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村 개성’마저 아사자 속출… “김주애는 신수 훤해” 수군수군]
[태영호의 도전]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말했던 김정은]
‘富村 개성’마저 아사자 속출… “김주애는 신수 훤해” 수군수군
북한의 식량 사정 어떻길래
북한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달 18일 대통령실이 내놓은 대북 메시지는 평소와 달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심각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주민의 인권과 민생을 도외시하며 대규모 열병식과 핵·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식량난 자체는 만성적 현상이라 뉴스가 아니지만 아사자 속출은 근래 듣기 어려운 얘기였다. 정부가 공식 문서에 북한의 아사자 속출을 명시한 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처음이었다.
아사자 속출에 김여정까지 급파
정부가 북한 식량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구체적 징후를 포착한 시점은 작년 늦가을이다. 외교 소식통은 “해외 북한 공관들에서 주재국 정부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동향들이 다수 확인됐다”고 전했다. 강추위가 몰아친 연말부터는 함경도와 황해도를 시작으로 북한 각지에서 식량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는 내용의 SI(특수 정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농장원들이 “쌀 한 톨 못 쥐었다”며 양곡 수매 검열관에게 항의하거나 중간 간부들이 “고난의 행군기보다 어렵다”며 자조하는 내용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8일 인민군 창설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딸 김주애와 함께 지켜보고 있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 각지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열렸다. 김정은 부녀가 사열한 이번 열병식엔 북한이 최근 개발한 신무기들이 총출동했다. 맨 왼쪽은 리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맨 오른쪽은 김덕훈 내각 총리./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국회 정보위 관계자에 따르면, 부촌으로 꼽히는 개성에선 새해 벽두부터 하루 수십명이 굶어죽는 상황이 1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특별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실태 파악을 위해 김덕훈 내각 총리에 이어 여동생 김여정까지 내려보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당초 ‘국정 가격 절반으로 식량을 공급하라’고 했다가 민심이 악화하자 며칠 만에 ‘무상 공급’으로 지시를 뒤집는 등 정책 혼선을 빚었고, 다른 지역에서 “개성 사람만 인민이냐”며 반발하는 동향도 포착됐다. 북한 당국은 연초부터 ‘애국미 헌납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이것이 개성 식량난 때문이란 소문이 돌면서 타지역 주민들이 동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은 지난달 5일 정치국 회의를 갖고 “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며 “농사에 필요한 해당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절박한 초미의 과제”라고 했다. 전원회의는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여는 대규모 정치 행사다. 북은 이미 연말에 전원회의를 열었다. 두 달 만에 전원회의를 다시 열면서 의제를 농사 대책으로 국한한 것은 극심한 식량난과 이에 따른 동요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김여정의 ‘선별적 침묵’도 예사롭지 않다. 앞서 김여정은 대통령실의 대북 규탄 다음 날(2월 19일) 담화를 내고 “적의 행동 건건사사를 주시할 것”이라며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대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실이 거론한 ‘아사자 속출’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음 날 나온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화성-15형에 대한 한국 언론의 지적은 일일이 반박하면서 식량난 문제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대통령실이 ‘아사자 속출’을 거론한 지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식량 생산 급감에 유통 왜곡 겹쳐
과거 북에서 풍수해로 인한 흉작으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한 경우는 간혹 있지만 지금처럼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작황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곡물 수입이나 외부 지원으로 부족분을 일부 메우고, 주민들도 장마당 거래 등을 통해 최소한의 식량을 확보하는 식으로 만성적 식량난에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식량난은 전통적 내핍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극단적인 코로나 봉쇄 조치로 곡물 생산이 3년 연속 차질을 빚은 것이 1차적 원인이다. 기존 고강도 제재에 봉쇄까지 더해지며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가 정상 공급되지 못했다. 특히 비료의 경우 원유 금수 조치 등의 영향으로 자체 생산이 여의치 않았고, 대중국 수입도 2019년 4315만달러였던 것이 2020년 545만달러로 8분의 1토막 났다. 쌀 생산량이 급감한 이유다. 2019년 182만t에서 2020년 140만t으로 꺾인 뒤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옥수수, 콩 생산은 타격을 덜 받았지만 외부 식량 확보가 여의치 않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식량 지원에 인색하다”며 “북중 관계가 서먹하다”고 했다.
