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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돌림’] [이재명 ‘제거’의 역설과 함정] ....

뚝섬 2023. 3. 9. 11:52

[‘조리돌림’]

[이재명 ‘제거’의 역설과 함정] 

[누가 홍위병을 부추겼나] 

[‘대장동 몸통’ 의혹받는 사람이 대장동 특검 임명하겠다니]

 

 

 

조리돌림’

 

[이한우의 간신열전]

 

조리돌림이란 일종의 명예형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순수(循首)라고 해서 참형에 처한 죄인의 머리를 저자에 내걸어 구경거리로 삼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을 경계를 시키고 가족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기 위함이었다.

 

반고 ‘한서’ 계포열전(季布列傳)에 계포 외삼촌 정공(丁公)이 조리돌림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공은 항우(項羽) 장수였는데 유방(劉邦)을 뒤쫓아 팽성(彭城) 서쪽에서 궁지로 몰아넣으니 유방은 다급해져 정공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좋은 사람들인데 어찌 서로 힘겹게 싸워야 하는가?”

 

정공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항우가 멸망한 뒤 정공이 유방을 찾아가니 유방은 정공을 군중에서 조리돌림[徇]을 시키고 말했다.

 

정공은 항왕의 신하가 돼서 충성을 다하지 않아 항왕으로 하여금 천하를 잃게 만든 자다.”

 

마침내 정공 목을 벤 다음에 말했다. “후세에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들에게 정공을 본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대체로 조리돌림은 대역무도(大逆無道)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시행된 전형적인 전근대적 형벌의 하나라 할 것이다. 조리돌림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널리 시행되어 왔다. 5·16 직후 깡패들을 소탕하고서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행진을 하게 한 것이나 중국 문화혁명 당시 ‘반동(反動)’이라 쓴 팻말을 목에 건 죄인들이 홍위병으로부터 공격을 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에 앞서 2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에서는 나치 점령기 부역자들이나 독일인과 결혼해서 살던 여인들을 거리에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했다.

 

가장 최근에는 ‘개딸’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포함된 ‘수박 7적’ 명단을 공개하고 대대적으로 처단 운운한 것이 전형적인 조리돌림이라 하겠다. 어용 지식인 유시민이 이런 조리돌림에는 눈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건 조리돌림이 아니라 근대적인 법 집행일 뿐이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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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제거’의 역설과 함정

 

[정용관 칼럼]

민주당, ‘李 개미지옥’서 탈출하면 사법리스크 아닌 尹 국정성적 부상할 것
與 ‘방탄 프레임’만 붙들고 있어선 안 돼
나라 바로 세울 진정성과 역량으로 성과 내야

 

어느덧 대선 1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마디로 지옥에 갇혀 있다. “회술레 수치” “조리돌림” 운운하며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점점 더 궁지, 아니 사지로 내몰리는 형국 같다. 방탄 갑옷은 구멍이 뻥뻥 뚫려 너덜너덜해졌다. 업보(業報)다. 성남시장 때 일이 줄줄이 터져 나올 줄 어찌 알았겠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 대표가 되고 당헌 80조(부정부패로 기소 시 직무정지) 무력화까지 나섰지만 패장의 당당치 못한 처신에 적잖은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서고 있다.

견고했던 169석 민주당의 성벽은 깨지기 시작했다. 개딸과 문파의 내전(內戰)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문재인도 수박7적”이라는 개딸 구호가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본질을 꿰뚫는다. 첫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드러난 30여 표의 집단 이탈은 이심전심인지, 조직적 반란인지 알 수 없지만 문 전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 대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2주 전 칼럼에서 “설마” 하면서도 민주당이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할지 모른다고 썼다.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또 제출하면 아예 투표를 보이콧하자는 논의가 실제 나오고 있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다가 비명 측의 일격을 받은 친명 핵심들은 이판사판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이들은 국민 여론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부의 적에 굴복하는 게 더 두렵다. 총선 공천이 위태롭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의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 중에 이 대표와 끝까지 정치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안개가 짙어 길이 안 보이니 일단 다수의 편에 섰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하며 여론의 눈치를 보는 회색지대 의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투표 보이콧 당론이 쉽지 않은 이유다. 설사 보이콧을 한다 해도 두 번 세 번 할 수 있겠나.

