여부를 당장 검토해야 한다.
요즘 손글씨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백화점이나 도서관 손글씨 강좌에 사람이 몰리고 캘리그래피 책들도 많이 팔린다고 한다. 교보문고가 올해로 8년째 개최하고 있는 손글씨 대회에는 매년 수천 명이 글씨를 써서 응모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1월 23일을 ‘손글씨의 날’로 정해 각종 행사를 연다. 우리도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인간이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을 기념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념한단 말인가. 6000년 전 수메르인이 글씨를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전히 동굴 속에서 조약돌이나 과일 씨앗으로 기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종이의 저항을 뚫고 펜촉을 마찰시켜 뇌에 불꽃을 일으키는 행위다. 글을 망치지 않으려면 머릿속에서 문장을 완성한 뒤 손과 팔의 근육을 움직여 글자를 써나가야 한다. 이 글씨가 오랜 시간을 견뎌 먼 후대에 전달되리라는 믿음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점토판에 쐐기 문자를 새겨 쓰던 수메르인과 만나게 된다. 그들의 쓰기와 나의 쓰기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인들과 만나기 위해 피라미드를 쌓거나 구리를 벼려 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나뭇가지를 쥐고 땅바닥에 글씨를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 있다. 그처럼 손글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류의 유산인 것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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