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청, 한인 글로벌 네트워크 중심 역할을]
[세계의 부자와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오려면]
[質도 높아진 국내 외국인 200만명, 국가 미래 다룰 ‘이민청’ 검토를]
[오사카는 '짬뽕', 워드는 '한민족'?]
[民族은 멜랑콜리다!]
재외동포청, 한인 글로벌 네트워크 중심 역할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재외동포청 신설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공포안에 서명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재외 동포 중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감격스러웠다. 오는 6월 공식 출범하는 재외동포청은 재외 동포들의 오랜 소원이었다. 현재 전 세계 113국이 해외 거주 자국민과 그 후예들을 지원·활용하기 위한 전담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적 외교·안보 정책만으로는 국익 추구와 해외 국민 보호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청은 750만 한인 네트워크를 질적·양적으로 성장시키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재외 동포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물적 네트워크의 잠재력과 경쟁력은 무궁무진하다. 이를 유지·격려·포용하는 강력한 구심력을 발휘해야 한다. 재외동포청은 또 언어·문화 장벽을 뛰어넘어 재외 동포 사회와 긴밀히 소통·협력하는 창구여야 한다. 이를 통해 재외 동포들이 지역·세대·문화별로 직면한 각종 현안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맞는 사업을 펼치는 정책 조정자 역할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재외 동포는 세계시민으로서 인류가 안고 있는 다양한 현안 해결에 앞장서는 글로벌 조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해외 인적 자산이 있다. 180여 국 750만 재외 동포와 전 세계 한류 팬이 그들이다. 국내에는 120여 국가에서 온 200만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유학생·결혼이민자 등도 있다. 우리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들과 협력·연대하면 우리나라가 직면한 인구·노동력 부족, 경제 협력 같은 현안 해결에 든든한 후원 세력을 얻게 될 것이다. 재외동포청이 앞장서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김영근 세계한인네트워크 대표, 조선일보(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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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부자와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오려면
[朝鮮칼럼]
‘인구 절벽’ 극복 위해 이민 정책 논의할 때
살고 싶은 나라라야 부유층·최고 두뇌 몰려든다
상속·증여세 확 줄이고 다원적 포용 사회 만들어야
합계출산율 0.78, 인구학의 그 수치를 우화로 풀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섬마을에 모여살던 100쌍(200명)의 청춘 남녀가 아기를 78명 밖에 낳지 않아서 머잖아 무인도가 돼버리더란 부조리극일까, 위기에 처한 섬사람들이 환경을 바꾸고 풍속을 일신해서 다시 인구를 불려 잘 살았다는 도덕극일까. 그 섬에 먼 나라 부족들이 옮겨와서 흥겹고 신나게 어울려 살더란 해학극일까, 밖에서 밀려온 부랑아들이 섬사람들을 노예 삼고 그 섬을 해적 소굴로 만들더라는 괴기극일까.

서울 시내의 한 산부인과 앞을 시민이 지나는 모습./뉴스1
2006년 이래 한국 정부는 아름다운 도덕극을 꿈꾸며 280조를 퍼부었지만, 다시 출산율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한민족이 멸종하는 부조리극이 펼쳐질까 무서워 일단 이민 문호의 개방엔 동의하지만, 다문화의 해학극이 아니라 갈등의 괴기극이 벌어질까 근심이 깊다. 정부는 이제야 이민청을 세우려 한다. 최근 법무부 장관은 이민 정책을 참조하기 위해 유럽 주요 국가를 방문했다. 이민 없이 인구 급감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든 인구 절벽에 부딪히면 이민 정책에서 출구를 찾는다. 문제는 과연 어떤 철학에 따라 어떤 이민 정책을 추진하느냐다.
이민 문호를 여는 순간, 한국은 좋은 이민 제도와 오랜 경험을 가진 여러 나라와 경쟁해야만 한다. 경쟁 결과 한국엔 외부에서 ‘불량배’와 ‘뜨내기’만 몰려올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민에 반대한다. 후진국 단순 노무자만 유입되는 이민 정책은 더 큰 문제를 배태할 수 있다. 만약 이민 정책이 외국 부자들의 투자 유치이고 고급 인력의 스카우트라면, 일부 순혈주의자를 제외한 대다수가 반길 터이다. 이민 정책의 성패는 해외의 부자와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4명 중 1명이 이민자인 캐나다는 곧 한 해 50만명까지 이민자를 늘릴 계획이다. 그중 50% 이상을 고급 인력과 투자 이민자로, 10~15%는 난민으로 채운다고 한다. 캐나다는 인종, 종교, 문화 및 성적 차이를 넘어서는 다양성·다원성·포용성을 국가 철학이자 보편 가치로 선전하고 교육한다. 또한 광활한 대지와 풍부한 자원이 있으며, 전 국민 무상 의료를 실시하고 있고, 평균 사교육비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이며, 상속과 증여의 세율은 0%이다.
