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로 美는 1조원 배상, 韓은 오히려 돈 벌고 정치 이득]
[거짓말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가짜 뉴스로 美는 1조원 배상, 韓은 오히려 돈 벌고 정치 이득

폭스사가 지난 미국 대선 후 반복적으로 방송한 ‘개표기 조작’ 의혹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에 7억8750만달러(약 1조391억원)를 물어주기로 18일 합의했다. 사진은 2020년 11월 ‘네바다 투표소에서 투표 사기가 벌어졌다’고 주장한 인물의 얼굴을 가리고 인터뷰한 폭스뉴스 화면./FOX뉴스 화면캡처
2020년 11월 미국 대선 후 개표 조작 가능성을 반복해서 보도한 폭스사(社)가 약 1조원을 배상하게 됐다. 미국 50주 중 28주에서 사용한 투·개표기 제조 업체가 고소한 사건에서 폭스는 잘못을 인정, 약 1조원 배상에 합의했다. 폭스의 배상액은 지난해 매출의 5%로 미국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개된 합의금 중 가장 크다고 한다. 폭스는 트럼프가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상황에서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이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을 지펴 2021년 1월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에 트럼프 지지층이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 사태로 이어졌다.
미국은 건국 이래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 헌법 1조를 거의 신성시해왔다. 악의만 없으면 사실이 다소 틀린다고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관행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도가 있다는 것이 이번 판결이다. 거짓임이 명확하며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이 판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정착됐다고 평가받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8회원국 중에서 한국처럼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다. 휴대폰,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가 되면서 가짜 뉴스도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이로 인한 좌우·남녀·세대 갈등과 국력 소모는 심각하다.
2008년 MBC PD수첩 보도로 시작된 광우병 사태는 그 핵심 보도 내용이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법원이 그렇게 판결했다. 그런데도 사과도 한마디 없었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자가 MBC 사장이 됐다. 2010년엔 천안함 폭침이 ‘자작극이다’ ‘좌초됐다’ ‘미군 잠수함 충돌’ ‘우리 기뢰 폭발’ 등 온갖 가짜 뉴스가 난무했다. 국제 조사단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로 결론 냈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침몰 때는 미군 잠수함, 한국군 잠수함 충돌설이 마치 진짜인 듯 돌아다녔다. 세월호가 인양돼 배 어디에도 충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2016년 사드 배치 결정이 나자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는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고 했다. 실제는 핸드폰 전자파보다 훨씬 더 약한 전자파인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사드 레이더에 몸이 튀겨진다’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2017년 최순실 사건 때는 민주당 중진 의원이 “박정희 통치자금이 300조원, 최순실 일가 은닉 재산이 조(兆) 단위”라고 했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가짜 뉴스를 서슴없이 퍼뜨린다. 이 의원은 그 뒤에도 여러 가짜 뉴스를 퍼뜨렸으나 한마디도 사과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무속인의 대통령 관저 결정 개입’ ‘대통령·법무장관의 청담동 술자리’가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허위로 판명됐으나 괴담 유포자들은 아무런 사죄도 않고 있다. 도리어 지지층에게 박수를 받고 돈을 벌었다. 민주당 일부는 지난 정권에서 채널A 기자 사건 등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꾸며내기도 했다.
가짜 뉴스와 오보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보는 보도하는 측이 납득할 만한 확인 과정을 거쳤지만 사실로 잘못 오해한 것이다. 이런 오보는 최대한 줄여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발생하곤 한다. 오보로 밝혀지면 책임 있는 사람이나 기관은 즉각 인정하고 사과한다. 그러나 가짜 뉴스는 처음부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실을 왜곡 과장하거나 심지어 조작하는 것으로 애초에 사실 여부엔 관심도 없다. 그러니 가짜 뉴스로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는다.
법원이 오보와 가짜 뉴스를 구별하고 가짜 뉴스에 대해선 엄벌에 처하는 판례를 쌓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가짜 뉴스로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이들은 퇴출시킨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한 국민 통합은 불가능하다.
-조선일보(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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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그들(권력자들)이 거짓말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에서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백악관은 기밀 문서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고소했지만, 결국 대법원은 언론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권력을 쥔 이들의 거짓말은 탄로 났다.
이처럼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신성시하는 나라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는 미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거짓이 아닌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선 공인에 대해 일부 틀린 정보를 보도하더라도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입증되지 않는 한 명예훼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 미국에서 지난 18일(현지 시각)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020년 미국 대선에 대해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수차례 보도했던 폭스사(社)가 투·개표기 제조 업체 도미니언에 1조원에 달하는 돈을 물어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미 명예훼손 소송에서 공개된 합의금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온 미국에서 언론 보도 관련 재판이 이처럼 거액의 배상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번 소송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승리한 2020년 11월 미 대선이 끝난 후 폭스뉴스가 보도한 음모론에서 시작됐다. 폭스뉴스는 “도미니언이 바이든의 당선을 위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잇달아 내보냈다. 지난 대선에서 전국 50주 중 28주에 투·개표기를 제공한 도미니언은 폭스뉴스의 허위 보도로 자사의 명예가 심각하게 손상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인 폭스 측은 자신들의 보도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이번 소송을 두고 “수정헌법 1조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폭스뉴스가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방송을 내보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판세가 불리해지자, 폭스는 합의로 재판을 마무리하는 쪽을 택했다.
폭스뉴스의 거짓 보도는 도미니언의 명예뿐만 아니라 미 민주주의까지 훼손시켰다. 폭스뉴스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채질하자, 패배를 부정하던 트럼프 지지층 사이에서 대선 불복 기조가 확산했다. 이는 이듬해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 의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밖에도 2020년 대선을 전후로 미국 사회는 온갖 가짜 뉴스로 몸살을 앓았다. 폭스 소송과 1·6 사태가 전하는 교훈은 명확하다. 누군가는 코웃음 칠 ‘틀린 진실’은 의회를 부술 정도로 힘이 셌다. 좌건 우건 가짜 뉴스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
-김나영 기자, 조선일보(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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