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對 이마모을루… 튀르키예 대통령과 이스탄불 시장이 싸우고 있다]
[에르도안이 최종 승리하면, 중국·러시아 웃고 미국·유럽이 한숨 쉰다]
[‘종신 집권’ 꿈꾸는 에르도안, 대지진 책임론에 대선가도 흔들]
--[新중동천일야화]--
에르도안 對 이마모을루… 튀르키예 대통령과 이스탄불 시장이 싸우고 있다
철권통치 에르도안 대통령, 야당 대선 후보 이마모을루 시장 체포
반대 시위에 200만명 참여… 그러나 미국·유럽은 입 다물고 방관
법과 물리력으로 상대 가두는 건 하수, 설득과 논리 어디로 갔나
대통령과 인구가 1600만명에 달하는 최대 도시의 시장이 싸우고 있는 나라가 있다. 튀르키예 이야기다. 지난달 19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튀르키예 정부는 야당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을 체포, 구금했다. 뇌물 수수와 반정부 테러 단체 지원 혐의였다. 야당을 지지하는 군중은 거리로 나와 정부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새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시위 중 최대 규모였다. 이스탄불 도심과 대학 캠퍼스 그리고 앙카라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200만명의 시민·학생이 소리를 높였다. 소셜 미디어를 통제하고 집회를 막는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시위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격화될지 모른다.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9년 3월 지방선거에서 이스탄불 시장에 이마모을루가 신승하면서부터다. 튀르키예의 상징 이스탄불을 25년 만에 야당에 내준 것은 에르도안에게 치명적이었다. 이마모을루의 직전 경력은 이스탄불 외곽의 한 기초단체장이었다. 그런 이마모을루가 전직 총리 출신의 거물급 여당 후보를 꺾고, 일약 인구 1600만 이스탄불의 광역시장이 된 것이다. 다급해진 에르도안은 이마모을루를 다중 압박하며 견제에 나섰다.
첫째, 선거 무효화였다. 결과를 뒤집을 빌미를 찾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감시원 자격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며 재선거를 선언했다. 무리였다. 3개월 후 재선거에서 이마모을루는 다시 이겼다. 역풍이 불어 첫 선거 때의 0.16%포인트보다 훨씬 더 큰 9%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둘째, 형사 기소였다. 선거 무효를 결정한 선관위에 대해 이마모을루가 “멍청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2022년 1심에서 법원은 공직 모욕 혐의 유죄와 함께 징역 2년 7개월을 선고했다. 이마모을루는 항소했고 상급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셋째, 지원 차단이었다. 거대 도시 이스탄불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교부금이 필수적이다. 중앙정부는 선출직 이스탄불 시장의 업무 범위에 속하는 권한을 일부 이관시켜 임명직 주지사에게 자원과 권한을 몰아줬다. 정부 지원이 축소되었기에 시장이 나서서 의욕적으로 추진할 만한 사업 재원이 별로 없었다.
전방위적 견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의 심복인 여당 후보를 12%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다시 이긴다. 1기 재임 시 뚜렷한 성과나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는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모을루와 그가 속한 야당인 공화인민당이 압승한 것은 결국 에르도안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경제난과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 때문 아니었을까?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재선에 성공한 이마모을루는 일약 차기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에르도안과 더불어 튀르키예 정치의 양대 대표 주자가 된 셈이다. 이슬람계 보수 정당인 정의개발당을 이끄는 에르도안과 세속주의 케말리즘의 후예인 공화인민당의 이마모을루는 선명한 대립각을 나타냈다. 전형적인 여촌야도의 선거 행태를 나타내는 튀르키예다. 에르도안은 농촌과 내륙 지방에서, 이마모을루는 대도시와 해안 지방에서 지지를 넓혀갔다. 이슬람과 세속주의, 술탄과 케말의 대결이라는 다소 과장된 대비 이미지도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지지도 상승세를 탄 야당은 조기 대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분위기를 띄우면서 아예 대선 후보 선출 일정을 지난달 24일로 잡았다. 그러나 선출 나흘 전, 갑자기 이스탄불대학교가 편입 당시 규정 위반을 이유로 이마모을루의 학사 학위를 무효로 하더니, 다음 날 경찰이 부패와 테러 지원 혐의로 이마모을루를 전격 체포, 구금한 것이다. 튀르키예 헌법은 대학 졸업자 및 범죄로 인한 유죄 판결 이력이 없는 후보에게만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을 부여한다. 이중 족쇄가 걸린 셈이다.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이마모을루의 대선 출마를 막기 위한 음모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예정대로 전당대회를 열어 1500만 당원 투표 중 1321만여 표를 획득한 이마모을루를 차기 대선 후보로 궐석 선출했다. 이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될 경우 자칫 유력 야당 후보는 법적으로 출마가 금지된다.
