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박사도 50세 퇴직해 치킨 튀겨”]
[초등생 ‘의대 준비반’]
[의대가 뭐길래, SKY 자퇴생이 1874명이나… ]
[실리콘밸리 감원 칼바람의 역설]
[의사 증원과 진료과 편중 문제 더 미룰 수 없다]
“이공계 박사도 50세 퇴직해 치킨 튀겨”
처우개선 없인 ‘의대 쏠림’ 못 막아
“의사 면허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공계) 박사는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해도 50세가 넘으면 (퇴직해) 치킨을 튀긴다는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얼마 전 한 이공계 교수가 씁쓸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해 준 말이다. 그는 “어차피 치킨을 튀길 거라면 석·박사 하지 말고 학부 졸업 직후 시작해 몇 년이라도 돈을 더 버는 게 낫지 않겠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가 첨단산업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올해도 이공계 인재는 의대로 쏠리고 있다.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영재고, 과학고 학생들조차 최상위권 이공계 학과보다 의대 진학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동아일보가 16∼20일 보도한 ‘이공계 블랙홀 된 의대’ 시리즈를 통해 드러난 현실이다.
영재고를 졸업하고 서울의 의대에 재학 중인 A씨(23)는 “고교 시절에 의대 원서를 쓰는 친구들은 KAIST에 지원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고 했다. 의대에 가려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KAIST마저 지원해 합격하면 다른 친구들의 자리를 빼앗는 셈이라는 이유에서다.
‘과학 영재’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이다. 의사 면허를 따면 소득, 사회적 지위가 일정 수준 이상 보장된다. 반면 ‘이공계 박사’ 학위는 이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교수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고 기업 연구원으로 취직해도 고용이 불안정하다. 수도권의 과학고를 졸업한 뒤 의대에 진학한 B씨(21)는 “이공계는 최고가 돼야 성공할 수 있는데 의사는 중간 정도만 해도 원하는 전공과에 들어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직업과 삶의 불안정성 때문에 이공계를 외면한다면 정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에는 대학 지원, 산학연 연계 같은 내용만 있을 뿐 인재들의 처우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영재고를 거쳐 의대에 진학한 또 다른 학생은 “투입한 시간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연구를 계속 했을 것”이라고 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정부 출연 연구원부터 정년을 없애고 석·박사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확대해 경제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첨단 인재 양성’이란 구호만으로는 인재들을 끌어올 수 없다.
-조유라 정책사회부 기자, 동아일보(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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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의대 준비반’
의대 열풍이 거세다 못해 학원가에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사교육을 통한 초등학교 선행 학습이 예전에는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의대 선호가 높아지면서 학원들이 간판을 ‘의대반’으로 바꿔달고 있다는 것이다. 학원들은 입학 고사까지 치러 ‘초등 의대반’을 뽑는데 경쟁률 10대1도 예사라고 한다.
▶유튜브에도 ‘초등·중등 의대 로드맵’ 같은 동영상들이 떠있다. 실시간 동영상 밑에는 “초1 때 수·영 어느 정도 해놔야 할까요” “초5 남아 엄마입니다. 지금 진도대로라면 초등 때 고등 선행 불가한데 괜찮을까요” 같은 학부모 질문이 쏟아진다. 인터넷에 떠 있는 ‘초등생 의대반 선발고사’ 문제에는 “고교 문제 같은데” “초딩 때 저 어려운 걸 하면 중딩, 고딩 때는 뭘 공부하냐” 같은 댓글도 붙어 있다.

▶전국 수석을 차지한 자연 계열 수재들이 무슨 공식처럼 물리학과로 진학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도 대입 예비고사 전체 수석인 임지순 전 서울대 교수, 1971년도 수석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이 다 물리학도였다. 1990년 입시학원 대입 배치표를 보면, 자연 계열 성적 순위가 서울대 물리학, 컴퓨터공학, 의예, 전자공학, 미생물학이었다. 상위 20학과 중 서울대를 제외하면 연세대 의예 하나뿐이었다.