한국은 과연 무엇을 내세워 “우리나라에 오라”고 외칠 수 있을까. 현재 한국은 의료 시스템, 대중교통, 방범 치안, 행정 서비스 등 여러 면에서 분명히 편리하고 살기 좋은 나라이지만, 외국인이 이주해서 살기엔 불리한 점이 너무나 많다. 한국에 살면 누구나 ‘깡패 국가’의 핵 위협에 시달려야 하고, 무한 경쟁에 내몰려야 하고, 천문학적 사교육비를 써야 하고, 말년엔 세계 최고 세율의 상속세를 내야만 한다. 게다가 이미 반세기 넘게 “단일민족”이라 가르쳐온 한국 사회가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의 도가니로 바뀔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런 불리한 점만 보면, 한국의 이민 정책은 시작도 전에 절망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이민 정책마저 실패한다면 ‘인구 절벽’은 ‘인구 나락’이 되고 만다.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순 없을까?
해외의 부자와 인재를 유인하기 위해선 한국 사회가 먼저 대전환을 거쳐야만 한다. 민족 지상주의가 판치는 나라엔 외국인이 설 자리가 없다. 세계 최고의 상속·증여세를 자랑하는 나라는 돈 많은 외국인을 부르긴커녕 자국민의 해외 이주를 부추긴다. 어디나 부자와 인재는 자식들을 국제 감각을 가진 유능한 세계인으로 키울 수 있길 원한다. 또한 그들은 한 번 가면 절대 못 떠나는 운명의 종착지가 아니라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는 국제화의 허브를 찾아다닌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지 않고선 그 어떤 이민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이민 문호의 개방은 한국 사회에 큰 도전이자 기회를 제공한다. 문호를 여는 만큼 한국 사회가 괴기극의 세트로 바뀔 수도 있지만, 한층 더 국제적인 활달한 해학극의 무대로 진화할 수도 있다. 멀리서 부자와 인재가 모여드는 나라라면, 젊은이들은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민 정책은 영리한 출산 정책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살기 싫은 나라엔 남이 오지 않듯이 남이 오고 싶어 하는 나라라면 누구나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민을 논하는 이때야말로 나라의 틀을 바꿔 절벽을 타고 오를 기회일 수 있다. 도전과 응전은 역사 발전의 공식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조선일보(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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質도 높아진 국내 외국인 200만명, 국가 미래 다룰 ‘이민청’ 검토를

7월 1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입국 길이 막혔던 외국인 근로자들의 입국이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들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1월 2671명, 2월 2341명, 3월 3813명, 4월 4867명, 5월 5308명, 6월 6208명이며, 7월에는 1만명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뉴스1
국내 체류 외국인이 코로나 여파로 급감했다가 15개월 만에 200만명대를 회복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9년 252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지난해 급감한 후 지난 5월 현재 201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예전엔 국내 체류 외국인이 공장·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중심이었는데 최근에는 창업이나 연구·개발을 위한 고급 인재가 늘고 있다. 긍정적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는 5173만80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했다. 총인구는 외국인을 포함해 한국 땅에 사는 사람의 합계인데, 1년 전보다 9만1000명(0.2%) 줄어든 것이다. 매달 태어나는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자연 감소가 2019년 11월부터 이어진 데 이어 코로나 여파로 국내 거주 외국인까지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구 감소에 대비한 노동력 확보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15~64세 생산 연령 인구는 1년 새 34만명이나 감소했다.
저출산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력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이제 이민 정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외국인 국내 이주를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이제는 국내에 부족한 글로벌 고급 인력을 적극 유치하는 전략으로 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연령대의 인력이 필요한지, 이런 인력을 어떻게 국내로 유입시킬지, 이들을 어떻게 국내에 잘 정착시켜 활용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계획하고 정책을 집행할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시점이다.