흔히 ‘생물‘이라 불리는 정치에는 변수와 의외의 일이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 향후 이마모을루가 정치에 복귀할 수 있을지 구체적 전망이 불가능하다. 다만 회의적인 시각이 더 우세하다. 야당은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유럽의 압박을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는 튀르키예 내정과 관련하여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웠던 바이든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유럽 역시 조용한 편이다. 일부 국가에서 비판적 메시지를 내긴 했지만 약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가치가 중요한 탓인지 야당 인사 탄압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형사소추가 진행되면 법적으로 이마모을루의 대선 출마는 어려워진다. 이미 그를 대선 후보로 추대해 놓은 공화인민당은 시간이 가면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마모을루판(版) 사법 리스크다.
에르도안은 정치의 고수로 통한다. 여러 차례 선거와 쿠데타와 개헌 그리고 대지진 등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왕정도 아닌 공화국에서 23년 동안 권력을 놓치지 않은 승부사다. 이번에도 경쟁자를 사법으로 제압하고 종신 집권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에르도안의 모습이 정답일까? 상대를 법이나 물리력으로 가두어 이기는 이는 하수다.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정책과 설득의 논리로 승부해야 고수다. 그러므로 에르도안이 싸워야 할 상대는 이마모을루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일 것이다. 2002년 집권할 때 첫 마음이 어땠는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7%에 육박하던 시절의 몸놀림이 어땠는지, 그때 국민들이 왜 자신에게 열광했었는지를 다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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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이 최종 승리하면, 중국·러시아 웃고 미국·유럽이 한숨 쉰다
이코노미스트지가 꼽은 올해 가장 중요한 선거는 일단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튀르키예 대선 이야기다. 5월 28일 결선투표로 최종 당선자를 뽑는다. 주요 외신들은 연일 이 선거 기사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특정 국가 선거에 세계는 왜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세 차원에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먼저 튀르키예의 국가 정체성을 가르는 선거다. 현직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공화국 수립 백주년인 올해를 ‘새로운 터키의 세기’로 명명했다. 이슬람주의와 팽창주의를 내세우며 강력한 튀르키예 구현을 선언했다. 혹자는 이를 ‘신오토만주의’로 슬쩍 규정한다. 에르도안이 백년 전 제국의 현대적 부활을 꿈꾸며 튀르키예의 지역 패권을 추구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야권 연합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봄은 다시 온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세속주의와 국제연대에 기반을 두는 의회주의 공화정 전통, 즉 ‘케말주의’의 회복을 강조한다. 요약하면, 이번 선거는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권위주의 대 자유주의 사이에 선 튀르키예의 미래를 결정하는 계기다.
둘째, 지역 정세 즉 유럽과 중동 지역 정세에 변수가 되는 선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리아 내전 판세와 연관된다. 튀르키예가 나토 회원국임에도 에르도안은 푸틴과 가깝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막으며 결이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 입장을 고려하는 중립적 운신을 취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는 친유럽, 친우크라이나 기조를 시사한다. 흑해 길목을 통제하고 있는 튀르키예 선거 결과가 우크라이나 전황을 좌우할 수 있는 이유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에 군사 개입 중이다. 주된 이유는 양국 국경 안팎으로 산재하는 쿠르드족의 연대를 막기 위해서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의 정치적 움직임에 예민하다. 강경하게 대처해왔다. 반면 쿠르드족의 지지를 받는 클르츠다로을루는 시리아 개입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시리아 정치 협상에 변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리비아, 예멘 등 중동 각지에 개입해 온 튀르키예의 공세적 팽창주의 지속 여부도 이번 선거에 달려있다. 선거 결과가 중동 정세와 직결되는 이유다.
