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또 용서 구한 獨] ....

뚝섬 2023. 4. 21. 09:30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또 용서 구한 獨]

[일본, 그 영원한 주홍글씨.. ]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또 용서 구한 獨

 

19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영웅 기념비 앞.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폴란드 대통령, 이스라엘 대통령과 나란히 헌화한 뒤 머리를 숙였다. 이곳은 1943년 바르샤바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강제수용소 이송에 저항하다 1만3000여 명이 사망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에 사죄하면서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장소이기도 하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연설에서 “여러분 앞에 서서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독일인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과거사를 계속 반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이스라엘 러시아 폴란드 등 제2차 세계대전 피해국들을 방문해 “야만적인 범죄에 깊이 부끄럽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수차례 사죄했다. 1985년 “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자는 현재도 보지 못한다”고 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대통령 등 독일 정부의 사과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 내에서도 과거사는 그만 이야기하자는 여론이 적지 않다. 2020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3%가 ‘이제 나치 시대와 단절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극우세력이 늘면서 신(新)나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독일 정치의 주류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지도자들은 과거사에 대해 한결같은 태도를 보여왔고, 이는 유럽 통합의 기틀이 됐다. 이제 나치의 최대 피해국 이스라엘도 “독일은 유럽의 도덕적 나침반”이라고 평가한다.

 

▷일본도 과거사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고 주장한다.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하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던 1993년 고노 담화,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던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있다. 하지만 독일처럼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과의 필수 요건인 일관성과 진정성이 없어서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언급하더니 한 달도 안 지나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증거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에 대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애매한 표현을 쓰더니 며칠 만에 과거사를 더 왜곡하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내놨다.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일본 방문 당시 “독일이 여러 나라와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라고 일본에 일침을 놨다. 사과하는 시늉만 내면서 과거사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행태는 일본의 국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3-04-21)-

_________________

 

 

일본, 그 영원한 주홍글씨..

 

우리 사회 가장 가혹한 낙인 '親日'…

선거철마다 '反日' 포퓰리즘 설쳐

안보·북핵·경제 등 韓·日 현안 산적, 정부는 과거사 감정싸움에 매몰

피해자 의식은 이제 넘어설 때… 친일 문제는 克日로 풀어야

 

신숙주(申叔舟·1417~1475)는 훈민정음 창제를 도운 유능한 지식인·관료였지만 숙주나물의 속설이 말하듯 정치적 변절의 상징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국제 정세에 밝은 외교와 국방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꽉 막힌 현재의 대일 관계를 푸는 데 신숙주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1471)'는 특히 유용하다. 중국을 관찰한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비슷하게 소중한 통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1443년 27세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일본의 지세(地勢)와 국정(國情), 교류 연혁과 외교 법제 등을 기록해 성종 때 낸 책이 해동제국기다. 책 서문에서 신숙주는 '외적을 대하는 방법은 외정(外征)이 아니라 내치에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을 한반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세력이 심히 큰' 나라로 규정한 후 미래의 안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는 게 최우선 과제임을 역설했다.

이는 100여년 후 임진왜란을 부른 조선의 국정 문란을 예견한 진술임과 동시에 2015년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팀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한 경고로 읽힐 수 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11월 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아베 신조 총리의 정상회담은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이명박·노다 요시히코 회담 이후 무려 3년 6개월 만에 열린 개별 한·일 정상회담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만 한·미 정상회담 4차례, 한·중 정상회담이 6차례 열린 것에 비해 한·일 관계는 너무 막혀 있었다. 막대한 국익 손실을 가져온 경색 관계였다.

일본 왕복에 7개월이 걸린 험한 바닷길에 생명까지 건 신숙주라면 개탄해 마지않았을 일이다. 임종 무렵 신숙주는 성종에게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는 당부를 남긴다. '일본을 경계하면서도 결코 실화(失和·관계가 나빠짐)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지금은 동북아 안보와 북핵, 경제 등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한·일 간 중대 현안이 쌓여 있는 긴급 상황이다. 과거사의 명분론과 감정싸움으로 대일 관계를 4년 가까이 허송세월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단견(短見)을 꼬집는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에 이런저런 '주홍글씨'가 있지만 '친일'의 낙인이 가장 가혹하다. '친북'이나 '친독재'가 지탄의 대상이 되어도 그걸 옹호하는 소수 집단이 있는 반면 친일파를 지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일본 트라우마'에 기초한 반일 감정이 한국 민족주의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혹하기 짝이 없던 일제 식민 통치의 악몽은 한국인의 집단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식민 통치가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이론(異論)에 수많은 한국 시민이 격렬한 실존적 반감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선거철마다 정치인이 포퓰리즘적 반일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친일의 딱지는 사회적 사망증명서다. 친일파의 주홍글씨가 붙은 춘원 이광수의 유족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 민족주의의 바탕에 있는 피해자 의식은 이제 넘어설 때가 됐다.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이룬 대한민국이 과거사 때문에 미래로 전진하지 못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폐쇄적 한국 민족주의와 극우적 일본 민족주의가 적대적 공존 관계를 이루어 두 사회의 퇴행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도 심각하다. 일본 아베 정권에 한·일 관계 경색의 결정적 책임이 있지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식민 통치에 대한 참된 사과를 끝내 거부한다면 그것은 결국 일본 국격(國格)의 치명적 결함이다. 과거를 사죄한 독일과는 달리 일본이 세계의 리더가 될 길에서 멀어진 것이니 일본의 부담으로 남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명분론을 절제한 건 잘한 일이다.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북핵 위기와 통일, 중국의 대국굴기를 감안하면 대일 관계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진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전된 방안을 제시한다면 우리도 전향적으로 대응하는 게 낫다. 친일 문제는 궁극적으로 극일(克日)로 풀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더 잘사는 건강한 민주사회가 될 때 친일의 악몽은 영구히 사라진다. 임진왜란을 성찰한 유성룡은 '일본과 가깝게 지내라'는 신숙주의 당부를 '징비록' 맨 앞에 실었다. 피와 눈물의 당부는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일본에 덧입힌 주홍글씨를 벗겨 내 동등한 이웃 나라로서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15-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