▶요즘 입시에서는 대학 서열 최상위에 ‘의대’가 있다.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란 말이 굳어진 지 오래다. 2022학년도 정시 합격자의 성적 상위 20학과가 몽땅 의·치·한이었다. 성적 30위권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30위)를 빼고 다 의학 계열이다. 50위권으로 넓혀도 서울대 5개 학과를 제외한 45개 학과가 의·치·한이었다. 한 입시 컨설턴트는 “독도나 마라도에 의대를 만들어도 학부모들은 서울대 안 보내고 거기 보낼 것”이라고 했다. 성적 최상위 1%를 향한 경쟁에,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이 가세해 초등생 의대 준비반이라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등장한 것이다.
▶의대 선호 현상이 강해진 것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대기업조차 연구원들을 구조조정하는 걸 보면서 월급쟁이의 직업 안정성이 심하게 흔들린 탓이다. 지금도 50대 초중반이 되면 기업 임원이어도 직장에서 퇴직하는 걸 보면서 ‘평생 직업’의 전문직 선호가 훨씬 강해지는 것이 의대 쏠림 현상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필수 의료 붕괴는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도 아이러니다. 머리 좋은 인재들이 온통 의대로만 쏠리는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되는 현실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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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가 뭐길래, SKY 자퇴생이 1874명이나…

“전국에서 의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는?” 답을 과학고나 자사고 같은 유명 고교에서 찾으려고 하면 이미 출발부터 틀렸다. 정답은 ‘서울대’라고 한다. 서울대생 가운데 재수나 반수(半修)를 해서 의대에 가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의 우스갯소리지만 최근 대학에 불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종로학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자퇴한 학생이 1874명으로 전년 대비 40% 늘었다. 이들 대학의 입학 정원이 대략 1만2000여 명이니까 6명 중 1명꼴로 어렵게 얻은 학생증을 자진 반납한 셈이다. 이들 자퇴생의 75%는 자연계열로 대부분 수능을 다시 쳐서 의약 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퇴생이 많아지면서 학과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의대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과학·기술 인재를 키울 목적으로 설립된 과학고, 영재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과학고는 ‘의학 계열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학생만 입학시킨다. 만약 서약을 어기고 의대에 진학하면 장학금·교육비 환수, 대입 추천서 제외 등의 불이익을 준다. 하지만 올해 입시에서 서울과학고는 3학년 정원의 32%인 41명, 경기과학고는 19%인 24명이 의대에 지원했다. 그동안 지원받은 교육비 500만∼600만 원을 토해 내는 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대 선호 현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됐지만 최근 강도가 더 세졌다. 의대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의대 졸업 후 누릴 수 있는 직업적 안정성과 고소득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3070만 원이다. 대기업 평균 연봉 7000만 원의 3배를 웃돈다. 개원의는 더 높아 평균 3억 원에 육박한다. 청년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는데 의대에 입학만 하면 장밋빛 미래의 문을 열 수 있으니 실력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무더기 자퇴로 공백이 생기면 중위권 대학 학생들이 편입을 위해 재수나 반수를 하고, 다시 지방대 학생들을 자극하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이처럼 의대가 블랙홀처럼 우수한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것은 대학 교육과 인재 관리 측면에서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의대 쏠림은 결국 다른 선택지가 불확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업 등에 도전할 만한 환경이 부족하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와 적성을 펼치는 데 있어 의대만큼 매력적이고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많아야 의대 쏠림이 사라질 수 있다.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하겠지만 정부와 산업계, 교육계가 차근차근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
-서정보 논설위원, 동아일보(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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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감원 칼바람의 역설
美테크기업들 대규모 해고.. 다른 산업으로 혁신 확산 계기
의대가 인재 블랙홀 된 한국.. 이대로면 미래 경쟁력 유지 못 해
한국도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지고 대기업 CEO가 “1000원도 아끼자”고 호소하는 상황이지만 미 실리콘밸리 감원 한파 소식을 접하면 ‘진짜 살벌하다’는 생각이 든다. 팬데믹 기간 역대급 호황을 누렸던 테크 기업들이 고금리와 수요 급감에 직면하자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만명을 해고했다. 실업률 3.7%, 완전 고용이나 다름없는 미국 전체 고용 시장과 딴판인 이런 현상을 일컫는 ‘소프트웨어 리세션(recess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세계 최고 인재 블랙홀이던 실리콘밸리가 위기 신호를 가장 먼저 알리는 ‘카나리아’로 전락했다는 평도 나온다.