셋째, 글로벌 전략 경쟁 즉 강대국 세계 정치 차원에서의 함의다.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중국 등 소위 현상 변경 세력 국가들에 더 경도될지, 아니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연대로 회귀할지를 가늠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본인은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익에 따라 얼마든지 친소(親疏)관계가 변할 수 있노라 호언한다. 실제로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에 대해 비판적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에르도안은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원하고 있다. 일대일로(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의 주요 거점이자 핵심 파트너다. 재선에 성공하면 이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권은 미국, 유럽을 중시하며 민주주의, 의회주의 회복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는 에르도안의 재선을 바랄 것이다. 나토 안에서 튀르키예가 미국과 티격태격하는 그림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야권 후보의 당선을 내심 원할 것이다.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가 이란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을 때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이 와중에 튀르키예가 반미 기조를 더 강화하면 미국의 지역 전략은 더욱 꼬인다.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협의체)와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등을 통해 중국을 막고, 나토 동맹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선을 지켜 러시아를 차단하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중국을 압박해도 정작 중동과 유럽에서 본진이 뚫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심에 튀르키예가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튀르키예 국내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 정치의 핵심 사안이다.
현재 에르도안이 다소 유리하다.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1차 투표에서 49.5%를 득표, 44.9%를 얻은 클르츠다로을루를 앞섰다. 경제난과 지진 대처 미흡으로 고전이 예상되었지만, 뜻밖의 결과였다. 결선투표에서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야권은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녹록지 않다.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가 얻었던 5.2% 대부분을 야권이 고스란히 가져와야 하지만 쿠르드 관련 이견으로 인해 확실치 않다. 이번 선거는 에르도안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그에 대한 찬반 구도로 전개되는 중이다. 온화하지만 다소 유약한 이미지의 클르츠다로을루는 아직 조연에 머물고 있다. 야권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면 쉽지 않다. 물론 아직 시간은 있다. 530만 젊은 세대 유권자와 전체 유권자의 18%에 달하는 쿠르드 표의 결집 양상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전통적 야권 지지 대도시 유권자들을 더 치열하게 파고들며 바람을 일으키면 분위기가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외신 다수의 분석은 에르도안의 재선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20년 에르도안 집권 기간 튀르키예는 분명히 달라졌다. 미국과 유럽에 편승하던 튀르키예가 진영을 넘나들며 강대국을 상대로 전략적 자율성을 구사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집권 전반기 10년과 후반기 10년은 완연히 다르다. 2012년까지 튀르키예는 상승기였다. 중동의 모델 국가였다. 전반기 10년간 7~8%에 육박하는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의회주의도 작동했다. 중견국 외교를 주창하며 소프트파워도 챙겼다. 한국도 믹타(MIKTA, 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오스트레일리아 등 5국 협의체)를 통해 튀르키예와 함께 다자 협력체를 만들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중동국가에서 조사한 세계 지도자 선호 여론조사에서는 에르도안이 압도적 1위였다.
그러나 2013년부터 내리막이다. 권위주의로 치달았다. 경제는 흔들렸고 외교 노선도 바뀌었다. 중견국 외교 대신 이즈음부터 푸틴, 시진핑과 더 밀착했다. 호사가들은 에르도안, 푸틴, 시진핑을 묶어 각각 21세기판 술탄, 차르, 황제라 부르기도 한다. 모두 백 년 전 패망했던 대국의 후예들이다. 옛 향수를 내세우며 종신 집권을 꿈꾸는 듯하다. 역사는 과거로 회귀하고 스트롱맨의 시대는 더 깊어지는 징조다. 돌아오는 일요일(28일), 예상대로 에르도안이 다시 당선된다면 말이다. 과연 이변은 일어날 수 있을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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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집권’ 꿈꾸는 (튀르키예) 에르도안, 대지진 책임론에 대선가도 흔들
[글로벌 포커스]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리더십 타격
2003년 총리 집권 후 개헌 통해… 제왕적 대통령 올라 무소불위 권력
이슬람 원리주의-농촌 지지 기반, 금리인하 압박 등 포퓰리즘 일관
성장률 하락 등 경제난 부추겨… 대지진에 “재난 대비 불가능”《‘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69)이 2003년 집권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6일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한 지진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에르도안 정권의 부실 대응은 물론이고 경제난, 반대파 탄압 등 장기 집권 폐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래전부터 사실상 종신 집권을 노리던 그는 지진 전 당초 6월로 예정됐던 대선 1차 투표를 5월 14일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6개 야당은 반(反)에르도안의 구심점이 될 단독 후보를 좀처럼 추대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선거를 앞당겨 야권의 후보 단일화를 방해하고 선거운동 기간 또한 단축하려 했다. 1차 투표에서 손쉽게 과반을 확보해 아예 2차 투표조차 실시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꼼수’였다.
하지만 지진으로 수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데다 그가 지진 당일 울부짖는 피해자들 앞에서 “이런 재난에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책임 회피로 일관하자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권의 무분별한 건축 규제 완화 등이 지진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도 속속 제기되고 있다.