결국 이 대표가 언제 어떻게 결단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어느 비명 의원 표현대로 “방탄 프레임에 갇혀 발버둥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요즘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는 뚜렷하다. 이 대표는 그럼에도 개딸과 친명 핵심들의 호위하에 끝까지 민주당 담장 안에 숨으려 한다. 여권으로선 최상의 그림이다.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전의 계기는 남아 있다. 시간이 문제일 뿐 민주당이 뻔히 알면서 폭망의 길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3년 11개월 비정상적인 분탕질을 치다가도 총선만 다가오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을 띠곤 하는 게 그간 봐온 한국 정당들의 생리다. 죽을 지경이 되면 살길을 찾느라 몸부림을 친다. 비대위 체제로 가든, 신장개업을 하든, 공천 물갈이를 하든…. 자의든 타의든 이 대표가 민주당에서 손절되면 국면은 바뀐다. 민주당은 변신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심판을 받았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 사법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국민연금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개혁엔 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야당이 돼서도 반성을 하기는커녕 반도체법 등 성장 동력 살리기는 제쳐둔 채 매년 수조 원을 허공에 날리는 양곡관리법이나 강행 처리하려 한다. 그래도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현 정권이 오만함을 보이고 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벗어던지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달라지는 게 여론이다.

민주당 내부의 반란 기류가 여권에 심상치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쌍방울이든 백현동이든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여권으로선 정치 득실만 따진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 대표의 빠른 정리로 이어져 역설적으로 여권엔 독(毒)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가 법정으로 넘어가면 경제 리스크가 부상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리도 없고…. 방탄 프레임은 점차 약해지고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가 도드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듯 여권 안팎에선 방탄 프레임을 어떻게 더 활용할지, 야당의 개미지옥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길게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속도 조절’ 얘기가 오간다. 허나 이는 함정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어떤 길을 가든 여권으로선 상황 변수일 뿐 본질은 아니다. 호가호위 세력을 내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진정성과 실력으로 성과를 입증하는 정공법을 펼치는 것 외엔 달리 길이 없다.

-정용관 논설실장, 동아일보(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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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홍위병을 부추겼나

 

마오 숭배한 홍위병의 당내 ‘주자파’ 색출
李, 개딸의 ‘수박’ 색출 정말 막을 생각 있나

 

“1966년 6월 말이었다. 청두에 있는 우리 학교 교장을 연단에 올려보냈다. 50대 여성이었던 교장은 반동분자 집안 출신이었다. 우리는 교장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씌웠다. 학생들이 발길질과 주먹질을 퍼부었다. 교장은 의식을 잃고 연단에 쓰러졌다.”

‘중국을 읽다’ 저자 카롤린 퓌엘은 중국사회과학원 교수의 증언을 전한다. 그는 청두 홍위병 단장이었다. 그해 문화대혁명 속 홍위병의 집단 광기가 중국 전역에 몰아쳤다. 그달 런민일보에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는 논설이 실린다.

마오쩌둥이 1958년 시작한 대약진 운동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마오쩌둥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었다. 1961년 류사오치에게 주석 자리를 내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실패에 대한 솔직한 반성 없이 권력 중심에 다시 서려는 마오쩌둥의 욕망이 문화대혁명을, 홍위병을 불러냈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숭배하던 홍위병들에게 1966년 6월 편지를 보낸다.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 그해 8월 마오쩌둥은 홍위병 완장을 차고 100만 홍위병을 사열한다. 홍위병들은 “마침내 나는 위대한 마오 주석을 만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며 감격했다.