미 농무부 전망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2019년 69만6000t이던 것이 2020년 95만6000t, 2022년 121만t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최소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은 3~4년 연속 자연재해로 흉작이 누적된 결과”라며 “지금은 코로나 봉쇄 3년이 자연재해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북한의 양곡 정책 변화다. 북한은 작년 12월 농장법을 개정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양곡을 당국이 수매해 국영판매소에서만 팔게 했다. 이 조치 전까지 농민은 정부 수매분을 뺀 나머지를 시장에 팔았는데 이것이 금지됐다. 당국이 곡물의 생산·유통을 장악해 시장의 영향력을 줄이겠단 의도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식량 배분은 시장의 효율성을 따라갈 수 없다. 더구나 3년 누적된 작황 부진으로 식량 배분의 지역 불균형이 극심해졌다. 곡창이라는 황해도에서도 아사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핵 폭주와 김주애 등장에 주민들은 ‘부글’
당장 식량 증산이 어렵다면 식량난을 가중시킨 잘못된 정책이라도 손봐야 하지만 북은 그럴 생각이 없다. 지난달 말 농사 대책을 강구한다며 소집한 전원회의의 결론도 ‘기존 정책 관철’이었다. 전원회의가 끝나자 주철규 내각 부총리, 리철만 당 농업부장 등 간부들은 “죄책감에 머리를 들 수 없다”는 반성문을 노동신문에 경쟁적으로 기고했다. 김정은의 정책은 완전무결한데 자신들이 집행을 못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이런 선전에 속지 않는다고 한다. 조직적 저항까진 아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북한 사회안전성(경찰청 격)은 지난달 22일을 기해 ‘사회주의 제도의 안전과 인민의 생명 재산을 침해하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할 데 대하여’란 포고문을 전국의 주요 거리와 장마당 입구 등에 게시하고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포고문은 살인, 강도, 유괴, 강간·윤간 같은 흉악 범죄 외에도 당 정책 시비·중상, 혁명가요 가사 왜곡, 유언비어 유포, 간부 가족에 대한 폭력, 낙서 등 반정부·반체제 행위들을 단속 대상으로 거론했다. 현재 북한 내부의 혼란상과 흉흉한 민심을 짐작할 수 있다.
굶주리는 북 주민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핵·미사일 폭주다. 북한은 작년 ICBM 8발을 비롯해 탄도미사일 70발을 발사했다. 올해도 대남 타격용 초대형 방사포 도발로 새해 첫날을 열었고, 2월엔 ICBM 기습 발사 능력을 과시했다. 3월엔 5년 만에 정상화되는 한미연합훈련을 고강도 연쇄 도발의 핑계로 삼을 것이다. 군 당국은 지난 1년간 미사일 발사에 최소 3억8000만달러, 최대 6억달러를 쓴 것으로 추산한다. 2600만 전 주민에게 3~5개월 치 쌀을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ICBM 발사와 열병식 등 군 관련 행사장마다 딸 김주애를 대동하는 것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고 전했다. 주민들끼리 사석에서 “씹어먹을 수도 없는 미사일만 잔뜩 만든다” “주민들은 배를 곯는데 (김정은) 딸은 신수가 훤하더라”는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김정은은 김주애로 상징되는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쌀 대신 핵을 택했다는 메시지를 내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허리띠 조이지 않게 한다더니… 말바꾼 김정은]
”허리띠 더 조이고 배곯아야…승리 위한 불가피한 선택”
북한의 식량난은 당초 김정은의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은은 김일성 100회 생일날이던 2012년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 앞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다. 집권 후 첫 대중 연설이었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행보는 연설과는 딴판이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하며 인민경제 발전보단 핵무력 강화에 체제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했다. 미 본토까지 날아가는 ICBM을 개발했지만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얻어맞았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제재 해제를 시도했으나 2019년 하노이 노딜로 실패했다. 결국 그해 말 열린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했다.
김정은이 세 번째로 허리띠를 언급한 건 지난달이다. 인민군 창건 열병식(2월 8일)에서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했다”며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직접 발언이 아니라 노동신문이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신문은 “총알보다 쌀을 먼저 생각하면 인민의 존엄이 유린당하기에 힘들어도 가셔야 했고, 세상이 몰라준다 해도 가셔야 할 길이었다”며 김정은의 핵폭주를 두둔했다.
-이용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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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의 도전
로마 5현제 중 한 명인 트라야누스는 로마 본토가 아닌 히스파니아(스페인) 출신이다. 히스파니아는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로마를 유린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본거지였다. 적지에서 태어난 그가 속주 출신으론 처음 황제에 오른 것이다. 그는 다키아·파르티아 원정을 통해 로마의 영토를 최대로 늘렸다. 어느 황제보다 로마적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선정을 베풀어 ‘지고(至高)의 황제’란 칭호를 얻었다. 그 후 변방 속주 출신 황제가 연이어 등장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동독 출신이다. 폴란드인인 할아버지는 동독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물리학자로 정치와 거리를 뒀다. 공산당 가입과 국가보안부(슈타지)의 협력 요구도 거절했다. 통독 때 기민당에 들어가 헬무트 콜 내각에 발탁됐다. 동독 교육을 받았지만 실용주의 노선과 청렴성으로 16년간 총리 4연임을 했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계 이민 2세다. 첫 유색인종, 힌두교 신자 총리로 인도가 식민지 된 지 200년 만에 거꾸로 영국을 통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영국을 통합하고 영국을 위해 밤낮으로 뛰겠다”고 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아버지가 케냐인이다. 태어난 곳도 미 본토가 아닌 하와이였다. 이름과 출신 때문에 무슬림이란 편견에 시달렸다. 하지만 미국적 가치를 굳게 신봉했다.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태영호 최고위원이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태영호 의원이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탈북자 출신이 정당 지도부가 된 것은 처음이다. 이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지율은 미미했고 조직도 없었다. 모두 말렸다. 하지만 “이 사회에 기댈 데 없는 북한 출신에게도 한 표를 달라”고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청년 표심을 얻기 위해 최신 가요와 랩을 부르고 춤도 췄다. 제주 4·3 희생자에게 참배하며 “김일성이 배후”라고 했다가 지역 반발도 샀다. 하지만 연설회와 토론이 이어질수록 지지율은 올라갔고 결국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그는 북 출신으론 드물게 정치 감각과 쇼맨십이 있다. 말솜씨나 노래 실력도 좋다. 지난 대선 때 동료 의원들과 유세차 미국을 갔는데 교민들에게 스타로 떴다. 그와 사진 찍고 한 테이블에 앉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태 의원은 탈모 시술을 통해 외모도 바꿨다. “남쪽에 온 후 가장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탈북자가 정치 지도자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을 북 주민과 탈북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의 꿈은 국민 모두의 꿈일 것이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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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말했던 김정은
[박정훈 칼럼]
탈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악몽을 꿉니다.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죠? 1990년대 후반 식량난 말입니다. 죽음의 문턱을 오간 시절이었습니다. 배를 곯는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고문인지 기자님은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굶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2500만 북한 주민이 다 그럴 겁니다. 이 트라우마를 모르고선 절대 북한을 이해 못 합니다.