더딘 복구 작업 등을 감안할 때 일각에서는 5월 대선이 정상적으로 열리기 어려우며, 제때 치러지더라도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튀르키예의 정정 불안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패권 갈등,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 등으로 이미 요동치는 국제 정세를 더 큰 격랑에 빠뜨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지진으로 흥하고 지진으로 위기
에르도안은 1954년 북서부 리제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최대 도시 이스탄불로 이주했고 한때 길거리에서 사탕, 생수, 빵 등을 팔았다. 젊은 시절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에서 활동한 후 정계에 입문했다.
1994∼1998년 이스탄불 시장을 지냈다. 1999년 세속주의 국가에서 과도한 이슬람 사상으로 대중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4개월 복역한 경력도 있다.
1999년 이스탄불과 가까운 서부 해안 도시 이즈미르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최소 1만7000명이 숨졌다. 에르도안은 이때 뷜렌트 에제비트 당시 총리의 부실 대응, 부패 등을 질타하며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고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가 진단했다. 이를 통해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2001년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을 창당했다.
에르도안은 2003년 내각책임제 국가였던 튀르키예의 총리에 올랐다. 당시 3146억 달러(약 409조 원)였던 국내총생산(GDP)을 2013년 9578억 달러(약 1245조 원)로 세 배로 늘렸다. 고성장을 바탕으로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미국 등 서방 또한 이때는 그를 ‘이슬람 문화와 시장 경제를 융합한 지도자’로 호평했다.
그는 2011년 3선 총리가 됐다. 당 대표의 4선을 금지한 정의개발당 당규로 추가 집권이 가로막히자 당시 의회가 선출했으며 원로급 정치인의 명예직 정도로 여겨졌던 대통령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대통령 선출 과정을 직선제로 바꿨고, 2014년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3선 총리 시절부터 히잡 착용, 공공장소에서의 애정 표현 금지, 주류 판매 규제 등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폈다.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지 않다” “여자라면 아이 셋은 낳아야 한다” 등 시대착오적인 발언도 일삼았다. 이에 서구 문물에 익숙해진 도시 엘리트, 건국 당시 케말을 도와 정교분리와 세속주의를 주도한 군부와의 갈등이 커졌다.
2016년 에르도안을 몰아내기 위한 쿠데타가 발생했지만 몇몇 군인만으로는 이미 장기 집권 기반을 다진 그와 대적할 수 없었다. 그는 사회 안정을 명목으로 의회 해산권, 국가 비상사태 선포권, 장관 단독 임면권 등을 보유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사회 곳곳의 반대파,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도 잔혹하게 탄압했다. 2017년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내각책임제를 폐지하고 아예 대통령중심제로 개헌했다. 이를 통해 2018년 대통령제하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확고한 1인 지배 체제를 굳힌 것이다.
사실상의 ‘셀프 개헌’ 당시 그는 중임을 가능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선거를 시행해 당선되면 추가로 5년을 더 재임할 수 있도록 했다. 즉, 2018년 대통령으로 뽑힌 에르도안이 올해 중임에 성공하고 임기 종료 직전인 2028년 조기 선거를 시행해 다시 뽑히면 79세인 2033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에르도안은 반대파 탄압, 장기 집권 시도 등을 비판하는 서방 주요국과도 사사건건 충돌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에게는 독일 사회가 금기로 여기는 ‘나치’ 등을 들먹였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는 “뇌사 상태 아니냐”고 막말을 퍼부었다. 이런 그를 두고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통치하던 술탄 못지않은 현대판 전제 군주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그의 별명이 ‘21세기 술탄’인 이유다.
● 최악 대지진, 고조되는 책임론
에르도안의 지지 기반은 농촌,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이번 지진의 주요 피해 지역인 남부, 경제적으로 낙후된 동부 산악지대 등이다. 이는 튀르키예의 근현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오스만튀르크는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후 약 500년간 중동, 중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친 제국을 건설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 영토 대부분을 잃자 케말을 포함한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로 만든 공화제 국가가 오늘날의 튀르키예다. 케말은 오스만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강력한 서구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히잡 금지, 여성참정권 부여, 라틴알파벳 사용 등을 속속 도입했다. 케말 사후 그의 정교 분리 노선을 계승한 군부는 세속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대립했다.