1월 20일 미국 뉴욕 구글 빌딩. 구글 모기업 알파벳은 12000명을 해고 할 예정이다./UPI 연합뉴스
현재의 감원 러시는 누구보다 20~30대 Z세대 개발자들에게 충격이라고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2007~2008년) 이후 대략 15년간 위기가 없었던 사회에서 성장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실리콘밸리에서 최고 대접을 받던 이들이 처음으로 삶의 냉혹함을 맛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메일 한 통이나 화상회의를 통해, 심지어 회사 전산망 접속이 차단된 걸 보고 해고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방식은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다고 한다.
이들의 좌절은 그러나 전통 기업들로선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제조, 금융, 유통 기업들로선 단기간에 수만~수십만 명의 일류 개발자가 쏟아지는 큰 장이 선 것이다. 실제로 실업자가 된 미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79%는 석 달 안에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한다. 실리콘밸리 밖 다양한 산업 분야에선 인재는 여전히 공급 부족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IT업계에선 그래서 ‘인재의 재분배(redistribution)’라는 말이 나온다.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을 체화한 젊은 개발자들이 산업 각 분야로 혁신과 변화를 전파하는, 일종의 분수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같은 밑 빠진 독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 회사(메타)에서 헛힘 빼느니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낫다” “140자 메시지 놀이(트위터) 보다 가치 있는 일이 널려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처받은 실리콘밸리 청춘들에겐 미안하지만 의대가 인재 블랙홀이 돼버린 한국으로선 차라리 부러운 얘기다. 고3 아들을 둔 한 지인은 “의대를 지망하는 아들이 재수를 결심했다”고 했다. 원서를 넣었던 여러 대학 이공계 학과에서 합격 통보가 왔지만 아들은 시큰둥하더란다. 그런데 서울 대치동에 있는 의대 입시 전문 유명 재수 학원 전형을 통과했다는 소식엔 환호하더라는 것이다. 이른바 ‘올케어’로 불리는 이 학원은 교재비와 급식비를 뺀 한 달 수강료만 200만원이라, 1년이면 대학 2년 치 등록금이다. ‘7수를 해도 의대’라는 세태 때문에 학비 무료에 삼성전자 취업이 보장되는 일류대 반도체 학과조차 정원을 채우려면 줄줄이 추가 합격자를 받아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한 임원은 “세계 제조 기지라던 중국이 미·중 갈등 와중에 글로벌 공급망에서 탈락한 것은 한국엔 더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만큼 품질과 가격 모두 우수한 소재,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가 어디 있느냐”며 우리 경제의 앞날을 밝게 본다고 했다. 하지만 K반도체, 배터리의 비교우위도 인재가 공급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다.
미 빅테크의 대규모 감원 소식을 전한 한 외신의 인기 댓글 중엔 “서른에 겪은 구조 조정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는 한 개발자의 글이 있었다. ‘아프니까 개발자다’ ‘아프니까 창업자다’라는 현실 감각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쏟아지는 미국과 ‘SKY’ 이공대에 합격하고도 의대 가겠다며 수천 명이 자퇴하는 한국. ‘실리콘밸리 청춘들의 아픔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길성 기자, 조선일보(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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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증원과 진료과 편중 문제 더 미룰 수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6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26일 의대 정원 확대와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등 현안들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세계 수준의 능력으로 국민 건강에 이바지해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일부 진료과는 전공의가 부족해 진료에 차질을 빚을 정도다. 지방에서는 의료 인력을 구하지 못해 의료 공백 상태가 빚어지고 있다.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의대 정원을 앞으로 10년 동안만 400명 늘린 3458명으로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의료계가 집단 휴진 등으로 반발하자 보류했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사 공급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2035년에는 2만7000여 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OECD 보건통계 등을 봐도 2020년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3.7명)보다 적다. 빠른 고령화 진행으로 앞으로 의료 수요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로 우리 의료계에 더 심각한 문제는 의사들의 진료과별 편향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성형외과 등 위험 부담이 적고 상대적으로 편한 쪽으로 의사들이 몰리고 흉부외과 등은 기피 대상인 상태라는 것이다. 흉부외과처럼 위험이 따르고 의료 기술이 더 필요한 분야는 수가를 인상하고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처럼 수가 인상만으로 충분치 않을 경우 유지·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세심한 보상 체계를 짤 필요가 있다. 심야 시간 응급실 운영 문제 역시 이대로는 안 된다. 지방 의료 인력난도 일차적으로 의사들에게 그만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방안들은 적절한 의사 수를 확보할 경우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2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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