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사태 키운 건 8할이 투자자 탐욕]
[부동산·주식으로 일확천금...“큰손들은 이렇게 돈 벌잖아요.”]
[임창정은 피해자일까]
SG사태 키운 건 8할이 투자자 탐욕
[경제포커스]
조직화, 지능화, 첨단화 거치며 날로 진화하는 주가조작 수법
미등록업체에 휴대폰·계좌 넘긴 자산가들의 탐욕 반성해야
나폴레옹 전쟁이 막바지였던 1814년 2월 21일 월요일 아침, 프랑스와 마주한 영국 동남부 항구도시 도버에서 군복을 입은 장교가 “나폴레옹이 죽었다. 연합군이 드디어 파리를 점령했다”고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도시로 퍼졌고, 전신으로 런던에 있는 해군성에 전달됐다.

ellcome Collection 역사상 최초로 주가조작으로 처벌받은 '드 베렝거' 사건을 풍자한 조지 크룩생크의 삽화. 나폴레옹이 사망했다는 거짓 소문을 전하는 마차가 달리는 동안 드 베렝거 대위와 코크레인 해군 제독 등 주가조작에 가담한 세력이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다.
전쟁에 신음하던 영국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뉴스는 없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나폴레옹이 패배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던 터라 런던증권거래소의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영국 정부가 나폴레옹 사망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하면서 주가는 급등 이전 수준으로 급락했다. 실제 나폴레옹은 이보다 두 달여 뒤인 4월 권좌에서 물러났고, 5월 초 엘바섬에 유배된다.
진상 조사에 나선 영국 정부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끌어올린 뒤 주식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챙긴 드 베렝거(De Berenger) 일당을 적발하고 사기 혐의로 최고 1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주가조작으로 처벌받은 ‘베렝거 사건’이다.
베렝거 사건 이후 주가조작의 수법은 날로 진화했다. 우리나라 주가조작 사례를 망라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30년사(금융감독원)’를 보면, 수법이 대범해지고 교묘해지는 과정을 대략 몇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한국 증시 사상 첫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1988년 광덕물산 사건부터 1990년대까지 개인 차원에서 행해지던 주가조작이 세력으로 조직화된 시기다. 광덕물산은 대표이사가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가명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수준이었지만, 1991년 진흥상호신용금고 사건에는 증권사 직원들이, 1992년 신정제지 부도 사건에는 회계사 등 전문직들이 가담했다.
2단계는 조직화한 세력들이 신약·신기술 개발 같은 호재성 재료를 띄워 주가조작에 나선 2000년대 이후다. 보물선 주가조작으로 유명한 2001년 삼애인더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던 1단계보다 지능화된 것이다.
3단계의 특징은 기업화와 첨단화다. 주가조작에 폰지 사기와 MTS(모바일거래시스템)가 동원된 것이다. 2007년 루보 사건에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다단계 방식이 첫 도입됐다. 당시 주범들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수법으로 3000여 명으로부터 1500억원대의 자금을 끌어모아 900원이던 루보 주가를 10개월 만에 57배가 넘는 5만1400원까지 끌어올렸다. 결국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주가는 3개월 만에 다시 900원대로 주저앉았고, 작전인 줄 모르고 뒤늦게 주식을 사들인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

나흘 연속 하한가 기록한 종목들의 최근 1년 주가 추이
지난달 24일 다우데이터·서울가스 등 8개 종목의 무더기 하한가로 촉발된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4단계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2~3년간 조금씩 주가를 끌어올린 치밀함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다단계 방식으로 끌어들인 투자자들이 대부분 의사·연예인·기업인 등 고액 자산가이기 때문이다.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숱한 금융 거래를 경험했을 자산가들이 “투자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는 기본을 무시하고 거액을 미등록 업체에 투자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이 상식선에서 “내 명의의 휴대폰과 계좌를 넘기면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한번만 했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탐욕은 일체를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했다.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투자자들은 먼저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나지홍 경제부장, 조선일보(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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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주식으로 일확천금...“큰손들은 이렇게 돈 벌잖아요.”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發) 대규모 주가 하락 사태에 연일 폭로가 쏟아진다. 금융 당국의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하루에 0.5~1%씩 미미하게 주가를 올리는 거래를 장장 1~3년간 해오면서 주가를 10배 넘게 띄운 신종 주가 조작이다. 이 주가 조작 세력도 예기치 않게 매도 물량이 쏟아져 돈을 잃게 되자 ‘피해 호소인’으로 나서는 희한한 금융 사건이다.

