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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죽음에 관하여] ....

뚝섬 2023. 2. 22. 09:34

[시대적 죽음에 관하여]

[인파 예방 부재와 현장 대응 미흡이 참사 원인, 정쟁 말고 교훈 찾길]

[이상민·윤희근 서면조사도 안한 警, 유족 납득되겠나]

 

 

 

시대적 죽음에 관하여

 

[조은산의 시선]

백쉰아홉의 죽음은 이제 삼백넷의 죽음처럼 진열되고 유통된다
예견된 참사같은 공허한 늘어놓으며 분노·증오를 파는 이들
축제판에서 장송곡 후렴이 반복된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정치와 결합한 죽음은 재화로서 가치를 지닌다. 대량생산에 따른 공급 과잉이 시장 확대를 위한 전쟁으로 해소됐듯, 대형 참사로 벌어진 집단적 죽음이 의석 확대를 위한 정쟁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이 땅의 죽음은 더 이상 거룩하지 않다.

 

이제 죽음은 소비재로서 포장되고 유통되며 진열되고 있다. 본질을 겹겹이 둘러싼 채 그 부피만 키워가는 것은 대체로 진실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다. 단 하나의 죽음도, 백쉰아홉의 죽음도 진실은 결국 하나다. 그러나 백쉰아홉의 죽음은 마치 백쉰아홉의 진실을 요구하는 듯 끊임없이 탈피를 거듭하며 죽음을 영원한 동면 안에 가둔다. 귀천해야 할 죽음이 진실에 갇혀 울고 있다. 그 눈물을 대신 흘려주는 건 웃고 있는 산 자다.

 

유통 과정을 주도하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지성인 집단이다. 이 사회가 그동안 쏟아낸 숱한 죽음 앞에 무관심했던 그들이 한날한시에 벌어진 대형 참사로 마치 성찰이라도 한 듯, 말과 글을 놀려 애도를 갈구하고 처벌을 촉구하는 모양새는 제법 비장해 보인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과 방임이 아닌 내재적 한계에서 비롯된 죽음은 그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 ‘예견된 참사’ 같은 공허한 말을 늘어놓고, 사망자를 ‘희생자’로 치환하는 기지를 발휘해 핏빛 대지 위로 선명한 그들의 고귀한 발자국을 지워내려 애쓴다. 그렇게 죽음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으로 완성돼 진열대에 오른다.

 

진열된 죽음들 앞에, 열성적으로 호객 행위에 임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광인에 가깝다. 비대한 몸뚱이를 고급 양복으로 감싼 그는 한 손에는 성경과 목탁과 묵주를 동시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주판을 거머쥔 꼴이다. 손목엔 ‘혁명가가 사랑한 자본주의의 상징−롤렉스’가 반짝이는데, 특이한 점은 구두는 낡고 해져 볼품없다는 것이다. 그는 전율하는 감동으로 증오와 애도를 외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은 소비될 것이다. 최종 소비자는 대중이다. 고결한 대중은 언제나 분노를 원한다. 정치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거대한 죽음으로 인해 거대한 분노가 물결치고, 거대한 의혹이 발굴되며 거대한 추적과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산개한 각자의 여린 죽음은 철저히 소외되고 잊히게 된다. 국가의 부재로 어른 손에 죽어간 한 아이, 국가의 온정으로 방면된 살인 전과자의 손에 죽어간 한 여인, 국가의 강제로 군부대에서 죽어간 한 청년, 국가의 방임으로 냉골에서 죽어간 한 노인. 그러나 이러한 죽음은 매대 위에 없다. 정치가 원하는 죽음의 형식은 언제나 박리다매를 위한 복수형일 , 피해자 A, 사망자 B씨로 표기되는 단수형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죽음이라 하여 국가의 책임이 없겠는가. 이런 의문과는 무관하게도 나는 죽음의 축제 한복판에 서 있다. 늘어선 죽음들 앞에, 다시 호객 행위에 열중인 정치인 모습이 보인다. 그의 목에 걸린 소형 라디오에서는 흥겨운 트로트 박자로 리믹스한 장송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반복되는 후렴구가 인상 깊다. 내가 다가서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안다. 너는 위선과 위악에 사로잡혀 영혼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너의 모습을 보라. 너는 인간인가, 짐승인가?”

 

“인간은 그토록 이중적인 존재입니다. 그 거대한 죽음 앞에서 당신이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듯 말입니다.”

 

나의 대답에 정치인은 긍정도 부정도 없이 황급히 자리를 뜬다. 삼백넷의 죽음이, 아이들의 영혼이, 노란 리본과 함께 그가 떠난 자리에 버려져 흩어지고 있다.