지금은 법무부가 이민자와 외국 국적 동포,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 여성가족부는 결혼이민자와 다문화 가족, 외교부는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럴 일이 아니다. 현재 법무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민청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출입국 업무를 넘어 국가 미래 전략을 세우는 일인 만큼 범정부 차원으로 논의를 넓힐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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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짬뽕', 워드는 '한민족'?
혼혈 오사카, 호주오픈 우승에 순수 일본인 아니라고 비아냥
피부색·혈통으로 남 헐뜯는 건 그 사회의 편협함 드러내는 것
지난달 치러진 아시안컵 축구 결승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과연 누굴 응원했을까. 한국과 함께 동북아시아 양강(兩强) 체제를 이루는 일본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0대1 뼈아픈 패배를 안긴 중동의 신흥 강호 카타르일까. 한국 축구가 역습에 허를 찔려 59년 만의 우승 꿈이 사그라진 마당에 "누가 우승해도 무슨 상관?"이라는 사람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후자가 더 많지 않았을까.
1월 말 끝난 테니스 메이저대회 호주오픈에서 오사카 나오미가 2연속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차지하자 일본은 난리가 났다. 아베 총리가 축전을 보냈고, 후원 계약이 줄을 이었다. 오사카는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남녀 통틀어 처음으로 테니스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오사카 나오미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 출신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외모만 보면 일본인보다 흑인에 가깝다. 순수한 일본인이 우승했어도 사돈이 논 산 것처럼 배 아파했을 텐데 다른 피까지 섞였으니 국내 극성 네티즌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애써 일본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댓글 화살을 쏘아댄다.
'일본인이 아니라 아프리칸 아시안이 맞는다' '비빔 짬뽕 혈통이군~'….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가위바위보조차 지고 싶지 않은 나라'다. 마치 중세에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댔던 영국과 프랑스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35년 일제강점기란 아픈 기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기에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의 쾌거를 애써 깎아내리려 하기 전 우리 모습부터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2006년 NFL(미프로풋볼리그) 결승 수퍼볼에서 '하프 코리안' 하인스 워드가 소속팀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우승으로 이끌고 MVP로 선정됐을 때를 떠올려보자. 미국에서 흑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뒤 아들 워드를 키우는 데 모든 시간을 바친 한국인 어머니, 그 밑에서 인종차별과 역경을 딛고 최고 스타의 자리에 선 뒤 어머니에게 공을 돌린 워드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한민족 특유의 희생과 부지런함 그리고 효(孝)를 떠올렸다.
워드의 피부색도 오사카 나오미처럼 흑인에 가깝고 터전을 잡아 사는 곳도 미국 땅인데, 우리는 한민족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 과시된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자 개선장군처럼 대접했다.
어렸을 때부터 '단일 민족 국가'라는 말을 귀 닳도록 들어서인지 한국인의 핏줄 따지기는 지구촌에서도 남다른 축에 속한다. 한때 여자 골프의 '타이거 우즈'로 기대를 모았던 미셸 위,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금메달을 목에 건 '이민 2세' 클로이 킴,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모두 미국인인데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한국인, 한민족으로 통한다.
이러면서도 국내 역차별은 여전하다. 법무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전체 인구의 4% 선인 200만명을 넘어섰다. 2040년엔 다문화 가정이 전체 2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여성가족부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차별 대우, 문화적 차이, 집단 따돌림 등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은 증가 추세다. 국위를 선양하면 자랑스러운 한민족인데 그냥 평범하면 '핏줄이 다른 민족' 취급을 한다.
결국 '오사카는 짬뽕, 워드는 한민족'이란 식으로 핏줄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건 그 사회의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오사카의 우승 소식에 달린 댓글 중 한 네티즌의 말이 유난히 와 닿는다.
"오사카의 사진을 보면서 순수 혈통의 일본인이 아니라고 확인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강호철 스포츠부장, 조선일보(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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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族은 멜랑콜리다!