홍위병들은 표적 색출, 처단에 나선다. 공산당 내 자본주의 노선 추종자, 부르주아 지식인 등이었다. 수배 전단이 등장했다. 프랑크 디쾨터가 쓴 ‘문화대혁명’에 묘사된 실상은 공포스럽다. 곤봉과 채찍으로 구타했다. 머리에 불을 질렀다. 작두칼로 사람을 죽였다. 철사로 목 졸라 죽였다. 유명 작가 라오서는 여학생 수십 명에게 맞아 사망했다. 그의 옷 주머니에 마오쩌둥 시집이 있었다.

문화대혁명 초기 반당 분자 색출에 앞장섰던 왕광메이. 그는 류사오치의 부인이었다. 그조차 1967년 4월 홍위병 여학생들에 의해 공개처단(批鬪) 대상이 됐다. 홍위병들은 하이힐을 신기고 몸에 꽉 끼는 치파오를 입혔다. 탁구공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게 하고 모욕했다.

광분한 홍위병들의 대규모 폭력으로 체제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 저자 폴 로프는 “마오쩌둥이 홍위병이 초래한 대혼란을 묵묵히 지켜만 봤다”고 지적했다. 2년 뒤인 1968년에야 마오쩌둥은 홍위병이 너무 멀리 갔다며 해산을 명령한다. 류사오치와 부주석 덩샤오핑을 몰아내고 다시 당을 장악한 뒤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 ‘개딸’들이 ‘수박’ 색출에 나섰다.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은어다. 홍위병 시절로 보면 공산당 내 자본주의 노선 추종자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를 ‘수박 7적’이라 지목하는 이미지가 등장했다. “국민의힘과 내통해 이재명 대표를 팔아넘기고 윤석열 정권을 창출한 첩자들을 직접 꾸짖어 처단하자”고 주장한다.

지난해 대선 패배 직후에도 이 대표는 ‘개딸’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며 적극적이었다. 이 대표가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빠진 지금 강경파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은 강성 지지층 당원들을 부추기는 각종 주장을 쏟아낸다. 이 대표는 4일에야 페이스북에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우려와 불신엔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솔직한 답변 없이 강성 지지층들의 공개처단 흉내 내기가 없어질 수 있을까.

-윤완준 정치부장, 동아일보(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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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몸통’ 의혹받는 사람이 대장동 특검 임명하겠다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속개된 오후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이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특별검사법안을 3일 발의하면서 특검 임명 방식을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교섭단체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현재 대통령이 소속되지 않은 국회 교섭단체는 민주당뿐이다. 사실상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특검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재권자였던 이 대표는 현재 수천억원대 배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특검의 핵심 수사 대상이 특검을 임명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 법안에는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인 이른바 ‘50 클럽외에도대장동 개발을 위한 사업자금 개발 수익과 관련한 불법 의혹등도 포함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이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 등을 겨냥한 것이다.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이 의혹을 부풀려가며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번 특검 법안도 그런 정치 공세의 연장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 관련 의혹을 먼지 털듯 뒤졌던 문재인 정권 검찰도 혐의점을 찾지 못해 포기했던 사안이다. 대장동 사건 본질과 무관하고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특검은 검찰 수사가 제대로 안 될 때 하는 것이다. ‘50억 클럽’ 의혹과 관련해선 이 사건으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민주당이 내세운 특검 수사 대상 중 유일하게 수사할 만한 부분이다. 1심 판결 직후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은 강도 높은 재수사를 주문했다. 그래도 검찰을 믿지 못해 특검을 하겠다면 수사 대상을 ‘50 클럽으로 좁혀야 하고, 특검 임명 방식도 바꿔야 한다.

 

과거 특검 임명은 대체로 대한변협이나 대법원장이 추천한 사람 명을 대통령이 고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여야의 정치적 충돌을 피하고 특검의 정치적 중립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수사받을 사람이 수사 주체를 고르겠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나.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격이다.

 

-조선일보(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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