 

축제 저편에서, 죽음에 책임을 자들이 재판대 위로 올려져 꿇어앉아 있다. 삽시간에 몰려든 군중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예견된 참사였다면서 예견하는 기사 한번 쓴 적 없는 언론인들이 돌을 던지고, 당일 경찰력 대부분을 차지한 시위꾼들이 돌을 던지고, 설렁탕을 즐겨 먹고 뒷짐을 지고 걷는 노인들도 돌을 던진다.

 

술에 취해 춤을 추던 군중이 ‘증오와 애도’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성난 눈으로 나를 바라봤을 때, 놀랍게도 나는 군중은 언제나 옳고 선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언제나 그랬듯 나는 인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리로 가자. 웃으며 딸아이를 이끄는 나의 손에도 어느새 돌 하나가 쥐여 있다.

 

-조은산·'시무 7' 청원 필자, 조선일보(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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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 예방 부재와 현장 대응 미흡이 참사 원인, 정쟁 말고 교훈 찾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데이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핼러윈 압사 사건에 대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다. 좁은 골목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사람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군중 유체화’ 현상이 일어났고 여러 사람이 순차적으로 넘어지면서 참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사고를 관리하고 예방할 의무를 저버리고 현장 대응을 제대로 못한 서울경찰청장과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등 23명을 사법 처리했다고 한다.

 

군중 유체화는 1 공간에 7 정도가 몰렸을 시작된다. 그런데 참사를 전후한 시각에 사고 지점의 군중 밀집도는 1㎡당 11명까지 올라갔다. 부상자는 “파도타기처럼 왔다갔다 했고 미는 힘 때문에 자꾸 공중으로 떠서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였다”고 했다. 사고 당일 오후 5~10 사이 이태원역 하차 인원은 51639명으로 일주일 전보다 4.5 많았다. 감당할 수 없는 인파가 몰려 감당할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 방역 해제로 인파 폭증이 예상됐는데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당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재난과 사고에 대한 주의 의무가 있는 서울경찰청은 예방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관할 경찰서와 구청은 현장에서 인파 관리를 하지 않았고 현장 신고에 소홀히 대응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요청을 무시했다. 각자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태만이 겹치고 겹쳐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이를 “과실 중첩”이라고 했다.

 

상급 기관인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사법 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은 법률상 이들 기관에 구체적 안전 관리 의무가 부여돼 있지 않다고 했다. 무조건 상급 기관이라고 의무가 없는 곳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도의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다할지 고민해야 한다.

 

사고를 정치 호재로 삼는 한국 사회 일각의 고질적 행태는 이번에도 재연됐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난 사고가 늘어난 것은 사고에서 교훈을 얻기보다는 정치에 이용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참사의 정치화’만 반복하면 참사가 반복된다.

 

-조선일보(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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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윤희근 서면조사도 안한 警, 유족 납득되겠나

 

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가 어제 마무리됐다. 특수본은 출범 이후 73일 동안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6명을 구속하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17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특수본은 각 기관들의 과실이 중첩돼 다수의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총체적 부실이 빚은 인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특수본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이른바 ‘윗선’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당초 특수본이 출범했을 때부터 ‘경찰이 행안부 장관과 경찰 수뇌부를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이에 특수본은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행안부를 압수수색하면서도 장관 집무실은 제외하는 등 눈치를 살폈고 직접 조사는 일절 없었다. 윤 청장에 대해서도 집무실과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을 뿐 역시 소환 조사 한번 없이 내사 종결했다.

이 장관은 참사 직후 “경찰이나 소방 인력 문제가 아니었다” 등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윤 청장은 참사 당시 충북 제천의 캠핑장에서 술을 마신 채 잠들어 있었다. 부적절한 발언이나 행적의 문제를 떠나 두 사람은 재난 안전 업무의 최고 책임자들이다. 그런데도 특수본은 “구체적인 주의 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면죄부를 줬다. 이런 논리라면 총괄 컨트롤타워의 면책 범위는 한없이 넓어지고, 일선 기관과 실무자들만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걸 누가 수긍할 수 있겠나.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유족들은 “진상 규명만큼 큰 치유는 없다”고 호소한다. 부적절한 상황 판단, 사고 후 늑장 조치, 유관 기관 협조 부실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다. 검찰은 처음부터 다시 수사한다는 자세로 증거를 모으고 법리를 재검토해 윗선의 책임을 명백히 가려내야 한다. 나아가 법적 책임 유무와 별개로 이 장관 등에 대한 정무적 책임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동아일보(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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