[김정운의 麗水漫漫]
돈 많다고 자랑하면 안 된다. 죽어라 노력해서 돈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면 더욱 안 된다. 단언컨대, 돈 많이 버는 것은 순전히 운이다. 타고나는 것도 자랑하면 안 된다. 외모 같은 거다. 그래서 나는 어디 가서 내 외모 자랑 절대 안 한다. 빤한 것을 자랑해서 남들 불쾌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그러나 노력하는 것은 자랑해도 된다. 나는 매일 영어, 독어, 일어 공부를 한다. 외국어 능력은 100세 시대의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외국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면 참 좋다. 어학도 늘고 세상을 보는 안목도 확 달라진다. 지난주에는 독일 공영방송인 체데에프(ZDF)에서 하는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직접 찍은 영상을 모아 보여주고, 그들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평양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러나 독일 내레이터의 마지막 코멘트는 충격이었다. 남과 북 모두 '같은 민족'이라며 통일하겠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저토록 다른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같은 민족'이냐는 거다. 아차 싶었다.
'민족'은 원래 없었다. 단어 자체가 아예 없었다. '민족'은 메이지 시대 이와쿠라 사절단 일원으로 구미 각국을 여행한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가 1878년 펴낸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에 처음 나타난 표현이다. 그 후 독일제국의 국가론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민족'은 '국가(Nation)'와 '종족(Volk)'이 결합한 뜻으로 본격 사용되기 시작한다. '국민', '민족', '종족'의 의미론은 이때부터 마구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을 거치면서 근대적 형태의 '국가(state)'가 성립된다. 왕의 '신민(臣民)'은 '국민(nation)'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는다. 이전의 국가 형태에서는 왕조나 종교, 혹은 농업 공동체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러나 근대국가에서 '국민'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줄 연결고리는 없었다. 이때 '가족'과 '국가'의 심리적 연합이 생겨난다. '가족처럼 국민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근대 국가의 '가족 로망스'다. 그렇지 않고야 프랑스 혁명의 이념('자유, 평등, 형제애')에 뜬금없는 '형제애'가 들어가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역사학자 린 헌트(Lynn Hunt)는 되묻는다. 또 다른 역사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국민'은 아예 구체적 실체가 없는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숭고한 멜랑콜리(erhabene Melancholie)’. /그림=김정운
'가족 메타포'는 아주 기막혔다. 특히 일본에서 고안된 '민족' 개념과 무척 잘 어울렸다. '민족'에 내재한 '가족 메타포'는 동양에선 아주 쉽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다. 분단의 한반도에서 '민족=가족' 이데올로기의 파워는 더욱 강력해졌다. 서구가 수백년 걸린 근대화의 과정을 수십년 만에 해치울 수 있었던 그 엄청난 저력도 '흩어진 가족'과 같은 민족의 '한(恨)'이었다. 어떻게든 돈 많이 벌어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야 했다. 그래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분단은 항상 '이산가족'의 슬픔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 스스로 한번 확인해봐야 한다.
정말 우리가 분단을 이산가족의 슬픔처럼 느끼고 있느냐는 거다.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느낄 수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을 현장에서 경험한 나로서는 지극히 비관적이다. 심리적 통일까지 이루려면 분단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과연 우리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70~80년 넘는 세월을 인내할 수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 김정은이 나타나면 감격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박수 치고, 눈물까지 흘리는 저 북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 각자는 그 엄청난 '통일세'를 수십년 동안 기꺼이 낼 수 있을까?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의 오만함에 분노하여 '김정은 시절이 더 좋았다'며 '조선노동당'을 다시 창당하면 도대체 무슨 느낌이 들까? 그 '조선노동당'이 북한 지역에서 몰표를 얻어 대한민국 국회의 한구석을 당당히 차지하는 모습을 '가족처럼'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이는 독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지난 시대의 '민족=가족' 이데올로기는 이제 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찬란했던 시절의 부서진 유물을 볼 때 생기는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멜랑콜리(Melancholie)'라고 했다. 아울러 구시대의 유물로부터 새로운 극복의 가능성을 찾는 창조적 통찰을 '숭고한 멜랑콜리(erhabene Melancholie)'라고 불렀다.
바닷가 화실에서 혼자 지내며 뉴스로 접하는 북핵 사태는 참으로 고통스럽다. 과거 독일에서 13년, 일본에서 4년을 사는 동안 나는 아주 심각한 '국수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남북한 '단일민족'의 이념과 '통일'이라는 '무의식적 전제'들을 '숭고한 멜랑콜리'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 '민족'이라는 '당연한 전제'를 해체하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는 아주 달라진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옵션도 확연히 넓어진다.
'민족'은 '가족'이 아니다. '우울'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조선일보(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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