작년 초 김정은 신년사를 보고 울컥했습니다. "능력이 따르지 못해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서 (2016년을) 보내고…".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돼 미안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북한에서 수령은 신(神)입니다. 어떤 오류도 있을 수 없는 존재지요. 그런 절대자가 능력 부족을 자인하다니, 이게 뭔가 싶더군요. 독재자의 위선일까요. '악어의 눈물'일까요. 그게 다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은도 인민을 의식하는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잘못했다간 큰일 난다는 위기감이 있는 겁니다.
김정은이 갑자기 개과천선한 건 아니겠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20년 전 '고난의 행군' 때 수십만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래도 체제가 유지됐습니다. 오랜 우상화와 세뇌 때문이죠. 인민들은 불만이 많아도 일말의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김정은에겐 '혁명 자산'이 없습니다. 새파란 20대 나이에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인민들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존경심도, 충성심도 없습니다.
김정은이 처한 상황은 아버지와 다릅니다. 외부 정보가 대량 유입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남한 사정을 다 압니다. 남한 드라마를 보고 남한 방송을 듣습니다. 북한이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체제가 위협받는 구조가 됐습니다. 20년 전 같은 경제난이 또 오면 북한은 무너집니다. 누구보다 김정은 본인이 잘 압니다.
이 모든 상황의 출발점이 '고난의 행군'입니다. 경제가 마비되자 김정일은 고육지책으로 장마당을 허용했습니다. 시장을 만들어줄 테니 그걸로 먹고살라 한 거죠. 이제 장마당은 북한 경제의 중추입니다. 장마당을 통해 물자가 오가고 생필품이 거래됩니다. 남한 정보도 장마당을 통해 들어옵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 도입한 장마당이 체제의 명줄을 쥔 아킬레스건(腱)이 됐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북한은 더 이상 고립된 계획경제가 아닙니다. 사실상 시장경제나 다름없습니다. 시장은 '채찍'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김정은이 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장마당 때문에 대외 의존도도 높아졌습니다. 중국 등을 통한 교역이 막히면 시장이 무너집니다. 대북 제재에 북한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까닭이 이겁니다. 장마당이 북한을 제재에 취약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장경제 실험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죠.
새해 벽두 시작된 김정은의 대화 공세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정은이 손을 내민 것은 그보다 한 달도 전의 일입니다. 작년 11월 미사일 실험 후 북한이 '핵 완성'을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대기권 진입 기술이 남았는데도 '완성'이라고 우겼습니다. 완성이 뭡니까. 더 이상 실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미사일을 안 쏠 테니 협상하자는 신호를 보낸 겁니다.
그래도 한국·미국의 반응이 없자 올 신년사엔 평창을 끌어들입니다. 남은 올림픽, 북은 '공화국 창건' 70주년이란 쌍(雙)경사가 있으니 잘 해보자고 합니다. 아니, 올림픽하고 '공화국 창건'하고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려고 억지로 엮은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여동생까지 보냅니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얘기겠죠.
김정은이 2012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그는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합니다. 자본주의 냄새가 진동하는 용어까지 썼습니다. 저는 이게 빈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정은이 인민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지 못하면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은 정말 급합니다. 국제 제재가 숨통을 조여옵니다. 제재가 계속되면 견디지 못합니다. 시장이 무너지고 체제가 흔들립니다. 핵과 미사일로 허세 부리지만 김정은은 약세에 몰려 있습니다. 칼자루를 쥔 것은 이쪽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더 거칠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김정은을 끝까지 몰아붙여야 합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얻어낼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에 하나 적당히 타협해 또 핵을 연명시켜준다면 역사에 대한 반역입니다.
※탈북자 출신 북한 전문가 A박사 인터뷰를 토대로 했습니다.
-박정훈 논설위원, 조선일보(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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