▶탐욕으로 벌어지는 투기의 역사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미국 영국에서도 심했다. 카리브해에서 침몰한 보물선을 한 선장이 건져내자 탐사 비용을 댄 사람들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는 소문이 퍼졌다. 영국 전역이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 뉴턴도 주가가 급상승하는 남해(South Sea) 기업 주식에 투자해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 주식 팔고 나서 몇 배나 더 오르는 걸 보고는 도저히 못 참고 다시 그 주식을 사들였다. 고점 매수였다. 주가 폭락으로 입은 손실이 2만파운드, 지금 돈으로 20억원이 넘는다. “천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있는데 주식시장에서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었다”는 뼈아픈 투기 후회담을 남겼다.
▶1861년 남북 전쟁 초기에는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1억5000만달러 규모의 화폐를 발행하자 투기꾼 천지가 됐다. 대표적 투기꾼 대니얼 드루는 서커스단의 동물 조련사였는데, 이후 에리 철도회사 이사로 영입되면서 동물 다루던 솜씨를 증시에서 십분 발휘했다. 자신의 손발이 될 젊은 투기꾼들을 증시에 풀어놓고 주가를 쥐락펴락했다. 불법으로 신주를 발행해 시장에 풀기도 했다. 월가 최초의 ‘물타기 수법’이었다. 판사와 관료들까지 매수했다. ‘거대한 곰’이라는 별명의 이 투기꾼은 자신이 키운 더 비열한 제자들에게 밀려났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일확천금은 투기 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로 수천억 거액을 챙긴 대장동 사태, 세입자 돈으로 집을 수백, 수천 채 챙긴 전세 사기범, 살인까지 벌어진 코인 투자 광풍 등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 광풍의 후유증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SG증권 사태에서 연예인, 의사 등 돈 많은 사람 1000명이 1조원 넘는 돈을 맡겼다고 한다. 본인도 30억원을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 투자 권유도 한 것으로 지목되는 한 연예인이 “큰손들은 다 그렇게 돈 벌잖아요”라고 말했다. 큰손들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일확천금하는 일이 계속되면 사회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일확천금’을 없애야 한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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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은 피해자일까
유명 가수 임창정씨가 ‘SG발 주가 폭락 사태’에서 스스로를 피해자라 지칭하고 있지만,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투자 권유를 하지 않았다”는 임씨 주장과 배치되는 듯한 영상마저 공개되자 그를 보는 시선은 더 따가워졌다.
작년 12월 임씨는 주가 조작 세력으로 의심받는 H투자자문 대표 라덕연씨가 참석한 투자자 모임에서 라씨를 지목하며 “너 잘하고 있어. 왜냐면 내 돈을 가져간 저 XX가 대단한 거야”라며 투자를 권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임씨가 라씨한테 돈을 맡기는 것에 대해 “아주 종교야”라고 말하자, 청중들은 “할렐루야. 믿습니다”라고 반응했다.

가수 임창정./뉴스1
이번 사태는 대성홀딩스·서울가스·삼천리·다우데이타·하림지주 등 8종목의 주가가 지난달 24일부터 하한가로 떨어지며 시작됐다. 모두 프랑스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 창구에서 대량 매도 주문이 나와서 SG발 폭락 사태로 불린다. 27일까지 나흘 동안 최대 76% 폭락하며 코스피 기준 역대 최장 하한가 기록을 세웠다. 8종목 시가총액 8조2000억원이 증발하며 1500명 넘는 투자자들이 1조원 안팎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임씨도 올해 초 자신의 연예기획사 지분 일부를 라씨 측에 매각하며 50억원을 받고, 그중 30억원을 라씨에게 다시 맡겼다. 그러면서 아내와 자신의 신분증을 줘가며 대리 투자하게 했다.
임씨는 한 달 반 만에 두 배 가까운 수익(58억원)이 날 때까지만 해도 잠잠했다. 그러다가 폭락 사태로 원금을 까먹고 60억원 빚까지 지고 난 뒤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다.
하지만 임씨는 작년 11월 라씨 측의 1조원 투자금 유치 축하 파티에 아내와 동석했고, 지난달 초에는 라씨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골프장 투자 출장에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 콘텐츠 제작사에 라씨 핵심 인물들을 사내 이사로 올려주기도 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이 정도면 거의 동업자 수준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임씨는 “(보도가) 사실과 다르고 나는 (주가 조작 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임씨 외에도 이번 사태에 등장하는 모든 관련자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라씨도, 한 중견기업 전 회장님도 큰돈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투자 실패자’ ‘피해 호소인’이 더 정확한 표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라씨와 다우데이타를 소유한 김익래 다우키움 회장 간에는 주가 폭락 책임을 놓고 소송전까지 벌어졌다. 김 회장은 주가 폭락 이틀 전에 다우데이타 주식 605억원어치를 매도했고 ‘폭락을 미리 안 것 아니었냐’는 의혹을 받았다. 김 회장 측은 “적법한 절차대로 팔았고 시점이 공교로웠다”고 해명했다.
거대한 ‘투전판’이 열렸다가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며 관련자들끼리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는 일반 투자자들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아무 정보 없이 해당 종목들에 투자했다가 진짜 ‘피해’를 본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어디 호소할 곳조차 없다.
-최형석 기자, 조선일보(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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