문제는 세속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데 있다. 자본가, 대도시 엘리트, 서부는 근대화 혜택을 누렸지만 저소득층과 남동부는 소외됐다. 이에 그는 저소득층을 위해 생필품인 빵과 차 가격은 생산 원가 이하로 낮추도록 압박했다. 반면 자동차, 고급 가전제품 등 사치품에는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식으로 전형적인 대중영합(포퓰리즘) 정책을 폈다. 건설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1999년 이즈미르 대지진 후 당시 정권은 내진 대비 규정을 강화했다. 에르도안은 2018년 5월 규제를 지키지 않은 건축물이라도 소정의 벌금만 내면 다시 건축 허가를 내주는 ‘사면 정책’을 실시했다. 한 달 후 치러지는 대선을 위한 표심 잡기용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10개 주에서만 10만 건 이상의 사면이 승인됐다. 에르도안 정권은 사면 정책 도입 후 1년 반 동안 740만 건의 신규 건축도 허가했다. 1999년 대지진 이후 당국이 지진 피해 예방을 위해 거둬들인 소위 ‘지진세’ 용처를 놓고도 비판이 커지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부는 그간 지진세로만 총 880억 리라(약 6조 원)를 걷었다. BBC는 에르도안 정권이 이 지진세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르도안이 쿠데타 이후 자신에게 반기를 든 군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는 바람에 이번 지진 후 구조 및 복구 작업이 더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지진 현장에서 군의 역할을 대신하는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에는 재난 대처 경험이 적고 대통령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인물만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 리라 급락-고물가 등 경제난도 심각
에르도안 정권의 부실한 경제 성적표 또한 민심 이반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3∼2012년 10년간 튀르키예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5.7%였다. 그가 부적절한 경제 정책을 남발하면서 장기 집권 시도를 본격화하자 성장률이 하락해 2019년에는 0.8%로 뚝 떨어졌다. 2013년 9578억 달러였던 GDP 또한 2021년 8190억 달러(약 1065조 원)로 떨어졌다. 사실상 10여 년간 경제가 후퇴한 것이다.
고물가, 리라 하락 등도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기준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85.5%로 2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와중에 경제 원리를 도외시한 그의 통화 정책이 물가 상승과 화폐 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에르도안은 집권 내내 “고금리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며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자신의 지지 기반인 저소득층과 농민이 기준금리 인상에 취약하다는 점을 우려해 포퓰리즘 정책을 편 것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 통화량이 줄어 물가가 내리고 통화 가치가 오른다는 현대 경제학의 정설 따윈 안중에도 없다.
중앙은행 총재 또한 밥 먹듯 갈아 치웠다. 그는 집권 후 총 6명의 중앙은행 수장을 임명했다. 그의 금리인하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내쳐진 무라트 우이살 전 총재, 나지 아으발 전 총재의 임기는 각각 16개월, 4개월에 불과했다. 2021년 3월 취임한 샤하프 카브지오을루 총재가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지도 알 수 없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채 권력자가 좌우하는 통화 정책과 금융 체계를 신뢰할 수 없으니 해외 자본이 떠난다. 이로 인해 리라 가치가 더 떨어지고 수입 물가 또한 상승해 인플레이션 압력 역시 덩달아 높아진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5월 kg당 8∼10리라였던 토마토 가격은 지진 전날인 5일 기준 25리라까지 올랐다. 지진으로 인한 물자 부족, 물류 대란을 감안하면 각종 식자재와 생필품 가격 또한 더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 “재집권 가능” vs “예전과 달라”
이런 상황에서 그는 대선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을까. 전망은 엇갈린다. “변변한 야권 주자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진으로 인한 민심 악화에도 그가 승리할 것”이란 주장과 “과거와는 다르다”는 의견이 맞선다.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이번 지진 피해 지역 10개 주 중 아디야만 등 6개 주는 2018년 대선 당시 에르도안에게 70% 이상의 지지율로 몰표를 안긴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정부의 지진 대응을 비판할 순 있어도 야권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반면 영국 컨설팅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앤서니 스키너 중동부문 국장은 13일 AFP통신에 “끔찍한 재난으로 대중의 분노가 새로운 화약을 공급받았다”고 진단했다. 에르도안 정권에 대한 분노가 과거와 다른 차원이라는 의미다.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이번 지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오직 에르도안이라며 “20년이나 집권하면서 지진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5년 전 대선에 도전했던 집권인민당의 무하렘 인제 대표 또한 지진 피해를 본 카라만마라슈를 방문해 “군대, 경찰, 수프, 담요, 국가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결국 에르도안 정권의 복구 작업 속도, 야권이 단일 대선후보를 얼마나 빨리 선출할 수 있느냐 등이 5월 튀르키예 대선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청아/이채완 기자, 동아일보(2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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